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
이진송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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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여전히 귤이나 까먹고 넷플릭스를 보면서, "아 운동해야 하는데.." 하고 중얼거리는 침대 위였다. 운동을 시작해서 인생이 달라진 사람들을 관찰하고, 책과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크으으~ 멋지다! 그리고 오만상을 쓰며 터덜터덜 헬스클럽에 갔다. 운동하러? 아니, 몇 달간 방치했던 운동화 찾으러.. 하도 안 가서 기한은 옛날 옛적에 만료됐고, 안 찾아가면 버린다고 문자가 오면 그제야 무거운 엉덩이를 떼는 나는 걸음이 느린 아이. - '프롤로그' 중에서

 

 

오늘 헬스클럽 다녀가셨나요?

 

책의 저자 이진송은 삶에서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뺐을 뿐인데, 처음 보는 사람들마저 대뜸 그녀의 비참한 미래를 예언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성의 삶은 '아내'나 '엄마'로 마무리되어야만 해피엔딩이라는 낡은 믿음을 거부하고 원하는 대로 살기로 했다. 비혼非婚이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삶의 한 방식으로 존중받기를 바라면서.

책상에만 붙어 있고, 다이어트에 집착하다 급격한 체력 저하를 겪었던 그녀는 잘 지탱해주는 힘을 기를 목적으로 운동에 재미를 붙이는 중인 운동 새싹이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 여성학을 전공했고, 동 대학원에서 한국현대소설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3년부터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이야기하는 독립잡지 <계간홀로〉를 창간하여 발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연애하지 않을 자유>,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 <미운 청년 새끼>(공저) 등이 있다.

 

저자는 헬스클럽에서 운동화를 찾고 또 다른 운동을 등록했다. 이번만큼은 결코 기부천사가 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여성이 헬스장을 찾는 목적은 대체로 다이어트 때문이다. 그녀도 20대엔 그랬다. '몸매 관리'에만 초점이 맞춰진 여성의 운동을 체력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담론이 생기면서 체중과 운동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편안하게 운동할 수 있었다.

 

바깥세상은 마른 몸을 얻기 위해 체력이나 건강이 망갸져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운동을 배우러 가면 여성이기에 '예쁜 라인', '종아리 굵어지면 안 되니까', '승모근 발달 안 되게 조심하고' 등등의 말을 듣게 된다. 수없는 헬스장의 실패를 경험으로 그녀가 얻은 깨달음은 안 하는 것보다 운동을 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내장비만 위험군에 속하면서 근력 부족이고 폐활량 검사고 버거운 비실비실 인간이지만 오늘도 운동을 나간다. 예쁜 몸이 아니라 체력을 비축하려는 마음으로. 이 책은 그녀의 좌충우돌 운동 일기다.

 

 

 

 

"언니, 저 근데 진짜, 인성 파탄 날까 봐 운동하는 거예요"

 

어느 날 고교 후배가 그녀에게 운동 상담을 요청했다. 근력 미달, 체지방 과다에다 헬스장에 나가면서도 안 가도 될 핑계를 찾는 그녀에게 말이다. 인생이란 다 그렇다. 때때로 더 부족한 사람은 부족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녀는 여섯 살에게 간판을 읽어주는 여덟 살의 태도로 진지하게 대화에 임했다. 결국 필라테스를 하기로 결심한 후배가 이런 말을 남겼던 것이다. 

 

직장인들은 여러 형태로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마법의 단어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다. 체력이 떨어지면 사소한 실수에도 지나치게 엄격해지고, 퇴근하고 만나는 가족에게 짜증이 난다. 다정도 체력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일터가 자기 자신을 빨아먹는 대로 내버려뒀다가는 애먼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게 된다. 인성 때문에 운동한다는 후배의 말은 이런 맥락이다.

 

비록 여성이 아닌 남성이지만 이 대목에 격한 공감을 느낀다. 나의 경험을 잠깐 언급해본다. 일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노는 게 좋아서인지 몰라도 나는 결혼을 의도적으로 기피하다가 삼십대 끝자락에 친척의 중매로 만혼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회사 내에서의 나의 위치는 한 부서를 책임지는 차석자였다. 일이 정말 많았다. 업무의 성격이 금융 비즈니스였던 터라 부댖끼는 사람들 속에서 무척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귀가할 때는 거의 녹초 상태였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신혼 초라는데, 지방 출장 업무가 잦은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귀가할 때는 아내의 가벼운 스킨십조차 귀찮게 여겨질 정도로 체력이 방전된 상태였던 것이다. 신혼 초, 우린 자주 다투었다. 이런 이해를 서로 소통하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승부 따위는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이는 직장인들이 즐겨 시청했던 TV 드라마 <미생未生>의 한 장면이다. 드라마의 주인공 장그래는 바둑기사 출신인지라 '승부'에 관한 내용들이 많다. 인생 승부는 사실상 마라톤과 같은 장기전을 치른다. 승부에서의 최후 승리는 반드시 체력이 담보되어야만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가 많을수록 회사에서의 고속 승진은 따논 당상이다. 하지만 이를 추진하고 완결할만한 체력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스스로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발로 차 버리게 되니까.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직장인의 별이라는 임원 자리를 사십대 초에 꿰찰 수 있었던 것도 강한 체력에게 신세를 많이 진 셈이다. 그렇다고 피트니스 센터를 내집 삼아 체력운동을 열심히 했던 것은 아니다. 직장인 신분 시절엔 출근 전 아침 일찍 수영장을 찾았던 게 전부였다. 순전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덩어리 덕분이었다. 마치 회사와 결혼한 사람처럼 직장생활에 몰입을 했던 나였기에, 나중에 이 체력을 아내에게 많이 베풀어야 했음을 깨닫고 크게 후회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으니 말이다. 각설하고 체력은 누구에게나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책엔 저자의 경찰서 조사 일화도 있다. 내용인 즉, '묻지마 폭행'을 당한 신분으로 경찰서에서 피해자 진술이 네 시간 넘게 진행되었는데, 체력이 딸려 형사의 농간(?)으로 가해자를 선처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나도 이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빨리 귀가해서 쉬고 싶은 사람을 이렇게 장시간 붙들고 있으면 누구라도 빨리 종결짓고 싶을 따름일 것이다. 나도 새벽 2시쯤 일과를 마치고 회사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오는데 차의 진행을 들이막고 행패를 피우는 통에 나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인근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데, 정작 조서 작성에 소용되는 시간보다는 대기하는 시간이 몇 배나 길었기에 빨리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심지어 괜히 신고했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정말 우습게도 '쌍방 과실'로 사건을 종결하고 말았다. 이 또한 체력과 상관되는 것이다. 

 

책은 재미난 일화의 연속이다. 아쿠아로빅을 다니던 시절, 저자의 수영장에서 일어난 일들은 배꼽을 잡게 한다. 나도 수영장을 다녀본 경험이 있기에 충분히 연상되는 그림이라 읽는 내내 입가의 미소를 지울 수가 없었다. 수영장에서의 행동은 저절로 조심스러워지게 된다. 왜냐하면, 남녀노소가 함께하는 공유공간이기에 말이다. 저자의 일화를 소개하면 이렇다.

 

수영장의 인싸는 한 명이 아니었다. 샤워실 입구에서 마주친 또 다른 회원님은 자신의 소지품에 내가 얻어맞자 "아이구, 어떡해~!" 하면서 손으로 한참 주물러주었다. 어디를? 방금 맞은 내 엉덩이를…. 아쿠아로빅이 끝나면 내 옆줄에 있던 분이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힘들죠?" 하고 말을 걸었다. 탈의실에서 '올바른 아쿠아로빅 기본 자세'를 열성적으로 강의하던 회원님은 옆에 있던 나에게 "맞지? 한번 해봐요!" 하고 말했다. 나는 팬티를 끌어 올리다 만 어정쩡한 자세로 '누구세요?' 하는 얼굴을 했지만, 회원님의 눈은 역량이 뒤떨어지는 선수를 재촉하는 코치처럼 진지했다. 로비에 나와서 머리를 말리는데 갑자기 앞에 당근 조각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침 수업이 끝나면 로비에 모여앉아 집에서 싸온 음식을 나눠 먹던 무리 중 한 분이었다. 받아서는 안 된다고 나의 본능이 소리 질렀다. 그러나 유교 국가에서 32년 살아온 내 손이 더 빨랐다.

 

IMF 이후 회사를 퇴사하고 내 사업체를 꾸릴 때 나는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매년 신년 모임으로 한라산 등산을 해 왔는데, 어느 해엔가 산행길이 몹시 힘에 부쳤다. 죽을 힘을 다해 눈길을 헤치며 산 정상에 오른 후 하산길엔 거의 구르다시피 했다. 또 눈이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하산한 후, 샤워를 마치고 체중계에 몸을 실었더니 눈금이 가리키는 숫자가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100kg 부근에서 왔다갔다 했다. 그렇게 많은 땀을 흘렸는데 이 정도 수치라면 이미 난 킬로그램이 아니라 몇 톤으로 불러야 될 판이었다.

 

상경해서 아침 운동이 시작되었다. 평소 성격이 먼저 부딪혀보는 사람인지라 행동으로 먼저 나타났다. 얼림픽공원 산책으로 시작해서 트래킹이 구보로, 이후 가벼운 뛰기로, 나중엔 마라톤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나의 체중은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감량되면서 저주의 지방살들이 불에 타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해엔 나는 마라톤 대회에 12차례 참석, 모두 완주했다. 나의 체중은 70언더 였다. 운동도 나의 심적 상태가 편안해야 그리고 목표 의식이 뚜렷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끝으로 저자의 좌충우돌식 운동 도전이 중도에 그치지 않길 바라면서 글을 마칠려고 한다.

 

 

 

비만을 혐오하는 사회

 

우리들의 일반적이면서 보편화된 시각이 몸집이 뚱뚱하면 미련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뚱뚱한 몸집으로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들도 있다. 몸집은 자신이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수준이라면 그 어떤 형태라도 무방할 것이다. 마른 몸집을 가졌다고 재빨리 행동하진 않는다. 나는 조직 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우를 무척 많이 보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비만을 혐오하는 풍조가 만연되어 있다. 비만과 운동의 상관관계를 따지기보다는 운동은 체력 향상을 위해 필수적이란 사실을 명심하먼 된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굳이 헬스장이 아닐지라도 평소 체력 단련에 노력을 기울이는게 옳다. 끝으로 자기 고백식 에세이를 낸 저자의 운동 도전을 끝까지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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