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부자들 - 아무것도 없던 그들은 어떻게 성공했을까
고미숙 지음 / 더난출판사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으며 부자라는 꿈을 꿀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는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떤 습관이 필요한지를 몰랐을 뿐입니다. 금수저만 부자 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금수저도 돈을 관리하는 방법을 모르면 자산을 지키지 못합니다. 돈만 벌겠다고 달려든 사람 역시 부자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끝까지 지켜내기 어렵습니다. - '들어가며' 중에서

 

 

명동부자들에게 배우는 지혜

 

책의 저자 고미숙은행 VIP 전담 자산관리사로 국내 최고의 글로벌 상권 명동에서 자수성가한 명동 부자들의 인생 파트너이자, 은행에서 팔아야 하는 상품만 파는 수동적인 은행원이 아니라 금융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힘을 나누는 동반자를 꿈꾸는 20년 차 베테랑 자산관리사다. 부자들의 돈을 관리하고 조언하는 직업에 있지만, 자신이 오히려 "부자들의 지혜를 얻고 있다"고 생각하며 항상 배우는 자세로 살아가고 있다.

 

돈을 벌고, 끝까지 지켜내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시간이라는 내공도 필요하다. 명동 부자들 역시 꿈을 이뤄내는 데 적어도 10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들의 지혜를 오랫동안 꾸준히 실천한다면 누구라도 부자라는 꿈을 반드시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명동 부자들'의 성공 이유를 파헤친다. 100억 원대 의류도매업자부터 1000억 원대 자산운용가까지, 그들이 부자가 된 과정을 저축형, 학습형, 알뜰형, 소통형, 집중형, 사전준비형, 틈새공략형, 변화무쌍형, 속전속결형 등 9가지 유형별로 분류하여 이들의 부자습관을 생생하게 소개한다. 명동 부자들만의 부의 공식을 만나보자. 

 

 

 

 

시작은 저축이다

 

번 것보다 돈을 덜 써야 한다. 그래야 돈을 모을 수 있다. 평범한 직장인이 부자가 되기 위한 제1원칙은 '번 돈의 반을 저축하는 것'이다. 종잣돈이 쌓여야 투자도 하고, 부동산도 살 수 있고, 사업도 시작할 수 있다. 종잣돈이 없다면 어느 것도 시작할 수 없으며, 적은 돈으로 시작하면 큰돈을 벌 수 없다. 김병희 사장도 스무 살에 부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 월급의 50퍼센트를 저축해 명동의 신화가 된 케이스다.

 

부유하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 졸업 후 중소 무역회사에 취업한 이래 월급의 반 이상을 억척같이 모아 30대 초반이던 80년대 중반 무렵 8,000만 원의 자산을 보유할 수 있었다. 당시 잠실의 13평짜리 아파트의 시세가 500만 원 정도였다. 종잣돈을 마련한 그는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첫 시작은 화장품 할인점이었다. 저축 습관이 계속 이어진 탓에 1988년 신림4동의 5층 건물을 8억 원에 매입했다.

 

이후 탄력이 붙은 화장품 사업은 명동에서 매장수를 늘려나갔고, 2016년엔 '클라뷰'라는 자체 브랜드를 론칭해 중국, 홍콩, 말레이지아 등으로 진출 연매출 200억 원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그는 명동에 수백억 원대의 건물 7개, 서초동에 건물 1개를 보유하고 있는데, 무일푼으로 시작했지만 오직 저축의 힘만으로 천억 원대의 자산가로 성공할 수 있었다.

 

저축형~ "월급의 반을 저축하라" 
학습형~ "최고의 멘토를 찾아가라" 
알뜰형~ "동전 한 푼도 무시하지 마라" 
소통형~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라" 
집중형~ "한 놈만 판다" 
사전준비형~ "아이템을 미리미리 파악하라" 
틈새공략형~ "베어마켓도 다시 보자" 
변화무쌍형~ "트렌드의 흐름에 몸을 맡겨라" 
속전속결형~ "사업은 스피드가 생명"

 

늘 위기에 대비하라


명동 관광특구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황동하 사장은 자신의 사업에 단 한 번의 위기도 없었다고 한다. 그럴수록 더욱 불안한 마음이 들어 늘 유비무환의 자세를 견지했다고 한다. 그는 언젠가 책에서 읽은 글 중에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표현이 무척 마음에 와닿았다고 한다. 이에 아무리 좋은 일도 꽃처럼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매사에 임했다. 직원들이 밤새 니트 1만 3,000장을 팔았다며 새벽에 메시지를 보내와도 그는 많이 파는 것보다 꾸준히 파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국무상강무상약國無常强無常弱

"늘 강한 나라도 없고, 늘 약한 나라도 없다"

- 한비자

 

가진 것도 없이 시골에서 상경해 20대 중반 노점생활을 시작으로 1980년대 초반 명동에 터전을 잡았다. 당시 최고의 장사꾼으로 불리는 남대문 시장의 김복남 사장을 찾아가 수개월 동안 장사를 배운 후 3년 간의 노점상 끝에 명동 뒷골목에 신발 가게를 개업할 수 있었다. 이후 6개의 의류 매장을 운영하다가 의류 대형매장 밀리오레가 등장하자 동대문으로 자리를 옮겨 니트 장사를 시작, 동대문 최고의 니트 매장을 만들었다. 그는 '고수에게 배워야 한다'는 학습형 부자이다.

 

중저가 화장품의 붐을 예상하다

미샤는 서울대 화학과 출신의 화장품 회사 연구원이 온라인 판매용으로 만든 브랜드였다. 브랜드 런칭시에 소비자의 '선체험 후매입'이라는 무료 마케팅 방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즉 부가세를 포함한 택배비 3,300원만 소비자가 부담하면 되었기에 소비자들의 커다란 호응과 함께 저렴하고 질도 좋은 트렌디한 화장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의 명동 눈스퀘어 앞에 위치한 미샤 매장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을 보며 김병희 사장 역시 중저가 화장품 사업을 더 키워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중저가 화장품 트렌드가 열풍을 이어갈 것이라는 사업가의 예감이 작용했다. 당시 미샤, 더페이스샵, 에뛰드하우스, 스킨푸드 등 중저가 화장품이 독자적 브랜드 콘셉트로 많이 출시되고 있었다.

 

2003년 12월 김 사장은 더페이스샵 1호점을 명동에 오픈했다. 2호점은 일매출 7~8천만 원, 월 16억 원 이상의 매상고를 기록했다. 장사가 워낙 잘되어 아침 출근 후 저녁까지 식사를 제때에 하기 힘들 정도였다. 2004년 더페이스샵 광고가 나간 후엔 체인점 문의가 급증, 한달 만에 재고로 보유하던 100억 원어치 물건이 일시에 팔리기도 했다. 김 사장의 예감이 적중했다. 

 

신용이 밑천이다

1998년 명동에서 의류 사업으로 자리를 잡은 맹시환 사장(만 52세)은 S대 출신으로 6년간의 이랜드 근무 경험 후 비로소 시작한 사업이었다. 그는 처음 맺은 비즈니스 파트너와 지금까지 거래하고 있다. 거래처를 한번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은 신용을 바탕으로 관계를 맺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그는 단골고객에게는 종종 특별 주문 제작한 다이어리나 가방을 선물한다. 명절엔 지리산 청정지역에서 재배한 무농약 농산물을 거래처에 보낸다. 또 가끔 일정 수량 이상의 옷이 팔릴 때는 거래처에 피자를 한턱내기도 한다. 거래처에서도 그냥 있지 않는다. 맹 사장의 직원들에게 떡을 맞춰 보내기도 한다. 이처럼 서로를 배려하는 작은 마음에서부터 신용은 조금씩 쌓여나간다.


1985년 명동 지하상가에서 작은 옷가게를 시작, 의류 소매업을 하는 조귀현 사장(만 61세)은 마감 시간 무렵에 손님이 들어와도 "손님, 영업이 끝났습니다."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자신의 가게를 찾아준 고마운 손님인 만큼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소하지만 친절한 배려 덕분에 그의 가게를 믿고 찾는 손님들이 많다고 한다. 그만큼 자영업자들에게 있어서 신용은 사업 밑천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부자가 되기 위한 기본 요소이기도 하다.

 

 

명동부자들의 생생한 증언

 

책은 명동 부자 9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병희 사장, 황동하 사장, H 사장, 임대운 사장, 조귀현 사장, 맹시환 사장, S 사장, K 사장, L 사장의 사례가 차례로 이어진다. 이들이 직접 시장에 뛰어들어 소비자와 거래처들과 부댓끼며 체험한 값진 경험이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다. 이들에겐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관이 있었다. 부자를 꿈꾸는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