마더 카브리니 - 세상 가장 낮은 땅에 희망의 제국을 일구다
시어도어 메이너드 지음, 고정아 옮김 / 니케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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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프란체스카 카브리니는 중국에 선교를 가고 싶어헸고, 성심선교수회 역시 중국을 염두에 두고 세웠다. 스칼라브리니 주교가 프란체스카에게 그보다 뉴욕의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먼저 돕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을 때 그녀는 뉴욕도 미국도 자신에겐 너무 좁을 뿐, 전 세계 또한 좁다고 답했다. 


"동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가세요, 수녀님"


프란체스카가 레오 13세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야심을 드러냈을 때 운명이 결정되었다. 흰 예복을 입고 흰 모피로 가장자리를 두른 진홍색 망토를 걸친 노교황老敎皇은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이에 교황을 올려다보는 그녀에게 부드럽게 말했다.프란체스카가 거칠면서도 섬세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자 그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사진, 카브리니의 어린 시절 모습)


위대한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들이 첫걸음엔 실수하는 게 흔하다. 프란체스카 카브리니의 시작도 예외는 아니었다. 8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녀의 어린 시절 꿈인 선교사와 그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이 들 즈음 지역 사제의 부탁으로 한 공립 학교에서 2주간 임시 교사를 맡았으나 어린 아이를 가르치는 일이 처음이라 언니에게서 배운 엄격한 훈육 방식으로 임했다. 

그런데, 봉사자 신분이었던 프란체스카와 달리 돈을 벌 목적으로 일자리를 원했던 여자들은 취업 기회를 놓치자 '엄격함'을 비난의 구실로 삼았다. 그리고 부당하게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고까지 비난했던 것이다. 프란체스카의 첫 실수는 교실에서의 경직된 태도였다. 

또 프란체스카는 가톨릭 금욕주의를 신봉하며 침대가 아닌 나무판자에서 자느라 건강이 더욱 나빠졌다. 당시 교구 사제 세라티 몬시뇰은 그녀를 눈여겨보다 성심수녀회에 지원하려는 걸 알고 자신의 사업에 쓸 목적으로 원장 수녀에게 건강이 나쁘다는 정보를 흘리며 거절하도록 유도하는 교활한 방법을 사용했다. 결국 프란체스카는 입회를 거절당했다. 이후 이같은 작전이 밝혀졌지만 프란체스카에겐 최선의 결과를 안겨 주었다. 

세라티 몬시뇰의 목표는 교구의 고아원 시설인 '섭리의 집'을 개혁하고자 프란체스카를 이곳에 묶어두려 했다. 그럼에도 프란체스카는 자신의 계획을 기꺼이 포기하고 고아원 시설을 개선하는 일에 참여했다. 이는 수녀로서의 진정한 수련이었다.      

프란체스카는 섭리의 집의 수녀가 되기로 한 날,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낼지 모르는 가운데 자신만의 진정한 선교 수녀회를 만든 셈이다. 다른 방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섭리의 집은 괴짜 수녀 안토니아 톤디니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아주 부적합한 이름이었지만, 진실로 섭리가 지혜와 힘과 사랑을 보여준 집이었다.


(사진, 책표지)

만일 성인聖人이 화를 낸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그를 성인이라고 지칭했을 때다. 그는 신과 자신의 긴밀한 관계를 알 수도 있지만 아무리 가까워도 거기 만족하지 않는다. 이 생에서는 이룰 수 없는 더 큰 완전함이 언제나 저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성인은 한순간이라도 자신이 성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는 프란체스카 카브리니에게 꼭 들어맞는 사실이었다. 누가 프란체스카의 지인에게 "그분이 성인인 걸 아셨습니까?"하고 물으면 몇몇은 아주 솔직하게 대답할 것이다. "아뇨, 전혀 몰랐어요. 물론 정말로 훌륭한 분, 친절한 분이라는 건 알았습니다. 하지만 성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프란체스카는 이 대답에 만족했을 사람이다. 그녀는 항상 평범하게 보이려고 애를 썼다.

프란체스카 카브리니는 고독과 묵상을 갈망하는 사람이었지만 맹렬한 활동 역시 그녀의 기질에 맞았으리라는 생각이 들 법하다. 마더 카브리니에게 잠재되어 있던 커다란 에너지와 실행력은 기회만 있으면 발현될 수 있었다. 물론 이 모두를 신이 하사했을지도 모른다. 프란체스카는 오직 소명에 순종해서 선교수녀회의 장상 자리를 받아들였고, 그 직무를 맡아 이토록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그녀를 수줍고 예의 바른 시골 교사로만 알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다.


(사진, 마더 카브리니의 관)

성인으로 가는 길

프란체스카 카브리니는 생전에도 당대의 모든 교황에게 성인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다. 레오 13세는 실제로 그녀를 성인이라 불렀고, 베네딕토 15세-1889년에 프란체스카가 미국에 가져간 교황 훈령을 작성한 델레 키에사 몬시뇰-는 그녀에게 성령이 충만하다고 말했다. 비오 10세는 그녀를 복음의 진정한 사도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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