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 간 약사 - 우리 일상과 밀접한 약 이야기
송은호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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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 등장하는 약들은 극을 전개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장치일 뿐이다. 관객들은 ‘약’을 둘러싼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변화와 갈등을 일으키는지 보며 감동과 재미를 느낀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송은호는 현재 경북 경산시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이다. 부업으로 작가와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일상을 바꾼 14가지 약 이야기>를 비롯 다수의 약과 관련된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말할 수 없는 비밀


이 영화는 젊은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을 다룬 판타지 로맨스물이다. 가난한 가정 환경, 어린 시절의 상처, 오랫동안 앓아온 지병 등은 극중 긴장감과 갈등을 유발하는 장치 중 하나다. 특히 지병이라는 요소는 등장인물의 활동을 제약하거나 역경을 가져오고 목숨을 위협하는 장애물로 등장한다.


그 지병은 바로 천식이다. 천식 환자는 달리기 등 숨이 차는 운동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비상시를 대비해 항상 천식 스프레이를 휴대하고 다닌다. 안방극장인 드라마에서도 이런 장면은 흔하게 등장한다.


천식은 산소를 운반하는 기관지라는 터널에 생기는 염증 질환이다. 염증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산소가 통과해야 하는 통로가 좁아지므로 천식 증상이 나타나면 기침이 멈추지 않고, 숨을 쉴 때마다 쌕쌕 소리가 나며 호흡이 힘들어진다. 어릴 적부터 천식약을 복용하던 환자는 성인이 되어서도 이 약을 늘 갖고 다닌다.


본 투 비 블루


재즈의 아이콘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트럼펫 연주가 쳇 베이커. 마약 중독에 찌든 그에게 오직 음악만이 유일한 치유였다. 1929년 12월에 미국 오클라호마 주에서 태어난 그는 기타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음악과 가까이 지냈다.


화목하지 않은 가정 탓에 그는 어렸을 때부터 방황하는 시간이 많았다. 대마초를 피우거나 절도로 구속되기도 하며, 난잡한 성생활로 문제를 일으키는 등 방탕한 생활이 이어졌다. 마음을 잡고 군악대를 제대한 후에 밴드를 결성해 트럼펫을 연주하며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키웠다.


챗은 재즈 뮤지션의 대부로 불리는 찰리 파커가 로스앤젤레스의 티파티 클럽에서 트럼펫 뮤지션을 구한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거기로 향했다. 찰리는 이미 쳇의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협주를 함으로써 쳇은 스타가 되었다.


찰리는 지독한 마약 중독자였다. 모르핀과 헤로인에 중독되어 사생활이 엉망이었다. 마약에 취해 옷을 벗고 돌아다니다가 경찰에 체포되고 정신병원에 수감되는 등 많은 문제를 일으겼다. 찰리를 멘토로 둔 쳇 역시 마약으로 삶이 무너지고 만다.


지금도 연예인의 마약 투여는 큰 이슈로 등장한다. 특히 음악계에 종사하는 뮤지션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마약이 음악에 어떤 영향을 줄까? 정말로 마약이 음악적 영감을 제공할까? 연주를 잘하도록 만들어 줄까?


리미트리스


버넌은 주머니에서 약이 든 봉지를 꺼낸다. 마약인가? 버넌은 손사래를 친다. 그의 말로는 자신이 제약 회사의 컨설팅을 맡고 있고, 이 약은 내년에 출시될 신제품이라 한다.


이는 영화 <리미트리스>(2011년)의 한 장면이다. 현재의 인간은 두뇌의 10%밖에 사용하지 못하는데, 약을 먹으면 100%를 모두 활용할 수 있다는 스토리를 전개한다. 앞서 버넌이 말한 신제품이 바로 이 약이다.


‘인간은 뇌의 10%만 사용한다’는 가설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 심지어 자기계발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데일 카네기의 저서에도 이를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참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이 아니다.


ADHD 치료제는 집중력을 높이고 각성 작용을 하는 노르에피네프린과 도파민을 증가시킨다. 그 덕분에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진 ADHD 증상을 치료하는 데 빠르고 효과적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많았다. 심하면 정신 질환도 일으켰다. 이같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한번 약을 먹은 사람은 쉽게 약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ADHD 치료에 암페타민 처방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대신에 메틸페니데이트 성분의 약을 처방하고 있다. 문제는 메틸페니데이트 역시 공부 잘하는 약으로 잘못 알려져서 남용된다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발표한 ‘2022년 ADHD 약물 처방자의 거주지 자료’를 보면 ADHD 처방건수가 가장 많았던 지역은 강남, 송파, 서초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은 지역이다.


사이드 이펙트


“이 약은 세로토닌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에 작용합니다.”

“정확히 어떤 작용을 하나요?”

“슬프다는 느낌 자체를 차단하는 겁니다.”


이는 영화 <사이드 이펙트>(2013년)에 등장하는 한 장면이다. 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자실을 시도한 에밀리. 며칠 동안 정신 병원에서 지내길 권하자 이를 거부함에 따라 의사 조나단 뱅크스가 그녀에게 약 처방을 제안하고 있는 광경이다.


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한다. 우울증이 한번 자리를 잡으면 한 사람의 영혼과 삶을 서서히 잠식해간다. 대인관계와 커리어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밖에 나가는 것 자체를 무서워하고 삶은 활력을 상실하게 된다. 밤엔 지독한 불면증 때문에 잠을 설치는 생활이 반복된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고리를 물고 어느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되뇌게 돈다. 결국 자살로 이어지는 무서운 질병이다. 어찌 이것이 ‘마음의 감기’일까? 오히려 ‘마음의 암’이라고 표현해야 옳은 듯 보인다.


이 영화는 ‘약의 부작용으로 살인을 한 경우, 살인죄에 해당하는가?’에 대한 논지로 법정에서 공방을 벌이며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주인공은 바로 의사 조나단 뱅크스이다.


인간의 뇌에 존재하는 수많은 신경 전달 물질은 우리의 인지, 감정, 뇌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우울증은 신경 전달 물질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대부분의 우울증 치료제는 신경 전달 물질을 조절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사실상 우울증은 약물로 간단히 치료할 수 있는 병이 아니라, 사회·환경적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더구나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다. 구역질, 복통, 현기증, 발진처럼 비교적 사소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한다.


페인 허슬러


“환자 1명당 커미션이 연간 4만 8천 달러네요.”

“10명이면 50만 달러에요. 성공은 하늘의 별따기예요.”


이는 영화 <페인 허슬러>의 한 장면이다. 비록 빈털털이 신세이지만 야망만큼은 큰 싱글맘 라이자 드레이크는 제약회사의 영업직으로 고수익을 올릴 기회를 손에 잡는다. 새로 나온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를 성공시키기 위해 그녀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와 제약 회사의 영업사원은 불가분의 관계다. 영업 사원들은 자사의 신제품을 홍보하고, 주문받은 제품을 배송해주고, 제품의 장점과 관련 정보를 전달하고, 샘플을 건네주고, 파손 제품을 반품교환해주고, 법에 저촉되지 않을 정도의 선물을 제공한다.


그런데, 병원 영업일 경우는 매출 규모가 크기 때문에 리베이트 영업이 뒤따른다. 혜택을 받은 의사는 당연히 그 제품 판매에 앞장서게 된다.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처벌함에도 불구하고 리베이트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마약이 음지를 통하여 전파되었으리라 생각하지만, 펜타닐이 미국 사회에 널리 퍼지게 된 데는 의사들의 역할이 컸다.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이 무분별하게 처방되었기 때문이다. 제약 회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들은 두통과 생리통 같은 가벼운 통증에도 펜타닐을 처방했고,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도 환자가 요청하면 처방전을 써줬다.(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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