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 데드 해방일지 - 퇴사욕구와 인정욕구 사이에서 좀비화한 요즘 직장인 을 위한 일 철학
시몬 스톨조프 지음, 노태복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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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칼라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직업이 종교적 정체성과 비슷해졌다. 그들에게 직업은 급여와 더불어 삶의 의미, 공동체, 나아가 목적의식까지 부여한다. <애틀랜틱>의 기자 데릭 톰슨Derek Thompson은 이 새로운 현상을 가리키는 신조어로서 ‘워키즘Workism’을 제안했다. ‘일중심주의’라는 뜻이다. 이를 따르는 사람인 ‘워키스트workist’는 종교가 있는 사람이 신앙에서 의미를 찾듯 일에서 의미를 찾는다. - ‘들어가며’ 중에서




책은 독일의 한 단편소설(1963년 발표)을 각색한 내용을 인용한다. 즉 MBA 출신의 한 사업가는 작은 어촌의 한 어부에게 ‘뭘 하면서 하루를 보내냐?’고 물었다. 이에 어부는 ‘늦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물고기 몇 마리 잡고, 아이들과 놀다가 아내와 함께 낮잠을 즐긴 후, 동네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며 기타를 친다’고 답했다.


이 대답을 들은 사업가는 어부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알려주는 대로 한다면 사업을 더 키울 수 있다면서 ‘더 큰배를 구입해 더 많은 물고기를 잡아 큰돈을 벌어 통조림 공장을 직접 운영할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이 제안에 대해 마치 꼬투리를 잡듯이 어부는 ‘그 다음엔?’이라는 연속적인 반응을 보이자 ‘다음엔 도시로 나가 유통 센터를 세우고, 그 다음엔 국제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회사를 상장시켜 보유하는 회사 지분을 잘 팔면 큰 부자가 될 수 있다’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또 다시 어부가 ‘그 다음엔 어떻게 하느냐?’고 질문하자 이 사업가는 ‘작은 어촌에 내려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 물고기를 몇 마리를 잡고, 아이들과 놀다가 아내와 낮잠을 즐긴 후 동네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고 기타를 친다’고 답했다. 결국 먼 길을 돌아 원위치로 돌아왔다. 이럴거면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어부는 사업가에게 빙긋 웃으며 유유히 해변을 떠났다는 내용이다.


책의 저자 시몬 스톨조프(1990년생)는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한때 세계적인 디자인 기업 IDEO의 디자인 리드로 일하기도 했으며, 더 나은 업무 환경을 설계하는 비즈니스 컨설턴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책은 총 9개 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저자는 100명이 넘는 직업인들(맨해튼의 로펌 변호사부터 알래스카의 카약 투어 가이드까지, 코펜하겐의 집 안에만 틀어박힌 부모부터 캘리포니아의 패스트푸드 매장 직원까지 다종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행한 인터뷰를 토대로 이중 화이트칼라 노동자 아홉명을 선별해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성찰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인생을결정한다.”

- 애니 딜러드, 작가




이 책은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일과 자존감을 쉽게 분리시키는 3단계’라든가, ‘다음 실적 평가 때문에 잠 못 드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열 가지 팁’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들이 직업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라고 주문한다.


그만큼의 가치가 있습니까?


인도계 미국인 디비야 싱(19살)은 영양사가 되려고 요리전문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모든 요리사들이 다 그렇듯, 그녀의 꿈은 <본 아페티>나 <사뵈르> 같은 고급 요리 잡지에 자신의 레시피가 게재되는 것이었다.


요리학교에선 매년 학생 1명을 미국 내 최고로 인정받는 레스토랑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제공했다. 이에 디비야는 고급 식당의 아이콘 격인 이 레스토랑의 인턴십에 지원하여 당당히 1인으로 뽑혔다.


디비야의 하루하루는 잘게 썬 타라곤잎과 깍둑 썬 꾀꼬리버섯의 연속이었다. 주방보조가 썰어놓은 재료를 매일 검사해서 기준에 미흡하면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그렇다. 이곳에서 요리사로 일한다는 것은 마치 픽사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것과 흡사했다.


인턴십이 끝날 때 디비야는 계속 일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지시대로 요리해야 하는 단조로운 과정이 끌리지도 않았고 요리 학교도 졸업하고 싶어서 학업을 다 마치기로 결정했다. 요리 학교 졸업반 때 직무설명서에 최첨단 요리법을 작성함으로써 22살에 그 레스토랑의 초대 R&D 셰프로 선발될 수 있었다.


이후 이 레스토랑의 셰프 피셔는 디비야(24살)의 개발 메뉴의 성공 가능성을 알아보고 ‘프래미어’라는 독립적인 벤처 사업을 제안, 든든한 후원자를 자처하며 소위 공동소유 형태를 취했다. 프래미어 사업의 성장과 함께 디비야는 CEO로서 자신감이 충만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다비야는 인생 첫 멘토인 피셔에게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그녀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일이 삶의 중심에 있는 사람에게는 다른 여유 공간이 없다. 그녀가 프래미어를 일구어나가던 몇 년 동안 일은 그녀의 최상의 시간뿐만 아니라 최상의 에너지도 차지했다. 그러나 한 면만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일하는 사람이자 형제자매이고, 시민이면서 취미를 즐기는 사람이며, 동네 이웃이다. 이렇게 보자면 정체성은 식물과 같다. 시간과 관심을 기울여야 자란다. 물을 주고 가꾸는 의식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금세 시들 수 있다(55쪽).




일, 새로운 종교가 되다


라이언 버지는 사회과학자로 미국 사회의 동향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1972년 이래로 미국의 종합사회조사는 매년 미국 사회의 동향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발표한다. 50년 넘게 축적된 이 자료는 사회과학자에겐 금광이나 다름없다.


역사적으로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한 종교 집단에 속했다. 1990년만 해도 미국인의 약 7퍼센트만이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시류가 바뀌어 가장 인기 있던 종교들은 그 기반을 잃어가고 있다. 반면 무종교인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라이언은 두 아들의 아버지이자 대학에서 강의하는데, 많은 목사들과는 달리 돈 때문에 목사직에 임하고 있다. 그는 2006년에 처음 마운트버논의 제일 침례교회 목사가 되었다. 당시만 해도 매주 일요예배에 참석하는 신도는 50명,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엔 300석 예배당이 만석이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현재 정기 예배 참석자는 약 6명으로 크게 쇠퇴한 모습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한때 많은 사람들에게 소속감과 목적의식, 정체성을 가져다주는 바탕이 되었던 종교 기관이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만큼은 명백하다. 하지만 종교 기관이 쇠퇴하더라도 소속감과 목적의식, 정체성을 바라는 인간의 욕구는 그대로이므로 사람들은 이를 채워줄 다른 곳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미국인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에 교회보다 낫다고 여기게 된 곳이 바로 사무실이다.




당신의 사랑스럽고 부당한 노동


포비치 에타는 15살에 꿈의 직업을 결정했다. 도서관 사서직이었다. 브루스 코빌의 단편소설 <앰 아이 블루>를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읽고난 뒤부터였다. 성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는 16살의 빈스가 요정으로부터 초능력을 얻어 동성애자를 알아볼 수 있다는 스토리였다. 포비치는 동성애 문학 세계에 눈을 떴던 것이다.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어릴 적부터 우리들은 이 질문을 받으며 자랐다. 이에 우리들이 가진 ‘꿈의 직업’은 마치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찬양 대상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을 언제나 좋아해야 한다는 생각은 일에 과도한 기대를 하게 만든다. 이는 세상 모든 일에 존재하는 ‘지루함’ 을 무시하는 발상인 셈이다.


포바치처럼 사서가 꿈인 사람들은 종종 빚을 진 채 이 직업을 시작한다. 전업 사서직은 대체로 도서관학이나 문헌정보학 석사 학위가 요구되므로 학위 취득을 위해 2년 간의 시간과 수만 달러의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빚을 내면서까지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개인의 강렬한 욕구와 적성이 좌우할 것이다.


물론, 자신의 일을 좋아하면서도 행복하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좋아서 일하기를 향한 열정이 정당한 보수, 정당한 노동 시간 및 정당한 복지 혜택을 대신하게 되면 노동자는 힘들어진다.


이밖에도 책은 일에 일상을 바차는 사람들, 우리는 한 가족일 수 없다, 불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 편리함에는 대가가 따른다, 일의 게임에서 얻어야 할 보상, 진짜 나를 위해 일한다는 것을 주제로 해당 인터뷰어의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펼쳐진다.


“일에 몰두하다 보니 저는 정말로 많은 달걀들을 하나의 바구니에만 담고 있었어요.” 영상제작자인 에즈라가 말했다. “기본적으로 그게 나의 사회생활이고, 삶의 목적의식이고, 자신과 가족을 먹여 살리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문제는 언제든 누군가가 그 바구니를 나한테서 빼앗을 수 있다는 거예요.”(126쪽)




진짜 나를 위해 일하라


“무엇을 하십니까(What do you do)?”, 이는 미국인들이 상대방에게 예의상 흔히 하는 말이다. 단순한 듯한 질문 같지만 이 말은 잘못되었음을 우린 앞서 MBA 출신 한 사업가와 어촌 마을의 한 어부와의 대화 속에서 이미 감을 잡았다. 이제 “무엇을 하길 좋아하십니까(What do you like to do)?”라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정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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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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