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 : 역사의 기초를 다진 위대한 리더들 미국을 만든 사람들 1
한솔교육연구모임 지음 / 솔과나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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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세상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통찰력 있는 교육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한솔교육연구모임이 탄생했다. 연구모임을 이루는 각 분야 전문가들은 지적 호기심이 강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20여 년간 이상 각국의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 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을 선별해 가르쳤고, 해당 교육을 받은 이들은 현재 각 분야에서 꼭 필요한 인재로 성장해 있다.

 

한솔교육연구모임은 그동안 축적된 교육 내용이 지식정보사회인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이라는 판단 아래, 대표저자 한솔을 중심으로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물을 정리해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는데, 가장 먼저 준비한 시리즈는 '미국'이다. 지난 세기를 비롯해 21세기 역시 미국이 주도권을 지닐 것이 분명하고, 미국적 가치가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세계통찰-미국>의 첫 번째 도서로 미국 건국 초기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부터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우드로 윌슨, 프랭클린 루스벨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까지 대통령들의 행보를 다룬다. 이들을 통해 미국이 강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와 세계 정세를 동시에 돌아보고 있다.

 

 

각 장의 첫 페이지에는 해당 대통령 재임 기간 연표를 수록해 세계의 주요 사건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본문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사진 자료가 풍부하게 담겨 있으며, [들여다보기] 코너로 대통령들이 추진한 정책의 배경이나 평소에 보여준 행적,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해당 인물을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17세기 초, 박해에 시달리던 영국의 청교도인들이 아메리카 땅으로 건너왔다. 이들은 신대륙을 개척하고, 영국의 무리한 세금 징수와 식민화를 독립전쟁으로 막아내며, 미합중국이라는 신생독립국을 세웠다. 영국 국왕의 압제에 맞서 독립전쟁을 일으킨 미국인들은 왕을 대신하는 새로운 직책을 만들고자 했고, 그것이 국민이 직접 뽑은 대표인 대통령이다. 미국은 세계 최초로 대통령제를 만든 나라인 것이다.

 

지금껏 미국의 대통령제는 독재 논란을 만들지 않고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는 거쳐간 여러 대통령이 민주주의국가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덕분인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대통령은 높은 도덕성과 능력 검증을 받아야 했다. 언론은 후보자의 일생과 걸어온 길을 낱낱이 파헤치며 자격 여부를 검증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능력과 도덕성을 갖춘 후보가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다. 1789년에 취임한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부터 한국전쟁 당시 대통령이 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까지, 이들이 이끄는 미국은 150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같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후보자의 높은 도덕성과 능력 검증을 제대로 거치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현재 친북 좌파정책을 펼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자질 검증 시 우리 언론들은 애초에 유력한 당선인으로 여기고 여기에다 줄을 대려고만 노력했지 제대로 검증 역할을 했던가 말이다. 현재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우려하고 있는데, 이는 일부 여권 정치인들과 편향된 언론의 잘못이 크다고 본다.    

 

책을 통해 세계에 변화를 가져온 역사적인 사건들에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이룬 독립혁명은 프랑스혁명의 성공에 영향을 주었다. 토머스 제퍼슨의 루이지애나 매입,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의 분열을 막기 위해 치른 남북전쟁,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파나마운하 건설, 우드로 윌슨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결정,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경제 대공황 극복,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한국전쟁 정전협정 추진 등도 미국을 넘어서 세계의 흐름을 좌우하는 사건들이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버지니아의 부농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이복형제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심하게 고통받았다. 즉 그의 어머니는 이복형제들로선 계모였던 것이다. 11살 때 아버지가 죽자 교육조차 받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겨우 마친 그는 독학으로 측량기술을 배워 측량기사로 활동했다. 이 일로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던 게 나중에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27살에, 그는 인생 전환점을 맞이한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여섯 번째로 부자인 버지니아의 유지 마사 커티스와 결혼, 아내의 경제적 지원에 힘입어 정치계에 투신했다. 때마침 보스턴차사건이 발발하면서 식민지 대표들은 조지 워싱턴을 대륙군 사령관으로 임명, 영국과의 무력전쟁을 치르려고 했다. 하지만 식민지인 상당수는 영국인이었기에 조국에 대해 총을 들기를 주저했던 것이다. 이에 전쟁 초기 워싱턴의 군대는 오합지졸에 불과해 최정예인 영국군과의 대결에서 번번히 패했다.

 

1778년, 프랑스가 영국에 선전포고하면서 아메리카 대륙의 독립을 위해 참전을 선언했다. 게다가 평소 영국과 관계가 불편했던 네덜란드와 스페인도 워싱턴에게 차관 제공을 약속하며 힘을 보탰다. 프랑스 명장 로상보 장군의 요청에 따라 프랑스 루이 16세가 6만 파운드 금화를 보내옴에 따라 이 돈으로 병사들의 밀린 봉급을 해결했다. 이에 사기가 한껏 오른 대륙군과 프랑스군은 영국군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1789년, 새로운 헌법에 따라 총선이 실시되어 국회가 구성되었고, 역사적인 초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선거 결과 워싱턴은 앞으로 영원히 깨지지 않을 100퍼센트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후 그는 나라를 함께 이끌 각료를 뽑을 때 혈연, 지연이 아닌 철저한 늘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했으며, 남부와 북부 출신을 골고루 뽑아 기용했다.

 

신생 독립국 미합중국의 탄생을 지켜본 프랑스인들은 이에 큰 영향을 받았다. 장기간 왕의 독재에 시달렸던 프랑스인들은 미국 독립을 계기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지니게 되었다. 1789년, 마침내 프랑스에서도 민중 봉기가 일어나면서 독재자 루이 16세를 권좌에서 끌어내라는 프랑스대혁명이 발발했다. 과거 루이 16세의 도움을 받았던 워싱턴은 프랑스 문제에 개입 않기로 결정했다. 결국 루이 16세는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이후 워싱턴의 고립주의는 미국의 대외 정책으로 자리잡았다. 

 

미국 독립 전쟁의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이 된 그는 두 번째 임기를 반년가량 남겨 놓은 상태에서 3선에 나서지 않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1797년 후임 존 애덤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고향 버지니아로 귀향했다. 농장 일에 매진하던 그는 1798년 프랑스와의 전쟁이 임박해지자 다시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당시 그는 "내 몸에 남아 있는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조국을 위해 바치겠다"는 말로써 진정한 애국심을 보여주었다. 1799년,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위대한 대통령은 1달러 지폐에 초상화로 남아 있다.

 

 

우리들이 옷을 입을 때 첫 단추를 제대로 꿰어야 옷맵씨가 뒤틀리지 않고 단정해 보인다. 내가 워싱턴을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잔여 임기가 남았는데도 퇴임을 미리 결정, 독재의 길을 스스로 차단함으로써 미국 정치사에 첫 단추를 잘 꿰었을 뿐만 아니라 독립전쟁 시의 일화에 의하면 총사령관 신분임에도 진흙탕물에서 몸소 참호를 파는 솔선수범과 나라를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의 몸을 바치겠다는 진정한 애국심을 보여주었다.

 

익히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벚나무 일화정직이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미국의 정치인들에겐 정직은 도덕성의 잣대이다. 반면에 우리의 고위 공직자와 그 가족들의 거짓말 논쟁으로 대한민국이 아직까지도 시끄럽다. 대한민국의 선현들도 이런 가르침을 자주 해왔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패거리 정치를 앞세워 '거짓 지키기'에 올인하는 어리석은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있는 한 나라의 미래는 어둡기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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