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살아 볼게 - 그림 그리는 여자, 노래하는 남자의 생활공감 동거 이야기
이만수.감명진 지음 / 고유명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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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적인 이야기를 드러내기가 민망하고 어색한, 소심한 성격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지나가는 순간들을 붙잡아 두고 싶어 하루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봄, 우리는 그렇게 만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는 그림 그리는 여자 감명진과 노래하는 남자 이만수로, 두 사람은 2012년 봄부터 지금까지 한 집에서 12년 째 동거살이 중이다. 그나저나 명진 씨로 인해 한국 땅의 드문 성을 가진 사람을 한 분 더 알게 되었네요. 감우성 배우 때문에 검색해 본 적이 있거든요.ㅎㅎ


총 3부로 구성되어 각 파트마다 20 꼭지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책 장은 술술 넘어간다. 마치 초등학생 딸의 일기장을 들춰보던 과거 속으로 소환된 느낌마저 든다. 그저 꾸밈 없이 둘 사이에 일어난 일상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래서 사랑스럽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의 삶은 내 청춘 시절과 비교해보면 한마디로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결혼 전에 감히 동거라니? 그럼에도 난 젊은 세대들의 이런 효율성 높은 삶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아니, 추천을 하고 싶다. 우리들 주변의 삼라만상도 그렇다. 때가 되면 모두 암수가 함께 된다. 조물주가 이러려고 만들어 놓은 창작물 아니겠는가.


둘의 이야기엔 유독 첫 경험에 대한 것들이 많다. 명진의 남자 팬티 주문하기, 명진의 기타 배우기, 만수의 선글라스 착용, 만수의 봄동비빔밥 만들기, 명진의 10년 묵힌 등산화 신고 인왕산 등산하기, 커플 벼개 마련하기 등등 이처럼 ‘처음’이 소복소복 쌓여서 끈끈한 정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잘 마른 옷가지들을 걷어 개키다보니 오빠 팬티에 난 손톱만한 구멍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버리지 않으면 구멍이 손바닥만한 해질 때까지 입겠다 싶어서 망설임 없이 쓰레기통에 구겨 넣었다. 컴퓨터를 켜고 검색창에 남자 팬티를 검색해본다. (중략) 골똘히 고민한 끝에 고른 팬티들을 결제했는데 내가 오빠의 엄마가 된것처럼 묘한 이 기분은 뭐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 팬티를 주문해 봤다. - ‘눈썹과 팬티’ 중에서


아무튼 이십대 시절 두 선남선녀는 시골에서 상경한 풋풋한 청년이자, 서울살이가 서툴기만 했던 이방인 같은 존재였다. 그럼에도 워낙 성실한 이들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다가 2012년 우연히 상수동 카페에서 서로를 알게 되었다. 이후 연인이 되어 작은 방을 하나 얻어 동거살이에 들어갔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거의 없던 둘은 합침으로써 비용을 아낄 수 있어서 없던 여유가 생긴 셈이었다.


비록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을지라도 한 지붕 아래 같은 이불을 덮고 산다는 것은 서로의 삶에 이미 동반자가 된 것이다. 설거지는 항상 본인 몫이라는 민수, 빨래하기와 장보고 식사 준비는 명진의 몫이다. 만수는 카페에서 일하는 2인조 밴드 음악인이며, 명진은 프리랜서 화가이다.


(사진,베개)


몇 년째 잘 되지도 않는 가난한 밴드를 하느라 벌이도 변변찮은 나는 진이에게 많이 모자란 사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지만 부족한 대로 진이 곁에 있어 주는 일만큼은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다. - ‘프리마켓’ 중에서


음악 한답시고 경제 활동을 전혀 못해서 돈이 똑 떨어진 상태에서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변변한 선물 하나,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외식하기가 부담스러운 상태였다. 만수는 곧 다가올 공연을 핑계삼아 하지 않아도 될 연습까지 잡아가며 요리조리 피했다. 자존심은 스스로를 속일만큼 이처럼 무섭다.


사람의 관계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 많다. 연애 초기엔 무슨 말이든 간에 끝까지 경청하며 맞장구를 치던 관계가 동거 후엔 서로 모든 것에 익숙해진 탓에 상대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초능력이 발동, 서로의 말을 쌈 싸 먹는다.



#에세이 #내가널살아볼게 #이만수 #감명진 #고유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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