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페이션트
알렉스 마이클리디스 지음, 남명성 옮김 / 해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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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는 계속 잔소리를 했지만 나는 꼼작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며칠이 지나자 그이는 글을 쓰라면서 이 작은 노트를 주었다. 검은색 가죽 표지에 두껍고 하얀 백지가 묶인 노트. 나는 첫 번째 페이지를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부드러운 감촉을 느꼈다. 그리고 연필을 뾰족하게 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왜 그녀는 침묵했을까?

 

작가 알렉스 마이클리디스는 사이프러스에서 그리스계 사이프러스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아메리칸 필름 인스티튜트에서 시나리오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 소설 <사일런트 페이션트>가 그의 첫 발표작임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언론에서 극찬한 화제의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영화로 제작된다고 한다.

 

이 소설의 모티브는 에우리피데스의 유명한 그리스 비극 <알케스티스>에서 차용했다. 즉, 사랑하는 연인을 대신해서 죽은 여인 알케스티스를 연상시키게 한다. 신화에 따르면 남편인 아드메토스를 대신해 기꺼이 목숨을 내준 알케스티스는 헤라클레스의 도움으로 지옥에서 현세로 되돌아오지만 살아난 이후로 침묵을 고수한다.

 

"하지만 그녀는 왜 말하지 않는가?"

- 에우리피데스, <알케스티스>

 

 

일반적으로 미스테리나 스릴러 소설의 경우, 일정한 프레임을 지니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즉 잔잔한 일상의 흐름에서 갑자기 충격적인 사건이나 일이 발생되는 도입부가 있고, 이어서 이 사건이나 일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전개과정을 거친다. 중간중간에 등장인물의 캐릭터나 성장 배경들을 서술함으로써 독자들의 스토리 이해를 돕고 나아가 향후 전개 과정을 미리 엿보게 만든다. 그리고 반드시 포함되는 게 있으니 바로 '반전'이다. 스토리의 클라이막스이자 독자의 집중을 최대한 끌어들인다. 이 소설도 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소설의 주인공 베린슨 부부는 결혼 7년 차의 예술가 부부로 큰 저택에 살고 있다. 남편 기브리엘 베린슨은 사진가로, 아내 앨리샤 베린슨은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앨리샤는 현재의 남편을 만나 행복한 삶을 이어가고 있으며, 나아가 남편 가브리엘은 그녀 세상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늘 슬럼프에 빠져 어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이는 심리적인 병으로 전형적인 우울증세로 보인다.

 

이에 남편 가브리엘은 아내 앨리샤의 기분 전환을 위해 예쁜 선물을 건넨다. 검은색 가죽 표지에 히얀 백지가 묶인 그런 노트였다. 남편의 의도를 알아챘는지, 앨리샤는 하루의 일상을 낱낱이 노트에 기록하면서 스스로 지친 마음을 어루만진다. 남편이 일하러 나간 후 넓은 저택에 홀로 외롭게 남겨진 그녀의 일상은 그리 거창할 것도 사실상 없다. 그림을 그리는 일외에는 고작 집 밖에 비치는 광경을 바라보거나 이웃 사람들과의 수다 정도다.

 

평범한 일상의 흐름에서 갑자기 충격적인 사고가 발생한다. 앨리샤가 그토록 사랑하는 남편을 총기 발사로 살해한 것이다. 더구나 늦게 귀가한 남편 가브리엘의 얼굴에 다섯 발이나 쏘았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건이지만 이웃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가브리엘은 손발목이 철사줄로 묶인 채 총에 맞아 절명해 있었던 것이다.

 

남편의 죽음 때문에 정신적으로 충격이 큰 탓인지 이후 그녀는 마치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말문을 닫아 버린다. 침묵에 빠진 그녀는 과거 정신질환을 앓은 사실이 있었다는 이유로 북런던에 위치한 정신질환 범죄자 감호 병원 '그로브'에 수감된다. 가브리엘의 살해 사건은 그 진실이 외면된 채 앨리샤가 진범임을 기정 사실화하면서 그대로 묻히고 말 것인가?

 

그녀는 병원의 일인용 병실에 누워 있었다. 경찰이 그녀의 변호사가 동석한 가운데 심문을 했다. 앨리샤는 심문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백한 입술에는 핏기가 보이지 않았다. 가끔 입을 씰룩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가브리엘을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았을 때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체포당하는 순간에도 입을 다문 채 죄가 없다고 부인하지도, 그렇다고 자백하지도 않았다.앨리샤는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 20쪽 중에서

 

이후 앨리샤의 사건에 관심을 가진 한 범죄 심리상담가가 등장한다. 테오 파버라는 인물이다. 그는 앨리샤의 이야기를 접한 후 그녀의 심리 치료를 담당하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는 것이다. 사고 발생 후 지금껏 어느 누구도 엘리샤의 닫힌 말문을 열지 못했는데, 과연 이 상담가는 침묵의 환자 앨리샤의 입을 열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 사건의 전모를 파헤칠 수 있을 것인가?

 

마침내, 앨리샤는 입을 연다

 

한편, 소설의 전개는 화자話者 두 명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 한 명은 주인공인 침묵의 환자 앨리샤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심리상담가 테오 파버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수감자와 심리치료를 맡은 상담가의 입장은 정반대이지만, 스토리의 전개가 이어지면서 둘 사이엔 공교롭게도 곤통점이 숨어 있다. 즉 한 사람은 젊은 시절 마리화나를 흡연했던 후유증을, 다른 한 사람은 정신병을 앓고 약물을 복용한 경험을 가졌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듯, 스토리의 전개가 후반으로 치닫을수록 사건의 결말이나 사건의 진범 등을 캐치할 수 있는 내용을 살짝 드러내 놓는다. 예를 들면, 심리상담을 진행하던 테오 파버가 엘리샤에게서 두려움을 느끼는 장면, 테오 파버가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며 추적한 끝에 그 현장을 목격하는 장면, 혐의를 입증할 앨리샤의 일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앨리샤에 두려움을 느끼는 테오

 

테오, 아내의 불륜현장을 목격하다

 

앨리샤의 일기 

 

 

압도적인 데뷔작이다


그리스의 비극 <알케스티스>의 내용에 의하면, 헤라클레스의 도움으로 지옥에서 다시 현세로 귀환된 아드메토스의 아내 알케스티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를 궁금해하는 아드메토스에게 헤라클레스는 마음을 달래는 제사를 올려야 하며 세 번째 햇빛이 다가와야 말을 할 수 있다고 답한다. 아마도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라서 다소 회복 시간이 필요함을 언급하는 듯하다. 이에 힌트를 얻는 작가는 앨리샤가 남편으로부터 배신당한 마음 때문에 입을 닫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작가는 젊은 시절 정신병원에서 일했던 경험과 나중에 직업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던 경력 등을 되살려 압도적인 데뷔작을 창작했다. 또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정신과 의사인 누나의 도움으로 정신병원에서 2년간 근무한 적도 있었기에 정신질환자들과 의료진에 관한 상황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곧 여름이다. 휴가 때 시원한 물에 발 담그고 이 책을 읽는다면 더위도 잊을 수 있을 듯해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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