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뜻이었어? - 생각 없이 내뱉는 무서운 말들
별 지음 / 휴앤스토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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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의도’가 좋거나 진지하다면, 그에 걸맞은 (어휘·억양·표정·제스처 등의 총칭인) ‘표현’ 역시 그만큼 고민하고 디자인해야 한다. 비싸게 산 옷을 비닐봉지에 담아서 다니지는 않듯이 말이다. 내면과 외면의 ‘균형’을 말하는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 쉽게 말하자면 자기가 자기 자신을 ‘가스라이팅’ 한다는 것이고, 폼나게 말하자면 ‘자기충족적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 ‘시작하면서’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은 생각없이 무심코 내뱉은 말의 무서움을 일깨우는 62가지의 단상短想들이 소개된다. 우리 모두 성장하면서 어른들로부터 ‘말조심’에 관한 가르침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그럼에도 자신의 내뱉은 말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고 심지어 자신의 모든 지위를 내려놓기까지 한다.


빈말


속이 비어있는 말, 즉 상대방에 대한 진정성 없는 말을 빈말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새벽마다 신문 배달하며 근근히 끼니를 떼우는 고학생은 사실 굶을 때가 더 많다. 한 교회에서 기숙하는 이 학생에게 많은 성도들이 화려한 미사여귀로 위로와 격려를 한다.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거야”

“이제부터는 꽃길만 걷기를 바랄게”


그럼에도 이 학생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오히려 비록 말이 없더라도 슬그머니 건네주는 싸구려 빵과 우유가 아닐가 싶다. 겉만 번지르한 속 빈 강정 같은 말 한 마디보다는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는 따뜻한 격려 속에 진정성이 들어 있는 셈이다.


이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나 어릴 적 그림 그리는 걸 매우 좋아했다. 곧 잘 그렸기 때문에 국민학교를 대표하여 전국 사생대회에 몇 차례 출전, 입선하기도 했다. 그런데, 부모님 두 분 모두 내가 화구통을 들고 그림 그리러 나가는 모습을 그리 탐탁치 않아 했다. 그래서 외출할 때마다 따가운 눈총을 느끼곤 했다. 결국 아버님은 지켜보지만 않았다. 아버지가 경영하시던 회사 사무실로 찾아오라고 했다.


이때 아버님의 회사는 경영 상태가 매우 힘들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다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삶은 매우 배가 고프다는 걸 지적하면서 나의 행로를 변경하길 원했다. 학교 성적도 좋은 편이니까 예술고등 대신에 인문고등학교로 진학하라고 강권했다. 이후 어린 나이지만 고민과 함께 많이 방황했다. 아버지 회사가 파산하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직할 수 있는 상업고등학교로 진학해야만 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상고로 진학해 초급행원 시험에 합격해 은행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다. 짧은 가방끈으론 내 미래가 뻔해 보였다. 이즈음 부모님의 분투로 집안 형편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대학 진학 공부를 하고 싶다는 내 의지를 내보였다. 부모님은 응원하겠다고 했다. 처음엔 은행 근무를 마치고 저녁에 단과반 학원을 다니며 부족한 공부를 채워나갔다. 이후 본격적인 공부를 위해 은행을 그만 두고 재수 전문학원에서 실력을 배양했다. 학원에서의 평가 성적도 항상 최상위권이었다. 대입원서를 제출할 즈음 나에게 입영통지서가 전달됐다. 시험에서 떨어지면 군에 입대해야 할 처지였기에 서울대 법대 대신에 고려대 법대에 원서를 제출했다. 다음날 급히 시골에서 형이 상경했다. 내가 잘되는 길을 고민하다 내린 결정이라는 아버님 말씀을 전하며 상고를 졸업했으니 고려대 상대로 원서를 변경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의 인생 행로가 결정되고 말았다.


그렇다. 우리들은 성장하면서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야단 맞는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듣는 말이 바로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지 혼내려는 게 아니다’는 것이었다. 물론 올바른 방향과 방법을 제시해주는 경우가 많지만 어떤 때는 당시자인 내 의견은 묵살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내 딸의 행로 결정엔 일체 개입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결정한 일을 응원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최근 사회면을 떠들석하게 장식하는 기사 중 하나가 어느 여자대학교의 남녀공학 추진 이슈다. 학생회 주도로 학교측의 이런 움직임을 극렬히 반대하는 교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반대하는 이유를 들어보니 ‘여학교에 남학생이 함께 있으면 성폭행 우려가 있다’는 개념 없는 발언도 있었다. 과연 이게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이 할 말인지 의심스럽다. 남녀가 함께 공부하는 대학교가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데, 그런 대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은 성폭행 걱정 속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말인가? 하기사 정치판의 국회의원들도 무뇌한無腦漢이 많으니 어디 이 여학생들만 잘못되었다고 말할 형편이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의 뇌는 결코 데코레이션이 아니다. 정말로 생각하면서 살자.


역사가 판단해 줄 것이다!


과연 그럴까? 역사가 판단하기 전에 우리들이 먼저 죽을 수도 있다. 더구나 과거의 일을 한참 시간이 지난 현재의 역사가가 올바른 시각에서 평가하는 게 그리 쉽지 않다. 학생들의 교과서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다. 자기만 옳다. 여기에 객관성은 발을 붙일 수가 없다.


난 박정희 시대에 대학을 다니며 5·16 장학금까지 수령했던 적이 있다. 장학금을 받았지만 유신철폐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군에 입대한 후 고려대에 진압군으로 주둔, 부상을 당해 사령부 의무실로 후송되기도 했다. 이런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과 정치 발전의 한판 승부’로 보았던 나는 당시로선 경제가 훨씬 더 중요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민주화를 이룬 지금의 정치판엔 박정희 같은 인물이 없다. 사이비와 사기꾼이 넘치고 넘친다.


신중하게 고민하고 디자인해서 말하라


책은 총 62 꼭지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은 마음 속에 품은 뜻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셈이다. 누군가 커피를 권할 때 잘못 말하면 상대를 무시하는 꼴이 된다. 본인은 상대방에게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을지라도 말이다. 이런 경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린 것이다. 따라서, 한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것이므로 신중하게 고민하고 디자인해서 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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