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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다 인천 ㅣ 지리·역사·문학 지역 체험 학습 1
지호진 지음, 이진아 그림 / 다른 / 2025년 4월
평점 :
인천의 지도를 따로 떼어서 보면 느낌이 확 오겠지만, 인천은 바다-섬-하늘을 잇는 진짜 특별한 땅이야. 역사적으로는 가장 먼저 나라 문을 열고, 전쟁의 한복판에 서고, 독립운동의 함성이 울린 곳이기도 해. 게다가 평범한 서민의 삶과 애환이 절절히 담긴 문학 작품들의 단골 배경이 되기도 했지.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너도 이렇게 말할걸? “노잼 도시? 아니! 완전 꿀잼 도시잖아!” - '여는 글'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은 총3부 각 3장씩 모두 아홉 개 장으로 구성되어 인천의 지리, 인천의 역사, 인천의 문화 순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저자 지호진은 우리나라 전통문화와 관광 이야기를 담는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고, 출판사에서 어린이책을 만들었다. 지금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어린이책 전문 기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제 책 속 이야기를 만나보자.
북적북적 항구도시
인천은 한반도 지도를 펼쳐서 보면 거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옆으로는 서쪽 바다인 서해와 맞닿아 있으며, 강원도에서 시작해 수도인 서울을 지나 서해로 바져나가는 한강의 하류에 있다. 인천의 동쪽은 서울시 강서구와 경기도 부천시, 남동쪽은 경기도 시흥시, 북족은 경기도 김포시와 이웃해 있다.
정식 이름은 '인천광역시'로 넓은 면적에다 많은 인구수를 자랑하기에 '넓은 광廣' 자의 광역시라 부른다. 면적은 약 1,067제공킬로미터로 우리나라 광역시 6개 중 2위이며 서울의 1.7배가 넘는 면적이다. 인구수는 약 300만 명으로 부산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인천은 항구 도시다. 서해에서 가장 큰 항구가 바로 인천항인데, 우리나리 전체에서 부산 다음으로 큰 국제적인 무역항이다.
인천의 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섬이 무려 168개나 있다. 이중 40개 섬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과거 항공기가 없던 시절엔 사람들이 중국이나 제주도로 가기 위해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야 했다. 그래서 연안부두는 인천을 상징하는 명소였다.

(사진, 연안부두 노래비) 섬으로 구성된 옹진군
인천항에서 서해로 나아가면 크고 작은 섬들이 펼쳐진다. 그 섬들 대부분은 옹진군에 속해 있는데, 옹진군은 육지 없이 섬으로만 이루어진 독특한 지역이다. 연안부두에서 옹진군으로 가는 배를 타면 여러 섬을 가 볼 수 있다.
옹진군은 북쪽으로는 북한의 황해남도, 남쪽으로는 남한의 충청남도와 경계를 이루며 서해 바다의 넓은 지역에 걸쳐 있다. 연안부두를 거치지 않으면 섬끼리 직접 오갈 수 없고, 강화군의 강화도처럼 하나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섬도 없다. 그래서 행정상 편의를 위해 옹진군의 군청은 옹진군이 아닌 미추홀구 용현동에 자리해 있다.
국가의 도읍지가 된 섬
1231년 몽골군이 말을 탄 병사단을 이끌고 고려 땅에 쳐들어왔다. 이미 중국 대륙은 물론 세계 곳곳을 정복하고 난 이후였다.
당시 고려에서는 무신정권의 6대 권력자인 최우가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고려는 몽골군의 거센 공격에 대항하다 1232년에 도읍지를 강화도로 옮겼다. 이는 도망이 아니라 오히려 몽골군에게 맞서기 위해서였다. 섬이 왕조의 도읍지가 된 것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강화도였을까? 몽골군의 주력 부대가 말을 타고 육지를 달리는 기마병이었기에 바다에서 싸우는 해전에는 약할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처음에 몽골군은 깅화도를 직접 공격하지 않고 섬을 고립시켜 쉽게 항복을 받아내려 했다. 그러나 고려의 저항은 거셌다.

(사진, 팔만대장경)
그 뒤 강화도는 40년 가까이 고려의 임시 수도였다. 크기는 작지만 개경의 궁궐과 비슷한 궁궐을 지엇고, 몽골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물리치고자 선원사에서 팔만대장경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100년을 이어 오던 무신정권이 1270년에 무너지자 고려 원종은 몽골과 화친을 맺고 다시 개경으로 복귀했다. 이때 삼별초는 항복을 반대하며 끝까지 항전하면서 강화도에서 진도, 제주도로 옮기며 저항하다가 3년 만에 몽골과 고려 연합군에 무릎을 꿇었다.
덕적도와 영흥도
1950년 9월 15일,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으로 625 전쟁의 기세가 뒤집어졌다. 당시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려면 큰 배들이 지나갈 길이 필요했다. 바로 그 길에 인천의 덕적도와 영흥도라는 섬이 있었다. 그래서 한 달 전부터 미해군첩보부대가 섬에 상륙해 ‘엑스레이 작전’이라는 첩보 작전을 진행했다. 비밀리에 북한군의 정보를 모아 전투에 이용하려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데, 해군첩보부대가 북한군이 마을에 숨어 있을 거라 여기고 수색하던 중 무기도 없는 일반 주민들에게 총을 쏜 것이다. 그 결과로 덕적도와 영흥도에서 최소 100명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알려진다. 가슴 아픈 역사이다.
한센인의 삶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가 되리"라고 노래한 시인이 있다. 그는 바로 한하운이다. 1919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났지만 1949년 12월 인천시 부평구에 자리를 잡고 투병 생활과 작품 활동을 이어 갔던 '한센인 시인'이었다. 그의 대표작 <파랑새>엔 새가 되어 자유롭게 하늘과 들을 날아다니길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잘 담겨 있다.
1949년 12월에 한하운은 한센병 환자 가족 70여 명과 함께 인천시 북구 부평동 공동묘지 골짜기에 정착했다. 바로 한센인 정착촌인 성계원이었다. 1952년에는 인천시 북구 십정동에 한센인의 자녀들을 위한 신명보육원을 세우고 원장으로 일했다.

(사진, 백운공원의 한하운 시비)
그는 1959년 완치 판정을 받은 뒤에도 한센병 환자들의 인권을 위한 활동을 계속하다가 1975년 십정동의 집에서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센병 환자 치료·요양소가 있는 전남 고흥군 소록도와 현재의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에는 그의 시가 새겨진 시비가 세워졌다. 그리고 그의 뼈가 묻힌 김포시 풍무동 장릉 공원묘지 옆에는 ‘한하운 시인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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