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의 역사 - 평평한 세계의 모든 것
B. W. 힉맨 지음, 박우정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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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규모와 시각의 차이 때문에 평면을 '모호'하게 인지한다. 바다에서 배는 평평한 대양 위에 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실제로는 곡선이지만 착각하여 평평하게 보일 뿐이다. 반면에 우주정거장에서지국의 둥근 모습을 바라보면 평면성이라는 개념은 모두 사라진다. - '당연한 듯 특별한 평평함의 세계' 중에서

 

 

평면의 실체를 파헤치다

 

책의 저자 B. W. 힉맨는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의 역사학과와 서인도대학교의 명예교수이다. 역사와 지리학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그는 서인도대학교의 모나 캠퍼스에서 교편을 잡으며 자메이카에서 약 30년간 살았다. 음식의 역사에 관심이 깊었던 그는 2008년에 <자메이카 음식 : 역사, 생물학, 문화>를 출간했고 이후에는 노예의 역사를 다룬 책을 썼다. 대표적인 저서로 <식량이 어떻게 역사를 만들었는가>(2012), <카리브 해의 역사>(2011) 등이 있다.

 

고대로부터 평면은 인간들에게 당연하고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우리들은 평면이 지배하는 공간에 산다. 이를테면 평평한 종이, 평면 디스플레이, 평평한 바닥과 벽, 도로와 철도, 의자와 테이블 등 평면은 우리들이 살고있는 이 세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일상생활 대부분은 평면 위에서 이루어지는데도 우리들은 왜 평면성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할까? 평면은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운 것일까?

 

평면은 굴곡 없음, 수평, 예측성을 암시한다. 이러한 속성은 이동과 활동에 최적화된 것으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효용성이 크다. 반면에 평면은 단조로움, 단일성, 부재, 결핍, 평범, 결함과 같은 뜻도 담고 있다. 흔히 우리는 흔히 평면적인 것보다 입체적인 것을 더 높게 평가한다. 평평한 풍경은 특징 없음, 지루함, 흥밋거리가 없음, 우울함으로 폄하되기 쉽다.

 

 

 

 

 

정말로 지구는 둥글까?

 

 

우주에서 바라보면 우리들이 살고있는 지구는 거의 완벽하게 둥근 구형球形이다. 하지만 이는 최근에 들어서 비로소 나타난 시각이다. 과거엔 두 다리를 닿고 있는 이 땅을 평평한 것으로 이해했다. 인도의 가장 오래된 경전 베다에 의하면, 우주는 본디 3 부분으로 구성된 통일체인데, 신이 지구, 우주, 하늘로 나누었다고 한다. 5~9세기 인도에서 편찬된 산스크리트어 문헌들은 지구를 달걀 모양의 우주 중심에 위치한 '평평한 원판'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들이 지구의 표면을 평평하다고 이해하면 어려운 질문에 마주치게 된다. 즉 지구는 어떻게 안정성을 유지했을까? 또 일출과 일몰, 별들의 움직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날씨가 맑은 날에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별들이 쏟아질 듯 밝게 빛나고 꽤 가까이 있는 듯하지만 그래도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존재였다는 점이 한몫을 했다.

 

 

반면에 지평선에서 땅과 하늘이 만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착각이라는 것은 땅을 조금만 돌아다녀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둥글게 펼쳐진 듯 보이는 창공과 근본적으로 평평해 보이는 땅 역시 착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겨났다. 많은 문화에서 택한 해결책은 지구가 바다에 떠 있는 원반이고 단단한 반구로 덮여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었다. 이런 지구 중심 모형에서 평평한 땅은 안정적으로 고정되어 있고 천체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이동했다.

 

 

이 모형의 주된 목적은 진짜 미스터리인 지구와 하늘 간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신 혹은 공간의 기원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인지된 우주에 관한 수수께끼였다. 물질이 생기려면 창조 행위가 필요하지만 공간은 그냥 한없이 그 자리에 있다. 공간은 창조되어야 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기정사실로 취급된다. 이러한 이해는 평면 개념이 당연시되는 데 기여했다.

 

고대 중국의 우주관

 

개천설蓋天說~ 하늘이 '뒤집어놓은 그릇' 모양의 지구를 덮고 있으며, 땅은 '장기판처럼 사각형'

혼천설渾天說~ 하늘이 땅을 둘러싸고 일주운동을 하며, 땅은 구형

 

중세 시대 내내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된 우주론 문헌은 주로 유럽의 학자들과 성직자들만 보았고 지구가 네모라는 개념을 포함한 이론적 논쟁이 13세기까지 지속되었다. 그래서 자국어로 된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전 세계를 세 부분으로 나눈 평평한 원으로 상상했다. 이는 T-O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데, O안의 T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이 있고, 원의 바깥 띠는 바다였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계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다.   

왜 평평하게 만들어야 할까?

 

 

농업은 토목공사에 크게 공헌을 했고 대개는 지역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농업은 또 삼림의 벌채를 유도하고 숲을 평평하게 만든 곳에 공터를 만들어냈다. 처음 농업이 등장한 지역은 작물 재배, 가축 사육, 그리고 도시화가 시작된 지역과 마찬가지로 숲이 울창했다. 또 불의 사용은 사냥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도록 숲이 덮힌 지역을 파괴, 그 자리에 탁 트인 초원이 들어서도록 만들었다.

 

전반적으로 현대의 자본집약적 농업은 평평한 땅, 대규모 농장과 경지를 선호한다. 경작과 수확에 사용되는 고가의 대형 농기계들을 이런 환경에 도입했을 때 수익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계 최상의 커피는 가파른 비탈에서 자라지만 수확용 기계는 그런 지형에서 넘어져버리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기계를 값비싼 노동력의 대체품으로 생각하는 지역에서는 가파른 비탈보다 품질은 떨어지지만 상대적으로 평평하다는 이점이 있는 환경에서 커피를 재배한다.

 

 

이렇게 농업의 경제학평평한 부지에 대한 선호(특히 평지가 매우 넓을 때)와 대형 기계를 사용할 수 있는 농지를 만들고자 땅을 평평하게 만들려는 동기를 불러일으킨다. 쌀이나 밀, 그리고 옥수수 등 곡물 농사에서 현대식 농기구들은 변화 없는 평평함을 요구한다. 1900년경 증기기관을 농기계에 사용했을 때는 땅을 매끈하게 고르고 엔진이 평평하게 유지되도록 기계 앞쪽에 무거운 롤러를 부착했다. 이렇게 땅의 표면을 관리함으로써 자본주의에서 강조하는 최대의 수익을 내는 형태가 가능해진 것이다. 평평한 땅은 농업의 원자재인 셈이다. 그래서 농지의 평평함은 경제적 의사결정의 산물이다. 

전달하는 매체는 평평하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문자, 도형, 그림 등 수많은 형태의 표현에는 일반적으로 평평한 표면을 이용해왔음을 알 수 있다. 비록 평평하고 매끄러운 표면이라 할지라도 나무 몸통, 돌기둥 등은 비교적 관리가 어려웠다. 그리고 판독도 힘들었다. 또한 동굴의 벽면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휴대성이 보장되지 않았다. 그래서 쓰기와 읽기라는 측면에서 평평한 표면에 대한 수요는 증가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보존이라는 효율성을 감안할 때 가볍고 부피가 작은 표면이 당연히 필요했던 셈이다.

 

기원전 3000년 경, 고대 이집트에선 혁신적인 파피루스가 등장했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표면을 만들었고 보통 20장을 연결해 두루마리로 만들었다. 특히, 표준화된 너비와 품질로 만들어져서 평평하고 유연한 표면을 제공할 수 있었다. 문학적인 글을 쓰기엔 흰색과 노란색 파피루스가 선택되었고, 갈대 붓이나 펜으로 글을 썼다. 이후 두루마리의 경쟁자로 코덱스(책자본)가 등장했다. 낱장을 끈으로 묶어서 양면에 글을 쓰는 형태였다.

 

이후 기록의 도구로 종이가 발명되면서 대변혁이 일어난다. 종이는 기원전 200년 이전에 중국에서 처음 발명되었는데, 600년 경에는 나무껍질, 대나무, 등나무, 대마, 천 등으로 만든 종이가 흔히 사용되었지만 이 종이들은 모두 수작업으로 한 번에 한 장씩 만들어 펼친 뒤 햇볕에 말렸기 때문에 평평함의 정도가 균일하지 않고 다양했다. 중국의 이 발명품은 먼저 인근 국가인 한국과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800년 경에 종이 제조 기술이 서쪽 유라시아로 전파되기 시작됨으로써 양피지와 파피루스를 대체했다.  

 

데이터가 어떤 방식으로 저장되고 처리되고 전달되건, 우리가 이를 시각화하는 방법은 평평한 2차원의 표면 위 하나의 상으로 펼쳐진 세계의 평평한 이미지에 대한 해석과 여전히 연결된다. 인간의 시각 체계는 이미지의 깊이 단서를 이용해 구성 요소들의 공간적 배치를 구성하고 3차원 속성들을 인식하도록 발달했지만, 컴퓨터가 생성한 디스플레이를 모니터 화면으로 볼 때 관찰되는 왜곡이 어떤 경우에는 평평함의 단서로 설명될 수 있다.

 

 

평평함에 대한 이런 단서들이 나타나는 것은 모니터를 볼 때 초점거리가 고정되어 있고 머리 움직임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큰 평면 스크린의 몰입형 디스플레이로 보면 거리도 마찬가지로 과소평가된다. 이런 인식상의 문제가 있고 눈과 프레임에 해를 미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메시지이건 대개 그 전달 매체는 계속해서 평평한 표면이다. 

 

 

 

 

전자광학 디스플레이 장치들의 평면화

 

 

표면이 곡면이던 텔레비전과 거의 모든 전자광학 디스플레이 장치들이 197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평면화되어왔다. 이런 변화의 주된 원인은 얇고 가벼운 평판의 제작이 가능해져서 이동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평판디스플레이는 휴대폰부터 랩톱, 디지털시계, 노트북컴퓨터, 디지털카메라, 태블릿에 이르기까지 많은 제품에서 볼 수 있고 광원이 음극선관에서 액정, 플라즈마, 유기재로 바뀌면서 계속 평평하게 유지되어왔다.

2000년에는 전 세계에 보급된 평판디스플레이 기기가 20억 개에 이르렀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런 기기들이 제공하는 2차원의 이미지를 보면서 일상을 보낸다. 이렇게 평면화된 2차원의 가상 세계에 중독된 사람들이 받는 심리학적, 생리학적 영향은 파멸적일 수 있다. 일본에서 이런 중독자들은 히키코모리로 불리는데 보통 집, 혹은 심지어 자신의 침대를 떠나기 싫어하고 실제 세계보다 가상 세계를 더 좋아해서 때때로 굶어 죽거나 방치되거나 자살까지 이르는 젊은이들을 가리킨다. 이런 현상이 세계적으로 문제화될 소지도 충분히 엿보인다. 평평함이 만들어낸 몰가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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