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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듣는 맛
안일구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6월
평점 :
클래식은 누군가에게는 한눈에 반한 첫사랑처럼 애틋한 음악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친해지기 어렵고 까다로운 친구일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후자였던 것 같아요. 음악을 전공했다고 해서 모두가 클래식 애호가인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 클래식은 항상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안일구는 독일 바이마르 국립음대와 마인츠 국립 음대에서 플루트를 전공했으며, 독일 마인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귀국 후 여러 차례의 독주 리사이틀과 함께 연주자로서 꾸준히 활동해 온 음악인이다. 특히, 유튜브 채널 ‘일구쌤’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고 있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은 1부에선 만드는 사람, 들려주는 사람, 듣는 사람의 관점에서 클래식을 바라보며, 2부와 3부에선 본격적으로 클래식의 가치와 즐기는 법에 대해 얘기한다. 마지막으로 4부에선 클래식 입문자를 위한 명작 106곡의 플레이리스트를 담고 있다.
도서의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나의 클래식 음악 입문기에 대해 잠간 소개하려 한다. 중학생 시절 어머니의 막내 동생인 외삼촌이 우리집 인근에 새로 조성된 동네의 한옥집으로 이사오면서부터 클래식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고 새로 지은 한옥이라 종종 놀러 갔다. 무엇보다 편하게 맞이해주는 외숙모는 항상 간식을 챙겨줘서 발길이 쉽게 갔다. 그 시절 어머니는 대구 서문시장 상가에서 큰 포목 가게를 운영하셔서 종일 집을 비웠기에 학교 수업을 파하면 곧바로 태권도 도장에서 땀을 실컷 흘리고 난 후 집으로 귀가하곤 했는데, 외삼촌이 이사온 이후로 나의 루틴에 변화가 생겼다.
어릴 적엔 식모 누나라도 있어서 적적함이 덜했지만 내가 중학생이 된 후 누나의 고향집에서 건실한 농사꾼 청년과 살림을 챙겨줘서 우리집을 떠남에 따라 오후 시간의 집안 분위기는 정적으로 바뀌었다. 아랫 채에 두 가구가 세 들어 있었지만 내가 어울릴 수 있는 연배가 아니었고, 반면 이사온 외삼촌 집엔 피아노와 클래식 음악 감상용 축음기가 있어서 더욱 더 내 발길을 유혹함에 따라 이곳은 나의 음악감상실이 되었다. 이만 줄이고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클래식 음악의 3가지 축
저자는 만드는 사람, 들려주는 사람, 듣는 사람을 클래식 음악의 세 가지 축이라고 말한다. 연극의 3요소가 ‘각본, 무대, 관객’인 것처럼 클래식 음악은 ‘작곡가, 연주자, 감상자(애호가)’가 주된 요소임을 부인할 수 없다.
클래식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우선 작곡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악보의 이면을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작곡가는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매혹적인 소리로 바꾸는 사람입니다.(16쪽)
이와 관련해 저자는 바흐, 슈베르트, 드뷔시 등 세 명의 작곡가를 소개한다. 먼저 바흐(1685~1750년)는 우리들이 익히 음악 시간에 배운 바와 같이 ‘음악의 아버지’로 불린 인물이다. 9~10세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잇달아 여의고 성인이 된 후 2명의 이내를 만나 슬하에 20명의 자식을 낳지만 질병 등 여러 이유로 절반의 자식이 죽는 아픔을 겪게 된다. 한마디로 가슴 아픈 인생사를 거쳤던 것이다.
더구나 그는 많은 부양 가족으로 인해 평생을 봉급쟁이로 살았다. 교회나 궁정에서 바이올니스트, 오르가니스트, 궁정악장, 칸토르(합창장), 음악감독 등이 그의 직업이었다. 쉴 틈이 없는 겨를에도 작곡을 꾸준히 해나갔다. 가히 살인적인 창작 일정이었다. 평생 음악을 사랑했기에 자신의 재능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었으며, 실제로 그의 장남, 차남, 막내는 음악사에 길이 남은 위대한 음악가가 되었던 것이다.
가곡의 제왕이라 불리는 슈베르트(1797~1828년)는 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었기에 악기 연주는 물론이고 탁월한 작곡 재능을 보였다. 그는 17살에 이미 미사곡을 작곡해 연주했다. 이 연주는 리히텐탈 교회 건립 100주년 기념행사였는데, 이때 소프라노를 맡은 테레제 그로프가 그의 첫사랑이 된다. 이후 둘의 사랑이 깊어짐에 따라 명작들을 연이어 발표한다. <들장미>, <마왕> 등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하지만 수입이 별 없어서 지독한 가난을 벗어날 길이 없었다. 건강이 악화되어 31살에 사망했다.
인상주의 음악의 대가 드뷔시(1862~1918년)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출생했으나 혁명운동을 한 아버지의 투옥으로 인해 바닷가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기에 일찌기 음악에 재능을 보여 11살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했다. 체계적인 수업을 받아 실력을 쌓아 1883~1884년에 칸타타를 작곡해서 권위 있는 로마대상에서 2등, 1등을 연이어 수상했다.
하지만 뚜렷한 개성으로 인해 전통적인 음악의 권위를 훼손한다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음악을 계속 펼쳐 나갔다. 당시 파리에서 활동했던 인상파 화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새로운 화성과 음색을 적극 도입해 인상주의 음악을 선보였다. 그가 작곡한 <목신의 오후에의 연주곡>(1894년)은 ‘20세기 음악의 전주곡’으로 평가받는다.
감정과 음악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은 시작한다.”
- 모짜르트
과연 감정은 몇 종류일까?
단순히 기쁨과 슬픔처럼 2가지로 나눌 수도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폴 에크만은 인간의 감정을 기쁨. 슬픔, 혐오, 놀람, 분노, 공포 등 6가지로 구분했다. 공자의 유학에서는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欲의 칠정七情으로 구분했다.
2017년 캘리포니아대학교 심리학 연구진은 실험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27가지로 구분하기도 했다. 감정과 관련된 단어를 살펴보면 영단어로는 2,600여 개, 한국어로는 434개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은 언어로는 규정할 수 없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독일 출신의 음악이론가 요한 니콜라우스 포르켈(1749~1818년)은 ‘음악은 보편적인 감정의 언어’라고 말했다. 그만큼 음악은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주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다. 그 감정은 각국의 언어, 국경, 문화를 뛰어넘는다.
알수록 빠져드는 클래식 음악
앞서 나의 클래식 음악 입문기에서 밝혔듯이 난 피아노 건반 소리를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폴란드의 피아노 작곡가이자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불린 쇼팽(1810~1849년)의 음악을 많이 감상하곤 했다. 여기엔 클래식 애호가인 외숙모의 설명이 거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쇼팽은 파리로 가는 도중 바르샤바에서 혁명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폴란드로 발걸음을 되돌리려다가 ‘조국을 위해 음악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애국이다’라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결국엔 파리로 향했다. 그는 파리에 도착해서 수도 바르샤바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때 그가 작곡한 곡이 바로 <에튀드>이다. 이곡은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에튀드는 프랑스어로 ‘연습곡’을 뜻한다. 작품 속에 담긴 이런 배경까지 알고서 이를 감상한다면 무척 도움이 된다. 책 속엔 연주자가 다른 피아노 연주곡 두 편이 실려있다.
(사진, 에튀드 피아노 연주곡 2편 QR코드)
“연주가 끝나지 않았는데, 박수를 치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
온라인에서 클래식 즐기기
디지털콘서트홀(베를린 필하모닉)
STAGE 플러스
Met Opera on Demand
메디치TV
유튜브
이다지오
애플뮤직클래시컬
타이달, 코부즈(국내엔 정식 서비스되지 않음)
유튜브뮤직, 스포티파이
KBS 제1FM
유튜브 멤버십
또한 책은 입문자들을 위한 클래식 명작 106곡을 QR코드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1567년 출생 작곡가 몬테베르디부터 1966년에 태어난 막스 리히터까지 장장 400년에 걸친 다양한 작곡가들의 대표곡을 접할 수 있다.
31년이라는 짧은 생에도 불구하고 무려 600여 곡의 가곡을 남긴 슈베르트는 평생을 가난과 외로움, 그리고 병마에 시달렸다. 이런 악조건 하에서 작곡한 <겨울 나그네>는 사랑에 실패한 한 청년이 한겨울에 눈보라 치는 길을 나서면서 곡을 시작한다. 나그네가 정착할 곳은 없다. 이 나그네는 자신의 처지와 닮은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빈 접시를 앞에 두고 꽁꽁 언 손으로 손풍금을 연주하고 있다.
“노인이여, 저와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제 노래에 맞춰 손풍금을 연주해주시지 않겠습니까?” - <겨울나그네>의 마지막 가사
클래식 듣기
클래식을 듣는다는 것은 쉽고도 어렵다. 그냥 듣는다는 것은 무척 쉽지만, 이를 제대로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인간이 엄마 뱃 속에서 태어나 현실의 여러 현상을 경험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며 자신만의 오롯한 감정으로 채우기까지 많은 시간이 경과해야 한다.
그렇다. 클래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진정 클래식을 애호하려면 오랜 시간 투자와 함께 꾸준히 감상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저자가 책의 제목을 <클래식 듣는 맛>이라고 한 이유가 이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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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