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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라 쓰고 버티기라 읽는 -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한재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때때로 노력이란 말은 굉장히 눈물겹거나 혹은 다소 우아하게 들린다. 하지만 본질은 조금 다르다. 보통은 죽을 만큼 힘들지도, 감상에 잠길 만큼 아름답지도 않다. 나는 내가 하는 노력들이 축축하게 젖은 구두를 신은 채 먼 길을 걷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퇴근 후에 텔레비전을 보는 대신 2시간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일이 뭐가 그리 대단한가. 버틸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고시와 장사를 경험한 나는 버텨야 할 이유와 버틸 수 있는 기회가 인생에서 늘 갖춰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버틸 수 있으므로 버텨야 했고, 버팀으로써 조금씩 나아졌다. - '프롤로그' 중에서
사법고시의 문이 닫히자 다른 문을 열었다
저자 한재우는 작가이자 유튜브 <재우의 서재>의 주인장이다. 군 복무를 마친 뒤 커피 한 잔을 팔 때마다 물 한 통을 기부하는 1.2평짜리 공정 무역 카페를 열었으나 1.2년 만에 문을 닫았다. 가게의 작은 탁자에 기대어 글을 쓰면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자영업의 쓴 맛을 경험한 그는 이후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독서 교육 회사에 들어가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부지런히 책을 읽었다.
누적 청취 1,500만의 팟캐스트 <서울대는 어떻게 공부하는가>, 베스트셀러 <혼자 하는 공부의 정석>, <365 혼공 캘린더>, 교원 직무 연수 강의 '내 생애 최고의 공부'는 그런 시간의 작은 결과물들이다. 비 오는 날의 아메리카노와 힘껏 운동한 뒤의 고단함을 좋아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서 인정을 받았으므로 온전히 그 일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하루 종일 읽은 책들을 유튜브 <재우의 서재>에서 나누고 있다.
온 정신을 모아 전력투구하는 삶을 살아도 이에 걸맞는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그래도 버틸 수 있다면 버티는 하루하루가 무척 값지다고 위로하는 그는 이 책이 첫 번째 에세이 작이다. 책 속의 서른네 편에 흐르는 전체적인 분위기 또한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현실이라는 통곡의 벽 앞에서 절망하는 우리들에게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메세지를 전한다.
서른네 편의 에세이를 읽기에 앞서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도록 하자.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그는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것으로만 예상했지만 현실은 늘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열심히 준비했던 사법고시, 커트라인에 단 1점이 모자라 고배를 들고 말았다. 아뿔싸, 이게 마지막 기회였다. 소위 '개룡족'의 등용문이었던 사법고시의 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이에 그는 늦은 나이인 29살에 군입대를 선택했다. 31살에 전역한 즐거움도 잠시, 그는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였다. 때마침 '탐스 슈즈'의 성공 시례가 크게 다가왔다. 이거다 싶어서 그는 서울 소재의 한 대학교 앞에 카페를 차렸다. 한 잔의 커피를 팔면 한 잔의 원가를 기부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탐스 슈즈의 성공처럼 이젠 장밋빛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천만에, 대학교 주변엔 이미 70개의 카페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손님을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을 그는 글쓰기로 떼웠다. 그러나, 월세 부담 때문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자영업의 쓴맛을 본 후 결국 카페를 접어야만 했다. 이후 그는 늦깎이 직장인이 되었다. 남들은 이미 직장 안에서 대리쯤 위치에 있을 나이에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출발선에 설 수 있음에 오히려 감사했다. 이후 7년의 직장 생활, 4권의 책 출간, 1500만 다운로드의 팟캐스트 등, 버팀의 시간은 그에게 점차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이젠 오직 그가 하고 싶은 일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일을 시작하는 인연
시작하는 인연에는 3가지가 있다. 어쩌다 보니 알지도 못하는 사이 깊숙이 들어와버린 인연이 있고, 시작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끌려간 인연이 있다. 그리고 시작할 인연이 없었지만 작정하고 시작한 인연이 있다. 사람들은 늘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의 톱니바퀴가 돌아감으로써 인생이 자연스럽게 잘 풀리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들 대부분은 시절 인연과 사람 인연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덕스럽고 기다림은 긴데 귀한 삶은 너무도 짧다. 그렇기에 인연이 다가오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을 때에도 먼저 운동화 끈부터 묶는 이들이 있다. 자연스레 시작하든, 어쩔 수 없이 시작하든, 작정하고 시작하든, 내딛고 나면 같은 시작임을 그들은 안다.
작정(作定)이란 지어서(作) 정한다(定)는 뜻이다. 가보고 싶은 길이 있다면 허락을 구하지 말고 성공을 셈하지 말고 그저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마음을 지어 정하기를. 운동화 끈을 묶는 일부터 출발할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아무 이유가 없어도 시작할 수 있는 존재니까. (29쪽)
특별한 노력은 특별한 삶을 만든다
3천 번의 윗몸 일으키기, 3천 번의 팔 굽혀 펴기, 그리고 1천 배하기. 이는 보통 사람들에겐 평생 겨우 한 번 도전해볼까 싶은 특별한 일임에 틀림없다. 독하게 마음 먹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해낸 인물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처럼 특별한 노력은 특별한 삶을 만드는 것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하루에 윗몸 일으키기를 3,000개씩 한다. 이미 최고 중의 최고 자리를 차지한 그임에도 매일 아랫배에 힘을 주며 3,000번이나 끙끙대는 이유는 부상 없이 오랫동안 최고의 자리에 머물고 싶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고백했다. 한국인 최초로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던 차범근 선수의 젊은 시절 몸매는 정말 탄탄했다. 그도 유럽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팔 굽혀 펴기를 하루에 3,000개씩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감동적인 실화가 있다. 한국화가 한경혜는 뇌성 마비로 인해 7살 때 온몸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도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만 했다. 그러자 그녀의 어머니는 불편한 딸을 데리고 무작정 해인사로 찾아갔다. 성철 큰스님을 만나 도움을 청하려고 말이다. 당시 큰스님은 자신을 만나러 오는 모든 이들에게 3천배를 요구했다. 당연히 7살 꼬마에게도 예외가 없었기에 꼬박 3일이 걸려서 3천배를 마쳤다. 그러자 큰스님은 하루에 꼭 1천배 씩하면서 오래 살라고 격려했다. 이 꼬마는 이를 지켰다. 굳은 몸이 조금씩 풀리면서 통증도 사라지고,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면서 석박사과정을 마쳤으며, 개인전을 10번 넘게 열였다. 누가 이 여인을 뇌성 마비 환자라고 보겠는가.
노력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임은 노력하기 힘들어진 뒤에야 깨닫는다. 흔하고 평범한 과거의 하루가 지금의 나에게는 특별한 시간이다. 마음먹고 내딛어야 하는 특별한 도전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도, 훗날의 언젠가 돌아보았을 때는 마찬가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오늘이, 아직 특별한 도전을 할 수 있는 '노력하기 좋은 날'일지도 모르겠다.(125쪽)
자신이 가진 것의 소중함을 모른다
우리들은 흔히 평소엔 그 소중함과 중요함을 모른 채 지내다가 사고나 사건을 겪고 나서는 후회감과 함께 소중함 내지는 중요함을 깨닫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즉 정의롭지 못한 일을 당하고 나서야 정의에 대해 생각하고, 기회를 잃은 다음에야 기회의 귀함을 알며, 젊음이 사라지고 난 후에야 젊음을 그리워한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하지 않음이 있고 난 다음에야 함이 있는 우리 모두는 어리석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미 가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아직 갖지 못한 것을 갈구하다가 갖고 있는 것이 없어진 뒤에야 후회하기 때문이다. 감사는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가장 넓은 문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문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그 무엇이라도, 잃어버린 후에는 애타게 찾게 될 감사한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223쪽)
버티는 한 우리는 기대할 수 있다
기약 없이 기다리는 정신을 우리들은 흔히 '존버 정신'이라고 말한다. 어감상 아무래도 좋은 말은 아닌 듯싶다. 버티는 정신을 이렇게 폄훼해선 안 된다고 준엄하게 꾸짖는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이다. 뭔가 부족할지라도 가고 싶은 길이 있는 사람은 젖은 구두를 신고 계속 걸어야 한다. 어차피 걸을 바에야 웃으면서 버티는 편이 낫다. 그래야 우리는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