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 1 -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 1
천위안 지음, 이정은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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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난세의 간웅이다. 한漢 왕조의 멸망 후 무주공산인 된 천하는 혼란 속에 빠져들고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서로 황제 자리를 탐하며 경쟁에 돌입하는데, 이때 조조 또한 막강한 상대에 맞서 수많은 위기를 넘기며 자신의 왕국을 창업한다. 백척간두 끝에 매달린 상황에서도 선택과 결단을 내린 영웅 조조는 뛰어난 심리 전략을 구사했다.




책의 저자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와 관련된 사건 중 흥미진진한 장면을 추려 이 속에 담긴 영웅의 심리를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시대가 바뀌어도 크게 바뀌지 않은 인간 속성은 지금과도 많이 닮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책 속의 주요 내용을 간추려 본다.


베푼 만큼 되돌아오길 기대한다


후한 말기의 혼란기를 틈타 동탁이 조정을 장악하고 전횡을 일삼는다. 당시 조정 대신의 우두머리는 사도司徒 왕윤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일 잔치에 대신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사실상 동탁을 제거하고 한 왕조를 굳건히 세우려는 거사를 마련할 목적이었다.


이날 예상 밖의 인물이 현장에 등장했다. 바로 조조였다. 조조는 동탁 정권에서 급부상하는 스타였기에 이 자리에 참석한 대신들은 숨 죽이며 조조의 행동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이런 모임을 동탁에게 밀고하는 순간 끔찍한 결과가 발생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조는 밀고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조조는 자신이 동탁의 목을 성문에 걸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누가 봐도 허풍을 떠는 행동인 것이다. 하지만 왕윤은 조조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이에 왕윤은 한 왕실을 구할 좋은 방안이 있냐고 묻자, 조조는 왕윤에게 보검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왕윤의 신임을 얻기 위한 의도적 행동이었다.


때로는 맹세보다 요구가 신뢰를 얻는다. 맹세는 의구심을 부르지만 요구는 자신을 증명해보이는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의 절대적 상징을 요구하면 확신한 각오나 다짐을 보여줄 수 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왕윤의 보검은 한 자가 넘는 길이로 칠보로 장식되어 있는 명검이었다. 다음날, 조조는 승승부로 출근해 동탁에게 문안 인사를 했다. 하지만 다른 날에 비해 늦었기에 동탁이 늦은 이유를 물었다. 조조의 머리 속이 급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어젯밤 모임을 참석한 사실이 들통나면 목숨을 온전히 보전 할 수가 없을 노릇이다. 이에 조조는 말이 허약해서 빨리 달리지 못한 탓이라고 둘러댔다.


이 말을 들은 동탁은 별다른 의심 없이 여포에게 준마 한 필을 선물하라고 명했다. 여포가 술에 취한 동탁의 곁을 떠나자 절호의 찬스가 찾아왔다. 그러나 조조는 머리만 돌리면서 우물쭈물 망설이고 말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탁은 이후 등을 보이며 자리에 누웠다. 또다시 조조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마침내 망설임없이 검을 뽑았지만, 벽에 걸린 거울을 통해 이런 모습을 본 동탁이 급히 몸을 일으키며 고함을 쳤다. 그때 여포가 말을 끌고오는 모습이 시야에 들었다. 정말 조조의 두뇌회전력 하나만은 대단했다.


“승상께 바치려고 보검 한 자루를 가져왔습니다!”


제 발 저리는 도둑은 금방 잡히게 마련이다. 자신의 잘못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그러기에 양심의 덫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심리적 압박이 몸의 세포와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들통날 것이 두려운 조조는 여포가 데리고 온 준마를 타고 잽싸게 줄행랑을 치게 된다.


선견지명과 자기합리화


결국 동탁은 전국에 조조 체포령을 발동한다. 한편, 조조는 고향 ‘초군’을 향해 쉼 없이 말을 달렸지만 도중에 관군에 체포되고 만다. 막대한 상금이 걸린 현상 수배이기에 병사들은 눈에 불을 켜고 용의자를 검거하고 있었다.


고을 현령은 조조를 알고 있었다. 수하를 시켜 몰래 감옥에서 빼낸 후 왜 그런 일을 도모했는지 알고 싶었다. 순간 살아날 길이 생겼음을 감지한 조조는 ‘봉황의 큰 뜻’을 거론하며 현령의 동정심을 살폈다. 이 속임수는 주효했다. 현령은 조조의 의로운 행동에 존경을 표하며 자신도 관직을 버리고 조조를 따르겠다며 자신을 밝혔다. 그는 진궁이었다.


변복을 하고 조조의 고향을 향해 나아가던 두 사람은 삼엄한 관군의 추적을 피해 여백사(조조의 아버지와 친분이 두터움)의 집으로 잠입했다. 여백사는 이미 조조의 아버지가 피신했음을 알려주며 술상 준비를 하겠다며 마을로 나가 술을 사러 나갔다. 마치 아들과 같은 조조에게 환대하려는 여백사의 행동은 지극히 당연했다. 하지만 여백사의 집안은 조조에게 멸문지화를 당한다.


선견지명이란 이미 벌어진 상황을 꿰뚫어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날은 누구도 예견할 수 없다. 비나 눈처럼 과학적 경로를 통해 관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상대의 심리, 사회의 변화로 짐작하고 예측할 뿐이다.


여백사 집안의 가족들은 주인의 지시에 따라 돼지를 잡고자 칼을 갈고 있었다. 반면 조조의 불안한 심리는 이를 나쁜 쪽으로만 생각했다. 여백사의 외출을 밀고로 판단했기에 칼 가는 소리와 돼지를 묶어 죽이자는 소리는 더욱 심증을 굳게 만들었다. 오직 선수를 쳐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초지종을 확인하지도 않고 여백사 가족을 모두 도륙하고 말았다.


현장을 확인한 후 진궁은 조조의 의심이 빚은 참극임을 후회하게 된다. 조조는 황급히 여장을 챙겨 말에 오른다. 말을 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백사와 마주쳤다. 그의 손엔 과일과 떡, 나귀 안장엔 술병이 달려 있었다. 쫓기는 신세라 오래 지체할 수 없어서 떠난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던 조조는 오던 길을 되돌려 죄책감이라곤 일도 없이 삼촌 같은 여백사의 목마저 베었다. 후환을 제거하기 위해서.


“내가 세상 사람을 버릴지언정 세상 사람은 나를 저버리지 못하게 할 것이오!”


이런 조조의 행동에 진궁은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조조의 의롭지 않은 행동을 비난했다. 사실상 범행에 가담했던 진궁도 죄가 없다고 할 순 없다. 비난하는 것은 ‘인지부조화’를 제거하려는 행동이다. 인지부조화란 신념과 실제에 벌어진 불일치나 비일관성이 생기는 현상이다.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누구나 반사적으로 이를 제거하려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조조의 인물 됨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다소 가공된 <삼국지연의>의 한 장면에 따른 것이다. 정사正史를 연구하는 이들은 당시 여백사의 집을 찾았을 때 여백사는 출타 중이라 집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뿌린 대로 거둔다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말은 조조의 삶 자체였다. 동탁이 선물한 말을 타고 동탁을 배신한 일과 훗날 관우가 자신이 선물한 적토마를 타고 유비를 찾아 떠나버린 일이 그랬다. 또 죄 없는 여백사 가족을 몰살한 것과 장개의 손에 자신의 가족 전부를 잃은 것도 그렇다. 나중에는 헌제의 손에서 천하를 빼앗았으나 다시 사마氏(사마의)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빼앗긴 것도 마찬가지였다.


첫인상의 효과와 학습된 무기력


헌제는 왜 조조를 낙양으로 불렀을까? 조조의 이름이 이미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동탁을 암살하려던 ‘의로운 행동’은 시간이 흐르면서 영웅 이미지로 굳어 있었다. 그러기에 한나라에 충성하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심리가 작용했다. 사람들은 타인의 첫인상을 계속 간직하려는 경향이 있다. 상대가 첫인상의 환상을 완전히 깨버리지 않는 한 효과는 지속된다.


남을 판단할 때 ‘초두효과(첫인상효과)’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유비는 착하고 예의 바르게 바른길을 고집해왔다. 그러나 이같은 군자형 인물은 난세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모두 유비를 영웅으로 꼽으면서도 사실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상대에 대한 인식을 단번에 뒤집을 만큼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초두효과는 지속된다.


코끼리는 어릴 적부터 발목에 묶인 쇠사슬 때문에 아무리 도밍치려 해도 이 사슬을 끊지 못해 오히려 발목만 아픈 경험을 수차례 함으로써 무기력에 빠지고 만다. 유비가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태도 또한 오랜 세월 동안 떠돌아 다니면서 부지불식간에 얻은 ‘학습된 무기력’ 때문이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결과는 바꿀 수 없고 통제도 불가능하다. 끊임없이 좌절을 겪다 보면 ‘학습된 무기력’을 얻게 된다.


기대는 열정을 타오르게 한다


우리는 현실이 아닌 기대 속에서 살아간다. 오늘의 삶이 비참하더라도 내일은 좋아진다는 믿음이 있다면 시련을 헤쳐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존버정신’도 먹혀드는 셈이다. 반대로 오늘은 행복하지만 내일이 비참해진다면 살아갈 용기를 잃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유비가 암담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투지를 잃지 않은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헌제가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내일은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때문이었다.


투명도착각


심리학에서 말하는 ‘투명도착각’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알 수 있으리란 착각이다. 앞서 조조가 자신에게 극진한 대접을 하려던 여백사의 가족을 몰살한 것도 그러했다. 그렇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인간은 늘 자기를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타인도 나와 동일한 생각과 느낌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착각한다. 실제론 어떻게 알겠는가 말이다.


투명도착각에 빠진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본다고 생각해 긴장한다. 그로인해 엉뚱한 실수를 저질러 불필요한 의심을 산다. 그렇게 의심을 받으면 본인은 상대가 자신의 속마음을 알고 있다고 더더욱 확신하는 것이 투명도착각이 일으키는 악순환이다. 도둑이 제 발을 저려 결국 잡히는 것이 바로 이런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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