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가격의 급등락으로 인해 단순 개인투자자는 물론이고 사업 자체가 존립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7년의 ICO(가상자산공개) 붐이다. 당시 ICO의 주요 투자 수단은 이더리움이었다. 프로젝트 팀이 수백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받더라도 불과 몇 주 혹은 며칠 만에 이더리움 가격이 폭락하면서 실제 운영 자금이 반 토막 나거나 심지어는 고갈되는 상황에 내몰렸다. 일부 프로젝트는 개발자를 해고하거나 계획했던 기능을 축소해야 했고, 어떤 경우에는 아예 중도에 문을 닫기도 했다.
변동성이 큰 자산을 기반으로 하는 한 투자자 보호도, 사업의 안정적인 지속도 담보할 수 없었다. 결국 시장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가격이 흔들리지 않는, 신뢰할 수 있는 공통의 교환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스테이블코인이다. 쉽게 말해 암호화폐 생태계 안에서 1코인을 1달러처럼 쓸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암호화폐다.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와 같이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에 가치를 고
정해 암호화폐 생태계 내에서 쓸 수 있는 돈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금융 혁명의 서막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는다. 은행은 예금자의 돈을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대출이자를 받아 이중 일부를 예금자에게 돌려준다. 이처럼 전통 금융의 핵심 모델은 바로 은행의 예대預貸 마진(예금이자와 대출이자의 차액)이다. 그래서 이같은 단순 수익구조에 의존하던 은행은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파산할 수도 있다. 이미 우리들은 IMF 경제위기 때 이를 경험한 바 있다.
지난 수백 년간 금융 중개 기관들이 독점해 온 이런 수익 구조는 이제 해체되고 있다. 그 수익을 자본 제공자, 즉 유동성 공급자에게 직접 돌려주는 것은 단순한 효율성 개선을 넘어 자본주의 금융 시스템의 작동 원리 자체를 다시 쓰는 혁명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진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프로그래머블(programmable)하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들 눈 앞에 놓인 새로운 금융은 수익의 흐름, 분배의 방식, 위험의 구조 등 모두를 코드로 정의할 수 있기에 가능하다. 물론 아직은 기술적 안정성, 규제 명확성, 사용자 경험 개선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을지라도 가야할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4차 산업혁명의 대두로 향후 소멸될 직업군 예측에 은행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은행은 지속적으로 점포를 폐쇄하고 인력들을 감원시키는 추세를 이어갔다.
10년 후를 상상해 보자. 현재의 은행 예금은 공중전화처럼 유물로 변해있을지도 모른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코드로 운영되고 투명하게 작동하며 수익의 대부분을 사용자에게 돌려주는 새로운 금융 시스템일 것이다. 변화의 물결에 올라탈 것인가, 아니면 기존 시스템에 안주할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변화의 방향만은 이미 명확해 보인다.
카드 수수료의 종말
스테이블코인 기반의 결제 플랫폼은 단순히 수수료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결제 생태계에서는 고객들의 결제 데이터를 분석해 가맹점에 유용한 인사이트를 제공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점주들은 매출이 언제 가장 많은지, 어떤 상품이 자주 팔리는지, 어떤 시간대에 어떤 고객층이 방문하는지 등의 정보를 바탕으로 가게 운영 전략을 세울 수도 있다. 또 결제 과정에서 남는 잔액(선불 충전금이나 리워드 포인트 등)을 파악해 추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도 만들 수 있다.
특히 스테이블코인 기반의 결제 생태계는 QR 결제가 아직 보편화되지 않고 기존 카드망이 열악한 나라에서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한다. 기존의 결제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않은 국가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 경우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정착될 수 있다. 복잡한 단말기 없이도 스마트폰 하나로 결제, 정산, 정보 제공이 가능하니 고객과 점주 입장에서도 부담이 적다.
결국 스테이블코인 기반의 결제 생태계로 변화하는 흐름은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소상공인의 삶을 직접적으로 바꾸는 결제의 혁신이라 할 수 있다. 작은 가게 하나하나가 거대한 카드 수수료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실시간 정산과 데이터 자산화를 통해 결제의 주체가 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디지털 자산 시장 동향
한때 한국의 디지털 자산 시장은 테라 루나 사태와 FTX 파산 등 국제적인 대형 사건의 여파로 ‘크립토 윈터’라고 불리는 혹독한 침체기를 겪었다. 투자자들은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불신과 변동성 탓에 발길을 돌렸고, 업계 전체 분위기도 움츠러들었다. 그런데 2025년 6월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디지털 자산 시장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만한 제도적 호재가 연달아 발표됐다. 정책과 제도 차원에서 암호화폐 산업을 키우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이다.
그 배경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자리한다.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디지털 허브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목표 아래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에 대해 긍정적 메시지를 꾸준히 내놓았다. 특히 청년 세대와 디지털 산업 종사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당선 직후, 그 공약은 실제 정책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원화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을 허용하는 법안이 구체화됐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민간 기업이 자체적으로 디지털 원화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을 넘어 정부가 제도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을 인정하고 관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한국의 디지털 금융 주권을 확보하겠다는 의미다. 향후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국내 결제, 금융 서비스, 해외 송금 등에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금융기관과 핀테크 기업도 관련 사업을 준비 중이다.
민간 영역에서도 큰 변화가 보인다. 투자자의 자산 보호를 위한 '디지털자산보호재단'의 설립, 실명 계좌 연동 등 투자자 신뢰도를 높이는 실질적인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변화는 한국이 더 이상 디지털 자산을 위험한 투기 상품으로만 보지 않고 제도권 내에서 새로운 산업과 기회로 수용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앞으로 진행될 일이 갈수록 궁금해진다.

변화의 물결 위에서 신뢰를 묻다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에도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새로운 화폐의 흐름은 이미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틈새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 이런 변화의 물결에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안정성의 확보일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의 수명은 결국 사용자들의 신뢰에 달린 셈이다. 스테이블코인의 미래가 궁금한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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