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만이 하는 것 The Ride of a Lifetime - CEO 밥 아이거가 직접 쓴 디즈니 제국의 비밀
로버트 아이거 지음, 안진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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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방송국에 입사한 이래 나는 20가지 직무를 거치며 총 14명의 직속상사를 모셨다. 덕분에 미디어를 제작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재정의하는 기술혁신을 늘 예의주시해왔으며, 그래서 현대의 청중을 사로잡는 동시에 100년 역사를 가진 브랜드를 지켜나가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일상적으로 고심해왔다. - '시작하며' 중에서

 

 

콘텐츠 제국 디즈니를 이끌며 배운 것들

 

책의 저자 로버트 아이거월트디즈니컴퍼니 회장으로, 1951년 뉴욕에서 태어나 1974년 ABC TV 스튜디오에 말단의 제작보조로 입사했다. ABC스포츠 등에서 활약하며 승진을 거듭해 41세에 ABC 사장으로 취임했다. 1996년 ABC가 디즈니에 인수합병된 후, 디즈니 소유 ABC 그룹 회장으로 디즈니 고위경영진에 합류했다.

 

1999년부터는 월트디즈니인터내셔널 회장직까지 수행하며 오늘날의 글로벌 디즈니를 위한 청사진을 마련했다. 2005년부터 2020년 연초까지 15년간 CEO로 역임했고, 2012년부터 지금까지 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2019년 〈타임〉지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올해의 경영자'로 선정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2020년까지 45년간 20가지 직무, 14명의 직속상사를 만나 경험한 이야기들을 통해 콘텐츠, 미디어 업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준다. 그 생생한 사례로 디즈니가 왜 픽사, 마블, 루카스필름, 21세기폭스 등 사상 유래가 없는 대규모 인수합병을 추진했는지, 그 배경과 거래의 자세한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지난 15년간 올드 미디어가 쇠락하고 모바일이 부상하는 업계의 지각변동 속에서 밥 아이거가 미디어, 엔터테인먼트의 미래를 설계하며 디즈니를 이끌어온 3가지 원칙도 밝혔다. 그가 진두지휘한 역대급 인수합병들이 모두 그 원칙에서 태동했다는 것이다.

 

진정한 리더십의 10가지 대원칙

 

낙관주의~ 달성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실용적인 열정

용기~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굳건한 토대

명확한 초점~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알리는 것

결단력~ 어려운 결정일지라고 시의 적절하게 내려야 한다

호기심~ 깊고 지속적인 호기심에서 혁신의길은 시작

공정성~ 사람들을 공정하고 품위 있게 대하는 태도

사려 깊음~ 사려 깊은 태도

진정성~ 항상 정작하고 진정성 있게 상황에 임해야 한다

완벽주의~ 평범함을 거부하라

고결함~ 모든 사인에 대해 높은 수준의 윤리적 표준을 적용

 

 

 

 

좋은 일은 잘 키우고, 나쁜 일은 잘 관리한다

 

저자는 같은 회사에서 45년 동안 일했다. 처음 22년은 ABC에서, 1995년 디즈니가 ABC를 인수한 이후로는 디즈니에서 23년을 근무했다. 특히 지난 14년 동안은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자리에서 직무를 수행했다. 1923년 월트 디즈니가 디즈니를 창립한 이래로 6번째 CEO가 되어 회사를 경영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자리에 있다.

힘겨운 날도 있었고 비극적인 날도 있었다. 그러나 또한 디즈니 CEO의 일은 지구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직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영화와 TV쇼, 브로드웨이 뮤지컬, 게임과 코스튬, 장난감과 책을 만든다. 테마파크와 놀이기구, 호텔, 유람선도 만들고, 전 세계 14개 공원에서 매일 퍼레이드와 거리공연, 콘서트를 개최한다. 우리는 재미를 제조한다.

디즈니는 분기별 수익 보고서와 주주의 기대, 그리고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데 따르는 무수히 많은 책무도 떠안고 있다. 아무런 사건이 없는 가장 평온한 날에도 디즈니 CEO는 지속적으로 적응하고 또 적응해야 한다. 투자자들과 함께 성장전략을 구상하고, 이매지니어들과 새로운 놀이기구 설계안을 검토하고, 새 영화의 1차 편집본을 보며 토론하고, 보안 조치와 이사회 지배구조, 티켓 가격, 급여 체계를 논의하는 등, 실로 다양한 업무에 시시각각 관여해야 한다. 

 

완벽에 대한 집요한 추구 

 

"좀 더 낫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하라"

- 룬 얼리지

 

1974년 가을, 저자는 '메인이벤트' 현장에 투입되었다. '메인이벤트'는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리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콘서트를 ABC에서 생중계하는 특집방송이었다. 저자가 맡은 현장 스튜디오 스태프의 임무는, 그 엄청난 규모의 매디슨스퀘어가든 무대 담당자들의 심부름을 하는 것이었다. 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흥분에 들떠있었다. '메인이벤트'제리 와인트로브룬 얼리지가 기획하고 연출한 특집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룬은 43세로 ABC스포츠를 이끌며 이미 TV 방송계에서 전설로 통하던 임원이었다.  

 

룬이 직접 나서는 것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리허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다음 거의 모든 것을 폐기하고 다시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세트도 재설계하고 하워드 코셀의 소개방식과 멘트도 재구성하고 조명 콘셉트도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얘기였다. 룬은 프랭크가 청중과 소통하는 방식 전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저자는 자신이 맡은 소소한 일을 수행하며 모든 것을 내리고 다시 올리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누구 하나 욕설 한 마디, 신음 한 번 토해내지 않았다. 앞으로 24시간 이내에 전파를 타야 하는 생중계 콘서트가 리허설과 전혀 딴판이 되리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룬이 왜 그렇게 했는지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웬만큼 괜찮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 자기가 맡은 일을 최고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옴짝달싹할 수 없는 데드라인 앞에서도 대담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전형적인 룬의 방식임을 알게 되었다.

룬에게는 너무 사소해서 무시해도 좋은 세부사항이라는 게 없었다. 그가 생각하는 완벽은 모든 사소한 것들을 바로 잡아서 얻어내는 결과였다. 시나트라 콘서트에서 저자가 목격한 그대로 그는 방송 직전에 프로그램 전체를 뒤집어엎고 재작업을 지시하는 경우가 무수히 많았다. 그것은 곧 편집실에서 모든 스태프가 밤을 새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고함을 질러대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냉정하고 까다로웠으며,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점을 매우 분명한 표현과 어조로 전달했다. 중요한 것은 '쇼'였다. 쇼를 만든 사람들보다 쇼 자체가 더 중요했다.

 

트윈 픽스,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

 

LA 생활을 시작한 첫 주에 저자는 프로듀서 겸 작가인 스티븐 보쉬코와 점심 회동을 가졌다. 스티븐은 NBC에서 '거리의 경찰관'을 포함한 2편의 대형 히트작을 만들었고, 얼마 전 ABC와 10편의 시리즈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이때 저자는 스티븐에게 대본 검토에 대한 불안감을 털어놓았다. 당시 황금시간대에 라인업한 ABC의 작품이 경쟁사 NBC에 한참 뒤지고 있었다. 


그 첫 시즌에 우리는 훨씬 더 큰 리스크를 하나 더 감수했다. 말 그대로 할리우드의 한 식당에서 냅킨 뒷면에 끼적이며 설명한 아이디어를 듣고 우리의 드라마 국장이 데이비드 린치와 시나리오 작가이자 소설가인 마크 프로스트에게 파일럿 프로그램을 추진하라고 허락한 것이다. 데이비드는 당시 컬트영화 '이레이저 헤드'와 '블루 벨벳'으로 유명한 영화감독이었다. '트윈 픽스'라는 허구의 미 북서부 태평양 연안 도시에서 발생한 프롬퀸(prom queen, 고교 졸업 축제의 여왕) 로라 팔머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두서없이 전개되는 초현실적인 드라마였다. 데이비드는 2시간짜리 파일럿을 제작해 제출했다. 저자는 보자마자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까지 내가 본 그 어떤 것과도 다르다.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

 

저자는 오너인 톰 머피를 존경했지만, 또한 이 계획은 싸워서라도 관철시킬 가치가 충분하다고 확신했다. 당시 우리는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제 비디오 게임의 성장과 VCR의 부상은 물론이고 신생 폭스 네트워크를 비롯한 케이블 TV들의 자극적인 프로그램들과도 경쟁을 벌여야 했다. 나는 공중파 TV가 지루하고 진부하다고 느꼈고, '트윈 픽스'로 거기에 완전히 독창적인 무언가를 추가할 기회를 얻었다고 판단했다. 다시 한번 룬의 교훈 "혁신 아니면 죽음이다"가 절절하게 울렸다.

 

우리는 3월 말 아카데미 시상식 방송에 '트윈 픽스' 홍보영상을 내보냈으며, 4월 8일 일요일에 2시간 분량의 파일럿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당시 TV 시청자의 약 1/3에 해당하는 3,500만 명이 그 프로에 채널을 맞추었다. 그런 다음 목요일 저녁 9시로 방영일정을 조정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트윈 픽스'는 이전 4년간 그 시간대에 방영한 프로그램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 되었다. [타임] 지 표지에도 게재되었다.

 

"이전에 황금시간대 혹은 전 세계 TV에서 본 그 어떤 것과도 다르다"

- [뉴스위크]

 

믿을 수 없는 찬사가 쏟아진 최악의 실패작

 

그러나 6개월 만에 '트윈픽스'는 하나의 문화현상에서 좌절감을 안겨주는 실망으로 변모했다. 우리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에게 창작의 자유를 부여했지만, 첫 시즌이 끝날 무렵 감독과 저자는 시청자의 기대치를 놓고 지속적으로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극 전체는 로마 팔머를 누가 죽였는지에 대한 의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감독은 이 사실을 망각하고 마치 무작위로 빵 조각을 뿌려놓은 것 같았다. 탁월한 영화제작자였지만 TV 시리즈 PD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데이비드 감독이 시대를 앞서 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 저자는 데이비드가 시청자를 좌절시키고 있다고 느꼈지만, 살인범에 대한 의문에 답을 내놓으라는 저자의 요구가 극의 내러티브를 혼란으로 몰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데이비드가 내내 옳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창작에 관한 프로세스 관리는, 먼저 그것이 과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모든 것이 주관적이고, 종종 옳고 그른 것도 없기 때문에 그렇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데는 강력한 열정이 필요하다. 그런 열정을 가진 창작자들은 대부분 당연히 자신의 비전이나 실행에 누군가 의문을 제기하면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는 비즈니스에서 창작 부문에 속하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마다 이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인사이트를 달라거나 비평을 해달라고 요청받을 때면, 그는 창작자들이 해당 프로젝트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등에 대해 최대한 주의를 기울인다.

 

저자는 무엇이든 부정적인 시각으로 시작하지 않고, 작품의 완성이 시급한 상황이 아닌 한 작게 시작하지도 않는다. 종종 사람들은 명확하고 일관된 큰 생각의 결핍을 숨기는 방편으로 소소한 세부사항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작게 시작하면 작은 것만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다. 큰 그림이 엉망이라면, 작은 것들은 어차피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소소한 것들에 초점을 맞추느라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디즈니를 이끌며 배운 것들

 

41세에 ABC 사장으로 취임한 저자는 모두가 반대하던 '트윈 픽스'를 밀어붙여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기도 했고, '천재소년 두기', '뉴욕경찰 24시' 등 공중파 방송사들이 감히 도전하지 않은 화제작을 만들어 ABC를 시청률 1위에 올려놓았다. 이후 ABC가 디즈니에 인수된 후에도 그는 계속 도전적인 커리어를 쌓아나갔고 결국 디즈니의 CEO가 된다. 책은 고결함과 진정성을 중시하는 디즈니만의 조직문화, 혁신전략, 미래 청사진을 어떻게 그려왔는지 밝히고 있다. 경영업무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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