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 간 의사 - 영화관에서 찾은 의학의 색다른 발견
유수연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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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이 업무인 제 직업상, 영화를 볼 때 직업병이 발동합니다. 영화 속에 특정환 질환을 앓는 환자나 질병에 대한 언급이 나오면 저도 모르게 그 부분에 집중합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면이나 상황을 보고 의학 지식과 엮어서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합니다. - ‘들어가며’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유수연은 현재 대구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동산병원 신경과 부교수로 재직 중인 ‘영화 덕후’이다. 의학 지식이 없으면 그냥 지나쳤을 영화 속 장면들을 의사의 눈으로 이를 분석하면서 감상했다.


직업병이 발동한 저자의 영화 감상은 우리들에게 더욱 풍부한 재미를 선물한다. 총 4장으로 구성되어 21편의 영화 속 의학 이야기를 펼쳐 낸다.


1장~곤지암,헤어질 결심,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듄,기생충

2장~올드보이,그대들은어떻게살것인가,300,조제호랑이그리고물고기들,새벽의저주,진격의거인

3장~스틸앨리스,킹덤오브헤븐,사랑의기적,빨강머리앤,매드맥스

4장~탑건매버릭,토르,엘리시움,아이언맨,벤자민버튼의시간


영화 ‘곤지암’ 속의 병원


공포영화의 주요한 요소는 ‘공포 분위기’ 조성일 것이다. TV에서 여름이면 방영되었던 납량물엔 어김없이 공동묘지가 등장했던 것처럼, 영화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낮이면 멀쩡한 그런 곳이 캄캄한 밤이면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바로 병원이다.


국내 흥행작 <곤지암>(2018년)의 배경은 영업을 그만 둔 ‘정신병원’이다. 실제로 곤지암에 위치했던 남양정신병원을 모티프로 했다고 한다. 물론 이 병원은 정상적으로 폐업했으며 건물도 철거되었다고 한다.


“1979년 환자 42명의 집단 자살과 병원장의 실종 이후, 섬뜩한 괴담으로 둘러싸인 곤지암 정신병원으로 공포 체험을 떠난 7명의 멤버들. 원장실, 집단치료실, 실험실, 열리지 않는 402호. 괴담의 실체를 담아내기 위해 병원 내부를 촬영하기 시작하던 멤버들에게 상상도 못한 기이하고 공포 가득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 영화 ‘시놉시스’


(사진, 곤지암 포스터)


나도 이 영화를 무서움을 많이 타는 딸과 함께 감상하면서 입 안에 침이 바싹 마를 정도로 잔뜩 긴장된 상태였다. “나보다 더 무서워하면 돼”라고 딸이 지적했었다. 일반인과 달리 일터 자체가 익숙한 병원임에도 의사나 간호사들에게도 으스스한 기분이 들게 하는 곳이 바로 한밤중의 병원 아닐까 싶다.


사실 병원 자체의 이미지가 우리들에게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다양한 ‘질병’의 치료 때문에 방문하는 곳이며, 게다가 수많은 환자들이 여기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장소인 셈이다. 나의 슬픈 추억의 한 장면도 이곳에 머물러 있다. 허리가 불편해 병원에 입원, 함몰된 척추뼈의 시술 후 회복 과정에 있던 아버지가 정밀검사 끝에 말기암으로 판정받아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었던 곳이다. 하지만 병원이 사라질 수 있겠는가. 과학과 의학의 발달에 힘입어 더욱 밝은 이미지로 점점 바뀌게 되리라.


영화 ‘기생충’과 복숭아 알레르기


워낙 유명세를 탔기에 봉준호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던 영화 ‘기생충’을 지인들과 함께 감상했다. 상·하류층의 삶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빈부貧富의 격차를 고발하는 영화이다. 운전기사인 기택의 가족은 하류층의 삶을, 기택 가족들을 고용하는 박사장 가족은 상류층의 삶을 보여준다.


단순히 이 영화가 삶의 격차를 보여주기 보다는 영화 제목에도 표현되었듯 기택 가족의 삶은 상류층에 기생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아무런 잘못도 없는 기존의 운전기사와 가정부를 내몰아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악행을 저지른다는 점이다.


기택 가족이 기존 가정부 국문광을 내쫓을 때는 ‘복숭아 알레르기’를 악용, 문광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도록 행동힌다. 이러한 행각은 사기꾼임을 넘어 타인의 목숨에 위협을 가하는 일에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정신 상태임을 보여주는 셈이다.


희생자가 된 국문광은 이들 가족이 뿌린 복숭아 껍질 가루로 인해 심각한 기침을 하고, 기택의 가족은 핫소스를 이용해 국문광이 마치 ‘활동성 결핵’ 때문에 각혈을 하는 환자로 누명을 뒤집어 씌운다. 그렇다. ‘의학 지식을 나쁜 쪽으로 활용하면 어떠한 참사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상상임신이 초래한 비극


박찬욱 감독의 작품인 <올드보이>(2003년)는 해외팬들에게 지금까지도 찬사를 받는 영화이다.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가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영화의 모티프가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이며, 주인공 오대수도 이를 음차했다고 알려진다.


오대수는 이우진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15년 동안 감금된 삶을 살다가 풀려난다. 감금 당시 식사는 오직 군만두였다. 과연 사람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이것만 먹고 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질릴테니까 말이다.


그리스 신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악타이온은 테베의 건국 왕 카드모스의 손자이자 뛰어난 사냥꾼이었다. 어느 날 그는 숲 속을 헤매다가 아르테미스 여신이 님프들과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 말았다. 이 일로 인해 그는 아르테미스의 저주를 받게 되어 사슴으로 변하게 되는데. 아이로니하게도 그가 기르던 사냥개들에게 참혹한 죽음을 맞게 된다.


(사진, 악타이온을 죽여버린 아르테미스)


영화 속 주인공 오대수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우진과 그의 누나 간의 비밀스러운 광경을 목격하고 이를 떠벌이게 된다. 학생이었던 오대수가 친구에게 별 생각없이 이를 떠벌려 삽시간에 소문으로 퍼지게 된다. 이로 인해 상상임신에 빠진 누나 이수아는 자살하고 만다. 그런데, 오대수가 목격한 것은 이수아의 얼굴뿐이었다.


상상임신이란 임신하지 않은 여성이 스스로 임신했다고 강하게 믿는 일종의 정신병적 증후군이다. 이 증상은 주로 결혼한 가임기 여성(임신을 간절히 바라는)에게 발생하지만, 미혼 여성이나 폐경 후의 여성 등에게도 발생될 수 있다고 한다.


아무튼 영화는 비극으로 종결된다. 고등학교에서 떠돈 소문 때문에 상상임신에 빠진 여학생 이수아는 자살하고, 이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오른 동생 이우진은 원인 제공을 한 오대수에게 15년간의 감금이란 형벌을 내리고 오대수는 스스로 혀를 잘라버린다. 이우진 역시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살을 한다.


영화 ‘매드 맥스’ 속의 디멘투스


영화 <매드맥스>는 세상이 핵전쟁으로 추측되는 모종의 사건으로 멸망해버려, 황폐해진 대지 위에서 거칠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고군분투 모습을 보여준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작품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다.


시리즈는 광활한 사막 풍경, 그 위를 질주하는 바이크와 대형 트럭들을 위시한 다양한 개조 차량, 데스메탈 밴드 멤버들을 연상시킬 만큼 강렬한 스타일의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이 보여주는 화끈한 액션들이 관람객들을 정신 빠지게 만든다.


이 영화의 감독 조지 밀러가 ‘정형외과 의사’ 출신이란 점에 놀랐다. 의사가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나타날 수 있는 특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2024년에 배급되었던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막바지에 퓨리오사에게 심하게 머리를 맞은 뒤 디멘투스에게 전신근간대경련이 일어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의사 출신 감독이기에 가능한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영화 퓨리오사 포스터)


영화 속 빌런 디멘투스는 이름에서부터 그 특성이 드러난다. 즉 ‘Dementus’는 없어지거나 저하되는 것을 나타내는 접두사인 ‘De’와 정신을 의미하는 ‘Ment’라는 어근을 더해서 만든 단어인 ‘Demens’ 혹은 ‘Dementis’에서 파생된 단어로 생각되며, 이 단어들은 ‘광기’ ‘정신이상’ 등을 의미한다.


치매를 뜻하는 영단어인 Dementia도 ‘De+Ment+sia(상태를 의미하는 어미)’의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디멘투스의 이름 선정은 이와 같은 라틴어 기반의 의학 용어를 고려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벤저민의 질환은(?)


2009년에 개봉된 영화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선 신비한 육체적 역노화逆老化를 보여준다. 한 노부인의 회상이 시작되면서 이야기의 시계가 거꾸로 달려 도착한 시작점은 부유한 공장주 부인의 출산 순간이다. 기묘한 아기의 출산이다.


손꼽아 기다리던 아기의 상태가 다 죽어가는 노인의 몰골, 퇴행성 질환인 관절염과 백내장까지 있음을 발견한 친모는 충격에 빠져 사망하고 만다. 부인의 사망과 아기의 기괴한 모습에 좌절과 분노에 빠진 친부는 이 아기를 한 양로원 앞에 유기하고 만다. 다행스럽게 양모를 만나 무사하게 성장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몸이 점점 젊어진다.


(사진, 조로증에 걸린 19세 남성과 정상 남성)


이와 같은 벤자민의 인생을 의사의 눈으로 보자면, 살면서 최소한 두 가지 질환으로 오진을 받았겠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만약 벤자민이 21세기에 태어나 의료진과 만날 기회가 더 자주 있었다면, 어린 시절에는 조로증早老症으로 의심받았을 것이고 나이가 들었을 때는 희귀한 소아 치매 환자로 오인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 속 의학 이야기


책 속엔 총 21편의 영화 속 의학 이야기가 있다. 일반적으로 영화 감상은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영화 선정에서부터 감상하는 포인트까지 다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의학이란 학문은 전문적인 분야이기에 영화 속에 등장하더라도 놓치기 쉬운 부분이지만 반면에 이 책은 우리들에게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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