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 12가지 '도시적' 콘셉트 김진애의 도시 3부작 1
김진애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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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이야기엔 끝이 없다. 권력이 우당탕탕 만들어내는 이야기, 갖은 욕망이 빚어내는 부질없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얽히며 벌이는 온갖 갈등의 이야기, 보잘것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삶의 세세한 무늬를 그려가는 이야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수많은 인간관계의 선을 잇는 이야기,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인간의 한계를 일깨우는 이야기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도시 안에 녹아 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열두 가지 도시적 콘셉트

 

책의 저자 김진애경기도 군포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에 MIT에서 건축학 석사를 취득하였으며 1988년 동 대학원에서 도시계획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 이후에는 '서울포럼'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며 건축도시기획, 디자인개발, 출판기획을하였으며, 건축사무소 'SF도시건축'를 운영하였다.

 

주로 대단위 도시 환경 공학에 관한 연구 및 프로젝트를 수행하였으며 행정신수도 기본계획(1979), 산본 신도시 도시설계(1989), 지하도시개발구상(1993), 부산 수영정보단지 마스타플랜(1996), 인사동길(2000) 등의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다. 1994년 타임지가 선정한 '차세대 주목할 만한 인물 100인'에 당시 한국인으로써는 유일하게 선정되었으며, 18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햇다.

 

사실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도시'를 공부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별로 없다. 도시 여행이나 부동산 투자 등 뚜렷한 목적을 갖고 특정한 도시를 살펴볼 순 있어도, 도시 자체를 공부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총 4부에 걸쳐 12가지 콘셉트를 다루는 이 책은 도시 또한 얼마든지 이야기로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도시 문제가 우리 삶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도시를 이해함으로써 우리 삶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여실히 깨닫게 해준다.

 

 

 

"도시는 모쪼록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이야기가 되면 우리는 더 알게 되고, 더 알고 싶어지고, 무엇보다 더 좋아하게 된다. 자기가 사는 도시를 아끼고, 도시를 탐험하는 즐거움에 빠지게 되고, 좋은 도시에 대한 바람도 키운다. '살아보고 싶다, 가보고 싶다, 거닐고 싶다, 보고 싶다, 들러보고 싶다' 등 '싶다' 리스트가 늘어난다. '싶다'가 많아질수록 삶은 더 흥미로워진다"

 

익명성~ 도시적 삶의 근본 조건

권력과 권위~ 권력은 도시를 유지하는 힘

기억과 기록~ 무엇을 어떻게 기록하는지

알므로 예찬~ 어떻게 알수록 예찬할 수 있는가

대비로 통찰~ 다른 문화권의 도시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스토리텔링~ 특유의 스토리를 안고 잇다

코딩과 디코딩~ 좋은 함의를 코딩한 공간이 많을수록 좋은 도시

욕망과 탐욕~ 인간의 욕망으로 태어나고 커지고 운영되는 공간

부패에의 유혹~ 부패의 유혹에 시달린다

이상해하는 능력~ 이방인의 시각으로 본다

'돈'과 '표'~ 이제 어떤 미래를 선택해야 할까

진화와 돌연변이~ 도시 만들기는 어떻게 접근

 

익명성이라는 조건 위에서는 길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도시의 약속이다. 길을 다니는 즐거움을 만드는 것은 가장 고도화한 도시 예술이다. 광장에서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익명의 시민들을 보호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시의 약속이다. 광장에서의 환희를 독려하는 것은 순간이나마 도시의 익명성을 넘어서게 하는 가장 고도화한 도시 예술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길과 광장에 대해 저마다 어떤 감정을 갖고 있다. 추억, 그리움, 설렘 그리고 부러움 같은 것들이다. 아마도 '문화 유전자'로 사람들의 마음 깊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시에서 길과 광장이 끊임없이 재소환되는 현상을 봐도 그렇다. 유럽 도시들은 길과 광장에 대해서만큼은 일지기 도를 튼 듯싶다.

영화감독들은 우리 공간에서 나타나는 혼성적 성격을 아주 잘 포착해내곤 한다. 우리 영화가 급성장한 배경에는 우리 공간의 특성에 대한 긍정이 작용한 듯하다. 공간 감성과 영화 감성이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공간적 상상력과 영화적 상상력이 같이 성장했다고 할까? 이명세 감독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부산의 40계단과 달동네의 미로와 같은 골목 세계의 심리를 귀신같이 포착해냈다.

 

 부산 중앙동 40계단

 

박찬욱 감독은 〈박쥐〉에서 일본풍과 근대풍과 전통 한복집의 혼성적 공간이 풍기는 기묘한 욕망의 세계를 그려냈다. 〈아가씨〉〈올드보이〉처럼 완벽하게 설계한 세트 공간에서 연출된 감성과는 또 다른 리얼한 상상력이다. 봉준호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 〈플란다스의 개〉에서 시대 의식과 공간 의식을 버무리는 솜씨에 감탄했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고층 아파트 단지의 외피가 품고 있는 공간들, 그 안을 찾아다니고 헤매고 숨으며 펼치는 좌충우돌과 희망을 그려냈던 그 봉준호 감독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설국열차〉에서 인류적 군상을 포괄하는 선형이자 원형적인 열차의 잡종 공간을 그려냈다.

 

나는 '앉싸(양변기에 앉아서 소변보기)'와 '서싸(양변기에 서서 소변보기)'가 그토록 널리 쓰이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집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뒷말거리'였다는 것도 알았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키우며 얼마나 속을 끓이는지 새삼 알게 되기도 했다. '앉싸'를 잘하던 서너 살 아이가 유아원에 다니면서 '서싸'를 고집하게 되는 현상에 한숨을 쉬게 된단다.

 

본능과 습관을 두고 얼마나 많은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지, 남녀가 같이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 깨달았다. 상당한 남자들이 이러한 문제 제기 자체를 '모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단순하게 청결과 청소의 기준으로만 볼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심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가 도시에 미치는 악영향, 즉 도시 차원에서는 아파트 단지가 어떤 문제를 일으킬까? 사회 심리가 아니라 기능적인 측면만 따져보더라도 여러 문제들이 있다. 첫째, 길이 없어진다. 정확히 말하면 길이 줄어든다. 길이 차지하는 면적은 비슷할지 몰라도 길이로 보면 3분의 1이나 4분의 1로 줄어든다. 재개발을 생각하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동네를 실핏줄처럼 엮던 골목길들이 모두 단지 안에 포함되어버리고 단지를 에워싸는 큰 도로만 생기는 것이다.

 

요즘은 통으로 지하 주차장만 만드는 것이 대세라서 아예 아파트 단지 내에는 비상시 소방도로만 만들고 나머지는 다 보행로다. 이 보행로는 주변 동네 사람들에게 쉽게 오픈되지 않는다. 갈수록 지역 이기주의가 작동하다 보니 배타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동네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길이 뚝 끊겨서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흔히 생긴다.

 

서울 중계동 백사마을

 

달동네는 설계해서는 만들 수 없는 공간이다. 건축가 없는 건축, 도시계획가 없는 도시의 정석이다. 필요한 대로 생기고 필요한 대로 변한다. 그러면서도 도시를 이루는 기본적인 룰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개별적인 변화와 다양성과 즉흥성과 의외성이 흥미진진하다. 그렇게 50년, 60년, 70년을 살아내는 생명력을 유지한다. 과연 우리가 만든 신도시들은 이럴 수 있을까? 

 

 

도시 이야기는 영원할 것이다

 

도시는 영원하지 않겠지만 도시 이야기는 영원할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 폴리스를 만들며 살 것이다. 폴리스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도시적 콘셉트'를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녹여내느냐에 따라 우리의 도시 이야기는 풍요로워지고 우리들의 도시적 삶은 풍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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