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반격을 당하고 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은 원래 공유물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필요한 만큼씩 나누며 살아왔다. 물질의 사유화를 촉진한 최대 세력은 자본주의로, 지난 2세기 정도가 그 전성기였다. 기업들은 새로운 제품을 끊임없이 만들어냈으며,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 풍족한 삶이라고 선전해 돈을 벌었다. 그렇게 해서 제품이 널리 보급되면 새로운 제품으로 교체하게 해 이익을 유지했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공유의 시대라는 새로운 물결을 맞이했다. 공유는 선진국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던 자본주의 사회는 너무 나아간 나머지 원점으로 되돌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 '프롤로그' 중에서
지금은 공유경제 시대
책의 저자 쓰루미 와타루는 1964년 도쿄 출생으로, 도쿄대 문학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전자제품 제조사, 출판사 등을 거쳐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1993년 출간한 <완전 자살 매뉴얼>이 사회적인 붐을 일으키며 100만 부 이상 판매되어 일약 스타가 되었다. '경제 구조'와 '삶의 괴로움',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관련 발언과 사회 활동을 하고 있으며, 공동 텃밭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불용품을 무료로 교환하는 등 '무전 경제'를 몸소 실천 중이다. 저서로는 <완전 자살 매뉴얼>, <인간 개조 매뉴얼>, <레이브RAVE의 힘>, <탈자본주의 선언> 등이 있다.
증여 경제란 무엇인가?
특정한 날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의미에서 우리들은 게스트로서 호스트에게 선물이라는 것을 준다. 또 자리를 빛내 달라고 요청한 호스트는 게스트로 참석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준비한 작은 선물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들은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한다. 우리들은 왜 이런 행위를 할까? 그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그것은 인류가 현재처럼 화폐를 사용해 물건을 교환하기 전에는 주고받는 것, 다시 말해 타인과 증여를 통해 필요한 물건을 조달해왔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미처 국가라는 형태를 갖추기 전 부족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먹을 것부터 재산, 토지까지 부족 간, 씨족 간에 주고받았다. 이런 경제를 증여 경제gift economy라고 한다. 물론 매매나 자급, 재분배도 오래전부터 이루어졌지만 증여가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그런데, 증여는 단순히 물건을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개 답례의 의무가 있다. 이렇게 선물하고 답례하기를 반복함으로써 사람들은 상호 유대감를 돈독히 하고 또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조달했다. 이 증여 정신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보다 훨씬 뿌리 깊고 보편적인 인간 세계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남는 것을 서로 나눈다
자신이 가진 물건 중에서 사용하지 않는 것을 더 유용하게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바로 새로운 공유 열풍이다. 자동차 회사가 직접 카셰어링 사업을 추진하고, 집주인이 셰어하우스 형태로 사용하지 않는 빈 방을 임대하며,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 숙박 시스템을 포함한 공유 중개 사이트가 입소문을 탄다. 심지어 개인을 넘어 정부가 나서서 공유 경제 추진을 기획한다.
얼마전 TV 프로그램을 통해 '하룻밤만 재워줘'를 시청한 적이 있다. 출연자들이 유럽으로 떠난 여행지에서 숙박할 장소를 물색하는데, 이때 일반 가정 집에서 반드시 잠을 자야 한다는 설정이었다. 이에 실패할 경우엔 노숙을 해야 한다. 이를 시청하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의사소통'임을 실감했다. 현지어로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하룻밤을 요구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를 요청받는 집주인측도 상당히 불편해진다.
흥미롭게도 책은 자신의 집 정원을 일반인들에게 공유 개방한다는 소위 '오픈 가든'을 소개한다. 사실 정원의 관리는 손을 많이 타기에 시간과 노력은 물론이고 경제적 비용까지 많이 투입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렇게 공을 들인 정원을 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가든의 주인장은 보람이 없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일본에선 지자체나 단체가 중심이 되어 정원의 개방을 원하는 가정을 조사해 이를 일반인들에게 소개하는 형식을 취한다고 한다. 새로운 형태의 공유 경제인 셈이다.
오픈 가든의 발상지는 영국이다. 잉글리시 가든이라는 이름도 있을 만큼 정원 가꾸기가 그곳에선 인기 있는 취미이기에 그렇다. 즉 1927년에 오픈 가든을 개최하는 단체가 설립되어 현재도 매년 전국의 오픈 가든 가이드북을 내고 있다. 일본에서 오픈 가든이 시행된 것은 2000년대 접어들고부터다. 책은 실제 사례로 도쿄 도 고다이라 시市의 오픈 가든을 소개한다.
스무 곳 이상 있는 고다이라 시의 오픈 가든 중 실제로 가정집의 정원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모리타 씨, 시바야마 씨, 나카야마 씨의 집 등으로 그리 많지 않다. 이들 집외에는 부지 밖에서 바라볼 수 있는 정원이나 상점과 거리의 관목 등을 소개하고 있다.
방문시 유의사항
풀이나 꽃을 손상시키거나 씨앗을 가져가지 않는다
'들어오세요'라고 쓰여 있는 집은 초인종을 누르지 않는다
개방 기간과 시간을 지킨다
인근 주민을 배려한다
자신이 만든 쓰레기는 자신이 가져간다
모리타 씨의 정원은 집을 몇 채나 세울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부지에 빽빽하게 꽃과 관목이 심어진, 타샤 튜더의 정원 같은 곳이다. 단순한 일반 가정의 정원이 아니다. 부지 내에 작은 길이 조성되어 있고 휴식할 수 있는 정자도 있다. 봄, 가을을 정점으로 어느 계절에도 볼거리가 있다. 부지 내에는 국숫집까지 있어 언제나 사람이 북적거리는 지역의 휴식처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이렇듯 우리 속담의 가르침처럼, 물건을 주고받듯이 우리는 서로 '힘'을 빌려주고, 돌려받고, 합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비록 돈이 없어도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 이는 한국의 오랜 풍토인 '상부상조' 정신이다. 이런 정신은 자기 나름대로 경제를 만드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 사회는 과거의 공동체에 존재하던 적당한 규모의 상호 부조 관계를 잃어버렸다. 개인은 기업처럼 지나치게 거대한 상호 부조 관계 속에 파묻히거나 완전히 고립된 경우가 많다. 사람이 열 명, 스무 명 정도 모여야만 할 수 있는 작업을 선뜻 시작하기가 어려워졌다. 그 대신 사람의 손이 필요한 온갖 상황에서 우리는 돈을 주고 이 일을 업자에게 의뢰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서 돈으로 편리함을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대가로 사람들 간의 적절한 유대가 사라지고 말았다.
사실 상호 부조라고 해서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매일 다른 사람을 만남으로써 서로 돕는다. 예를 들어 너무 외로워서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 두 명 있다고 하자. 그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은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위해 헌신하는 관계가 아닌 상호 주고받는 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에 쌍방의 욕구가 충족된다. 이것이 가장 간단한 상호 부조의 예다. 여행이나 식사 등도 마찬가지다. 여성 혼자서 가기에 버거운 지역을 함께 여행하거나 특별한 날 함께 식사를 즐기는 경우다.
자연을 감상하기
자연 감상은 할일 없는 노인네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틀린 생각이다. 인간이 자연을 그다지 보지 않게 된 것은 비로소 최근의 일이다. 지금처럼 다양한 오락거리가 넘쳐나게 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사람들은 나무와 꽃을 보러 가거나, 정원에 연못을 만들고 돌을 가져다 놓거나, 심지어 벌레나 새소리를 들으며 즐거워했다. 게다가 자연 감상은 무료인 데다 쉽기까지 하다.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증여를 가장 손쉽게 체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감상이다.
물론 쉬는 날 영화나 공연을 보러 가는 것도 좋지만 이런 즐김에는 돈이 든다. 또한 우리들이 현재 다루는 주제와도 동떨어진 케이스이다. 그러나 자연을 감상하는 요령을 알게 되면 돈 한 푼 내지 않는 이 방법이 훨씬 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오락으로 느껴진다. 즉, '나무와 꽃을 본다', '들새들을 불러 모은다', '물고기를 구경한다', '자연 환경 전체를 즐긴다' 등을 통해 일상에 찌든 심신이 리프레쉬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자연이 주는 선물은 무상 증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