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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삶이 흔들릴 때마다 꼭 한 번 듣고 싶었던 말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0년 3월
평점 :
이제 나는 믿고 있다. 삶은 여전히 우리를 배신하고 혼란스럽게 하고 좌절시키고 절망하게 하겠지만, 질문하고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불완전한 행복 속에서도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그 길에서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 '프롤로그' 중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라
이 책의 저자 박애희는 헤매고 흔들리는 사이, 결코 젊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러나 많다고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란 진실을 마주한 후부터 기쁨보다 아픔, 높은 곳보다 낮은 곳, 강한 것보다 약한 것, 눈부신 것보다 스러져가는 것들을 더 많이 사랑하리라 다짐하며 살고 있다.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연약하지만 다정한 마음으로 쓴 글이 읽는 이의 마음에 작은 물결처럼 일렁이길 소망한다. 기대와 다르게 언제나 조금씩 어긋나는 삶 속에서 어떻게 생의 의지를 지켜가야 하는지, 울고 화내고 방황하면서 어떻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 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썼다. 13년 동안 KBS와 MBC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했으며, 사랑하는 엄마를 보내고 다시 행복해지기 위해 쓴 책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 등 세 권의 책을 펴냈다.
저자는 불안하고 힘겨운 삶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무얼 해야 하는지, 어떻게 계속 생의 의지를 지켜가야 하는지, 자신과 세상을 다루는 역량을 키우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지, 그 답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 삶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인생의 혼란과 시련을 겪을 때마다 어떻게든 자신만의 길을 찾아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발견한 희망과 사랑이 흔들리는 우리들을 지켜줄 것이라는 바람과 함께.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삶의 진실을 우리들에게 들려준다. 즉 인생은 한 편의 예술처럼 삶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일깨워준다. 아무리 실수투성이 인생을 살아왔어도 자신에겐 다정했던 기억과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음을, 아직 걸어가야 할 길이 남아 있음을, 엎어지고 깨지고 주저앉을지라도 삶은 우리에게 분명히 무언가를 가르쳐줄 테니, 이 진실을 믿고 따뜻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 것을 독려한다.
책은 한 소설가의 스토리를 소환하면서 시작한다. 한국에 널리 알려진 일본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젊은 시절 한때 문학과는 전혀 무관한 일을 하고 있었다. 즉 스물아홉까지는 7년 동안 재즈카페(낮엔 커피숍, 밤엔 재즈바)의 운영에 전심전력을 다하고 잇었다. 서른을 눈앞에 둔 그는 가게 운영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앞으로도 잘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봄날,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인근의 야구장을 찾았다. 외야석에서 맥주를 마시며 경기를 관람 중이었다. 바로 그때, 한 외야수가 친 안타가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이순간의 장면을 그는 이렇게 글로 남긴다. 아마도 그는 인생의 의미 있는 순간들을 어떻게 붙잡아야 할지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을 찾은 듯 싶다.
이 글을 읽는 순간, 과연 나는 언제 이런 찬스를 잡은 적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터닝포인트는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였던 것으로 느껴졌다. 당시까지 나의 진학은 사업가인 아버지의 사업이 흔들릴 때마다 많은 영향을 받았다. 즉 나의 목표는 이 영향에 항상 꼬리를 내리고 말아야만 했던 것이다.
아버지 회사의 파산으로 중학교를 다닐 형편이 못되자 교장 선생님의 추천에 힘입어 변두리의 신설 중학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3년 내내 전교 수석을 하면서 원하는 고등학교 입학에 공을 들였지만 이 꿈도 깨어지고 말았다. 잘 되는 줄만 알았던 아버지의 새로운 사업이 접어야 할 순간까지 내몰리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담임선생님의 면담 요청으로 이 사실을 인지했고, 상업고등학교로 진학할 것을 권고받았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이런 혼란은 나에게 밝음보다는 어두움을 걷도록 만들었다. 학업은 늘 뒷전이었고 태권도, 합기도, 권투 등 운동에만 전력을 기울였다. 이는 순수한 체력 증진 목적이 아니라 싸움 기술을 고양시키려는 의도였다. 내 주변에 나보다 싸움 잘 하는 학생이 없었다. 이때 검은 유혹이 다가와 나를 깡패의 세계로 입문시켰다.
고교 2년이 이렇게 지나가는 걸 부모님이 모를리 없었다. 교복과 가방과 모자는 그냥 폼이었고, 잠시 학교를 들렀다가 유흥가 뒷골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나에게 아버지는 지인을 통해 인문계 고등학교로 전학시켜 주겠다면서 진심이 담긴 사과를 하셨다. 그토록 미웠던 아버지는 늘 나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 나에게 밝은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학업에만 정진했다. 재수를 거쳐 명문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늘 퍼주기만 하는 우리 부모님들도, 살아남기 위해 버티느라 오늘도 신발끈을 조여 매는 우리들도 모두 행복할 수 있었으면 한다. 나홀로 생의 우수를 보듬을 시간이 있었으면 한다. 잠시 나를 바라보는 존재를 잊고 나 자신만을 사랑한 그 시간이 다시 또 일상을 버티게 해줄 테니까. 그것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그토록 바라는, 내가 행복해지는 길일 테니까.
나의 아버지는 미수를 넘긴 다음해 연초에 허리가 불편해서 대형병원에 시술차 입원하셨다가 결국 집으로 귀가하지 못하셨다. 임종을 지킨 자식은 나뿐이었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아 회사에 하루 휴가를 득해 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었다. 당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아버지는 생의 마지막 사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내 손을 잡고 눈가에 약간의 물기를 남긴 채 숨을 거두셨다. 인간의 호흡이 이렇게 끊어지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가 다니던 성당 담임 목사에게 열락했다.
목사님, 어머님와 함께 아버지를 위한 미사를 올렸다. 우리들은 고인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 우리의 사랑을 안고 떠날 수 있도록, 그리고 살아온 생의 후회가 없도록 말이다. 실제로 고인의 귀는 심장이 멈춘 후에도 한동안 열려 있어서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그 순간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결국 중요한 건 사랑이 아닐까 싶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지, 다시 한번 이야기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삶은 누구를 어떻게 얼마나 사랑했는가에 대한 답이니까. 거기에 더해, 최선을 다해 자신만의 인생을 살았던 그들을 따뜻하게 인정하고 존경하는 말을 전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79쪽)
나도 아버지의 인생 굴곡사를 물려받았는지 몰라도 사업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오래 살았던 서울을 떠날 때는 이천만 원을 손에 쥐고 가족들을 이끌고 경기도로 떠나왔다. 어쨌든 가족들의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을 무장한 채 생소한 터전으로 이사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리 어려워도 잘 살려면 자신을 믿어야 한다. 즉 더 많이 가진 이들한테 씩씩대는 대신, 타고난 것들이 없다며 신세 한탄을 하는 대신, 지금 바로 이 자리, 이 시간, 이 모든 것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토양이 되리라는 것을. 이것이 바로 인생의 주연으로 사는 법이다.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도 하지 말라는 게 많아서 어른이 되면 내 맘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나이만 먹으면 그냥 다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빨리 나이가 먹고 싶었다. 막상 적지 않은 나이가 되어 정신을 차려보니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인생의 크고 작은 파도에 휘청거리며 가야 할 길에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다. 어른인 척하다가 나이만 먹은 셈이다.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