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 깊은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강미은 지음 / 메이트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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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을 만드는 것도 말, 적군을 만드는 것도 말입니다. 말 다음에 행동을 보게 되죠. 말만 번지르르한 경우도 있지만, 대개 말조차 예쁘게 안 하는 사람이 행동을 예쁘게 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말 한 마디로 상대의 가슴에 꽃이 피게 할 수도 있고, 상대의 가슴에 비수를 꽂을 수도 있습니다. - '지은의의 말' 중에서

 

 

진정성이 담긴 말이 필요하다

 

책의 저자 강미은은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나와서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저널리즘 석사를 받았다. 미국 미시간 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 박사를 받았고 ISR(INSTITUTE FOR SOCIAL RESEARCH)연구원을 지냈다. 미국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과에서 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로 있다. 저서로 <재치코드> <커뮤니케이션 불변의 법칙> 등 10여 권이 있다. SBS <열린 TV 시청자세상>, EBS TV <미디어 바로보기> 진행을 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들은 말이 범람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온갖 유행어를 만들어내는것도 부족해서 과거엔 없었던 말까지 만들어서 사용하니 말이다. 그래서 젊은이들 사이에 하는 말이 '요즈음 유행어나 신조어를 모르는 사람은 꼰대'라고 한다. 그렇다. 워낙 하루하루가 빠르게 바뀌고 변하니까 올드 세대들이 젊은 세대들의 말을 따라가기에 버겁다.

 

이런 말과 관련하여 가장 대표적인 속담이 아마도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가 아닐까 싶다. 정말 멋진 표현이다. 얼마나 그 말 속에 상대방을 감동시킬 정도로 진정성이 담겼으면 갚아야 할 큰 돈을 탕감까지 해줘었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너무 쉽게 말을 뱉어낸다. 바쁜 세상살이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도 부족하다. 이렇게 쉽게 내뱉은 말은 대체로 상대에게 아픔을 안겨주고 심지어는 독화살이 되어 죽게도 만든다.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아군을 만들기도 때로는 적군을 만들기도 하기 때문에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현란한 테크닉이 아닌 말에 담긴 사려 깊음이라고 말한다. 사려 깊은 말 습관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우리들이 사려 깊게 말하기 위해 명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면 앞으로 우리들 주위로 좋은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 것이라고 강조한다.
  

 

 

차라리 '하얀 거짓말'이 낫다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는 사람 중에 자신은 '솔직해서 그렇다'고 스스로를 변호하는 사람이 많다. 솔직한 것과 남에게 기분 나쁜 말을 하는 건 다른데, 자신은 솔직하기 때문에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는 식은 곤란하다. 상대를 기분 나쁘게 만들 말을 솔직하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하얀 거짓말'로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편이 훨씬 낫다. 물론 이것이 거짓말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그런 말을 한 우리들을 거짓말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모두 서로를 띄워주면서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하다는 핑계로 상대를 기분 나쁘게 만드는 건 안 될 일이다. 내가 솔직하다는 핑계가 남을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는 권리가 되지는 않는다"

 

 

 

 

상대의 무례한 말에 어떻게 대응할까?

 

상대가 무례하게 막말을 해댄다고 이에 같이 모욕적인 말로 맞받아 치면 결국 큰 싸움으로 번지고 만다. 이런 싸움만은 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례한 말에 대응해야 할까? 저자는 그들의 공격을 '겉돌게 만들어 버리라고 한다. 즉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공격을 겉돌게 만드는 것이다.

 

최고의 대처법은 '반사'다. 우리들은 이미 상대의 말을 수용하기 싫으면 손바닥을 상대로 향하면서 그 말을 반사시킨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친구들과 놀면서 자주 하는 행동이다. 이는 상대의 말을 그대로 질문으로 되돌려줌으로써 먼저 돌을 던진 사람이 부끄러워진다. 이젠 작정하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을 그대로 반사해주자. 이렇게 말이다.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나?"라고 물으면 "머리가 폼이라뇨? 그게 무슨 뜻이죠?"라고 그대로 반사해주자. "참 센스가 없구나"라고 말하면 "센스가 없는 게 어떤 거죠?"라고 그대로 반사해주자. 이럴 때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이야기하면 더 효과적이다. 상사에게 달려드는 못된 부하로 더 찍히느니, 차라리 조금 모자란 듯 다시 '반사'를 해버리는 게 낫다. 

마음을 얻는 관문은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관문은 바로 '말'이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말이다. 굳이 대인관계 뿐만 아니라 사업이나 비즈니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얻어야 비로소 일이 성사된다. 마음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는 서로 신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장사가 뭔지 아나?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게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거다.

나는 지금껏 돈을 번 게 아니라 사람을 번 것이다"

 

 

 

이는 MBC TV 드라마 <상도商道>에서의 명대사 중 하나다. 그렇다. 뛰어난 장사꾼은 장사에서 이문을 남기는 게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법이다. 즉 거래에서 이문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겨야 장사도 되고 사업도 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이성적인 '합리合理'뿐만이 아니라 정서적인 '정리情理'가 중요한 문화에서는 더 그렇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에 집중해야 한다

사과를 할 때 고개 숙이는 방향이 틀려도 진정성 있는 사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예컨대 청와대 참모가 뭔가 잘못해서 카메라 앞에서 대국민 사과를 할 때 "대통령님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고개 숙이는 방향이 틀린 것이다. 국민에게 사과를 해야지 대통령에게 사과를 하는 모습은 자리에만 연연하는 비겁한 아전으로밖에 안 보인다.

 

 

사과를 하면서 상대에게 원인을 돌리는 것도 안 된다. "나는 그런 의도가 없었는데, 그렇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어"라고 하는 건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형태이다. 그렇게 받아들일 줄 몰랐다면 몰랐던 잘못이 있는 것이며, 알면서도 상대에게 피해를 줬다면 그것도 나쁜 것이다. 사과를 할 때는 무조건 자신의 잘못에 집중해야 한다. 사과의 타이밍도 중요하다. 사과할 시점이 중요하다. 뒤늦은 사과는 뒷북치기로 의미가 퇴색된다.

 

 

 

 

얀테의 법칙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얀테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얀테는 덴마크 출신 노르웨이 작가인 악셀 산데모제가 1933년에 발표한 풍자소설 <도망자>에 등장하는 가상의 마을 이름이다. 이 마을에서는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것은 잘난 게 아니라 이상한 것이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 살려면 지켜야 하는 다음과 같은 10가지 원칙이 있는데, 그게 얀테의 법칙이라고 한다.

 

1.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 것.
2. 당신이 우리(공동체)들만큼 좋다고 생각하지 말 것.
3. 당신이 우리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말 것.
4. 당신이 우리보다 더 훌륭하다고 상상하지 말 것.
5. 당신이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 것.
6. 당신이 우리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 것.
7. 당신이 모든 것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말 것.
8. 우리를 비웃지 말 것.
9. 당신을 누가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지 말 것.
10. 당신이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 것.

 

 

"굳이 남들에게 겸손해야 할 이유도 없고, 자신이 잘난 체도 하지 말라"

 

 

 

 

정치 유머

우리나라 정치판에선 유머가 섞인 해학적인 말들이 정말 부족해 보인다. 그만큼 공부가 부족하고 인격 함양이 덜 돼서 일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너죽고 나살자'는 식으로 함부로 말을 뱉어낸다. 이뿐만 아니다. 아예 '아니면 말고'식으로 '가짜 뉴스' 내지는 '가짜 진실'까지 만들어낸다. 이처럼 무절제하게 내뱉는 정치판의 설화를 보노라면 이들은 정말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오죽하면 "개그를 다큐로 받는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우리 정치인들도 미국 정치판에서 좀 배웠으면 한다. 레이건 대통령이 73세의 나이로 재선에 출마했다. 상대는 56세의 먼데일 후보로 TV 토론에서 레이건의 고령을 트집 잡았다. 그러자 레이건은 "나는 후보의 나이를 문제 삼고 싶지 않다. 이에 먼데일 후보의 '젊음'과 '무경험'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유머로 역공했다. 결과는 정책 대신에 나이를 문제 삼은 먼데일이 완패했다.

 

 

 

한 치 혀가 초래한 설화

글을 잘못 써서 화를 당하는 것은 '필화筆禍', 혀를 잘못 놀려서 화를 당하는 것은 '설화舌禍'다. 말을 잘 못해서 실수가 되기도 하고, 안해도 될 말을 해서 쓸데없이 여론의 분노를 사기도 한다. 특히, 정치판에선 이런 일이 자주 있는 편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해야 할 말은 안 하고, 안 해도 될 말은 해서 사회적 혼란을 초래한 사례는 많다.

 

 

본심과는 다른 말이 실수로 튀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마음속에 있던 본심이 튀어 나와서 설화로 번지기도 한다. 공직자의 말실수는 한번 엎질러진 물처럼 되담을 길이 없다. 그 말은 없었던 걸로 해달라고 할 수도 없다. 공인의 말실수는 대중 매체를 통해서 급속도로 전달되면서 파장이 커진다. 전후좌우 상황을 다 떼어내고, 그 자체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돼버린다.

 

 

공인일수록 자신이 하는 모든 말은 조심해야 한다. 일만 잘하면 되지, 말 한마디 가지고 사람을 매도해서야 되겠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중의 인식은 냉정하다.

 

 

말투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다. 내 인생을 바꾸는 삶의 무기다. 말투 때문에 주변에서 도움이 답지하기도 하고, 말투 때문에 모임에서 '아웃'되기도 한다. 비호감 말투 때문에 정 떨어지는 비호감 인물이 되면 그냥 자기 손해다. 그 사람, 좀 이상한데?’라고 느끼면 대부분 그렇게 느끼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이상함'의 출발은 말투와 태도임을 명심해야 한다.

 

 

 

 

갑질은 터널 비전에서 생긴다

높은 위치에 올라갈수록 말을 더 밉게 하게 되는 건 왜 그럴까? 권력을 가질수록 '터널 비전'이 생긴다고 한다. 터널속으로 들어갔을 때 터널 안만 보이고 터널 밖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주변을 보지 못한 채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는 현상을 뜻한다. 그런데, 권력의 속성 때문에 '터널 비전'은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현재 한창 진핸 중인 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보면 바로 느껴진다. '내로남불'의 전형적인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가 그렇다.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의 뇌, 신경 심리학자인 이안 로버트슨은 "성공하면 사람이 변한다고들 하는데 맞는 말이다. 권력은 매우 파워풀한 약물이다. 인간의 뇌에는 '보상 네트워크'라는 것이 있다. 뇌에서 좋은 느낌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권력을 잡게 되면 이 부분이 작동한다"라고 설명한다.

 

 

권력은 사람을 더 과감하고, 모든 일에 긍정적이며, 심한 스트레스를 견디게 한다. 권력은 항우울제다. 하지만 지나친 권력은 코카인과 같은 작용을 한다. 중독이 된다.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되면, 너무 많은 도파민이 분출된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않고, 실패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터널처럼 아주 좁은 시야를 갖게 하며, 인간을 자기애에 빠지게 하고, 오만하게 만든다. 갑질은 이 '터널 비전'에서 생긴다. 밍생과 경제는 뒷전이고, 주구장창 북한과의 대화와 평화경제만 거론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바로 대표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다.

 

 

 

 

말에도 DWT가 있다

조선업에는 'DWT'를 중시여긴다. 이는 배가 가라앉는 정도의 무게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를 들어, 100톤 짜리 배에는 100톤까지만 적재해야 한다. 이 무게를 초과하여 실게 되면 결국엔 '세월호 참사'같은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 즉 자리까지만 올라가야 한다. 스스로 자질이 부족함을 느끼고 장관후보자에서 내려와야 하는데도 끝가지 버틴다. '존버' 정신이 투철하면 대통령이 직권으로 임명을 강행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일인 것이다.    

 

자신의 주제를 아는 것, 자신의 DWT를 아는 것,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감투가 어느 정도인지를 아는 것, 쉬울 것 같지만 닥치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똑똑하던 사람들이 장관이니 뭐니 하는 감투만 쓰면 정경두 국방장관처럼 국민들 앞에서 거의 정신 나간 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 감투에 눈이 가려 그저 자리 보전만을 위해 발버둥치니까 제대로 판단이 안 되는 것이다. 말에도 'DWT(배가 가라앉는 무게)'가 있다. 말로써 배가 뜨기도 하지만, 말로써 배가 가라앉기도 한다.

 

 

촌철살인 표현, 기사 제목에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기사의 제목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돈 안들이고 찰진 말의 표현력을 연마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제부터라도 기사 제목을 유심히 보자. 제목 중엔 '촌철살인'의 매력적인 표현들이 많다. "날 물로 보지 마"(매일경제), "멸종위기 1급 한국인"(디지털타임스), "직구 하다 호구 될라"(경남신문) 등등. 시간 안 들이고 돈도 안 드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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