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작은 가게 이야기 -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
정나영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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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온전히 내가 경험한 작은 가게, 그리고 작은 가게에서 마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저 내가 자주 다니는 하나의 가게 이야기, 내가 만난 단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작은 가게는 그 하나하나의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누군가의 관계, 그 관계에 대한 누군가의 경험. 이것이 작은 가게를 정의하고 그 생존을 결정한다. 내가 작은 가게를 한마디로 '관계'로 정의내리는 이유가 그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작은 가게는 관계이다

 

책의 저자 정나영은 소매업과 상품기획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학자이다. 국제상사, 나이키, 엄브로 등의 회사에서 십여 년간 근무하며 의류 상품기획과 소매기획 업무를 했다. 이후 학계에서 소매업 및 상품기획 관련 강의와 연구를 해왔다. 서울대학교 의류학과에서 의류학 학사와 패션 마케팅 석사를 마치고 미국의 조지아 주립대학에서 유통 및 상품기획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센트럴 워싱턴 대학교와 미주리 주립대학에서 연구하고 강의했다. 

 

유통서비스 마케팅 및 유통혁신에 대한 연구를 해온 저자는 미국에서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우리나라의 중소 소매업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이 책을 저술하였다. 현재 뉴욕주립대학교 한국캠퍼스에서 유통기획 분야의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학자로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유통업 전반과 중소 소매업의 마케팅을 돕기 위해 란타나 비즈니스 리서치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몸살을 앓은 손님에게 뜨끈한 국물을 별도로 포장해서 싸주는 베트남 쌀국숫집 주인 할머니, 베스트셀러 동화작가를 초청해 동네 어린이들을 불러 모으는 지역의 작은 서점, 크리스마스에는 손글씨 카드를 건네고 포인트 대신 정감 있는 나무 쿠폰을 주는 카페, 간판도 없이 주택가 골목에 위치했는데도 사는 사람이 줄을 서는 케이크 가게, 자발적으로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싶은 동네 빵집. 조금 비싸더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선물가게 등 공간과 사람, 관계가 만들어나가는 작은 가게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동네 커피숍이 더 편하다

 

저자는 워싱턴 주의 시골 도시 엘렌스버그에 위치한 작은 대학의 교수로 근무했다. 1만 8천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도시에서 차로 단 5분만 나가면 끝없는 평야와 산이 펼쳐지는 그런 형국이었다. 평소 커피를 즐기는 저자는 강의과 가정에서 잠시 떠난 제3의 장소가 절실히 필요했다. 사람들의 소리가 적당한 음악과 함께 들려오는 그런 공간 말이다. 하지만 이 소도시엔 스타벅스 커피전문점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공간의 욕구를 스타벅스에서 채울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의 휴식은 좀체 편안하지가 않았다. 직원들의 태도는 똑같은 지역 주민들임에도 신기하리만치 다른 로컬 커피숍과 달랐다. 작은 미국 시골 도시의 스타벅스 직원들은 서울이나 다른 대도시에서 경험하는 스타벅스 직원들의 태도와 똑같았다. 즉 서비스는 매우 규격화되어 있어서 딱히 흠잡을 곳을 찾기 어려웠지만 무미건조했다. 아늑하고 환영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따스한 정이 필요했기에 스타벅스는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다.

 

제3의 장소가 없었던 그곳에서의 1년은 그 도시를 둘러싼 황량한 계곡과 평원처럼 매우 건조했고 차가웠다. 나는 피곤하고 불안한 일상 속에 지쳐갔고 잠시 쉬며 나를 다독일 곳 없이 버텨야만 했다. 다양한 공간이 넘쳐나는 곳에서만 지내왔던 터라 공간이 이처럼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사무치게 깨달았다. 책에서 보던 그 유명한 '제3의 장소'의 가치는 이미 저자의 일상 속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자신의 저서 <아주 좋은 공간>에서 제3의 장소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편하게 사람들과 어울리고 대화를 나누며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제3의 장소가 갖는 주요한 기능이며, 주요 특징은 8가지로 요약 설명한다. 이는 커뮤니티 센터나 커피숍, 레스토랑, 쇼핑센터, 가게들, 시장, 극장, 학교, 교회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스타벅스가 제3의 장소로 언급되면서 새롭게 대중들의 이목을 받게 되었다.

 

 

8가지 특징

 

일종의 중립 지대이다

이곳에서 모든 이는 평등하다

즐겁고 편안한 대화가 가장 주요한 활동이 된다

가까운 곳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아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킨다

규칙적이고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을 갖는다

모든 종류의 사람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편안하고 즐거우며 적의나 긴장감이 없는 곳이다

일종의 집 밖의 집이다

 

 

커피숍 칼디스

 

저자는 거의 매일 칼디스에서 커피를 마셨다. 이 가게는 컬럼비아의 로컬 커피 숍이었다. 그녀가 강의하는 대학교 건물 내에 스타벅스가 두어 군데가 있음에도 십여 분 정도 산책을 거쳐 도착한 것이 커피숍 칼디스였다. 이렇게 칼디스는 그녀의 제3의 장소가 되었다. 가끔은 두 딸아이와 함께 저녁 나들이 삼아 찾곤 했다. 마치 이곳은 그녀의 또 다른 거실 같았다. 셋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공부도 하고, 독서를 하거나 신문을 읽기도 했다.

 

칼디스의 독특한 인테리어도 한몫 거들었다. 겨자색으로 칠한 벽은 조명에 반사되어 더 따듯한 색으로 변했다. 테이블과 가구들은 짙은 갈색으로 다소 낡긴 했으나 겨자색 벽과 붉은 쿠션 등이 잘 어우러져서 고풍스럽고 온화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게다가 커피 맛은 부드러웠고, 카푸치노는 맛과 향이 이제껏 중에서최고였다. 또 가게 직원들은 입장 때부터 환영해주었고, 계산대에선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었던 것이다.

 

이곳은 노숙인조차 편하게 쉬다 갈 수 있는 장소였다. 한 젊은 노숙인이 가끔 칼디스에 들어와 가게의 가장 깊숙한 끄트머리에 놓인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곤 했다. 한참을 그렇게 조용히 쉬었다가는 그 커다랗고 새카만 백팩을 다시 둘러메고 밖으로 나갔다. 가끔 그가 들르면 칼디스의 고참 직원은 커피 한 잔을 하겠냐고 묻고는 소파에 앉은 그에게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건네곤 했다. 이처럼 칼디스는 지역 공동체의 명실상부한 제3의 장소였던 것이다. 미국을 떠나기 전에 포인트 적립 대신에 받았던 나무 코인은 저자의 추억이기도 하다. 

 

 

 


베트남 쌀국숫집 저스트포

 

화려하거나 세련되지는 않지만 관리는 께끗한 가게였다. 테이블의 수는 8~9개 정도로 적절한 규모로, 한쪽 벽면에는 큼지막한 피아노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벽면엔 촘촘하게 미술 작품이 걸려 있었다. 지역 무명 예술인들의 판매를 돕기 위한 선한 행동이었다. 예술울 감상하면서 쌀국수를 먹는 다는 것은 저자에겐 작은 문화적 사치였던 셈이다.

 

가게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은 안주인인 베트남 할머니였다. 베트남식 발음이긴 해도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면서 손님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할머니는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소화를 잘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한번은 방문한 그녀에게 위에 좋다는 씨앗을 한 팩 주었고, 특히 쌀국수의 국물에 신경을 기울였다. 전직이 약사였던 부부는 은퇴 후 이곳에 쌀국수 가게를 개점했던 것이라 저자의 얘기를 듣고 마치 친정 어머니 같은 사랑으로 적합한 약처방을 했던 셈이다.   

 

단골을 정의한다는 것은 바로 관계를 정의함을 의미한다. 가게와 손님 간에 오래도록 유지되는 관계가 바로 단골인 것이다. 오래도록 친근하고 다정한 우정이 지속되는 것은 작은 가게와의 관계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그것이 작은 가게의 가장 큰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단골 가게들이 있어 안식과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그저 손님과 가게 주인의 관계가 아닌 친구같은 존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평범한 쌀국숫집에서 건강이 약해진 단골 손님에게 선사할 수 있었던 음식들처럼 말이다.

 

 

 

세실리아 빌라베체 케이크

 

조지아 주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저자는 작은아이 생일을 맞았다. 특별한 선물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생일 케이크는 마련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곳엔 케이크 가게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할수없이 대형 식료품 매장에서 케이크를 하나 준비했지만, 맛이 별로라서 한 두쪽 먹고는 모두 버렸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이번엔 큰아이의 생일이 다가왔다. 또다시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케이크를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지인의 도움으로 한 케이크 집을 소개받았다.

 

간판이 없는 이 가게를 어렵게 찾아 들어서니 커다란 케이크 진열장 두어 개와 계산대가 있었다. 안쪽엔 케이크를 만드는 부엌이 있고 그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케이크 가게였는데, 케이크 장 안에 비치된 케이크는 모두 사전에 예약된 것들이었다. 미리 부탁한 메세지들이 초콜릿으로 적혀 있고, 생크림이나 토핑으로 마감한 케이크였다.

 

세실리아 빌라베체 케이크, 역사지구에 위치한 이 가게는 미리 알지 못하면 접근이 어려운 곳이었다. 그럼에도 예약한 케이크를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왜 그럴까? 우선 맛이 아주 좋았다. 적당한 단 맛에 생크림이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케이크의 종류도 초콜릿, 당근, 코코넛, 레몬, 산달기, 딸기, 복숭아, 과일 등 다양했다. 

 

작은 동네 가게의 케이크는 맛도 좋고 다정한 메시지들로 가득하며 심지어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역사지구는 세금이나 집세가 저렴한 대신 인테리어를 하거나 외벽을 장식하거나 간판을 달 수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간판도 없이 1990년부터 28년 동안 케이크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광고도 하지 않고 간판을 달지도 않는 작은 케이크 집, 세실리아는 현재까지도 성업 중이다.

 

이제는 점차 유명해져서 잡지에도 소개될 뿐 아니라 2008년부터 3년 연속 에덴스의 가장 훌륭한 웨딩 케이크로 뽑혔다. 소비자 리뷰 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에는 이 도시를 떠나서도 세실리아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칭찬의 글이 줄을 잇는다. 주변 지인들을 통해 알음알음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만 판매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최고의 케이크 가게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친구나 주변 지인의 자연스러운 추천이나 소개만큼 신뢰도가 높은 정보가 없는 듯하다.

 

 

 

애비드 서점의 낭독회 

고풍스러운 외관속에 철학과 시대 정신, 삶의 가치를 담은 애비드 서점은 사실 최근에 설립되었다. 2011년에 개점한 이 작고 신비로운 서점은 사실상 젊은 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덴스에 2호점을 낼 정도로 성업중이다. 저자만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많은 에덴스 사람들이 애비드를 아끼고 사랑했다. 그들은 자주 애비드에 들러 책을 둘러보고 애비드의 직원들이 주민들에게 제안하는 책들을 기꺼이 사들고 가게를 나섰다. 그런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다. 지척에 대형 서점인 반즈앤노블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기꺼이 애비드를 찾는다.

 

에덴스의 작은 로컬 서점인 애비드는 저자를 초대했다. 낭독회 자리였다. 그녀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큰아이를 데리고 이곳을 찾았다. 들어서니 이미 사람들이 빡빡하게 들어차 있었다. 좁은 공간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다과와 음료를 즐기며 삼삼오오 모여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낭독회는 뜻을 함께하는 조지아 주립대학교 학생들이 모여 만든 문학 잡지의 출간을 기념하는 낭독회였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삶에 순수한 가치를 제공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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