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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로드 - 사라진 소녀들
스티나 약손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음서재 / 2020년 4월
평점 :
그해 여름부터 그는 실버 로드를 따라 운전하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쓰레기통을 모두 열어보고 맨손으로 뒤졌으며, 습지와 폐광에도 들어가 확인했다. 집에서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리나의 실종에 관해 각자의 가설을 써놓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을 읽었다. 구역질나는 가설들이 길게 얽혀 있었다. 리나가 도망갔다, 살해됐다, 납치됐다, 시신이 토막 나서 버려졌다, 길을 잃었다, 익사했다, 차에 치였다, 윤락가로 끌려갔다. 그 밖에 생각도 하기 싫은 끔찍한 가설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렐레는 다 읽었다. 거의 매일 경찰서에 전화해서 딸을 찾아내라고 소리쳤다. 자지도 먹지도 않았다. (중략) 그에게는 리나를 찾는 일만 중요했다. - '본문' 중에서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선 부성애
저자 스티나 약손은 1983년생으로 스웨덴 북부의 작은 도시 셸레프테오에서 성장했다. 20대에 남편을 만나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고향을 무대로 한 소설을 쓰며 향수를 달랬다. 바로 데뷔작인 <실버 로드>다. 이 작품은 2018년 스웨덴 범죄소설상을 비롯해, 2019년 북유럽 최고의 장르문학에 수여하는 ‘유리열쇠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신인 작가에겐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스웨덴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전 세계 20개국에 판권이 수출됐다.
소설은 스웨덴 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발생한 소녀 실종사건을 다룬다. 실종된 딸을 찾으려는 아버지의 슬픔과 분노의 수색이 계속되는 중 또 다른 10대 소녀가 실종되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즉 스웨덴 북부 작은 마을 클리메르스트레스크의 버스 정류소에서 의문의 실종 사건이 발생하고, 이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 렐레는 돌바카 고등학교 수학 교사로 3년간이나 스웨덴 전역을 이 잡듯 누빈다.
한편, 작가는 등장인물에 대한 탁월한 심리 묘사를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초현실적인 자연 현상인 백야의 풍경을 마치 우리들이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표현함으로써 독자 모두를 스웨덴의 적막한 숲길로 인도한다. 범죄추리소설이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긴장감은 물론이고, 서스펜스까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 책 속으로 빨려들게 만든다.
스토리의 전개는 두 인물의 시선을 따라 번갈아가며 펼쳐진다. 한 스토리는 딸을 찾기 위해 3년째 수색을 멈추지 않는 아버지 렐레, 그리고 또 다른 스토리는 알콜중독자인 엄마로부터 벗어나려는 소녀 메야와 관련된 사건이다. 그런데, 작가는 마치 퍼즐 조각을 하나씩 꺼내놓듯 상이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각각 들려준다. 이 두 사람의 사건이 어떤 식으로 접점을 이루고, 소녀들의 실종 사건은 또 어떻게 전개될지,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다.
기나 긴 겨울이 물러가고 백야가 시작되면 렐레는 낡은 볼보로 밤마다 실버 로드를 드라이브한다. 그 이유는 의문의 실종을 당한 사랑스런 딸 리나를 찾기 위해서다. 스웨덴 동부 해안에서 노르웨이 국경으로 이어지는 95번 국도, 일명 실버 로드라 불리는 이 길은 3년 전 렐레의 열일곱 살 딸이 버스를 기다리다 감쪽같이 사라진 곳이다. 리나의 마지막 목격자는 오직 아빠인 렐레, 그밖엔 아무도 이를 본 사람이 없고 그 어떤 단서도 없어서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진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리나의 실종에 관해 각자의 가설을 써놓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을 읽었다. 구역질나는 가설들이 길게 얽혀 있었다. 리나가 도망갔다, 살해됐다, 납치됐다, 시신이 토막 나서 버려졌다, 길을 잃었다, 익사했다, 차에 치였다, 윤락가로 끌려갔다. 그 밖에 생각도 하기 싫은 끔찍한 가설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렐레는 다 읽었다. 거의 매일 경찰서에 전화해서 딸을 찾아내라고 소리쳤다. 자지도 먹지도 않았다. (…) 그에게는 리나를 찾는 일만 중요했다.(27-28쪽)
3년 후 지금, 렐레는 여전히 딸의 생존을 확신하며 나홀로 수색을 이어간다. 어둠이 짙은 숲, 안개 낀 습지, 그리고 폐가를 샅샅이 수색하던 중 그의 눈에 수상한 용의자들이 하나씩 포착된다. 숲속의 폐가에 은둔해 있는 퇴역군인, 딸의 남자친구, 포르노 수집광인 늙은 남자, 강간 전과자, 밀주를 판매하는 쌍둥이 형제 등 렐레는 그들의 범죄 혐의점을 찾고자 차례로 그들에게 각각 접근한다.
한편, 렐레가 거주하는 스웨덴 북부의 적막한 마을에 열일곱 살 소녀 메야 모녀가 이사를 해온다. 알콜중독자로 홀로 딸을 키우는 메야의 엄마 실리에에게 이곳에 얹혀 살 수 있는 새로운 애인이 생겼기 때문이다. 엄마는 지나칠 정도로 개인적이고 자유분망한지라 딸이 집에 있든 말든 남자 애인과 거침없이 육체를 나누며 뒹군다.
이내 아래층에서 엄마의 신음 소리가 올라왔다. 처음에는 나직하다가 점차 높아졌다. 토르비요른은 큰 소리를 냈고, 마룻바닥 위로 가구 밀리는 소리가 났다. 마치 그가 엄마를 죽이려는 듯했다. 메야는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밖에서 흔들리는 우듬지를 바라보았다. 외로움이 밀려드는 가운데 다른 목소리들이 머릿속에 침입했다. 그녀를 조롱하는 목소리. 니네 엄마가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는 게 사실이야? (66쪽)
이런 엄마로부터 벗어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는 메야 앞에 인근에 사는 삼형제의 막내 칼 요한이 나타난다. 삼형제 가족은 기술문명과 교육을 거부하고 숲에서 자급자족하는 원시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비록 특이한 생활 방식이지만 평안한 가정을 갈망했던 메야이기에 그녀는 금방 칼 요한에게 빠져들고, 결국엔 엄마 곁을 떠나 그의 집으로 들어간다.
렐레가 잠도 자지 않고 실버 로드를 수색하던 어느 날, 캠핑장에서 또 다시 열일곱 살 소녀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역시 목격자도, 단서도 없다. 이에 렐레는 직감적으로 이 사건이 딸의 실종과 연관됐음을 느끼고 유력한 용의자를 찾아 나선다.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에도 진전이 없던 실종 사건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실체를 드러낸다.
과연 실버 로드에서 사라진 소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버지 렐레는 그동안의 수고에 대한 보상으로 사랑스런 딸을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