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떤 패배의 기록 - 전후 일본의 비평, 민주주의, 혁명
김항 지음 / 창비 / 2025년 2월
평점 :
201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일본의 입헌주의와 민주주의 사이 균열은 본격화했다고 한다. 집권 세력이 민주주의으의 이름으로 헌법이라는 근본 규범을 침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개헌을 포함한 여러 정치 의제가 선거에서의 승리를 근거로, 즉 민의라는 미명 아애 규범과 절차를 무시하며 추진되었다. - '책머리에'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김항은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종합문화연구와 표상문화론 과정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일본문화연구, 탈식민지론, 문화정치, 문화이론을 연구하고 가르친다.저서로는 <제국일본의 사상>와 다수를 출간했다.
총 3부에 걸쳐 7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1부(비평)에선 '말기의 눈과 변경의 땅', '현대 일본의 비평과 그 임계점'을, 2부(민주주의)에선 '보편주의와 식민주의', '평화, 천황 그리고 한반도', '핵의 현전과 일본의 전후민주주의'를, 3부(혁명)에선 '혁명을 팔아넘긴 남자', '요도호 납치 사건과 혁명의 황혼녘' 순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비평
고바야시 히데오를 근대 일본 문학비평계에서 하나의 전설이라 부르는 데 이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 전후 일본의 저명한 비평가 에토 준도 고바야시를 근대 일본 문학비평의 정점으로 평가한다. 무엇이 고바야시를 이토록 전설적인 존재로 만든 걸까?
고바야시를 전설로 만든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다. 당시는 대공황이라는 글로벌한 위기에 과잉규정당한 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으로 국면을 타개하려 했던 일본 정부의 폭주가 가속화한 시기였고, 이에 맞추어 메이지유신 이래의 서구화와 근대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일본회귀'라는 사상적 전희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고바야시는 서구화와 일본회귀 사이에서 '근대 일본'의 고유성을 붙잡으려 했던 인물인 것이다.
1937년 일본은 중국 대륙의 전선을 전면전으로 확대시킨다. 동북부에 국한되었던 병력 전개를 중국 전체로 확장시킨 것이다. 전투는 이제 중국 동북부의 초원을 벗어나 남쪽으로 번져갔으며 한반도와 대만을 포함하여 제국일본의 판도에 있던 모든 일상세계가 전장戰場이 되었다. 고바야시의 만주 방문은 이런 상황에서 실현되었다.
가라타니 고진에게 마르크스를 읽는다는 것은 , 마르크스의 텍스트를 마르크스의 방식으로 읽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교의를 전제하거나 교의를 증명하거나 새로운 교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본>을 비롯한 마르크스의 방대한 텍스트를 마르크스가 고전 경제학 텍스트를 읽었던 방법으로 읽는 일이었다. 가라타니의 기획은 다름 아닌 비평이다.
가라타니가 말하는 비평은 문예비평임과 동시에 철학적 비평이기도 하다. 근대 일본 지성사에서 비평과 비판은 문예비평과 철학에서 구분되었지만, 크리틱Kritik은 용어에서뿐만 아니라 내실에서도 구분 불가능한 지적 활동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지적 활동의 범례를 칸트 비판기획의 여가적 맥락에서 도출한다.
민주주의
안보법제 반대를 외친 시민들에게 아베 정권의 무리수는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었음과 동시에 전후 일본이 걸어온 길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전후 일본은 입헌주의와 민주주의를 두 축으로 하여 개인의 자유나 권리의 존중을 반드시 실현해야 할 이념으로 추구해왔다.
'평화에 대한 범죄'라는 법규범은 일본과 독일이 일으킨 전쟁을 국가 간 전쟁이 아니라 범죄행위로 다루었다. 그 범죄가 처벌되는 법규는 특정 국가의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것이었다. 이렇듯 인류를 전제로 한 보편주의는 적을 범죄자로 취급하여 비인간으로서 추방하는 근원적인 '섬멸전쟁'으로 성립한다.
혁명
카를 슈미트는 혁명정치의 진수를 마르크스주의의 자연과학성이 아니라 볼셰비키의 정치적 행동으로 이해함으로써, 합리주의와 계몽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18세기 이래의 보편주의에 대항시키려 했던 것이다.
전후 일본의 신좌파 조직 공산주의자동맹 내 적군파는 세계동시혁명론과 국제근거지론을 바탕으로 무장봉기를 준비한다. 이런 전략 아애 북한에 근거지를 마련하여 훈련한 뒤 일본으로 돌아가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요됴호 납치 사건의 목적이었다.
1951년 10월, 일본공산당은 제5회 전국협의회에서 군사 무장혁명 노선을 결정한다. 농촌에서 전력을 길러 농촌 게릴라로서 봉기하여 도시를 포위한다는 중국공산당 혁명 모델에 따른 것이다.그리하여 산촌 지주의 타도를 목적으로 하는 '산촌공작대山村工作隊, 대중운동을 방어하는 '중핵자위대中核自衛隊', 군사행동에 전념하는 '독립유격대獨立遊擊隊' 등 군사조직이 활동을 개시한다. 하지만 1952년 센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로 일본 정부는 확고한 반공 노선을 전면에 내세워 공산당이 주도한 무장투쟁노선을 철저히 탄압했다.
이제 보편주의와 식민주의의 중첩을 문제화하는 정치는 파도의 풍랑을 헤치며 인민의 바다를 항해하는 혁명의 선박으로는 수행 불가능하다. 그 정치는 바다에 빠진 채로, 난파당한 채로, 산산조각 난 선박의 파편을 붙잡고 살아남으려는 발버둥에 가까울 것이다.
포스트 3.11의 사회 풍경
결정적 국면이란 그 이전과 이후의 사회제도 및 관습을 판이하게 변화시킨 역사의 변곡점을 뜻한다. 2011년 3월 11일의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결정적 국면임에 틀림없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현재, 반성을 토애 비롯된 새로운 패러다임의 징후는 좀처럼 감지하기 힘들다. 하지만 인권과 평화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이 전후민주주의를 수호하려고 거리로 나선다. 포스트 3.11의 사회 풍경이다.
#일본정치 #김항 #민주주의 #북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