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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서 인간으로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
박영택 지음 / 스푼북 / 2023년 4월
평점 :
중세 시대는 왜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뾰족한 교회 건물밖에 없는 걸까요? 왜 그 시대는 그림이 발달하지 못했을까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는 무슨 이유가 있었던 걸까요? 그렇다면 중세를 지나고 찾아온 르네상스는 무엇일까요? 왜 이탈리아에서 발전했고 그렇게 수많은 예술가들이 탄생한 건가요?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궁금증을 이 책이 다 풀어 줄 거예요. 아주아주 쉽고 재미있게 말이지요.

저자 박영택은 대학 교수이자 미술 평론가로 현대 미술 현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이 책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의 차이와 함께 수많은 화가들을 지원했던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등에 관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종교화
중세 시대의 그림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사실적인 게 아니라 종교적 교리에 합당한 영적인 창조성을 가미함으로써 실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즉 그리고자 하는 인물의 중요성에 따라 그림의 배치와 크기가 달랐다. 예를 들어 원근법도 무시한 채 성모 마리아를 가장 크게 가운데에 배치하고 주변은 매우 작게 그렸다.
중세 시대의 건축물도 가장 큰 후원자가 가톨릭교회였기에 주로 건물 끝이 뾰족한 첨탑 형식의 고딕 양식을 추구했다. 이런 양식의 특징은 둥근 기둥과 리브로 이루어진 내부 구조, 신성한 빛이 들어오도록 만든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열거할 수 있다.
대표적인 카톨릭교회 건축물로는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독일의 쾰른 대성당, 이탈리아의 밀라노 대성당 등을 꼽을 수 있다. 성당은 하느님의 왕국을 지상에 세운 것으로, 천국을 떠받드는 형상이었기에 더 가까이 신에게 다가가려고 높게 지으려고 애썼다.


르네상스 시대
중세 시대의 미술은 신앙심을 고취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미술의 주제는 한결같이 성서나 성인들을 다루었다. 인간의 눈으로 결코 본 적이 없는 천국의 세계를 상상만으로 표현했다. 무조건적으로 성스럽게 그리는 것이 유일한 과제였다.
반면 르네상스 시대엔 여전히 카톨릭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화가들은 기존의 정해진 규칙을 무조건적으로 따르지 않고 과학적인 탐구 행위가 가미되었다. 즉 살고 있는 세계를 보다 정확히 묘사하려는 인문주의 정신을 구가했던 것이다.
인간의 미래가 신의 은총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본인의 능력과 선택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수동적인 인간관에서 탈피하여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인간관으로 전환했다. 이런 정신이 신에서 벗어나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휴머니즘을 만들었다.

중세 시대의 미술은 대부분 교회에서 주문했지만, 르네상스 시대엔 취향과 안목이 다소 까다로운 비평가나 수집가들이 특정 작품들을 주문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스토리가 담긴 그림 말이다.
르네상스의 문을 연 메디치 가문
1096년부터 13세기 후반까지 약 200년 동안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의 종교 전쟁이라 할 십자군 전쟁이 교황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이 전쟁의 영향으로 동방 무역이 확대되면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가 번성하게 되었다. 이에 부를 축적한 다수의 상공업자들이 생겨났으며, 이들은 이후 시민 계급으로 성장하면서 르네상스의 주역이 된다.
유럽 사회는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교황과 종교의 권위가 무너지고 왕의 권한이 강해졌으며 상업과 도시가 많이 발달하게 되었다. 즉 종교의 힘이 약화된 반면 인간에 대한 재해석과 깨달음이 생겨나서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함께 자본주의적 경제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를 흔히 르네상스 시대라고 부르며, 특히 이탈리아가 그 중심에 있었다. ‘다시 태어난다’는 뜻을 지닌 프랑스어 ‘르네상스’는 14세기 후반부터 16세기 후반까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서유럽에서 일어난 문예 부흥인 셈이었다.

르네상스 정신은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방의 피렌체라는 작은 도시에서 출발했다. 이탈리아는 여러 도시 국가들이 데립하고 있었는데, 이중 피렌체는 양모 섬유, 울 산업이 발달해 상업화와 산업화가 진행된 곳이었다. 이에 부유한 상인 계급이 등장, 미술가들을 후원함으로써 르네상스 미술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피렌체 사람들은 정치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고대 로마를 따라 하려고 했다. 이런 움직임이 피렌체 작가들의 창조 활동에 반영되었다. 맨 처음 피렌체의 예술은 낡은 수도원의 내부를 새롭게 장식할 회화(그림) 중심으로 발전했다.
피렌체의 군주와 부유한 상인들에게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기베르티, 우첼로, 브루넬레스키 등이었다. 이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인문주의와 휴머니즘을 추구했기에 르네상스인이라 불렸다.
피렌체엔 막대한 부富를 소유한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피렌체의 부자 상인들은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했다. 이들은 상업적 이윤, 세속적 욕망, 신앙생활이 공존할 수 있는 자신들만의 영역이 필요했다. 메디치 가문은 예술 영역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던 것이다.

메디치 가문은 자신들이 번 돈을 사회 구성원들을 위해 기부하고, 뛰어난 예술품을 함께 누리고자 노력했다. 또 학문을 장려하고 고전을 번역하며 도서관을 만들어 인류의 지식을 보존하려 애썼다. 이 가문의 후원이 없었다면 르네상스 미술의 걸작이 탄생했을까 싶다. 후원을 받았던 예술가들은 도나텔로, 브루넬레스키,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의 거장이었으니 말이다.
신에게서 인간으로
미술은 한 시대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래서 미술을 아는 것은 역사를 아는 것이고, 미술을 공부하는 것은 역사를 함께 통찰하는 공부이기도 하다. 중세 시대의 미술과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에 차이를 만들어 내는 키워드는 ‘종교’와 ‘인간’이다. 바야흐로 신에게서 인간으로 시선이 전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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