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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 술, 한국의 맛 - 알고 마시면 인생이 즐겁다
이현주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11월
평점 :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식품점에서 사온 술이 제주祭酒로 올라갑니다. 소주도 내리지 못합니다. 멀리도 아니고 바로 아버지 대에서 술 하나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일찍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장맛이 좋았다는 것은 들어 기억하고 있지만 술 빚는 솜씨도 좋았다는 것은 술일을 시작하고서야 엄마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라도 배워 둘걸.' 못내 아쉬워하신 엄마. 이 일을 업 삼지 않았다면 그 술 두세 가지쯤 없어진 것이 뭐 대수이며,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고 살았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보다 더 아까운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한 대를 더 물리지 못하고 사라진 술과 음식이 비단 우리 집에만 있는 건 아닐 겁니다. - '술독을 열며' 중에서
한국의 술에 대하여
책의 저자 이현주는 세종대학교 호텔관광대학 조리외식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에서 발효식품·양조학을 전공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설립한 〈전통주 갤러리〉의 초대 관장을 지냈으며 현재 전통주 강연과 시음·전시 행사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2012 전통주 소믈리에 대회 국가대표 부문 1위를 한 전통주 전문가이자 귀에 쏙 박히는 열정 강의로 명성이난 강사이기도 하다. SNS상에서 전통주 읽어주는 여자라는 닉네임으로 한국 술의 멋과 맛을 알리고 있다.
국가 주요 행사의 건배주와 다수의 호텔, 레스토랑, 외식업체에 전통주를 추천하는 자문 활동을 해왔다. 홍콩에서 열리는 〈한국 10월 문화제FESTIVE KOREA〉, 벨기에에서 열린 세계민속축제 〈포크로리시모FOLKLORISSIMO〉, 파리에서 열린 〈한국 OECD 가입 20주년 기념식〉 등 국내외에서 여러 전통주 행사를 진행했다.
한국 역사 속에는 우리 술의 근간이 흔들릴뻔한 시기가 있었다. 먼 옛날 조선시대에 시행되었던 금주령, 1909년 일본에 의한 주세법의 제정, 1960년대 식량부족을 극복하고자 시행된 양곡관리법과 밀주 단속의 시기. 한국 술의 뿌리를 위협하는 여러 풍파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은 우리의 술들이 있고, 그 계보를 잇기 위해 굳건히 전통주 시장을 지키는 양조장들과 새로이 술독에 뛰어드는 젊은 양조인들이 있다.
책은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주부터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신생 양조장들이 선보이는 새로운 전통주들을 소개하며 술에 담긴 가치를 전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설립한 '전통주 갤러리'의 초대 관장, 전통주 소믈리에인 저자는 그간 보고 듣고 마시고 느낀 증류주, 약주, 탁주 등 다양한 전통주에 대한 이야기들을 책에 가득 담았다.
민속주 안동소주
조옥화 명인은 자신의 집에서 술을 빚어오던 방식에, 안동 지역의 집집마다 내려오던 비법들을 찾아내고 체계화하여 1987년 안동소주 기능보유자로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에 지정이 되었고 2000년도에는 전통식품명인 제 20호로 지정되었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방한 당시에는 생일상과 함께 안동소주를 내놓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앤드류 왕자가 다시 20년 만에 하회마을을 찾았는데 방한 전 여왕으로부터 하회마을에서 받았던 생일상이 특히 인상적이었다는 소감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조 명인의 안동소주 원료는 단순하다. 쌀 한 가지와 직접 빚은 전통 누룩을 사용한다. 토속적인 향기와 구수함을 동시에 갖고 잇다. 명인의 안동소주는 옛 조상들이 써왔던 소줏고리와 같은 상압증류 방식으로 증류한다. 게다가 직접 띄운 개성 강한 밀 누룩을 사용하고 장기간 발효시킨 술덧을 쓰기에 그 특색이 더해서 여타 안동소주의 다른 맛의 특징들이 있다.
조옥화 명인의 안동소주와는 어떤 음식이 잘 어울릴까? 원래 술과 음식은 한 밥상 위에서 자란 동무이기에 그 지역의 음식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다. 바다와 멀리 떨어진 안동 지역은 자반고등어 산지로 유명하다. 쌀뜨물에 담가 짠맛을 적당히 제거한 뒤에 석쇠에 얹어 노릇하게 구워낸 간고등어는 안동소주에 딱 어울리는 안줏거리이다. 짭짜름한 소금기가 소주의 단맛을 잡아끌어내 45도나 되는 술이 달짝지근하게 느껴진다. 서울에서도 흔히 맛볼 수 있는 찜닭의 원조도 안동이다. 적당히 달고 간이 배어 부들거리는 닭고기 살점과 곁들여진 감자며 당면 한 젓가락도 이 유서 깊은 술의 안주로 그만이다.
문배주
2000년 6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만찬장에서, 작고한 김정일 위원이 '문배주는 대동강 일대의 주암산 샘물로 빚어야 제맛'이라고 했다던가? 지금 평양에서는 이 술을 찾아볼 수 없지만 대신 대동강 일대의 주암산 샘물과 물맛이 많이 닮았다는 경기도 김포의 석회암 암반수로 문배주를 빚는다.
문배주양조원에서 만난 이승용 전수자의 모습은 참 분주해 보였다. "수수도 심어야죠. 술도 돌봐야죠. 바쁘네요" 하며 환하게 웃는다. 양조장 한편에는 좁쌀 누룩을 띄우는 제국기製麴機가 돌아가고, 발효 탱크마다 술 익는 향이 달큰하다. 증류한 술을 담아 숙성시키는 커다란 숙성조 속에서 문배주가 시간과 함께 익어가고 있다.
문배주는 눈으로 보기에도 즐거운 술이다. 대한민국 구가무형문화재라는 위상에 걸맞게 술병도 다양하고 세련되게 갖춰져서 선물하기에도 좋다. 하얀 백자에 은행잎 문양이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문배술 명작'은 술의 품격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기에 호텔과 항공사의 기내 판매용으로 인기가 좋고 용 모양이 양각된 백색의 긴 도자기 '문배술 용상'은 700ml 너근한 용량을 담고도 가격이 저렴해서 좋은 사람들끼리 나눠 마신 뒤 빈 병은 꽃 한 송이 꽂아 두고 보기에도 제격이다.
계룡백일주
봄부터 시작해서 여름을 나고, 가을의 서리가 내려야 술 빚을 준비가 된다. 3월의 진달래, 5월의 솔잎, 7월의 잇꽃, 9월의 오미자, 무서리 내린 늦가을의 황국까지 다 갈무리해서 계룡산의 사계절을 다 넣어 만드는 술이 계룡백일주이다. 본시 궁중의 술로 조선 16대 왕 인조가 반정의 일등공신인 연평부원군 이귀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 술 만드는 비법을 연안 이씨 가문에 내려주었다고 이성우 명인은 말한다.
계룡백일주 빚는 과정은 누룩을 준비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물을 갈아가며 깨끗이 씻은 통밀을 물에 불려 절반이 타개지도록 빻아야 한다. 여기에 쌀가루를 같은 비율로 섞은 뒤에 약간의 물을 더해서 반죽을 하는데 너무 질어서도 안 되고 수분이 아주 부족해도 안 된다. 손으로 한 주먹 쥐어서 해변의 모래처럼 엉켜지는 반죽을 누룩 틀에 넣고 단단히 밟아서 누룩을 만든다. 한국의 전통 누룩은 그 형태도 만드는 방법도 다양하고 누룩 안의 미생물의 종류는 더 다양하다.
계룡백일주는 이양주二釀酒 기법으로 만든다. 이양주란 밑술 한 번, 덧술 한 번 총 두 번에 걸쳐 술을 빚는 방법을 말한다. 처음 빚는 밑술은 알코올을 만드는 미생물인 효모酵母를 증식시켜 알코올 발효를 잘 할 수 있게 준비하는 과정이고, 덧술은 밑술에 술의 주재료가 되는 쌀이나 좁쌀, 수수 등의 곡물과 감자나 고구마처럼 전분이 들어 있는 원료를 익혀 밑술에 넣어 본격적으로 알코올을 만드는 과정이다.
밑술로는 찹쌀가루로 죽을 쓴다. 쌀가루가 멍울지지 않도록 잘 풀어서 죽을 쑤어 차게 식으면 누룩을 섞어 준다. 시간이 지나면 술이 말 그대로 부글부글거리면서 탄산이 용암처럼 터지며 끓어오르는데, 그 기운이 조금씩 잦아들어 마치 시냇물이 흐르듯이 조분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미리 준비한 찹쌀 고두밥을 밑술과 함께 잘 섞이도록 섞어 준다. 이때, 진달래, 황색 국화, 솔잎, 오미자를 넣어주는데 국화와 진달래, 솔잎이 각각 다섯 홉씩 들어가고 오미자가 세 홉이 들어간다. 이렇게 만들어진 술덧을 낮은 온도에서 100일 동안 발효를 하고 잘 익혀 거르면 계룡백일주가 된다.
함께 전통주 갤러리에서 근무했던 일본인 동료가 이렇게 말했었다. "한국 약주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정말 놀라워. 만약 일본 사람들이 이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게 되면 무척 놀라게 될 거야." 막걸리와 한국의 전통주를 이야기할 때면 눈이 별처럼 반짝이던 이 일본인 동료를 통해 저자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다시 돌아보는 법을 배웠다. 대개의 것들이 그런 듯하다. 가까운 것에 대한 소중함과 소소한 가치를 알기가 사서삼경 떼기보다 어렵다.
면천두견주
면천두견주는 일제강점기와 1960년대 양곡정책으로 인해 쉬쉬하며 밀주로 조금씩 빚어지던 두견주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 86-2호로 지정된 것은 1986년의 일이다. 집안 전승으로 이어지던 비법으로 두견주의 명맥을 잇던 인간문화재 박승규 씨가 타계하면서 면천두견주는 다시 마을의 술이 되었다. 두견주를 이을 사라밍 없게 되자 2007년 여덟 가구의 마을 주민이 뜻을 모아 '면천두견주 보존회'라는 이름으로 문화재청에 의해 자격을 인증받은 것이다.
면천두견주는 물을 적게 잡아 빚는 술이다. 단맛에 귀했던 시절에 이 끈적한 단맛은 가히 부와 호사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맛을 살짝 받쳐주는 새콤함이 있어 그 맛이 지루하지 않다. 잘 빚은 술에서는 꽃 향과 과실 향이 나는데, 이 향이 꼭 진달래의 꽃 향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봄을 연상하기에는 충분하다.
여러 박람회장에서 만날 때면 떡 한 조각을 기어이 저자의 입에 넣어 주며 두견주 한 잔을 권하던 그분들이, 하얀색 가운과 모자, 장화를 신고 서늘한 발효실로 저자를 안내하는 이 어머니들이 맞는가 싶어진다. 발효조마다 날짜가 꼼꼼히 기록되어 있고, 현대적 양조 장비가 그득하다. 전통은 지켜가되 꾸준히 연구하고 현대적 기술을 접목하여 지금 사람의 입맛에 맞도록 하며, 청결히 빚어야 한다는 것이 면천두견주를 빚는 마을 어머니들의 지론이다.
한산소곡주
한산소곡주는 한국의 대표적인 앉은뱅이 술로 통한다. 이래 지방에서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는 이 서천의 주막거리를 지나야 한다. '시장기도 채울 겸, 딱 한 잔만.' 그러나 종내는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세 잔이 되고, 시를 읊고 달을 보며 일어나지 않을 핑계를 하나둘씩 보태다가 그만 과거 시험을 놓치고만 선비가 열에 하나쯤은 있었을 법도 하다.
오래 전부터 이 서천마을의 어느 집 대문을 두드려도 됫병에 담긴 소곡주를 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서천마을에서는 집의 대소사를 잊지 않고 술을 빚어가며 한산소곡주의 명맥을 유지하였고 전국에서 이 술의 명성을 알고 알음알음 찾는 사람들에게 조금식 팔아 자식들 교육과 생계에보태기도 했다. 현재는 서천군청의 주도로 70여 가구가 양조장 시설을 갖추고 주류 제조 면허를 취득, 술을 빚고 있다. 가히 '술 익는 마을'이다.
오래전, 술 공부하던 선생님들과 당시에는 서천에서 유일하던 우희열 명인의 한산소곡주 양조장을 방문하던 날, 아이 키만큼이나 커다란 항아리 속에서 익어 가는 한산소곡주를 보여주셨는데 아직도 한산소곡주를 마실 때면 그날의 감동이 떠오른다. 바가지로 술지게미를 헤쳐내면 바닷가 모래에 구덩이를 파고 놀던 어린 날의 기억처럼 노오랗게 익은 술이 쏘오옥 하며 고여서 올라오는데 그 광경을 보던 사람들이 모두 "이야!" 하며 탄성을 질렀다. 독에서 갓 떠낸 이 술을 한잔 맛보라며 권하시는데 '아……, 세상에! 이런 달콤한 꿀술이 또 있을까?' 입에 쩍 달라붙는 술맛에 웃음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역시 술은 술독에서 떠 마셔야 제맛이다.
맑은바당
제주의 양조장, 술도가 제주바당에서 생산하는약주인 맑은바당의 술맛을 처음 보던 날에는 그동안 맛보았던 전통 누룩을 사용하는 쌀 약주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원료 처리와 발효조건, 사용하는 누룩이나 물 사용량을 살펴봐도 비슷하게 술을 빚는 다른 곳의 술보다 무게도 덜하고 산미도 있어 따듯한 제주 날씨 탓이려니 생각도 했다.
시대가 변하면 입맛도 취향도 변한다. 지금은 산뜻한 산미가 나는 술이 많아졌지만 불과 몇 년 전 당시에는 전통 누룩을 사용하여 만든 약주의 대부분이 묵직하고 중후한 맛을 가진 술들이 많아, 화이트 와인의 산뜻한 맛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한국 약주가 단맛 위주라 지루하며 균형미가 부족하다 토로하곤 했다.
술에 있어 산미酸味는 악센트와도 같아서 지나치면 산만하고 부족하면 심심하다. 제주바당의 임효진 대표의 걱정과 달리 가볍고 새콤한 맛을 가진 이 술은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먼저 이름이 나서 '봄바람처럼 산들산들한 술'로 인기를 얻었다. 술의 산미는 일종의 이상 신호와도 같아 산미와 산패酸敗의 경계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풍정사계 춘'
2015년, 저자가 경험한 전통주 시장의 수면 아래는 분주했다. 특급 호텔 레스토랑과 여러 외식업체에서 전통주를 알리고 판매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젊은 청년들의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동아리가 여럿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미디어 매체의 관심 역시 어느 때보다 높았다. 무엇보다 국가 주요 행사의 만찬 석상에 전통주를 올리기 위한 노력들이 활발한 시점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취재와 자료를 요청하는 미디어 매체, 외식업체들의 자문 요청, 부처와 기관 담당자들의 질의가 하루에 몇 건씩 이어졌는데, 같은 술이라도 여러 변수와 상황을 고려해 응대해야하니, 메뉴 구성과 추천 사유, 한 줄 평 작성이 새벽까지의 일과가 되어 마치 시 구절 하나를 갈구하는 시인의 마음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한 해를 보냈다. 그 한 축에 풍정사계도 있었다.
풍정楓井은 '단풍마을 우물'이란 뜻이다. 과거엔 단풍나무의 우리말인 '싣나무'가 있는 우물 마을이기에 '싣우물 마을'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태어나서 이 동네를 오래 떠나본 적이 없는 화양 양조장의 이한상 대표가 자신이 빚은 술에 마을 이름 '풍정'을 붙이고, 춘하추동 사계절을 담아냈다. 봄 산의 진달래, 여름날 정자나무, 단풍 물든 가을 저녁, 겨울 굴뚝 하얀 연기는 오래토록 기억에 남았던 것이다.
술 빚는 할머니 곁에서 한 줌씩 고두밥을 집어먹던 소년이 이젠 할머니가 하늘에서 자랑스러워할 술을 빚는다. 그냥 술이 아니라 궁중이나 세도가에서 만들어 귀하게 썼다던 향온香醞곡을 만들어 빚는다. 향온곡은 거피去皮한 녹두를 물에 불렸다가 갈아 즙을 걸러내어 반쯤 타갠 밀에 물 대신 섞어 반죽한 뒤 누룩 틀에 단단히 밟아 따뜻한 곳에서 띄워 만든다. 게다가 녹두는 비싸다. 2016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증류주 부문에서 증류식 소주 풍정사계 동冬으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약주인 풍정사계 춘春은 2017년 한미 정상회담 만찬주로 선정된 뒤 '트럼프 술'이라는 별명이 붙으며 품절 사태를 불러왔다.
풍정사계 춘은 백설기로 밑술을 한다. 이것에다 향온곡을 섞어 밑술을 만들고 밑술이 완성되면 닷; 고두밥으로 덧술을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작은 옹기를 써서 발효하기에 생산하는 양이 많지 않다. 굳이 손 많이 가는 백설기로 술을 만드는 이유는 백설기로 밑술을 하면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을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미인주
사미인주는 장성의 유기농 쌀을 사용하는데, 장성군 삼계면에 있는 친환경 쌀 재배단지에서 계약 재배를 통해 사미인주에 사용할 쌀을 조달한다. 인공감미료는 스자 않는 대신 올리고당과 사과농축액, 꿀로 술에 단맛을 더했다. 막걸리를 만드는 과정은 기존의 대규모 막걸리 양조장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발효실의 온도를 13도에 맞추어 두고 낮은 온도에서 25일간 발효를 한다는 특징이 있다.
알코올을 만드는 1차의 과정과 숙성을 겸한 2차 발효를 통해 술에 원숙미와 청량함을 동시에 부여한다는 점 이외에도 사미인주는 사용하는 효모도 특별하다. 한국식품연구원에서 10여 년간 한국의 전통 누룩을 연구하여 찾아낸 토종 효모를 사미인주에 사용한다. 바나나향이 독특한 이 효모를 통해 사미인주에 감성을 더하고 좋은 원료와 현대의 양조과학을 더해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들여 사미인주의 원숙한 맛을 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막걸리는 다 같은 맛이라는 평을 많이 들었는데 그간의 인식도 많이 바뀐 듯하다. 갓 걸러 신선한 상태로 마시는 술 막걸리는 병 속에서 무궁한 변화를 보이니 오늘 마신 이 막걸리 맛이 내일 같으리라는 법이 없다. 지금 마시는 이 술 한 잔이 전 우주에서 유일한 맛을 가진 술이니 그 운명과의 조우에 집중한다면 술맛은 더 귀해진다.
얼추 천여 종이 넘는 막걸리가 더 다양한 모습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니 그 맛을 그저 보는 데도 평생은 걸릴 듯한데, 막걸리 하나하나가 시간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니 그 재미만을 풀어보아도 본전은 나올 듯하다. 먹고 취하는 것만이 술꾼의 자세는 아니다. 막걸리의 이 무한한 변신의 세계에 합류를 하게 되면 저렴한 막걸리라 마구 대하고 그저 취해 주사를 부를 여유는 없을 듯하다.
전통주 제조 과정을 이해하고 사랑하라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주폭酒暴에 대한 기사들을 접할 때마다 암담한 마음과 안타까움을 떨칠 수 없다. 주폭은 술의 문제가 아니라 술을 사랑하지 않아서 생기는 사람의 문제이다. 술 빚는 일의 고된 수고와 설렘을 안다면 함부로 술과 자신을 천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올바른 식습관과 사회인으로서의 예절을 위해 밥상 교육이 필요하듯 술 교육도 반드시 필요하다. 술은 단순히 취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이 술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라면서, 더불어 여러 거창한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이렇게 맛있는 한국의 전통주를 더 많은 사람들이 맛보게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