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가 - 김대식의 로마 제국 특강
김대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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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로마로 가고, 서양 문명의 대부분은 로마 제국에 대한 '각주'일 뿐이기에,  이 책 역시 로마 제국의 흥망사를 소개할 것이다. 하지만 로마 제국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인류 문명이 시작된 '레반트'라는 거인의 어깨에 가장 확실히 앉았기에 로마는 성공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 '서문' 중에서

 

 

모든 제국은 언젠가는 과거의 제국일 수밖에 없다

 

책의 저자 김대식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류의 과거와 현재 나아가 미래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융합적 지식인.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이자 뇌과학자이며, 건명원建明苑의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뇌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MIT에서 뇌인지과학 박사후 과정을 밟았다. 일본 이화학연구소 연구원,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조교수, 보스턴대학교 부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김대식의 빅퀘스천>, <김대식의 인간VS기계> 등이 있으며, <조선일보>에 '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를 연재하고 있다. 그는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기술과 부를 누리는 오늘날의 세계가 멸망한 로마 제국의 역사를 좇고 있다고 말한다. 영원할 것만 같던 제국이 사라졌듯이 우리의 세상도 치명적인 위기에 직면했다면? 놀랄 만한 과학적 혁신에 심취한 21세기, 우리가 여전히 로마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를 이 책에서 밝힌다.

 

책은 총 4부(기원, 멸망, 복원, 유산)로 구성되었다. 맨 먼저 로마 제국이 인류 문명의 '기원'이 된 족적을 좇는 것을 시작으로, 위대했던 제국이 '멸망'하면서 우리에게 어떤 인사이트를 남겼는지 그리고 로마의 흔적은 오늘날까지 어떻게 '복원' 되었는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어떤 '유산'을 남기는지를 살펴본다.

 

 

 

'기원-어떻게 로마는 세상을 정복했는가'

 

3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 지역에서 탄생한 이후부터 로마 제국이 탄생하기까지 역사의 중요한 지점들을 짚어내며, 로마가 처음부터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에 강력한 제국으로 발전하고,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유럽을 넘어 전 세계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문명이란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인류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위대한 제국 로마도 결국 멸망을 피하지 못했다. 영원한 제국은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흥미롭게도 제국을 세운 로마보다, 제국을 다시 잃은, 멸망한 로마가 오늘날 우리에게 더 많은 교훈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로마는 멸망하기를 거부했기에 어쩌면 여전히 오늘날까지 먼 거울distant mirror로서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비추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유럽이 아닌 중국이 전 세계를 지배했다면,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아마도 현재의 한국인들은 한복을 입고, 바닥에 앉아, 붓글씨를 쓰고 있을 것이다. 이는 전 세계인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닌 노자와 공자가 현대 문명의 기둥이 되었을 것이다. 심지어 실리콘밸리는 성공한  IT기업의 백만장자들의 99칸 기와집으로 가득할 것이다.  

 

로마의 문명은 현실주의에 기반하고 있었다. 효율성과 유용성을 추구한 듯 싶다. 즉 전통을 고수하기보다는 지금 도움이 된다면 즉시 바꿔버린다. 오늘날 로마를 과거 미국에, 그리고 그리스를 유럽에 비유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문명은 그리스, 유럽에서 왔지만 현실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로마였고, 과거 미국이었다.

 

로마가 생각한 전술은 혁명적이었다. 당시의 지중해 해상 무역은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가 장악하고 있었다. 레반트와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인도와 지하자원이 풍부한 이베리아(지금의 스페인 지역)까지 독점하고 있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카르타고를 물리치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미래가 없다는 걸 이미 깨닫고 있었다. 육지에서의 전쟁엔 능한 로마는 아예 바다를 육지로 바꾼다. 이를 위해 개발한 게 '코르부스'다. 끝이 뾰족한 긴 다리를 카르타고의 배에 연결해서 마치 육지에서의 전쟁처럼 수행했던 것이다.

 

 

 

 

'멸망-왜 위대한 로마 제국은 무너졌는가'

 

찬란했던 로마의 영광이 어떻게 사그라들었는지를 분석한다. 전쟁에서의 계속된 패배, 황제의 급속한 교체, 국가 재정의 파탄 등등. 3세기 로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닥뜨린다. 탄생할 때 이미 멸망의 씨앗을 안고 태어난 로마 제국의 비밀을 통해 시대의 거대한 흐름과 이에 맞서는 인간의 한계를 되짚어본다.

 

아주 작은 마을에 불과했던 로마는 이미 앞서 있었던 문명을 통해 지중해 주변의 전 세상을 지배하는 제국으로 탈바꿈한다. 그러나 찬란한 로마의 영광도 결코 영원하지는 못했다. 로마는 왜, 언제부터 멸망하기 시작했을까? 과연 로마는 멸망한 것일까? 우리는 여전히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로마 제국에 살고 있지는 않을까?

 

로마는 처음부터 세계를 정복하려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전쟁을 했다. 외부로부터 침략받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싸운 결과 승리를 쟁취했던 것이다. 그런데, 점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로마 공화정 때엔 직업 군인이라는 제도가 없었기에 군인은 모두 시민 군인이었다. 더구나 자력으로 무기와 갑옷을 구입할 수 있어야만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로마의 팽창은 문제점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의 교통수단으로는 귀가할 때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도보로 영국과의 전쟁에 참여했다면 이탈리아로 돌아오기까지 10년 이상 걸릴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장기 출정은 사회적으로 파장을 몰고왔다. 한 가정에서 장성한 아버지와 큰 아들이 전쟁에 참가한다면 이 집안의 생계엔 분명히 차질이 생긴다. 결국 남겨진 가족은 고율의 부채를 질 수밖에 없고, 이를 상환히지 못해 마침내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또 로마가 전 세계의 정복을 통해 수백만 명의 노예를 챙길 수 있었고, 노예들은 모두 전쟁 자금을 많이 납부한 세넥스의 차지가 된다. 이로 인해 중산층 누구도 돈을 받고 일자리를 얻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무료로 일하는 노예가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로마의 중신층조차 직업울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공화정 마지막 시기엔 로마 실업률이 70~80퍼센트에 육박했다고 한다.

 

로마 공화정의 문제점

 

첫째, 로마 안에서의 불평등 가속화

둘째, 로마와 이탈리아 간의 차별성

셋째, 노예의 반란(스파르타쿠스 반란)   

 

이후 카이사르가 크라수스, 폼페이우스와 함께 1차 삼두정치를 시작, 최후의 승자가 된 뒤 종신 독재관으로 정권을 장악한다. 하지만 브루투스에 의해 암살당하고, 이어서 2차 삼두정치(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를 거쳐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이 되었다. 로마에 다이너스티, 즉 왕조가 생겼다.

 

한편, 마리우스에 의해 직업 군인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처음엔 이 제도가 사회적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좋은 대책처럼 보였는데, 나중엔 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이끈 주된 계기가 되고 말았다. 당시 로마 안에서는 피를 보는 싸움을 금지하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런데, 마리우스의 대대적인 술라 당 숙청으로 인해 그리스와 소아시아에 있던 술라가 군대를 이끌고 로마에 입성해 마리우스를 추방시키고 만다. 한 동안 잠잠하다가 술라가 은퇴하자 또 다시 마리우스 당이 로마로 진격해 술라 세력들을 대대적으로 학살하는 처참한 모습을 연출했다.

 

3세기에 이르러 로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235~284년에 로마에는 무려 26명이나 되는 황제가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6개월 이상 재위하지 못했다. 심지어 21일 만에 목숨을 잃는 황제도 있었다. 3세기 로마는 다음의 세 가지 커다란 문제점에 노출되어 있었다.

 

첫째, 후계자 선정 규정이 없었다.

둘째, 황제 자리의 권위가 실추되었다.

셋째, 직업 군인들의 보상 문제 발생

 

이런 위기 상황을 해결하고자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문제의 핵심을 파악, 매우 파격적인 해결책을 찾아냈다. 첫째,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할한다. 둘째, 후계자 선정 절차를 규정화해 네 명의 황제들이 통치하는 4두 정치(테트라키)를 표방한다. 셋째, 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가격을 통제한다. 20년 임기를 마치고 은퇴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뒤를 이어, 콘스탄티누스 1세가 등장한다. 전임자의 정책 중 동로마와 서로마 분할책 외에는 모두 폐기하고 새로운 개혁을 표방한다.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발표, 기독교를 정식 종교로 채택

수도를 콘스탄티노플(오늘의 이스탄불)로 이전

 

 

3세기의 혼란을 겪은 로마는 410년 게르만 반달족에 의해 로마가 함락되고 만다. 1000년 전 켈트족에게 함락된 후 단 한 번도 점령당한 적 없는 로마. 영원한 제국의 영원한 수도 로마가 함락되다니! 로마가 함락되고 사라진다면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어 보였다. 인류 역사에 필연적일 것 같았던 로마 역시 하나의 도시에 불과하다면 인간의 조건은 결국 무의미하다는 말이 된다. 
 

'복원-무엇이 로마의 역사를 이어지게 하는가'

 

멸망 이후 결코 사라지지 않은 로마의 흔적을 추적한다. 문명은 '운명의 바퀴'에서 벗어나 다시 미래를 향해 내딛기 시작한다. 유럽은 신과 종교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 속의 인간에 주목한다. 15세기 유럽은 로마의 지식, 인쇄 기술,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으로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행운을 부여받는다.

 

3세기의 위기로 로마의 내부 사회 시스템은 붕괴되었고 생산성 또한 현저히 낮아졌다. 도로는 망가지고 무기 생산도 원활하지 않았다. 로마의 장점인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하니 전쟁은 이제 개인 간의 전투력 싸움으로 바뀌었고, 여기에서 로마가 패권을 거머쥐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도 로마인들은 이 과정을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과거를 동경하며 결국에는 이를 신에 대한 믿음 문제로까지 투사했고, 새로운 종교까지 횡행하기에 이른다. 로마는 그렇게 멸망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멸망 원인을 찾지 못한다. 로마 멸망의 최후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그들이 성공가도만을 달렸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모든 나라가 도약을 위한 기회를 한 번씩은 부여받는다. 일본은 그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고, 중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명나라 때 일곱 차례의 대원정을 이끈 정화淨化의 모든 성과 또한 영락제永樂帝가 죽은 뒤 황제가 된 홍희제洪熙帝에 의해 철저히 폐기된다. 역사가 준 기회도 함께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 정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탈원전脫原電'도 이와 유사하다.  

'유산-누가 로마 다음의 역사를 쓸 것인가'

 

'세상은 발전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진리를 발견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놀랄 만한 혁신을 이룬 오늘날, 우리의 세계는 여전히 중세기의 전쟁을 치르고, 가속화되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 자유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하는 등 전 세계는 멸망한 제국의 형상을 닮아가고 있다.

 

 

우리는 흔히 인공지능 시대의 일자리 걱정을 한다. 직업의 47퍼센트가 사라진다는 예측에 실질적인 위기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과정을 로마 역사 속에서 봤다. 제국 팽창의 결과로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시민들은 생산력을 상실하고, 극심한 부채에 시달렸다. 여기에다  정복을 통한 노예의 증가로 직업까지 잃게 되는 상황이 도래했었다.

 

"과거의 노예는 현재나 미래의 인공지능과 같다"

 

우리들은 사회는 언제나 발전한다는 순진한 믿음을 갖는다. 하지만 찬란했던 로마 제국도 멸망했고 이후 유럽은 1000년 동안 중세기를 살았다. 암흑의 시대가 우리에게만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회 발전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발전을 위해 싸우고 노력하지 않으면 역행의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다.

 

 

역사를 모르면 역사는 반복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전 세계의 움직임은 멸망한 제국의 역사를 좇고 있는 듯하다. 역사를 모르면 역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물론 역사를 알아도 반복되는 역사를 모두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를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조금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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