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묻는다. 다만 목숨을 걸고 옳은 일을 시도한 이가 누구인가? 오늘날 자신의 이익과 사리사욕을 위해 국가를 팔고 국민을 파는 사이비 정치인 그리고 사이비 지식인에게 김옥균의 일생이 작은 울림을 주기를 바랄 뿐이다. - '저자의 말' 중에서

이 소설의 저자 이상훈은 KBS 공채 PD 출신으로 SBS 개국에도 참여했고, 채널A 제작본부장까지 거치는 동안 수많은 히트작을 제작했다. 동아방송예술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첫 소설 <한복 입은 남자>로 문단에 등단한 이후 세 번째 소설 <김의 나라>로 제16회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역사소설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김옥균이 살았던 당시의 조선은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에 이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치로 근대화를 외면한 '우물안 개구리' 격의 왕조였다. 뒤를 이은 고종의 우유부단함과 무능, 그리고 민비의 탐욕과 국정농단은 조선을 점점 위기 속으로 몰고가는 형국이라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는 청나라,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뿐만 아니라 서구의 열강마저도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이런 조선은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기 때문이다.
김옥균(1851~1894년)은 조선 말기의 관료, 정치가로 급진개혁파였다. 문과 장원급제 후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그는 개화사상 확산에 힘썼으며, 임오군란 후 일본식 급진 개혁을 주장했지만 이같은 그의 행보에 민씨 외척 세력은 번번히 발목을 잡았다. 참다 못한 그는 갑신정변(1884년)을 일으켜 정권을 손에 쥐었으나 '3일 천하'로 막을 내리고 만다. 이후 일본으로 정치적 망명, 재기를 노렸으나 그의 꿈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옥균은 아버지 김병태와 어머니 은진송씨의 장남으로 충청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안동김씨 후손이었지만 몇 대 째 벼슬을 하지 못하고 시골에서 훈장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다섯 살이 지나자 천자문을 뗄 정도로 영특했던 옥균은 여섯 살 때 옥천으로 이사,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던 중 옥균에 대한 소문은 안동김씨 가문에 널리 퍼지고, 한양의 명문가로 자리잡은 육촌 형 김병기는 슬하에 자식이 없자 옥균을 양자로 입적했다.
입양 후 어린 옥균의 학문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명문가의 후계자 수업을 받으며 안목을 더욱 더 키워나갔다. 강릉부사가 된 양부를 따라 강릉에서 자라며 노론의 학통도 몸에 익혔다. 16세에 다시 양부를 따라 한양으로 복귀했다. 이때 옥균은 연암 박지원의 손자로 개화파를 이끌던 박규수를 만나게 되었다. 박규수는 1864년부터 병조참판과 이조참판을 거치며 능력을 인정받아 1865년에는 한성판윤, 예조판서를 거쳐 1866년 2월 평안도 관찰사로 부임했다. 제너럴셔먼호 사건 5개월 전의 상황이었다.
대원군이 천주교를 박해하고 프랑스 신부를 죽인 것을 빌미 삼아 프랑스함대가 군함 여러 척을 이끌고 조선으로 침입해왔다. 바로 '병인양요'였다. 이때 박규수의 제자 오경석이 대원군에게 프랑스함대의 약점을 보고하면서 적을 유인해 약점만 공격하면서 장기전으로 간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건의를 수용, 대원군은 결국 승리할 수 있었다. 박규수와 오경석은 대원군의 부국강병을 기초로 개화를 이룬다면 일본을 곧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대원군은 승리를 기회로 더욱 더 쇄국정책을 펼쳤던 것이다.
철종의 부마로 고종의 매제였던 박영효(1861년생)와 첫 만남을 가진 옥균은 비록 자신보다 10살이나 아래이지만 지위가 높았기에 영호를 존대했다. 박규수의 북촌집 사랑방 모임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 주역을 길러낸 요시다 쇼인의 사숙과 비슷했다. 안타깝게도 박규수가 뿌린 조선의 개화사상은 갑신정변의 실패로 무너진 반면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은 메이지유신을 성공시켜 일본을 근대회화 이끌었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1894년 3월 25일 나가사키 항구에는 상해행 사이쿄마루(西京丸)증기선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정박해 있었다. 한편 부둣가에는 상하이로 떠나는 김옥균을 배웅하기 위해 수십 명의 사람이 줄지어 섰다. 그는 청나라의 리홍장을 만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의 일행엔 일본인 와다 엔지로, 통역을 맡은 청국공사관 서기 오보인, 그리고 갓을 쓴 조선인 홍종우가 있었다.
운명적 만남
역관 출신인 오경석에게는 김옥균과 동갑인 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오경화였다. 경화는 장신에다 힘도 세어 여장부의 풍모가 있었다. 오경석은 딸이었음에도 경화에게 서양의 학문과 역관의 지식을 전해주었다. 경화의 어머니는 당시의 보수적인 여성들이 그렇듯 좋은 남자를 만나 시집 가는 게 행복인 여자에게 왜 학문를 가르치냐며 남편을 핀잔했다.
오경석이 중국에서 돌아오면 옥균은 항상 오경석의 집으로 찾아가 자연스럽게 옥균과 경화의 만남은 이루어졌다. 옥균에게 호감을 가진 경화는 아버지와 옥균이 나누는 대화를 옆방에서 몰래 엿들었다. 해박한 옥균의 지식에 겅화는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신분차별이 분명한 조선이기에선 장원급제한 양반 남성과 중인 계급의 여성을 양가 부모 모두 불허했던 것이다.
1877년 스승인 박규수가 죽자 스승의 유언대로 오경석과 함께 개화 사업에 더욱 몰두했다. 여자 한 명 때문에 개화 사업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되기에 결국 옥균은 양부모가 주선한 유씨 집안의 딸과 혼인했다. 유길준의 먼 친척되는 집안이었다. 또 다른 스승인 오경석도 폐병이 깊어져 각혈을 토해내다가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절명하고 말았다.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경화는 양학에 밝고 영특하다는 소식을 들은 조대비가 곁에 두고 싶다는 제안을 해옴에 따라 옥균 외의 남자와는 결혼 의사도 없고 개화 사업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조대비의 상궁이 된다.
태극기의 탄생
주역에 관심이 많았던 김옥균은 영국 공사의 말을 듣고 주역 64괘 중에서 지금 조선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백성을 한마음으로 모으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다는 염원을 담아 김옥균은 먼저 왼쪽 위아래에 건괘(乾卦)와 리괘(離卦)를 그렸다. 그리고 오른쪽 위에 감괘(坎卦)를 그리고 아래에 곤괘(坤卦)를 그렸다.
태극기의 왼쪽은 64괘 중 천화동인天火同人, 오른쪽은 수지비水地比의 괘가 완성되었다. 천화동인에는 ‘하늘과 불이 서로 만나니, 군자는 뜻이 같은 자들을 모아 일을 완성하고 처리한다.’라는 의미가 담겼고, 수지비에는 ‘비가 땅에 촉촉하게 내려 만물을 적시고 만국을 세워 하나가 되게 한다.’라는 의미가 담겼다. 따라서 태극기의 사괘에는 모두가 듯을 모아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 그 은혜를 만백성에게 고루 스며들게 한다는 염원이 담겨있었다.
고종의 윤허
김옥균의 집에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등 핵심 인사들이 모여 거사 계획을 짜고 있었다.
(김옥균)"전하의 윤허를 얻었습니다. 문서로 우리 개화파를 밀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루려고 하는 것은 나라를 뒤집는 것이 아니라 조선을 개화해 자주독립 국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홍영식)“전하의 우유부단한 성품을 봐서 언제 또 입장이 바뀔지 모릅니다.”
(김옥균)“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하의 동의를 구해놓지 않으면 명분이 약해지기 때문에 전하를 이 거사에 끌어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거사는 군사를 동원한 폭동이 아닙니다. 정치를 바로 세우자는 것입니다.”
(서광범)“그래도 거사에 힘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듭니다. 군사들 동원 계획은 문제가 없습니까?”
(서재필)“일단 광주군영의 신식군대 지휘관들은 우리 편입니다. 그들이 비록 민씨 일당의 군영에 속해 있지만 오백 명 정도는 우리가 거사를 일으킬 때 함께 돕기로 했습니다.”
(박영효)"아직도 청의 군사 천오백 명이 조선에 남아있습니다. 만약 원세개가 눈치채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김옥균)"청의 나머지 군사도 안남으로 이동시킬 것이라 들었습니다. 거사일까지 이동하지 않으면 부득이 일본의 사백 명 정예군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에 대해선 이미 일본공사 다케조에와 밀약을 했습니다."
그렇다. 군의 도움이 없다면 성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종은 갑신정변을 인정했음에도 민비의 꼬드김에 솔깃해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김옥균은 고종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민비의 지시로 계속 소란을 일으키는 환관 유재현을 본보기로 살해할 수밖에 없었다.
고종의 변심
경기감사 심상훈과 민비의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고종에게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경우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고종은 환관 유재현을 죽이지 말라 수십 번 외쳤건만 김옥균 일파가 처단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이미 많은 정승이 죽어 나갔다는 소식에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는데, 갑신정변의 정강과 인사를 자신과 의논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것을 보고 고종은 속으로 화가 치밀었다. 갑신정변의 정강을 읽어본 고종은 김옥균에게 격하게 화를 내며 말했다. 고종은 마지막까지 권력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이 임금을 허수아비로 만들려고 이런 정변을 일으켰다는 말인가?"
자객의 그림자
고종과 민비는 김옥균을 오사카 사건의 배후호 지목하고 일본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한편, 김옥균을 죽이려고 두 번째 암살단 파견을 결정했다. 고종은 한때 개화파의 일원이었으며 김옥균과 친분이 있는 지운영을 궁궐로 호출해 권총 한 자루와 돈을 내어놓으며 당장 일본으로 떠나라고 명령했다.
1886년 3월, 지운영이 일본에 도착했다. 그는 종두법을 조선에 보급한 지석영의 형이다. 일찍 개화에 눈을 떠 김옥균 수하에서 일하기도 했다. 먼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동생 석영을 만나 자신의 계획을 밝히자 역사의 죄인이 된다며 극구 만류했다. 그럼에도 어명을 거역하면 집안의 몰락이 불보듯 뻔하다며 고종에게서 받은 돈 정반을 동생에게 내놓고 사라졌다.
김옥균 주위를 맴돌던 지운영은 한양 김옥균 집에서 만난 적이 있던 유혁로를 만나게 되었다. 눈치를 챈 유혁로가 지운영을 술집으로 데려갔다. 취중진담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유혁로는 김옥균을 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에 장단을 맞춘 유혁로는 김옥균과 미리 말을 맞춘 후 지운영을 김옥균에게 인사시켰다. 김옥균은 일부러 유혁로를 종 부리듯 하며 짜증을 냈다. 유혁로를 포섭하면 거사의 성공은 따논 당상이라고 판단한 지운영은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운영)“나는 김옥균을 죽이기 위해서 전하의 명을 받고 조선에서 왔소. 그대가 도움을 주면 전하께서도 큰 상을 내리실 것이요.”
(유혁로)“전하께서 큰 상을 준다는 말을 내가 어떻게 믿겠소. 전하께서 그대에게 내리신 증표라도 있으면 내가 믿겠소.”
유혁로의 말에 지운영은 품 안에 있던 고종의 친필 신표를 보여주었다. 그것을 본 유혁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후 술을 마시자고 제의했다. 지운영은 그날 진탕 마시고 술에 취한 채 잠에 골아 떨어졌다. 유혁로는 지운영의 품 안에서 고종의 친필 신표를 꺼내어 유유히 사라졌다. 이후 고종의 밀서가 일본의 언론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총탄에 쓰러지다
1894년 3월 28일, 숙소 앞 강가에선 폭죽놀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옥균은 홍종우에게 상하이 은행으로 가서 어음을 현금으로 교환하라고 지시했다. 홍종우가 들고 간 어음은 가짜였다. 상하이 거리를 배회하면서 홍종우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가짜 어음이 탄로나기 전, 김옥균을 암살해야 하는데 좀처럼 기회가 포착되지 않았다.
옥균은 이홍장을 만나 중국 역사를 들먹이며 대화를 풀어나가려고 방에서 <자치통감>을 읽고 있었다. 일본인 와다 엔지로는 이런 옥균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상하이 은행으로 갔던 홍종우는 돌아와 은행 지배인이 출타중이라 바꾸지 못헸다고 거짓으로 보고했다.
와다 엔지로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홍종우는 이일직이 준 리볼버 권총을 들고 김옥균의 방으로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였다. 권총을 쥔 그의 손이 땀으로 미끈거렸다. 급기야 자고 있는 옥균을 향해 권총 한 발을 발사했다. 그러나 땀에 젖은 손에 권총이 미끄러져 총알은 김옥균을 스쳐 지나갔다. 눈을 뜬 옥균이 홍종우를 쳐다보았다. 두 번째 총알이 옥균의 어깨를 관통했다. 옥균은 피를 쏟으면서 홍종우의 다리를 잡고 소리쳤다.
“나는 여기서 죽으면 안 된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죽이더라도 이홍장을 만난 이후에 죽여라. 너는 역사가 두렵지 않으냐?”
겁이 난 홍종우는 세 번째 총알을 옥균의 심장에 쏘았다. 밖에 있던 와다 엔지로가 총소리를 득고 급히 계단을 올라왔으나 홍종우가 그를 밀치고 도망쳤다. 고종이 김옥균 암살에 병적으로 집착했음이 <고종실록>에 나와 있다.
하늘이 나라를 도와주어 비로소 죄인이 죽었다. 온 나라에 대사령을 내리는 것을 어찌 주저하겠는가? 이달 27일까지 잡범으로서 사형수 이하는 모두 용서해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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