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3 - 전국 칠웅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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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일찍이 만날수록 좋다. 그만큼 넉넉한 삶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고전을 읽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 <사기>를 손에 잡는대 해도 자레 손사레 치기 쉽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문자 더미가 주는 부담 탓이 크다. 묵직한 통찰이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무게에 눌려 미루고 뒷걸음치다 보면 한 시기를 지나쳐 버리기 일쑤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전국시대 7웅의 영웅들을 만나다


만화가 이희재는 <사기>를 그리는 데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릴 줄 몰랐다고 고백한다. 한 2~3년 정도면 충분하다고 예상했지만 2014년에 시작한 작업이 자금에 이르렀다는 추가적인 설명이다. 역사서 <사기>는 본기, 세가, 열전과 표, 서로 구성된 방대한 역사서다. 사마천이 후대에 남긴 불세출의 명저인 셈이다. 더구나 책 속에서 등장하는 무수한 인간상의 심리를 그려내고 있기에 뛰어난 인문 고전이기도 하다.


총 7권의 시리즈 중 3권은 전국 칠웅을 다룬다. 주나라가 도읍을 낙양으로 옮긴 후 비로소 시작된 춘추시대엔 중국 대륙에 많은 나라들이 생기고 없어지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 필연적으로 수반된 전쟁시기를 통해 패자들이 출현하여 질서를 잡게 된다. 이때 인간과 삶에 대한 성찰이 자연스레 등장했으며, 공자의 유가를 비롯한 '제자백가 시대'라는 철학의 꽃을 피웠다. 


이후 오나라와 월나라의 쟁패가 끝나고, 진이 세 나라(조, 위, 한)로 분열 된 뒤부터의 시기를 전국시대라고 부른다. 중국의 중원은 일곱 나라로 압축되었다. 즉, 진, 조, 위, 한, 연, 제, 초나라 등 7개국을 말한다. 이들 나라간의 전쟁은 끝나질 않았다. 왜냐하면 서로 통일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이후 기원전 221년 마침내 진시황에 의해 천하가 통일되었다. 3권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7웅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나는 출세에만 올인했던 오기 장군의 명암을 살피면서 서평에 갈음하려 한다.






악바리 오기, 동네에서 사고 치다


오기라는 인물은 출세지향주의자다. 그는 오직 벼슬을 얻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며 실력자를 접대하다 보니 결과를 얻지 못함에 따라 제법 부유했던 집안의 가산을 탕진하고 말았다. 이에 낙향한 그를 대하는 동네 인심이 숭악했다. 집안을 망하게 한 불효자라고 손가락질하기 일쑤였고, 칼을 지니고 다니는 그에게 폼만 잡는다고 무시했다. 


이런 그의 어릴 적 일화를 보면, 그가 얼마나 악바리인지를 알게 된다. 동네로 막 이사 온 덩치가 큰 친구에게 덤벼들었다가 묵사발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항복하지 않고 계속 덤벼들었던 것이다. 무려 열흘 동안 실컷 얻어 맞고도 멈추지 않으니까 큰 덩치가 질려서 오히려 그에게 항복하고 말았다는 일화이다. 이를테면, 일본에서 제일 유명한 싸움꾼의 이름이 '깐이마또까'상이란 한 때의 유머가 떠오른다.


결국 오기는 마을에서 사고를 치고 만다. 하루는 술자리를 지나가는 중에 자신을 두고 '불효막심한 놈'이라는 뒷담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는데, 이에 분통을 참지 못하고 밤 사이에 마을 사람 서른 명을 살해한다. 고향 위를 도망쳐나오면서 모친에게 일국의 재상이 되어 성공하면 돌아오겠다고 팔뚝을 물어뜯어 맹세한다. 이렇게 그는 지명수배자가 되어 도망자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증자의 문하에서 파문, 노나라의 장군이 되다


그는 공자의 제자 증자의 문하생이 된다. 면접을 본 증자는 오기의 얼굴엔 살기가 감돌고 있음을 느꼈다. 수학 중에 모친이 사망햇다는 부고 소식을 접했지만, 그는 자신이 지명수배자 신세이고 모친과 성공한 후에나 돌아가겠다고 맹세했기에 갈 수 없다고 연통을 갖고 온 하인을 그냥 돌려 보낸다. 이를 목격한 증자는 천륜을 거역하는 불효자에게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면서 그를 파문시켜 버린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답게 그는 노나라로 향한다. 여기서 그는 병법을 익혀 노나라의 관리가 되고, 제나라 여인과 혼인을 한다. 그는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뛰어난 재능을 바탕으로 점차 노나라의 신임을 얻게 된다. 이때 제나라가 노나라를 침략, 누구를 장군으로 세울지 고민하자 오기는 자신이 승리로 보답하겠다고 제의한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제나라 여인이라서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함을 알고선 귀가해서 매정하게 아내를 살해하면서까지 자신의 충성심을 보여준다. 


마침내 그는 군을 이끌고 제나라와 맞선다. 제나라의 군대와 대치한 그는 손수 병사들과 함께 일을 하고 침식까지 함께 하면서 병사들을 독려한다. 한편, 그는 제나라의 정찰병을 속이기 위해 약한 전력을 일부러 노출하고 제나라 장군이 안심하도록 전투하지 말고 휴전하자는 밀서를 보낸다. 이에 상대를 얕보고 방비를 풀어버린 제나라의 군대에 오기는 정예병을 투입, 기습 작전으로 대승을 거둔다. 하지만 조정에선 오기의 행적을 모두 알게 되어 그를 경계하기 시작한다. 





노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향한다


위나라는 진나라에서 분열된 삼국 중 하나인데, 당시 위 문후는 인재 등용에 힘쓰고 있었다. 오기의 과거 행적이 불만이었지만 병사를 다루는 일이 뛰어나다는 판단에 따라 강대군 진나라에 맞설 장군이 필요했기에 그를 전선으로 부임시킨다. 전쟁터에서의 오기는 또 그러했다. 막일도 하면서 병사들과 런제나 함께 했다. 병사들의 사기는 충천했다. 변경에 위치한 진나라의 5개 성이 오기의 군대에 함락되고 만다.


그와 병사에 관한 유명한 일화를 소개하려 한다. 그 시절엔 종기가 흥했고, 이로 인해 사람이 죽기까지 했다. 한번은 병사가 몸에 곪은 종기 때문에 거동이 힘들다는 사실을 목격하고선 오기는 피고름을 자신의 입으로 빨아내었다. 이 병사의 어머니가 이를 전해 듣고 목을 놓아 울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몇 해 전 이 여인의 남편이 군에 있을 때도 오기 장군의 똑같은 행동이 있었는데, 그 남편은 장군의 행동에 감격해서  몸을 내 던지고 싸우다 전사했다면서 아들도 마찬가지 신세가 될 것 같아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한편, 위 문후가 죽고 그 뒤를 아들 무후가 승계했다. 오기가 많은 공을 세우고 명성도 자자했지만, 무후는 재상으로 오기가 아닌 전문을 임용했다. 이에 오기는 전문을 찾아가 누가 더 능력이 뛰어난지를 따진다. 이때 전문은 오기에게 왕이 정치력과 인망이 뛰어난 장군을 재상으로 삼겠는지 자신처럼 약한 인물을 택하겠는지 오히려 질문한다. 그러자 전문이 한 수 위임을 깨닫고 오기는 발을 돌린다. 전문이 죽자 이번엔 공숙이 재상 자리에 오르자, 그는 강국으로 떠오르는 초나라로 향한다.




초나라의 재상이 되다


초나라 도왕은 오기에게 재상직을 맡긴다. 마침내 그는 모친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그는 초왕에게 불필요한 관직을 없애고 촌수가 먼 왕족들의 녹봉도 폐지해서 그 재원으로 군사력을 강화하자는 제안을 한다. 차도살인계를 떠올린 초왕은 오기에게 모든 일을 맡긴다. 그러자 특권을 누렸던 왕족과 대신들이 일순간에 관직과 땅을 반납하게 되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셈이었다. 


그런데, 오기가 의지했던 초왕이 죽자 마침내 각 지역에서 은둔해 있던 귀족들이 들고 일어났다. 장례식에 참석해서 오기를 잡을 심산이었다. 반란군의 움직임에 몸을 숨길 곳을 찾던 오기는 왕의 시신이 모셔진 사당으로 급히 숨는다. 당시 초나라의 법은 왕의 시신을 훼손하면 중벌로 다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난 반란군은 오기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초왕의 시신 위에서 화살을 맞아 고슴도치가 되고 말았다.


"오기여, 그대의 행실이 각박하고 인정이 없어 끝내 목숨을 잃었구나"

- 사마천 -



영웅들의 명암


이밖에도 책은 나라의 폐습을 뿌리 뽑아 강대국의 위상을 갖추도록한 서문표, 억울하게 다리를 잘린 지략가 손빈, 법치만능주의를 부르짖은 상앙, 강대국에 맞서려면 연합만이 살 길임을 제안한 소진, 합종설을 세 치 혀로 부순 설득의 달인 장의 등의 영웅 이야기들이 연속해서 펼쳐진다. 이를 통해 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 등불을 비추어 준다.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본 서평은 부흥 카페 https://cafe. naver.com/booheong/196301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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