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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도 나만의 '슈필라움'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명 디자이너의 비싼 인테리어 가구로 공간을 가득 채운다고 '슈필라움'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 취향과 관심이 구현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보잘것없이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는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내 '슈필라움'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주체적 공간의 의미를 찾아서
이 책의 저자 김정운은 문화심리학자로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이자 화가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디플롬, 박사)했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전임강사 및 명지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일본 교토사가예술대학 단기대학부에서 일본화를 전공했다. 2016년 한국으로 귀국한 후 여수에 살면서 그림 그리고, 글 쓰고, 가끔 작은 배를 타고 나가 눈먼 고기도 잡는다. <중앙선데이> '김정운의 바우하우스 이야기'를 연재 중이며 <에디톨로지>,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을 집필했다.
책은 '슈필라움'이라는 독일어 단어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의 말로는 이에 합당한 한국어 번역이 없는데, 굳이 하자면 '여유 공간'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슈필라움'은 '슈필(놀이)'와 '라움(공간)'의 합성어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주체적 공간'을 의미한다. 즉 물리적 공간은 물론이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그런 말인 것이다.
저자는 한때 문화심리학자로 유명세를 떨치며 공중 매체에도 자주 출연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뭔가의 깨달음을 얻고선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교수직을 벗어던지고 홀연히 일본으로 그림 공부한다고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귀국해서는 화가로서의 인생을 펼치고자 서울이 아닌 지방 도시 여수에서 간섭받지 않는 주체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왜 그는 여수에서의 생활을 선택했을까?라는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이 책의 내용이 바로 그 해답을 보여주는 셈이다. 책에는 24가지의 키워드가 등장하는데, 이는 결국 모두 '슈필라움'으로 통한다. 세상의 모든 길이 세계 최강 로마제국으로 통한 것처럼 말이다. 즉 '슈필라움'이 우리 현대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나아가서 어떤 삶을 새롭게 꿈꿀 수 있는지를 성찰하게 하는 그런 시간을 갖도록 해준다. 책의 내용은 지난 몇년 간 조선일보에 '김정운의 여수만만 麗水漫漫'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글을 모은 것이다.
나는 딸 둘을 가진 가장으로서 사십대 초반에서 오십대 후반까지 절정의 직장 생활을 보냈다. 일이 좋아서 회사와 결혼했다고 할 정도로 소위 '주인의식'이 충만한 직장인이었다. 그래서 결혼까지도 늦은 만혼이었다. 대학에서 강의하던 노처녀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생활 덕분(?)에 행운을 차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삶의 사전에는 오직 '회사' 뿐이었다. 그래서 늦게 결혼한 아내조차도 나에게 회사 어딘가에 '꿀단지'를 숨겨 놓았는지 연신 궁금해했다.
그렇다. 지금 생각해보니 비록 주체성은 완벽한 게 아니었을지라도 회사엔 나만의 집무공간인 임원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난 이곳에서 회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만들면서 직원들을 독려하는 지휘소로 활용했었다. 심지어 나는 이 방을 간단한 숙식까지 해결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 놓고 있었다. 접이식 간이침대와 세면도구, 커피포트, 사발면 두세 박스, 심지어 양말과 내의 그리고 여벌의 정장과 와이셔츠 등이 늘 준비되어 있었다. 나만의 독립공간은 심리적으로 나에게 편안함과 여유를 제공했고 반대 급부로 나의 비싼 노동을 착취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아내와 관련된 얘기를 해보겠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에 아내만의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른바 작은 법당이다. 아내가 직접 마련한 곳으로 여기서 새벽 예불로 하루를 시작하고 잠자기 전 예불로 하루 일과를 마친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신앙 생활을 했던 터라 이런 삶이 아내에겐 매우 익숙한 의식이다. 그리고 나 또한 향 냄새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아내의 경전 읽는 소리를 따라 흥얼댄다. 서당개 삼년에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던가.
마지막으로 아이들도 어릴 적부터 독립된 자기만의 방이 있어서 사생활이 보호되었기에 이를 매우 만족해했다. 가끔 아내는 같은 여성인지라 아이들 방에 침입해서 야단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엉뚱한 일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임주의식 교육법을 채택하고 있던 나는 이런 문제로 아내와 가끔은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면서 만수산 더렁칡을 읊어대면 아내는 한동안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렇다. 위의 세 가지 상황은 모두 저자가 말하는 '슈필라움'으로 통한다.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부문은 바로 주체성과 자율성에 있다. 스스로 생각한 바가 있어서 그 목적에 합치하는 독립된 공간이어야만 진정한 '슈필라움'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공간이라면 나치 치하의 수용소도 '슈필라움'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심리적으로 불편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부재하는 이런 곳은 결코 '여유 공간'이 아닐 것이다.
바닷가 작업실 미역창고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
이는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말이다. 저자가 불현듯 일본화를 배운다고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공간을 바꾸고, 이후 여수 바닷가의 '미역창고'를 구입해 작업실인 미역창고美力創考로 활용하는 것도 결국엔 자신만의 주체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일환인 것이다. 5톤 트럭 한가득 서울에 있던 책을 섬으로 가져와 서재를 꾸미고 그림도 그리면서 집필활동도 이어가려 한다. 저자는 우리들에게 묻는다. "당신만의 슈필라움이 있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