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어스 - 기만의 시대, 허위사실과 표현의 자유 Philos 시리즈 17
캐스 선스타인 지음, 김도원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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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라는 주장이 난무하는, 그리고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허위사실의 영향력이 우리의 정치를, 사람 사이의 이해와 상호작용을 점점 더 왜곡하는 이때, 우리가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우리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방식으로 고민하는 데 이 책은 필수적이다. - ‘편집자 서문’ 중에서




총 9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우리의 법이 ‘거짓’과 ‘허위사실’의 해악으로부터 대중을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과 동시에, 시민으로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우리의 관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주제를 다룬다. 가짜뉴스가 난무하는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서 어떤 관점을 지녀야 하는지를 고찰한다.


거짓말을 말할 수 있는 권리


출발부터 매우 자극적이다.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사건을 인용해서 각각의 문제점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첫째는 스스로 주장이 틀렸음을 알면서도 누군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80세 이상이 아니라면 코로나19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면, 둘째는 허위 주장임을 알면서도 어느 공직 후보자가 TV방송국이나 웹사이트에 상대 후보의 여직원 성폭력을 광고했다면, 셋째는 실제로 그렇다고 믿는 어떤 이가 지역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고 주장함으로써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백신 접종을 거부함으로써 심각한 보건 위기가 발생했다면, 이와같은 사태의 문제점을 고민해보자는 제안이다.


우리는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을까? 이또한 ‘표현의 자유’임을 내세워서 거짓말을 용인해야 할까? 허위사실에 대해서 어디까지 보호될 수 있을까? 진실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는 어떤 조치를 해야 할까?


이에 관하여 저자는 ‘일반적으로 허위사실은 설령 거짓말일 경우에도 검열이나 규제의 대상이 되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평생을 착하게만 살아온 사람들이 이 주장을 들으면 마치 피가 역행逆行하는 것처럼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사회는 허위사실도 보호한다. 공직자가 진실 순찰대처럼 행동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참’과 ‘거짓’을 구분할 공직자들의 판단을 우리가 신뢰할 수 없고, 그들의 편견이 오히려 일반인들의 판단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공직자들에게 허위사실에 대한 처벌 권한을 부여한다면, 그들은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들을 처벌하려 할 것이다. 이런 현실이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이미 자행되고 있는 셈이다. 다수당의 횡포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자 소위 ‘검수완박’이라는 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부쳤다.


그렇다면 허위사실에 대한 최선의 대응은 뭘까? ‘바로잡는 일’이다. 하지만 이미 공중파 또는 신문 등 매스컴을 통해 널리 퍼져버린 ‘거짓’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그래서 ‘바로잡기’는 오랫동안 존중받아 왔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수세守勢적인 입장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허위사실이 심각한 해악을 초래할 위험이 있고, 표현의 자유를 좀 더 보장하면서도 그런 해악을 막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점을 정부가 증명할 수 있다면, 그 허위사실은 헌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또 분명한 거짓말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해악의 위험성을 입증해야 하지만, 입증 수준은 고의성 없는 허위사실을 규제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보다는 낮아도 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정부는 지금도 허위광고를 규제할 수 있다. 정부는 공중보건과 공공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특정한 종류의 거짓말과 허위사실을 제한,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적 절차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는 어떤 거짓말과 허위사실의 경우 명예훼손 요소가 없더라도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정부는 조작된 영상을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 명예훼손인 경우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시청자들이 그 영상은 조작된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정부는 검열이나 처벌을 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정부는 정정 표시나, 허위사실이 유포될 가능성을 줄이는 일정한 형태의 선택 방식을 요구할 수 있다. 이에 저자는 또한 방송국, 잡지, 신문,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같은 민간기관이 거짓말과 허위사실 유포를 늦추거나 멈출 수 있는 상당한 여지를 갖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가짜뉴스


만약에 거짓말 모두를 일일이 금지하거나, 이를 완전히 뿌리 뽑는게 가능하다면 우리들의 삶은 괜찮을까? 얼마전 법무장관을 술집에서 보았다는 한 피아노 연주자의 거짓말이 한 정치인의 입을 통해 발표됨으로써 이 사회에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심지어 이 가짜뉴스를 제공했다는 유튜브의 조작 사실까지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왜 이런 가짜뉴스가 발표될 수 있었을까? 맨 처음의 원인 제공자는 강남 모처의 한 술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알리바이 조작이 필요했고, 거짓으로 시작된 일이 동거남을 통해 정치권 뉴스를 다루는 유튜브에 제공됨으로써 일이 더 확산되고 말았다.


나아가 유튜브를 통해 이런 가짜뉴스를 제공받은 한 정치인은 팩트의 검증조차 없이 이를 국회에서 퍼뜨림으로써 진실공방이라는 2차전이 벌어졌다. 추후 경찰에서 조사받은 그 여성은 거짓말이었음을 밝혔다. 그럼에도 이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심각한 문제점이다.


이처럼 도가 넘는 가짜뉴스와 허위사실은 허용될 수 있을까? 허용될 수 있고 없고의 여부를 구별하는 기준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이 작업을 위해 우리는 표현의 자유라는 체제의 토대를 살펴봐야 한다. 그 체제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무엇을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인지 이해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늘 중요하기도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시급하다. 왜 그럴까?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가짜뉴스와 허위사실은 순식간에 확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전이나 보건, 유명인사에 대해 거짓말을 손쉽게 퍼뜨릴 수 있는 셈이다. 앞서 살펴본 사례처럼 말이다. 어쩌면 대중들은 진실보다 거짓말에 더 현혹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허위사실은 개인의 명예를 짓밟고, 민주주의를 뒤흔들고 있다. 그럼에도 ‘표현의 자유’ 운운할 것인가?


역설적으로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는 그 자체가 가짜일 때도 많다. 이렇게 되면 일반인들은 몹시 헷갈리게 된다. 어느 쪽 말이 맞는지 도대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예로 전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자신과 관련된 성추행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강하게 비난하면서 위기를 넘기곤 했다. 최근에 그는 미국 대통령 최초로 성추행 혐의로 기소되었다. 특히, 정치판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무엇이 중요한가?


책은 구체적 논의를 위한 기본적인 틀을 제시한다. 발언자의 의식 상태, 해악의 규모, 해악의 가능성, 해악의 발생 시기 등 4가지 문제를 먼저 확인하고 이를 각각 구분해서 살펴보자는 의견이다. 먼저 의식 상태에 대해선 발언자의 경솔, 부주의, 실수라면 거짓말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즉 책임의 문제로, 도덕적 관점에서 거짓말쟁이는 악의가 없는 발언자(경솔, 부주의, 실수)에 비해 훨씬 더 나쁘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는 자신의 사고와 말, 행위가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 모든 범위에서 절대적이다. 국가의 법률이나 일반적인 도덕적 판단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 존 스튜어트 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법으로 거짓말을 제한하고 허위사실을 퍼뜨리지 못하도록 하는 안전 장치가 아니라 대체로 사회규범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정직을 미덕으로 삼는 규범이 있다면 이를 어길 경우 스스로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즉 법이든 규범이든 어차피 인간들이 이를 준수해야 비로소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므로 강제하기 보다는 자율에 맡기는 것이 오히려 인간성을 존중하는 셈이다.


해악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작다면 굳이 정부가 나서서 표현(설령 허위사실일지라도)에 대해 규제해야 할까? 다만 허위사실로 인해 해악 발생의 위험성이 있을 경우라면 정부는 이에 대해 여러 종류의 수단을 강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중지를 명령하거나 징역형 또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거짓말의 윤리학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거짓말쟁이이다. 표현의 자유만을 내세운다면 트럼프는 물론이고 그의 지지자들이나 반대자들이 하는 거짓말도 보호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과연 보호해야 할까? 이에 답하려면 ‘거짓말은 과장과 다르며, 허위사실은 인간의 삶에서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아내기 위해, 우리는 아마도 수많은 허위사실을 들어야 할 것이다. 거짓말쟁이는 신뢰를 파괴한다. 신뢰가 파괴되면 인간관계의 형성과 유지는 어려워질 것이다. 철학자 시셀라 보크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회 구성원이 진실한 메시지와 거짓된 메시지를 구별할 수 없게 된 사회는 붕괴할 것이다. 식량과 피난처를 찾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우물에 독이 있다는 경고나 사고를 당해 도와 달라는 요청은 별도의 확인이 없다면 무시될 것이다.


허위사실이 진실보다 빨리 퍼진다


새로운 정보가 더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가정은 합리적이다. 허위사실이 상대적으로 더 널리 퍼지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트위트의 새로운 정보성에 관해 조사했던 연구자들은 “유언비어가 진실한 소문보다 훨씬 더 새롭다”라고 결론 내렸다. 또 심리학자들은 소문이 혐오 같은 것을 만들어 낼 경우 더 널리 퍼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허위사실이 퍼진다는 사실 자체가 허위사실에 영향력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대체로 허위사실은 확실히 매력적이고 생생하다. 왜냐하면 허위사실은 새롭고 흥미로우며 예상을 벗어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 허위사실이 분노와 혐오를 비롯해 어떤 감정적 반응을 일으킬 경우, 곧 수많은 사람이 그 허위사실에 접하게 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런 점이 진실 편향과 만나게 되면 상당한 문제가 일어난다.


만약 허위사실이 특히 더 퍼지기 쉽고, 사람들은 자신이 듣는 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의 편향이 있다면, 사람들이 허위사실을 믿을 위험은 극적으로 커진다. 이는 허위사실을 보호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관한 존 스튜어트 밀의 생각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


사회규범에 의한 것이든 법에 의한 것이든, 위축효과가 전혀 없는 사회는 너무나 추할 것이다. 사회에 필요한 것은 ‘위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적절한 수준의 위축이다. 이런 결론은 명예훼손법에 특히 유효하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이룩할까’이다.


나무만 보느라 숲을 놓치지 말자. 명예훼손법은 표현의 자유라는 체제를 심각한 방식으로 침해하는 데 쓰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 체제를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명예훼손적인 허위사실을 예방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중대한 피해를 입는 사람의 보호뿐 아니라 함께 피해를 입게 되는 여러 이해관계인들을 위해서도 시급하다.


해악


만일 누군가 고의적으로 허위사실을 퍼뜨리고, 그 허위사실이 민주적 절차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면, 정부가 어떤 종류의 제재나 대응책을 강요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실제로 옳을까?


우리는 보건과 안전에 관한 수많은 허위사실 그리고 거짓말을 보아 왔다. 첫 번째 문제는 정부 공직자가 그것을 규제할 권한이 있는가이다. 두 번째 문제는 민간기관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다시 말해서 첫 번째 문제는 헌법과 관련이 있고, 두 번째는 그렇지 않다.


진실은 중요하다


결국 진실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할 수 있다. 방송사, 신문 등의 민간부문은 명예훼손, 그밖의 허위사실과 거짓말을 통제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원칙이 현실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가로막는 데 이용되어선 안 된다.


#사회학 #라이어스 #가짜뉴스 #허위사실 #표현의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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