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D] 서른의 삶이 서른의 나에게 묻다
김현중 지음 / 부크크(bookk)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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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앞이 보이지 않는 직장 생활을 경주마처럼 달려온 지 어느덧 10년 차. 저는 영업직의 특성상 그동안 수천명의 직장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현실과 타협하며 꿈을 잃어버린 채 꿈보다 밥을 선택한 수많은 직장인을 보앗습니다. 저 역시 그들 중 한 명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졌습니다. 어느 날, 밥보다 꿈을 선택하기 위해 작은 용기를 냈습니다. 육아휴직을 신청해 그동안의 직장 생활 10년을 돌아보며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 '여는 글' 중에서

 

 

30대 직장인에게 묻는다

 

이 책의 저자 김현중은 자신을 평범한 30대 직장인라고 소개한다. 20대가 되어서도 마치 30일이 오지 않는 2월 같은 느낌처럼 서른이라는 나이가 크게 와 닿지 않았던 그에게 평범한 직장인의 현실은 스스로의 꿈을 접고 현실과 타협하며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비쳐졌다. 그래서 작심하고 연초에 태어난 첫아이의 육아를 위해 6개월간의 휴직을 신청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책은 마흔 가지의 질문을 담고 있다. 저자와 나이가 같거나 비슷한 연배일 경우 이들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해 본다면 소중한 자아 성찰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나이를 떠나 누구라도 읽다보면 어떤 이는 과거의 시절로 되돌아가 있게 될 것이고, 아직도 삼십대 이전의 사람이라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마주하게 될지를 미리 추측하게 될 것이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 보이그룹 god의 '길' 중에서

 

 

 

 

꿈을 따를까, 현실과 타협할까?

 

우리들 대부분은 성장하면서 자기 자신의 꿈이 조금씩 수정되고 변해서 어릴 적에 가졌던 그것과는 많이 다름을 느끼게 된다. 나는 공부가 하기 싫어서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농부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가 좀 더 따져보니 선생이 되면 공부하지 않고 가르치기만 하면 되겠기에 농부에서 학교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정말 어리석지 않은가 말이다. 시험 성적이 좋지 않다고 벌을 서고 있는데, 여동생은 나보다 훨씬 공부를 잘 못하는데도 조금도 나무라지 않아서 이젠 나의 꿈은 여자가 되기로 했다. 이처럼 나의 꿈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하면서 현실과 늘 타협하는 가운데 조금씩 좌로, 우로 클릭 조정을 했던 것이다.

 

책의 저자는 초등학교 때의 꿈이 사장님이었다. 그것도 욕심이 많아서 햄버거 가게와 오락실을 동시에 경영하는 사장님이 되길 원했다. 그 이유는 햄버거를 원없이 먹고 싶었고, 자유롭게 오락 게임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교사 신분이었던 어머니의 간섭이 워낙 심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 참고 있었던 욕구불만이 바로 꿈으로 승화되었던 셈이다.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우선 하루하루의 일과 업무를 처리하는 게 주어진 미션이기에 자신의 이상적인 꿈을 현실적으로 타협하면서 수정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자면, 회사일이 많은 사람이 자신의 꿈이 클래식 기타 연주가가 되는 것이라고 이를 위해 회사일을 내팽개치고 기타 학원으로 향할 수 있겠는가? 향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사직을 각오하고 있는 경우일 것이다. 그래서, 요즘 젊은 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을 모두 포기한 '7포 세대'라고 스스로를 비하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꿈과 현실은 각각 그 상태로 존재하는 현상이다. 즉 양자 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달리 말해서 꿈을 추구한다고 현실을 무시해서도 안 되고, 현실적으로 산답시고 스스로의 꿈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앞서 저자의 꿈이 햄버거 가게의 사장님인 것처럼, 그 꿈은 어제보다 나은 내일, 내일보다 나은 미래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7포 세대'니 '헬조선'이니를 벗어나려면 반드시 꿈을 가져야 한다.

 

 

 

성공해야 행복할까, 행복해야 성공할까?

 

개인적으로 이런 질문은 정말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과 성공을 판단하는 것은 모두 주관적이자 상대적인 개념이다. 정신과 의사 꾸베의 말처럼, 진료실은 언제나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로 가득차고, 심지어 모든 것을 다 가졌고 많은 행운을 누리는 사람임에도 자신의 불행에 관해 상담차 그의 진료실로 찾아온다고 한다.

 

이는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를로르의 소설<꾸베 씨의 행복 여행>에 나오는 진료실 장면이다. 책에는 행복에 관한 23가지의 배움을 언급하는데, 무척 인상적인 대목을 소개하자면,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말라',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 등이다.

 

그렇다. 모든 것을 가졌고 넘치는 행운을 누리는 사람도 자기 자신을 더 많은 부와 행운을 가진 사람과 비교를 하면서 이에 목표를 맞추면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게 될 것이고 그만큼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아 먼 길을 떠나지만 결국은 돌고돌아 자신의 내면으로 귀가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 속에 늘 행복은 함께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결혼하면 행복할까?

 

책의 저자는 서른두 살의 7년차 직장인일 때 집을 떠나 홀로 작은 오피스텔에 독립해 있었다. 어느 주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멘트는 결혼에 관한 이야기였다. "결혼을 성숙을 위함이자. 행복을 위함이 아닙니다. 성숙을 추구할 때 행복해지고, 행복을 추구할 때 불행해지는 것이 결혼입니다"라고 말이다. 이에 저자는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고 결혼은 그 목표를 이루는 과정이라고 평소 생각했던 터라 크게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자, 여기서 "결혼하면 행복할까?"라는 질문이 생긴다. 이 대목에서 내 얘기를 좀 해야겠다. 나는 서른아홉 살에 결혼했다. 우리집 막내동생의 약혼식이 없었다면 이보다 더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나는 혼자 사는 삶에 매우 익숙해져 있었고 이를 편하게 느끼고 있었다. 당시 나는 회사의 책임자로서 회사일에 온 몸을 던지고 있었다. 회사 건물을 지키는 수위들의 말처럼, 회사와 결혼한 사람이었다. 동생은 그야말로 노총각인 형을 추월해서 약혼식을 하고싶지 않는데, 딸부잣집이라 매우 서두른다고 나에게 불편한 심정을 토로 했다.

 

이에 나는 의무감이 생겨서 부모님에게 맞선 자리를 봐달라고 바로 부탁했다. 그동안 나밖에 모르고 살았구나라는 마음이 들면서 동생한테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동생을 데리고 아파트에 살면서 동생의 교제는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동생의 미래, 아니 내 장래에 대한 성찰은 조금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난 대학교에서 강의하는 노처녀를 맞선으로 만나 한 달만에 결혼식을 가졌다.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서로에게 있었기에 급속도로 진전될 수 있었다.

 

다시, 저자의 얘기로 돌아와본다. 최근의 삼십대 남성은 결혼하려면 1~2억의 돈이 필요하다는 결혼인식이 저변에 형성되어 있고 그래서 작은 결혼식을 추구하는 추세가 있음을 밝힌다. 2030세대의 취업난과 저임금으로 인해 빚으로 결혼식을 가져야 하는 불편함이 생기기때문에 아예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절망의 시대에 살고있음을 얘기한다. 아무튼 저자는 현재의 아내와 교제한 지 넉 달만에 결혼식을 가졌고 '성숙'을 추구했다. 그래서 저자응 삼십대에게 이렇게 말한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인 게 결혼이라면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을까?"

 

 

 

부족한 나 자신을 사랑하려면? 

 

이해할 수 없는 설문조사의 결과가 있다. 바로 한국의 중산층 기준이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빚 없이 30평 이상의 아파트를 소유하면서 월 수입은 500만 원 이상이며, 2000cc 이상의 중형차를 몰고, 예금 잔고는 1억 원 이상으로 마음 놓고 1년에 한 번 이상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는 사람이 중산층이라고 발표했다. 당연히 한국엔 이런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우리들을 맥빠지게 하는 것은 이런 사람이 중산층이라고 본 것이다.

 

중산층이라면 부유층과 하위층의 중간에 위치한 평균적인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 기준 안에 들아가지 못하는 우리들 대부분은 하위층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정말 맥빠지고 만다. 30대 직장인이 이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직장인으로서의 피크 시점은 아마도 40대 후반에서 오십대 초반일 것이다. 이 시점엔 보통 자녀 두 명을 양육하고 여기에 더해서 노부모를 부양하는 세대주도 있을 것이다. 매월 정기적으로 소득이 있다해도 그만큼 지출도 늘어나는 시점이기도 한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재산을 증식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고 이런 발표에 주눅까지 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평균이란 개념은 통계학에서도 오차 범위가 크다는 점을 인정한다. 한국의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을 감안한다면 처음부터 20% 범위 내에 있는 부유층은 통계치를 산출할 때 아예 제외하는 게 맞을 것이다. 이를 고려해서 다시 통계를 내본다면 분명히 중산층의 기준은 낮아지고 떨어질 것이다. 어떻게보면 약자의 변명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예 노력도 하지 않도록 사기를 떨어뜨리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그래서 우리 대부분은 이 기준에도 들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이다. 이를 충족시켜 보겠다고 아둥바둥거린다면 마음의 상처만 더욱 커질 게 뻔하다. 오연호 작가는 자신의 책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덴마크에선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문화가 학교에 정착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한국에도 이런 정신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렇다. 지당한 말씀이다. 지금 부족한 자신의 모습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자. 한류 붐을 일으키는 BTS가 'Love Yourself'라는 앨범을 내놓은 것처럼 말이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는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컬쳐300으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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