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시니어 729일간 내 맘대로 지구 한 바퀴 - 은퇴, 여행하기 딱 좋은 기회!
안정훈 지음 / 라온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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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째 서른세 살(66세)이 되었을 때 번아웃 증후군이 찾아왔다. 매일 무기력, 수면장애, 탈진감에 시달렸다. 늙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낡아가는 것은 싫었다. 주위에서는 나이 들어서도 회사에 출근하는 나를 부러워했지만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었다. 이 환경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힘들게 살다가 어느 날 눈을 뜨지 못하고 영원한 잠에 빠질 게 뻔했다.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철부지 시니어의 여행 이야기

 

책의 저자 안정훈인생의 1쿼터는 예고편이고, 2쿼터가 본방이라고 믿고 사는 남자다. 치열하게 살다가 뒤늦게 자유로운 영혼을 되찾았다. 1쿼터의 좌우명은 '최선을 다하자'였다. 뒤집어보면 '경쟁에서 지지 말자'였다. 재수 없으면 100살까지 사는 세상이다.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빠삐용이 자유를 찾아 탈출을 감행했듯이 만 65세에 현실의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빠삐용의 가장 큰 잘못은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나의 가장 큰 실수는 사형수인데 무기수라고 착각하고 살았던 것이다. 은퇴는 가족에 대한 의무를 잘 마쳤으니 자유롭게 살라고 준 선물인 걸 뒤늦게 깨달았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원웨이 티켓을 끊어서 노플랜으로 무작정 떠났다. 시베리아, 스플리트, 산티아고, 카사블랑카, 아바나, 파타고니아, 리우, 바라나시, 바간 등 버킷리스트에 담아두었던 세계 곳곳의 도시를 품었다. 멕시코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네팔에서 히말라야를 밟았다. 729일간 세계여행을 하다 보니 당뇨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혈압약이 필요 없게 되었다.

여행과 글쓰기를 좋아했던 까까머리 청소년 때 가졌던 꿈을 반세기가 지나 이루었다.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에 엉덩이가 들썩이지만, 책 쓰기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 생각하며 즐겁게 글을 쓴다. 이 책은 가이드북도 아니고, 심오한 인생관을 담은 에세이도 아니고, 가성비 높은 자기계발서는 더욱 아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대책 낭만주의자의 사서 고생한 이야기다.

 

 

 

 

 

저자는 729일간의 담금질을 통해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면서 유명한 명승지를 찾아 다녔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그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깨달았다. 대신에 감사와 긍정의 마인드를 얻었다. 타국과 타국의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이해심도 생겼다. 소통법도 알게 되었다. 심신심신의 치유와 회복을 덤으로 얻었다. 책 속에서 별별 희한한 경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만난다.

 

영화 <닥터 지바고>의 무대 시베리아를 가다

 

2017년 3월 고교 동창회에 나갔다가 5월에 중국으로 '삼국지 역사유적 탐방여행'을 간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참석을 결정했다. 회사에 휴가까지 내고 비행기표 예약에다 준비물을 챙겼는데 갑자기 '사드 사태'가 터졌다. 한중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면서 중국 여행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미 받아 낸 휴가를 반납하기 보단 대체지를 물색하기로 했다. 쿠바, 남미 등 여러 곳을 생각하던 중 갑자기 학창 시절 깊은 감명을 주었던 배우 오마 샤리프의 영화 <닥터 지바고>가 떠오르면서 시베리아로 가고 싶다는 충동질이 일면서 바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편도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러시아는 행운의 땅이었다. 저자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고마운 사람들이 나타나 그를 도와주엇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까지만 기차를 탔고 그다음부터는 비행기로 이동한 탓에 3주간으로 예정했던 러시아 여행이 2주일만에 종료되었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낡은 호스텔 7층 다락방에서 고민에 빠졌다. '고냐, 아니면 스톱이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자정에 출발하는 야간 국제버스를 타면 새벽에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도착할 수 있다. 핀란드에 가면 인접한 북유럽 4개국을 버스와 기차와 배로 여행할 수 있다. 이어서 발트3국과 발칸반도 여러 국가들도 비행기가 아닌 버스로 갈 수 있다. 한국에서 북유럽이나 발트3국과 발칸 국가를 여행하려면 비용이 엄청나게 비싼데 여기서는 버스만 타면 갈 수 있다. 게다가 여행 운도 따라주지 않는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발칸반도의 마지막 여행지, 서니 비치

발칸반도의 마지막 여행지는 유럽의 가장 동남쪽 흑해 연안의 항구도시인 불가리아의 부르가스(Burgas) 근처에 있는 서니 비치(Sunny Beach)였다. 이름도 생소한 서니 비치를 가게 된 것은 알바니아에서 만난 영국인 배낭여행자의 적극적인 추천 때문이었다. 그는 162개 나라를 여행한 72세의 베테랑 여행자였다. 그에게 가장 좋았던 여행 장소를 물었더니 "그곳에 가면 진짜 게으름의 행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라며 서니 비치를 추천했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를 둘러보고 이후에 버스를 타고 흑해 연안의 부르가스로 갔다. 도착해서 1박을 한 후 재차 버스를 환승해서 서니 비치를 찾아갔다. 이곳은 불가리아 최대 휴양지로, 6월에서 8월은 성수기라서 비수기에 비해 각종 물가나 요금이 배 이상으로 비싸다. 그럼에도 EU 국가들보다는 훨씬 싸기 때문에 서유럽에서 휴가를 즐기려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넘친다.

 

 

멕시코 산크리에서 휴대폰을 강탈당하다 

멕시코 산크리의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인상이 무섭게 생긴 인디오 한 명과 시비가 붙었다. 어느새 어둠 속에서 나타난 일곱 명이 나를 둘러싸고 위협을 했다. 나는 일단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입구 쪽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일당 중 한 명이 입구의 큰 철문을 닫고서 잠가버렸다. 그리고 앞쪽에서는 나를 몸으로 밀치며 막았고, 뒤에서는 솥뚜껑 같은 손으로 내 어깨를 잡아챘다. 양쪽 옆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윽박질렀다. 

 

밖을 보니 다행히 시장 근처라서 사람들이 보였다. 큰 소리로 "풀리스! 풀리시아!"를 외쳤다. 이곳에선 경찰을 폴리스 대신 풀리스나 풀리시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모두가 멀뚱히 바라만 볼 뿐, 다가오거나 도와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멕시코에선 위험한 상황을 보면 우선 피하고 보자는 것이 대세란다. 나중에 강탈 당한 휴대폰은 경찰이 아니라 택시 회사 사장의 도움으로 되찾았지만 찍어놓은 사진은 이미 모두 지워진 상태였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산크리, 이런 점이 어쩌면 멕시코 여행의 민낯인지도 모른다.

 

 

아르헨티나에서 여권을 분실하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규모가 작은 한인촌 '백구촌'이 있다. 저자는 오랫만에 한식을 먹고 싶은 생각에 이곳을 찾았다.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약 25,000명 정도인데, 농업 이민을 떠났던 이주민들의 초기는 형편이 어려워 109번 버스 종점이 있던 변두리 지역이었다. 정식 지명은 '카라보보'이지만 '백구촌'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곳은 지금도 우범 지역로 불릴 정도로 각종 사건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얼마 전에도 한국인 여행자가 백주에 권총 강도를 당해 몽땅 털린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택시를 이용하면서 휴대용 소형 여권 가방을 배낭 깊숙이 집어 넣었는데, 돈을 지급할 때마다 배낭 속 물건들을 다 꺼내는 그런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게 결국은 화를 불렀다.

 

한인촌 여행을 마치고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아는 현지 교민으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다. 교민 단톡방에 그의 여권 사진이 올라왔다는 것이다. 한국 음식점에서 일하는 현지 종업원이 여권을 주워 다미원 식품점 사장에게 이를 맡겼던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여권, 노트북, 배낭, 휴대폰 등을 분실하고 나서 '이렇게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혼자 세계일주를 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증세가 앞으로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혼자 진단을 내렸다. 그렇다면 자주 깜빡깜빡하긴 하지만 그나마 상태가 아주 심각하지 않은 지금, 가는 데까지 가보자고 생각했다. 남은 인생에서 오늘이 그래도 가장 꽃 시절인 골든 타임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이밖에도 책은 호주, 뉴질랜드, 말레이지아, 네팔, 인도, 스리랑카, 캄보디아, 필리핀 등지로의 여행을 연이어 소개한다. 시드니 공항에서 인종차별의 경험, 바르셀로나에선 한인 민박집을 운영하는 같은 동포에게 냉대를 받은 사연, 그리고 향자코트에서 3주간의 히말라야 등산 등은 나쁜 여행이란 없음을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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