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바꾸기로 했다 -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나를 위한 성장 심리학_꿈과 성장
우즈훙 지음, 이에스더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살면서 끊임없이 여러 가지 도전과 전복을 경험한다. 감정의 진폭이나 사상이나 이념이 바뀌기도 한다. 다른 노선의 길을 가다가 돌아올 수도 있고 자신이 선택한 길만 묵묵히 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생명의 실제 과정이자 한 사람의 영혼이 끊임없이 단련되는 과정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총 2부로 구성된 책은 파트1 ‘꿈’ 부분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일을 통해 생명이 가득한 삶을 사는 인생에 대해 풀어놓고, 파트2 ‘성장’ 부분에서는 참된 자아와 거짓 자아를 구분해 내는 법을 익히도록 도와준다.


사람은 긴 인생을 살면서 온갖 도전과 고난을 겪는다. 그 속에서 자신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주변 상황이나 시선에 휘둘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 이 책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점검하고, 진정한 ‘나’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심리 문제를 다룬다.


파트1 꿈


영웅이 길을 떠나는 의미


동서고금의 유명 영웅들은 모두 기난 긴 여정을 통해 자기 성장을 도모했다. 이런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내면에 숨은 고통과 어두움이 무엇인지 자각해야 한다. 마찬가지다. 우리들도 얼마나 단련되어 있는지, 어느 정도까지 이겨낼 수 있는지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즉 자신의 고통을 건드려야 고통을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어두움을 건드려야 어두움을 받아들일 수 있다. 긴 여정을 통해 고통을 감내해야 그 가치를 알고, 어둠이 곧 힘이자 희망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신 분석론에 따르면 사람의 공격성은 훈련되고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원시적 공격성을 잠재운다는 의미인데, 공격적인 삶은 주체적으로 자기 인생을 펼치는 과정이다. 자신을 드러내고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서로 부딪히며, 넘어지고, 다쳐봄으로써 치료를 하거나 조심하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 즉 잘못하면 바로 잡을 방법을 찾고, 실수하면 다른 방향을 창조하거나 쟁취할 수 있다.


에너지의 흐름


“자신을 믿는 마음은 생명력의 에너지원이다”


에너지의 흐름이 막히면 벽에 가로막힌 느낌이다.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신의 존재 자체가 무시당한 기분까지 들기도 한다. 이처럼 내적 에너지가 소멸되면 자기 존엄성이 상실되는 것으로, 심하게는 죽음의 공포를 부르기도 한다.


어떤 이는 큰일 앞에서 쓰러지지 않으려고 버티지만 의외로 작은 일 앞에서는 통제력을 잃어버린다. 핑계를 찾고 자기 책임에서 벗어날 궁리만 하지만 이게 여의치 않아서 불안할 때 좌절이 엄습한다. 에너지가 고갈돼 이제는 의미 없는 삶이라고 포기하는 것이다.


자기 의지를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자신에게 불합리하다고 느낌으로써 인간관계와 사회적 관계에서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를 회피하고자 단절되고 일방적인 소통만 원한다. ‘키보드 워리어’들이 사회적 현상을 모두 불편하게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의 경계를 넓혀라


동물의 세계를 다룬 동영상을 보면 동물들도 배설물 등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표시한다.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의 영역을 인정하면서 경계선 상에선 항상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요즘 우리들도 흔히 ‘선을 지켜라’, ‘선을 넘었다’ 등의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이또한 경계를 의미한다.


그렇다. 우리들은 타인들과 함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비록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서로의 선을 넘지 않으면서 부댓끼며 살아간다. 그런데, 지켜야 할 선을 넘는다는 것은 바로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타인도 인정해주는 자신만의 경계를 넓혀야 할 것이다. 넓힐수록 제한과 구속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경계와 이익은 사회생활의 기본적 수칙이다. 서로의 경계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좋은 사회가 된다. 자기합리화 명분들을 근거로 함부로 개인의 이익을 착취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전제로 인해 더불어 사는 사회가 구현되고 아름다운 현상들이 창조될 수 있다.


내면의 소리를 경청하라


가장 바람직한 자아 성장은 관계에서 자기 본성이 성숙하게 변화하고,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본성이 억압받으면 겉으로는 성장한 것처럼 보이나 내면은 영양 결핍으로 곪아간다. 반대로 자기 본성을 응원받고 지지받으면 상대의 양분까지 흡수한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자기만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드러내면 주변과 사회에서 인정받는다. 내면에 감춰진 진짜 자신을 표출하면 관계 속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자기 내면을 단련시키는 기회와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얻는다.


마음속 깊은 곳의 목소리를 듣자. 자기 내면의 요구를 충족시키면 이해하고, 감사하고, 경청할 힘이 생긴다. 진정으로 ‘참 자아’를 알게 된다. 사회도 이런 우리를 반긴다. 자기를 드러내는 두려움을 이겨낸 사람만이 세상에서 유일한 ‘나’로 살 수 있다.




파트2 성장


자아의 껍데기


자아는 물을 담는 용기容器와 같다. 용기는 껍데기일지라도 자신의 생명력을 보호하는 안식처이자 가정과 같다. 즉 자신을 보호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도 존립하는 존재란 의미이다. 자아를 관리하며 자신이 정한 안전한 공간에서 생명력을 표출하는 연습과 훈련을 해야 한다. 선과 악, 어둠과 빛을 구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선과 악을 구분해낸 빛으로 자신의 내재적 어둠을 밝힐 때 자아는 견고해지고 제련된 쇠붙이처럼 단단해진다.


연약한 사람은 자신을 공격한다


자기 비난과 반성은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행위다. 타인은 통제할 수 없지만 '나'는 통제할 수 있으므로 나를 변화시킨다면 일이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간다고 믿는다. 이처럼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찾는 것은 성숙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심리이다. 그런데 무조건 자신에게 죄를 묻는다면 근본적 문제의 원인을 밝힐 수 없다.


무언가로 좌절하게 되었을 때도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되 집착하거나 정도에 지나쳐서는 안 된다. 자신의 잘못이나 문제점에 대해서는 스스로 위로하고 다른 사람의 지지를 요청하면 좋다.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슬픔이나 좌절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두어야 한다. 더불어 무엇이 원인이든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객관적 시선으로 외부의 문제점도 함께 찾는다면 자기 위로에 도움이 된다.


자신을 발견하자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이들은 자기 존재의 가치를 부인하게 된다.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므로 세상에서 숨으려고만 한다. 그 결과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동반되지 못해 인간관계도 단절될 수 있다.


관계 맺음은 서로의 거울이다. 먼저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자신을 보게 되면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느낀다. 몸과 마음이 파괴된 내담자에게 상담사가 따뜻한 그릇이 되어 공감해준다면 내담자는 상처를 극복해간다. 스스로 거울을 내면화해 자신과 다른 사람을 관찰하게 된다. 상대를 통해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


가짜 자아


아이에게 거짓된 자아가 형성되는 것은 부모의 요구나 의지를 아이에게 지나치게 강요했거나 부모 자신이 자아 세계가 붕괴된 상태로 아이를 대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이런 부모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므로 부정적 감정으로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과 아이를 모두 매몰시켜버린다.


이런 경우 아이는 마음을 다해 부모의 감정을 수용하고 소화하고 처리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는 거짓된 자아로 자기 감정을 돌볼 겨를이 없이 순간을 이겨내려 한다. 이후 본능적으로 타인에게 순종하며 타인을 지나치게 배려하고 의도적으로 자신을 낮춘다. 이는 타인의 감정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녀를 양육할 때 절대로 강압하거나 강제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자발성을 존중하되 함부로 벌을 주어서는 안 된다. 벌이 내려지는 순간 자발적인 선택을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벽한 선택을 할 수 없다. 어떤 선택에도 반드시 잘못된 부분이 있다. 그런데도 부모는 자녀의 선택을 매우 엄하게 통제한다. 자녀의 선택을 다각도에서 통제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다. 이로써 모든 잘못은 아이에게 돌아간다. 만약 부모에게 통제의 책임이 따른다면 그들은 즉시 통제에서 손을 뗄 것이다.


감정은 살아 있음의 증거이다


감정이 억압받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찾아 공감을 구한다. 그러나 그의 조언대로 자기감정을 조정한다면 거짓된 자아가 형성될 수 있다. 자기감정에 공감하고 동의하는 상대의 의견에 자극을 받는 것이다. 이때 자기감정을 되찾지 않으면 모순적 관계에서 자아를 상실할 수도 있다.


가짜 자아는 존재감을 형성할 수 없다


자신을 향한 사랑과 존재감이 부족하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예민해진다. 자녀가 부모를 떠나지 못하고 인정을 바라는 것과 같다. 이렇게 되면 진정한 자기 자존감은 성취되지 못한다. 존재감의 최초의 근원은 사랑이다. 진정한 ‘나’를 찾아야 한다. 가짜 자아가 아무리 완벽해도 존재감으로 치환될 수 없다. 가짜 자아로 관계 맺는 사람은 자신도 가짜고, 자신이 만든 관계도 가짜라고 생각해 파괴하려 든다.


능동적인 창조자가 되자


관계에서 두 종류의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로 상대가 내게 잘해주면 나도 잘해주고, 그렇지 않으면 잘해주지 않는다. 자기 소리에는 누군가 반드시 선의로 응답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수치심을 느껴 분노한다. 불만을 품고 상대를 점점 멀리한다. 이를 '환경의 응답기'라고 분류한다.


둘째로 능동적인 창조자는 명확한 의지로 행동한다. 자신이 어떤 소리를 냈을 때 원하는 반응을 얻지 못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역사적 사건이나 기록 또는 여러 러브스토리에서 이런 능동적인 창조자를 볼 수 있다.


진정한 자아가 형성되지 않으면 환경의 응답기가 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그의 반응에 따라 자신의 생사를 결정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아가 형성된 사람은 관계에서 능동적인 창조자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