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4 - 난세의 인걸들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가 이희재의 손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어 탄생하는 사마천의 사기 시리즈가 벌써 4권 째이다. 고대 중국 3000년의 역사를 다룬 사마천의 [사기]는 기원전 108년에서부터 기원전 91년까지에 씌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총 130편이라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데, 이는 기전체로 작성됨으로써 중국 정사의 효시이기도 한다. 양뿐만이 아니라 질에 있어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심리묘사는 가히 심리학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라서 후대에까지 널리 읽히고 사랑받는다.


《사기》는 낱낱의 사건과 개개인의 드라마를 마치 유능한 극작가가 짜고 얽어서 흥미롭게 구성한 서사극 같았다. 인간사가 생생하게 그려지는 미시사이면서 고대 중국 3,000년의 거대 역사였다. (…) 나는 저마다 인물들의 매력에 취해 한참을 몰입하는가 하면, 해를 거듭하는 동안 건강의 한계와도 싸웠다. 때로 궁형을 당한 채 죽간을 채워 나갔던 사마천을 떠올렸다. 사마천의 고역에 천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지만, 그가 그린 인물들을 끌어내 오늘의 세상과 대면하게 하는 현재형 《사기》를 그리는 일에 내 60대를 쏟아부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전국시대 후기를 그리고 있다. '원교근공'이라는 계책을 마련한 범저와 백전백승의 장군 백기를 앞세운 진나라는 장평에서만 40만 포로를 학살, 중원 전체를 공포에 휩싸이게 한다. 백천간두의 6개국(초·연·제·조·위·한)은 나라의 걸출한 인재들을 모아 제 살길을 도모한다. 계명구도 맹상군부터 거세개탁 굴원, 완벽귀조 인상여, 모수자천 평원군까지 소위 난세의 인걸로 불리는 이들의 혈투가 전개된다.




화씨벽
계명구도(맹상군)
굴원
문경지교(염파, 인상여)
범저(뒷간의 굴욕)
평원군(모수)

책은 '화씨벽'으로 문을 연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초나라의 화씨는 산에서 커다란 옥돌을 습득해 당시 국왕인 여왕에게 이를 바쳤다. 하지만, 이 옥돌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국왕은 화씨를 거짓말쟁이로 잘못 판단해 그의 한쪽 발을 자르는 형벌을 내렸다. 화씨로선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이후 새로운 왕 무왕이 등극하자 또다시 화씨는 옥돌을 무왕에게 바쳤다.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무왕 또한 이 돌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화씨에게 죄를 물어 다른 한쪽 발을 잘라버렸다. 이처럼 불행한 인물이 세상에 있을까? 동정심이 일기도 하지만 왜 자꾸 옥돌을 바치려고 시도했는지 한편으론 오히려 그의 어리석음으로 보는 듯하다.

50년의 세월이 흘러 문왕이 즉위했다. 화씨는 옥돌을 갖고서 불편한 몸을 이끌로 초산에 올라 사흘 밤낮을 대성통곡했다. 이 사실이 입에서 입으로 세인들에게 전해졌다. 그러자 소문을 들은 왕은 신하에게 그 연유를 알아보라 지시했다. 대성통곡의 주인공인 화씨는 '옥이 옥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한낱 돌덩어리로 취급되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그랬다'고 이유를 밝혔다.

사연을 접한 왕은 나라의 최고 옥장인에게 화씨의 옥돌을 검증할 것을 명령했다. 마침내 화씨의 옥은 불세출의 명품으로 태어난다. 옥돌 원석은 장인의 연마 끝에 세상의 귀한 보물로서의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셈이다. 왕은 화씨의 진정성을 알아본 후 그에게 후한 상을 내리고 그 공을 치하해서 '화씨벽'이라 명명했다. 여기서 우리들은 사물이든 사람이든 그 가치를 알아본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교훈으로 얻게 된다.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에게 목숨까지 바친다고 하지 않는가.




이어서 제나라의 맹상군 스토리가 펼쳐진다. 제나라는 당시 진나라와 양강 구도를 만들었으나 서서히 힘의 추가 진나라로 기울 때 제나라 설땅의 맹상군은 식객을 극진히 대접함으로써 전국의 많은 인재들을 불러모을 수 있었다. '계명구도'란 닭울음 소리를 잘내는 흉내내기의 달인과 도적질의 달인을 지칭하는 말인데, 남들 보기엔 하찮은 이런 사람을 맹상군은 식객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결정적인 위기 순간에 이 식객 때문에 진나라를 무사히 탈출하게 된다.

자세히 살펴보자. 사람 욕심이 많은 진나라의 소왕은 맹상군의 소문을 멀리서 듣고 그를 진나라로 초대했다. 제나라의 민왕은 흉폭한 소왕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서 맹상군을 진나라로 보낸다. 이에 현명한 맹상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여러 식객들을 대동하고 제나라의 사신으로 진나라를 방문한다. 이때 소왕은 맹상군에게 진나라 재상직을 제안하자 진의 신하들은 이를 극구 만류하면서 왕의 체면도 있으니 이번 기회에 맹상군을 억류하자는 계책을 건의했다. 

한편, 억류된 맹상군은 은밀히 소왕의 애첩에게 접근해 구명운동을 펼친다. 애첩은 맹상군에게 구출조건으로 여우 가죽 외투인 호백구를 요청한다. 그런데, 이미 한벌 뿐인 호백구는 소왕에게 진상했기에 수중에 없어서 난감하던 차에 한 식객이 등장해서 자신이 그 일을 수행하겠다고 자임을 청했다. 그는 도적질의 달인이었다. 창고털이 전문답게 이 식객은 궁궐을 침입해 완벽하게 소임을 완수한다. 이를 받은 애첩은 약속대로 온갖 아양을 떨며 소왕에게 맹상군의 억류를 해제해달라고 건의, 이를 받아들인 소왕은 결국 명령을 내린다.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급히 맹상군 일행들은 발길을 제나라로 재촉했다. 마지막 관문 함곡관에 이르렀을 때 뒤늦게 정신을 차린 소왕이 국경을 넘기 전에 체포하라는 명령을 급히 하달했다. 국경에 바로 인접한 함곡관은 첫닭이 울어야 비로소 성문을 열도록 되어 있다. 재차 위기에 빠진 맹상군 일행 앞에 또 다른 식객이 등장, 그는 멋지게 닭의 울음소리를 흉내냈다. 결국 성문이 열리고 무사히 제나라로 귀국할 수 있었다. 이후 귀국한 맹상군은 제나라의 재상직을 수행하면서 국력을 강하게 키웠다. 나중에 이를 우려한 진나라의 술책 때문에 맹상군의 모반을 염려한 제나라 왕이 맹상군을 재상직에서 파면시킨다. 이후 모반설은 헛소문이었음이 밝혀졌지만 맹상군은 병을 핑계로 재상직에서 자진사퇴한다.




강대국의 재상직에 위치한 맹상군의 식객은 3천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자의 식객 노릇을 해야 자신의 앞날에 도움된다고 생각하던 뭇식객들은 모두 마치 '닭 쫓던 개'같은 신세가 되자 모두 맹상군의 곁을 떠나버린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이 맹상군을 끝까지 따라나섰다. '풍환' 선생이다. 과거 그는 식객으로 있으면서 잦은 불평을 하던 자로 빈둥거리면서 놀기나 했던 인물이다. 이런 일화가 있다.

당시 거대한 식객단을 거느린 맹상군은 그 유지관리비용의 충당을 위해 자신의 돈을 풀어 이자 놀이를 했다. 그러나, 돈을 빌려가는 사람은 늘어도 갚는 사람은 커녕 이자조차 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자금운용에 커다란 애로를 겪고 있었다. 특명을 받은 풍환은 설 땅에 도착해 차용자들로부터 이자 10만 전을 수금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지시받지도 않은 일을 벌이고 말았다. 수금한 돈을 풀어 술과 고기로 마을잔치를 벌였다. 심지어 이자를 못 낸 사람들까지도. 이 자리에서 그는 상환할 능력이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한 후, 입에 풀칠도 어려운 사람들에게서 차용증을 회수해서 모두 불에 태웠다. 그리고는 이 모든 일을 맹상군의 은덕으로 돌려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이후 맹상군의 이름은 제나라 왕보다 더 높아졌다.

그런데, 풍환은 '끈 떨어진 연'의 신세가 된 맹상군을 위해 또 다시 멋진 활약을 펼친다. 수레를 건너받은 풍환은 진나라로 급히 달려가 맹상군의 현재 처지를 알려주며, 진나라의 재상직을 권한다. 흔쾌히 승낙을 한 진나라 왕은 수레 10대와 2천 냥의 황금을 준비해 사자를 설땅으로 보낸다. 그런데, 풍환은 사자보다 한발 먼저 제나라로 귀국해 진나라에서 보낸 사신이 맹상군을 영입하려고 조만간 설 땅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전하며 다시 맹상군을 먼저 재상직에 앉히라고 간언한다. 의심많은 제나라 왕은 진나라 사신의 행방을 확인해 본 후 실제 상황임을 알게되고 서둘러 맹상군을 재상직으로 불러들인다. 한편, 이 소식을 접한 진나라 사신은 말을 돌려 진으로 귀국하고 만다.     


가치를 알아보자

이밖에도 초나라의 충신 굴원의 '거세개탁'과 멱라수 자살을 기념한 단오절 제정에 얽힌 일화, 조나라의 명장 염파 장군과 문신 인상여 재상 간의 갈등과 화해에 얽힌 '문경지교'의 고사, 조나라의 국보 화씨벽을 진나라로부터 완벽하게 구출하는데 성공한 인상여의 '완벽귀조'에 얽힌 일화 등이 연이어 소개된다. 이처럼 난세에는 인걸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런 인걸은 그 사람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현재 자유대한민국도 난세에 처해 있다. 이 위기를 구할 인걸이 조만간 출현하기를 기대해 본다.

'본 서평은 부흥 카페 https://cafe.naver.com/booheong/197892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