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해변 틈새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마이너스(Miners) 옮김 / 해밀누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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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중반, 매사추세츠의 작은 마을 콩코드를 보금자리 삼아 독특하면서도 영원한 문학적 명성을 안겨준 저명인사들 가운데, 소로는 유일하게 콩코드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그의 이웃 에머슨은 장년이 되어 은둔처를 찾아 이곳으로 왔고, 그가 이곳을 안식처로 삼은 뒤 호손, 올컷, 그리고 다른 이들이 뒤따라왔다. 그러나 그들 중 가장 독특한 천재였던 소로는 바로 이곳의 토박이였다. - '서문' 중에서 



에세이의 지은이는 콩코드 숲 속 오두막에 거주하며 자급자족 생활로 고독과 마주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다. 작가이자 사색가인 그는 콩코드에서 출생, 집안 대대로 영위하던 연필 제조업의 후광에 힘입어 부유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1837년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한 뒤 3년간 교편 생활을 하다가 가업家業인 연필 제조업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는 부富와 성공엔 그리 관심이 없어 오직 사랑했던 자연을 탐구하는 일에 몰두했고 이를 글로 남겼다. 바로 그 유명한 <월든>이다. 


그는 애향심이 남달라 고향 마을을 벗어나 방황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심지어 해외여행도 그를 유혹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해외로 떠난다면 그만큼 고향 마을을 즐길 환희를 잃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한다.      


"기껏해야 파리는 사는 법을 배우는 학교, 고향으로 가는 디딤돌일 뿐이다." (8쪽) 


한편, 이 책의 무대는 '케이프 코드'라는 해변이다. 숲 속 생활 다음의 사색지로 이곳을 선택했는데, 소로에게 케이프 코드는 단순한 여행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시간과 문명, 그리고 자연을 만나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아름답지는 않다. 차가운 바람, 모래, 그리고 끊임없이 토해내는 바다의 소리 등이 펼쳐졌으니 말이다. 


케이프 코드는 '케이프(프랑스어 카프cao, 곶)'과 '코드(대구codfish의 cod)'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지명이란다. 영국(잉글랜드)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북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내딛은 곳이기도 하다. 지도상엔 팔을 살짝 구부린 듯 대서양을 향해 뻗어나간 반도 모양이다.(사진 참조)    




1849년 10월 어느 날, 소로는 아직껏 제대로 본 적 없는 대양大洋을 더 잘 보고 싶어서 케이프 코드로 향했다. 대양은 지구의 3분의 2 이상을 덮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이를 마치 미지의 세계로 취급하지만 소로는 달랐다. 그의 지적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속보! 코하셋에서 145명이 목숨을 잃다"

콩코드를 떠나 보스턴에 도착하니, 전날 마땅히 들어와야 할 프로빈스타운 행行 증기선이 거센 폭풍 때문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후, 얼마 안 되어 거리에선 이런 전단지가 뿌려졌다. 그래서 코하셋을 거쳐 가기로 결정했다. 코하셋에 도착한 승객 대부분은 약 1마일 떨어진 해변으로 향하고 있었다. 불이 나면 불구경, 홍수가 나면 물구경을 하듯, 사람들의 발길이 사고현장을 향하는 건 동서고금 모두에 해당하는 듯하다.   

케이프 코드로 향했던 소로의 발걸음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1849년 10월, 1850년 6월, 그리고 1855년 7월 등 세 차례나 방문했다. 첫 번째와 마지막 방문은 동행이 있었으며, 두 번째 방문은 나홀로 발걸음이었다. 방문할 때마다 총 3주 가량 그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사실 소로는 박물학과 자연사自然史에 관해 폭넓은 지식을 소유한 지식인이었다. 알고 싶은 바가 있으면 실제로 몸을 움직여 현장을 방문해서 이를 목격하고 감상하면서 자신의 관찰 내용을 기록으로 꾸준히 남긴 대학자이기도 하다. 이 책 곳곳엔 이같은 해박한 지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 나타난다. 등장하는 수많은 동식물의 이름을 학명까지 소개할 정도이다. 

소로(정확하게는 일행)는 코하셋 바위들을 더 보기 위해 화이트헤드라는 곶까지 해안을 따라 계속 내려갔다. 반 마일 이내의 작은 만灣에선 한 노인과 그의 아들이 마차를 끌고 와, 그 치명적인 폭풍이 밀어 올린 해초를 모으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세상에 난파선 따위는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하게 일하고 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파도에 휩쓸려 온 해초, 즉 암초 해초, 켈프, 그리고 바닷말이었다. 이를 마차에 실어 헛간 마당으로 날랐다. 

브리지워터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샌드위치행 기치에 올랐다. 정오가 되기 전,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케이프 코드 철도'의 종착역이다. 비가 세차게 내려서 거의 사라져버린 교통수단인 역마차를 탔다. 이제 본격적으로 케이프에 들어섰다. 케이프는 샌드위치에서 동쪽으로 35마일, 거기서브터 북쪽과 북서쪽으로 30마일 더 뻐ㄸ어 있어서 총 65마일에 달하며, 폭은 약 5마일이다.

주州의 지질학자 히키콕에 따르면, 이곳은 거의 모래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떤 곳은 그 깊이가 300피트에 달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케이프의 전반부엔 역저기 모래와 섞인 커다란 돌덩이들이 발견되지만, 마지막 30마일 동안은 둥근 돌이나 자갈조차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大洋이 보스턴 항구와 본토 다른 灣들을 침식했고, 그 미세한 파편들이 해류에 의해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퇴적되어 모래톱을 형성했다고 추측한다. 

우리의 경로는 灣을 따라 반스터블, 야머스, 데니스, 부르스터를 거쳐 올리언스로 가는 길이었고, 오른쪽엔 케이프를 따라 뻗어 있는 낮은 언덕들이 있었다. 빗속에서 간신히 보이는 땅과 물의 모습을 최대한 감상했다. 시골은 대부분 황량하건나, 언덕 위에서 약간의 관목 숲만 남아 있었다. 길가의 모래는 이끼같은 식물, 히드소니아 토멘토사 다발로 부분적으로 덮여 있었는데, 역마차 안의 한 여인은 그것이 "가난뱅이 풀"이라고 불린다고 했다.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곳에서 자리기 때문이란 설명이었다.


(사진, 노셋 평원)

다음날 아침, 10월 11일 목요일,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라고 있었다. 그럼에도 소로와 동행인은 걷기로 마음을 굳혔다. 여관 주인장에게 대서양 쪽 해안을 따라 프로빈스타운까지 걸어갈 수 있을지, 도중에 개울이나 습지 같은 장애물이 있는지 등등. 장애물도 없도 오히려 길을 따라가는 것보다 더 가깝다고 답변했다. 

이렇게 책은 노셋평원, 해변, 웰플리트의 굴 장수, 다시 해변으로, 케이프를 가로질러, 하이랜드 등의 이야기로 계속 이어진다. 짧은 서평 속에 모두 담을 수 없어서 소개 내용을 건너 뛰려고 한다. 바다와 사막 편 이후부터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등대의 불빛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지만, 이제는 부드럽고 은빛의 광채를 띠고 있었다. 대양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기 위해 기상했을 때, 해는 동쪽 하늘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살제로는 바다 너머의 마른 땅에서 떠올랐음이 분명하다.

불안한 바다는 언제든지 당신의 발치로 고래나 난파선을 밀어 올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기자나 속기사도 그 바다가 전하는 소식을 제때 기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212쪽) 

주위엔 생명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어떤 존재도 천천히 움직일 수 없었다. 난파선 인양꾼들은 오가고 있었으며, 배들, 모래밭새들, 머리 위에서 비명을 지르는 갈매기들 모두가 쉼 없이 움직인다. 오직 해안선만이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문득 한 시인의 말을 떠올렸다.



(사진, 시 귀절) 


해변은 일종의 중립 지대이자, 이 세상을 관조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그러나 동시에 어딘가 하찮고 원초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영원히 육지로 밀려드는 파도는 너무나 멀리서 왔고, 길들여지지 않아서 결코 친숙해ㅐ질 수 없다. 끝없는 해변을 따라 선스콜과 거품 속을 걸을 때면, 인간 또한 바다의 점액질로 빚어진 존재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프로빈스타운의 이야기를 이어가 본다. 아침 일찍 호텔 근처 생선 창고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엔 서너 명의 남자들이 소금에 절인 생선을 손수레에 싣고 나와 말리기 위해 펴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은 소로에게 최근에 뱅크스에서 4만 4천 마리의 대구를 싣고 온 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프로빈스타운은 소위 번성하는 마을인 듯했다. 일부 주민들은 소로에게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집과 상점의 외관은 종종 그 내부의 안락함과 심지어 풍요로움이 반증하는 가난을 암시했다. 주민들의 내면에 관해서는 여전히 어둠 속에 있다.  

모래는 이곳의 큰 적이다. 일부 언덕 꼭대기는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고, 모든 사람이 그 울타리 안으로의 입장을 금지하는 팻말도 세워져 있었다. 그들의 발이 모래를 흐트러뜨려, 날리거나 미끄러지게 할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프 주민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토양”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자신들의 생선을 말리기에는 충분히 좋다고 당신에게 말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운 날씨에 해변을 방문한다. 하지만 소로는 가을이 가장 좋은 계절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대기가 더 투명하고, 바다를 내다보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라고 이를 권한다. 이 해안이 정말로 바닷가를 방문하고 싶어 하는 뉴일글랜드인들을 위한 휴양지가 될 때가 올 것이란 예찬으로 에세이를 마친다. 

해변은 외부 세계로 열린 공간이다 

소로의 <월든>이 숲속에서의 고독을 실험했던 자아 성찰이었다면 이 첵 <인간이라는 해변>은 열린 공간에서 인간이 아닌 자연의 일부로서 과연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셈이다. 거대한 파도, 사라지는 모래, 부서진 배, 파도에 밀려온 고래의 뼈 등을 통해 생명의 순환과 문명의 덧없음을 느낀 그는 위대한 사색가임에 틀림없다. 참고로, 케이프 코드는 이 책이 출간된 시점에 소로가 예측한 것처럼 현재 뉴잉글랜드에서 가장 붐비는 여름 휴가지 중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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