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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았다, 그치 - 사랑이 끝난 후 비로소 시작된 이야기
이지은 지음, 이이영 그림 / 시드앤피드 / 2019년 8월
평점 :
마지막까지 우리는 서로의 손 꼭 잡고 이별에까지 걸었다. 그 손 놓치지 않으려 너와 나, 참 수고 많았다. 그러니 어렵게 놓고 돌아선 걸음, 너도 나도 너무 아프지 말기를 홀로 놓인 그 역에서 간절히, 간절히 바랐다. 세상 가득 세찬 비가 내렸다. 이별이었다. - '본문' 중에서
사랑의 모든 순간을 되돌아본다
이 책의 저자 이지은은 <짠 하고 싶은 날에>(2016년)로 수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낸 바 있다. 사랑, 그리고 이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느낌이 없겠지만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안다. 이별의 그 순간을. 사랑이 끝난 후 비로소 시작된 이야기, 사랑 에세이 <참 좋았다, 그치>는 사랑의 모든 순간을 포착한 이이영 작가의 그림이 더해져 우리의 마음속 아련한 추억들을 소환해낸다.
난 추운 겨울이 정말 싫었다.
혹여 눈이 아닌 비가 내리는 겨울 밤은 더욱 싫었다.
내 곁에 머물던 따스한 온기가 그립기에.
이런 날엔 포장마차 오뎅집으로 발을 향했다.
자주 머물렀던 그 자리에
아직도 온기가 있는지 느껴보려고.
난 솔로로 지낸 세월이 참으로 길었다. 사랑이라는 것도 대학생, 그것도 군 전역 후 복학생 시절에 처음 해보았다. 늦바람이 사람 잡는다는 말도 있듯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얼굴 때문에 공부를 하다 말고 그녀의 학교 정문으로 내달렸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은 더욱 그랬다. 당시 고시 공부를 하던 복학생이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마음과는 달리 내 몸은 따로 놀았다. 고시, 결국엔 낙방했다.
못된 성격이 발동했다. 그렇게 내게 헌신적이었던 그녀에게 화살을 마구 쏘아댔다. 마음을 다잡고 고시 재수를 하던 친구들이 함께 하자며 내 손을 도서관으로 이끌었지만 영 내 맘이 동하지 않았다. 우선 마음의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꼈기에. 다시 화이팅하라는 그녀의 응원을 건성으로 듣다가 결국엔 엉뚱한 돌발행동이 나왔다. 이별하자고. 이후 난 밤거리를 오랫동안 걷고 걸었다. 작가의 에세이엔 공감되는 내용이 많이 보였다.
겨울이 짙어지던 어느 밤
흰 눈처럼 스며들어
내 안에 봄을 틔운 그대여,
우리 둘 함께 걷던
계절들을 여럿 지나
낯선 시절에
홀로 멈춰 서 잇는 지금,
슬픔이 짙은 이거리를
어떻게 걸어내야 하나.
뒤돌아보지 않을 수 잇을까
우리는.
- 17쪽에서
이별통보를 받은 여인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 사랑의 길이와 깊이에 비례해서 온갖 마음이 다 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붙잡아야 한다는 집착과 갈망, 자신이 뭘 잘못 했는지 반성도 해보다가 이내 배신감이 더 크게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렇다.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떠난 마음은 어찌 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 에세이엔 이런 글이 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의 눈동자 안에서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46쪽)
"때로는 아무것도 힘주어 노력하지 않기로.
다가오다 사라지고
밀려들다 쓸려나가는 모든 것들을
그저
구경하듯 바라보기로.
견뎌내야 하는 시간에
지지 않기 위하여"(72쪽)
"그때는 참 많이도 울었다. 출근길 지하철 문 앞에 바짝 붙어서서도 울고, 친구의 이름을 부르다가도 울고, 씩씩하게 잘 지내던 한낮에고 별안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앗다. 하루에도 수십 번의 기억의 잔영들이 주변을 일렁였고 매 순간마다 어김없이 눈물은 출어이며 차올랐다. 사랑이란 감정은 나의 모든 것에 관여되어 잇었기에 어떤 작은 몸짓도 그 부재를 피해 안녕할 수 없었다"(196쪽)
그럼에도 세월은 우리들의 기억을 서서히 집어심킨다. 그토록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사랑의 순간들이 갈수록 퇴색되어 간다. 얼마전에 우연히 지난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는 가요 프로그램을 시청했었다. 그런데, 이 소환이 단순히 노래만을 듣는 게 아니라 그 당시 함께했던 사람까지 소환하는 것을 느끼면서 괜히 옆에 있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내도 이런 추억이 있었을까?
기적
내가 아닌 이의 삶에 기웃거리게 되는 것,
다른 이들이 쥐고 있는 행복이 부럽지 않은 것,
평범한 일상에
누군가가 스며들어
특별한 날들이 되는 것,
내 삶에 또 한 번 그런 기적이 올까요.
(216쪽)
"사랑의 기억과 추억을 소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