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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티스 코드
맹성렬 지음 / 지식여행 / 2019년 12월
평점 :
2,500년 전 플라톤이 언급한 아틀란티스에 대해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어왓다. 지금까지 학계나 대중의 주요 관심사는 그것이 순전히 플라톤이 꾸며낸 얘기냐 아니면 뭔가 다른 근거가 있느냐, 만일 근거가 있다면 그런 대륙이 실재했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대철학자 플라톤이 이를 언급했다는 사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과연 아틀란티스 문명은 존재했는가?
책의 저자 맹성렬은 우석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신소재공학석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모든 주의와 주장을 의심하는 냉철한 과학자의 시선으로 인류 문명사에서 해명되지 않은 난제들을 탐구하고 있다. 영국 유학 시절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고대 문명이 공학적으로 상상 이상의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후, 역사학·지리학·고고학·신화학 분야에서 방대한 국내외 문헌을 연구하여 고대 문명에 관한 저서를 쓰고 있다.
2006년 특허기술상 세종대왕상을 수상했고 2009년 저서 <오시리스의 죽음과 부활>이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 저작으로 선정됐다. 2010년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발행하는 ETRI JOURNAL이 수여하는 우수논문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미국과학진흥협회 전문가 회원 및 미국화학회 회원이다. 저서로 <지적 호기심을 위한 미스터리 컬렉션>, <아담의 문명을 찾아서>, <과학은 없다>, <UFO 신드롬>, <초 고대문명>(상·하), <오시리스의 죽음과 부활>, <피라미드 코드>등이 있다. 최근에는 네이버 카페 '맹교수의 올댓미스터리'를 통해 풀리지 않은 인류 문명의 모든 미스터리를 풀어보는 공간을 마련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저자는 강력한 고대 문명국가로 그려진 아틀란티스 이야기가 중남미 또는 남미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판단한다. 그 근거로 남미 안데스 일대에 거석巨石 유적에서 볼 수 있는 고도의 석재 가공 기술과 지도상 일직선으로 놓인 주요 고대 유적지들, 그리고 페루 삭사이와망에서 발견된 계단이 거꾸로 되어 있는 모양의 암석 등을 들었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아틀란티스를 입에 담는 것은 학계에서 금기시되었지만 고대 이집트와 남미가 교류했다고 추정할 만한 역사적 사실이 밝혀지며 고대사에서 중요한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맞아 아틀란티스에 대한 진실은 역사적 관점으로 다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신화인가, 역사인가?
우주의 지적 설계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티마이오스>에서 이 이론을 설명하는 장치의 하나로 초반 도입부에 아틀란티스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대화록에서 크리티아스는 "비록 이상하긴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단언한다. 출처가 고대 그리스 7대 현인 중 으뜸이었던 철학가 솔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솔론이 전하는 아틀란티스 이야기의 출처는 이집트이다. 기원전 6세기경 아테네를 이끌던 솔론이 개혁에 실패하고 반대파에 몰려 이집트로 망명했다. 그는 저명한 이집트 신관으로부터 그리스인들은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 의미를 묻자 인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고 수차례에 걸쳐 물과 불에 의해 문명들이 멸망했다는 사실을 일러주었다고 한다. 아틀란티스 문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아틀란티스라는 섬에는 위대하고 멋진 제국이 있어 그 섬 전체와 이집트와 이탈리아 중부의 국가 티레니아 등 헤라클레스 기둥들 안쪽의 아프리카와 유럽 땅들을 지배했다. 나중에 격력한 지진과 홍수로 호전적인 정복자들이 하룻밤 사이에 땅속에 묻혔고, 아틀란티스도 마찬가지로 바다 밑에 가라앉아 사라져버렸다"
여기서 '헤라클레스의 기둥들'은 일반적으로 지중해와 대서양 사이의 길목에 있는 지브롤터 해협을 일컫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곳은 고대 그리스인들 삶의 무대였던 지중해의 바깥을 향하는 출구였다. 이 해석에 의거하면, 대서양 쪽에 거대한 대륙 아틀란티스가 존재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언제? <티마이오스>의 기록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대략 기원전 9600년경이 된다.
아틀란티스에 대한 관심은 1873년 신화로만 존재했던 '트로이'를 하인리히 슐리만의 발굴로 재점화되었다.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한 해저 발굴 작업이 요구되었기에 본격적인 진척이 되지 못했다. 이후 이 유적의 발굴에 대한 작업은 2000년대에 들어 고해상도 촬영과 해저 발굴 기술이 개발되면서 본격화되었다.
예를 들면 지브롤터 해협의 대서양 쪽 인근 스페인 연안에서 플라톤이 기술한 것과 유사한 유적이 발견되었고, 지브롤터 해협 바깥쪽 해저에서도 가라앉은 지형이 발견되었다. 또 영국에서 약 1만 년 전 가라앉은 비교적 넓은 지형이 발견되기도 했고, 인도양 연안의 해저에서도 9천5백년 전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지가 발견되었으며, 이스라엘에서도 역시 해저 문명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고대 이집트인들이 채록採錄했다는 아틀란티스 이야기는 상당 부분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집트에서 온 두 가지 정보
1만 2천년 이전에 지구 여러 곳에 문명이 있었다
지브롤터 해협 너머 서쪽 먼 곳에 대륙들과 대양들이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대양 건너편을 알고 있었나?
고대 이집트인들은 오늘날처럼 담배를 향정신적 용도로 흡입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저명한 병리학자 스베틀라나 발라바노바는 독일 뮌헨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원전 약 1000년부터 기원후 약 400년 사이의 이집트 미라들의 머리카락, 피부, 그리고 뼈에 포함된 성분을 분석했는데 여기에서 대마 성분과 함께 니코틴의 함유를 발견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코카인 성분도 미라에서 검출되었다.
담배의 원산지는 남미南美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서남태평양제도 및 태평양의 섬들에서도 유사한 종이 서식하고는 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이 신대륙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니코틴이 함유된 식물을 구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코카인의 경우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남미 이외의 다른 곳의 유사종은 코카인 함량이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든다. 구대륙에 존재했던 코카인 함유식물에서 추출할 수 있지 않을까란 것인데, 이런 식물이 존재했다는 흔적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코카인을 어디서 구했을까? 누군가 남미와 이집트 간의 마약 교역을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당시 고대 이집트는 자체 항해 능력이 저조했기에 해상 교역은 페니키아인들에게 의존했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600년경에 있었던 페니키아인들의 특별한 해양 항해를 기록으로 남겼다. 당시 고대 이집트 파라오 네커의 명령에 따라 이들의 선단이 홍해에서 출발, 아프리카 대륙을 한 바퀴 돌아 지중해로 오는 대항해를 성공했다는 것이다. 총 3년에 걸친 2만5천 킬로미터의 항해였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들은 페니키아인들이라면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도달할 수 있다는 추론을 도출하게 한다.
한편, 아즈텍이나 마야 유적(유물) 중에 아프리카풍으로 보이는 것이 존재한다. 북아프리카 해안에서 멀지 않은 카나리아 제도에서 해류를 타면 카리브 해로 직행한다. 페니키아인들이 이미 알고 있었던 이 항로에 대한 정보를 콜럼버스가 입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이용, 신대륙으로 향하는 항해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주징도 있다. 다만 페니키아인들이 신대륙에 갔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기에 주류학자들은 갔다고 해도 아주 간헐적이었을 것라고 주장한다. 아무튼 고대 항로에 대한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이 진행되고 있어서 좀 더 지켜보면 좋겠다.
미라에서 발견된 코카인으로 인해 고대 이집트인들이 신대륙에 관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을것으로 보인다. 특히, 향정신성 마약류를 취급한 사람은 종교의식을 주관하던 고위급 신관들이었으므로 나름 구대륙 바깥에 대한 정보가 분명히 잇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스 파트라스 대학 지질학과의 스타브로스 P. 파파마리노풀로스 교수는 기원전 6세기 이전부터 고대 이집트인들이 교역을 통해 남미에만 존재하는 귀중품들을 받아들였기에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쩌면 이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플라톤의 아틀란티스 이야기에 반영되었던 것은 아닐까?
아메리카 대륙의 고대 문명 미스터리
신대륙 발견 초기부터 아틀란티스가 대서양 해저에 가라앉아 있다는 이론 대신에 아메리카 대륙의 일부가 침수된 곳이 아틀란티스라는 주장도 잇었다. 이 개념을 널리 일반화시킨 사람이 프랑스의 대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그는 1627년 <새로운 아틀란티스>라는 소설에서 고대의 아틀란티스가 아메리카 대륙이며, 이곳 원주민들은 번창했던 문명이 종말을 맞은 후 퇴보된 모습으로 오늘날 존재하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20009년 6월, 프랑스 고고학자 제 알렉산더가 이끄는 탐사팀이 구글 어스를 이용해 카리브 해의 해수면 아래 20미터에서 건축된 유적을 발견했다. 그것은 직교로 교차된 도로들과 다양한 건축물들을 포함한 거대한 도시였다. 해수면 상승 속도를 고려할 때 기원전 6000년까지 그 시기가 거슬러 올라가서 건설되었음을 추정하는데, 그 규모가 엄청 거대하고 구조가 매우 조직적이라고 한다. 특히 건축물 중 일부는 피라미드 형태를 띄고 있는 것으로 알려졋다.
플라톤이 아틀란티스를 언급하던 때가 기원전 5세기경인데, 당시 중남미에는 테오티우칸, 올멕, 고전기의 마야 문명 등이 있었다. 그리고 남미에는 선잉카 문명이 있었다. 이들 문명 또는 이후의 파생된 문명들에 대한 연구가 거듭될수록 어쩌면 1만 년 전에 존재했다는 아틀린티스 문명에 대한 단서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메조아메리카나 남미 고대 문명들을 통툴어 거석 건축이 행해진 곳은 이상하게도 안데스 중앙 산지에 국한되어 있다. 거대 절석切石을 사용한 토목건축 수준은 구대륙 고대 문명보다 한 수위로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구대륙의 경우 절석들의 이동 경로가 대체로 평탄하거나 고대 이집트의 경우 처럼 수운水運이 가능했다. 하지만 안데스의 경우 해발 4,000미터나 되는 산악 지역이어서 가파른 경로로의 운반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과연 그렇게 운반했을까?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 교외 산 위에는 삭사이와망이라는 성채 유적이 존재한다. 여기엔 크고 작은 수만 개의 절석이 정교하게 쌓여 있다. 1534년, 잉카제국을 붕괴시킨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비서였던 페드로 산초 데 라 호츠는 이 석벽石壁에 대해 아래와 같이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이 나라에서 볼 수 있는 거대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 바로 이 성벽들이다. 사용된 바위들이 너무 커서 이걸 본 그 누구도 그것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정말 산이나 절벽 한 모퉁이를 떼어낸 것처럼 크다. 높이가 약 7미터에 폭이 3.5미터에서 6미터 정도나 되며,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최소한 수레 셋은 동원해야 할 정도다. 이 바위들은 일정한 형태로 되어 있지 않지만 서로 잘 맞추어져 있다"
안데스에서는 고경도高硬度 석재 가공에 기계나 첨단 장비가 사용되었음에 틀림없다. 하나의 결정적인 증거가 쿠스코 코리카차에 있는 '달의 신전'에 존재한다. 거기엔 안산암 석재를 관통하는 구멍이 있는데, 그 형상이 몇 개의 나선형으로 패여 있는 드릴 자국처럼 보인다. 단단한 안산암에 이처럼 구멍을 낼 수 있는 현대식 장비인 파워 드릴은 탄소 공구강에 다이아몬드 코어 비트가 부착되어 있는 것을 사용한다. 안데스 산지의 거석 가공은 정말로 잉카인의 작업일까?
삭사이와망에는 계단이 만들어져 있는 거대 암반 덩이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피에르 칸사다 또는 친카나 그란테라 불리는 것이다. 인근에 계단이 거꾸로 만들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암반 덩어리가 존재한다. 처음부터 그런 모양으로 만들었을까? 사람이 제대로 딛고 다닐 수없으므로 애초의 모양이 뒤집힌 것이라고 판단된다. 왜 이렇게 뒤집힌 걸까?
이곳엔 크고 작은 지진이 잇엇지만 이 정도의 대변란을 일으킬 정도의 지진은 잉카 시대엔 없엇다. 지질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약 1만 2천년 전 기후변화로 인해 빙하가 녹으면서 이 정도의 대재앙이 안데스를 휩쓸었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때 아메리카 대륙에서 거대 포유류들이 멸종되었다. 지금껏 인간에 의한 대학살로 보았으나 이젠 다른 해석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남미 안데스 지역의 알티플라노 고원이 남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지면서 대지진 및 대규모 화산 폭발과 함께 쓰나미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기원전 11000년경까지 이 고원엔 타우카라는 원시 호수가 있었는데, 이후 호수물이 대거 이동할 정도로 급격한 지각 변동이 발생했다. 삭사이망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970년대에 네델란드 출신의 페루 수학자 숄텐 드엡네스는 안데스의 고대도시들인 티와나쿠, 쿠스코, 올란타이팀보, 카하마르카가 일직선상에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 유적지들을 잇는 선은 정확히 진북으로부터 서족으로 45도 각도를 이루었는데 알티플라노 고원지대에서 이 선은 마주보며 동과 서로 늘어선 안데스 산맥들 중앙을 관통하고 있었다. 이런 정렬은 무려 1,500킬로미터에 달했다. 그녀는 이 사실을 <바라코차의 길>이라는 책에 소개했다. 바라코차는 먼 옛날 티와나쿠에서 출발하여 북상하면서 주민들을 교화했다는 문화영웅신이다. 이렇게 도시 설계를 하는 것은 고도의 문명에서나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구대륙과 신대륙의 초고도문명은 교류가 있었을까?
인류의 문명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미국의 신석기 문화 전문가인 메리 세테가스트는 약 2만년 전 구석기 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확인된 프랑스 라스코 동굴 벽화에서 발견되는 놀라운 현대적 감각을 볼 때 문화 또는 문명은 그 정도로 오래전부터 존재했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을 적극 지지하는 데렉 커닝햄은 천문학적 연구 결과를 <40만 년의 석기시대 과학:긴 여행>이란 책을 통해 소개했다.
고도의 천문학적 지식이 이미 3만 년 전부터 알려져 있어 고대 유적들에 기하학적으로 암호화된 문자로 표시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는 정확히 동일한 암호 문자들이 삭사이와망에서도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구대륙의 구석기시대 유적과 삭사이와망 사이에 연관성을 감안할 때, 당시 전 세계는 구대륙과 신대륙 사이에 상당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을까? 이런 의미에서 플라톤의 아틀라티스 이야기는 옳다고 판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