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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이동 - 관계·제도·플랫폼을 넘어, 누구를 믿을 것인가
레이첼 보츠먼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3월
평점 :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기로 결정한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와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결과는 역사상 가장 큰 '신뢰 이동' 현상이 나타났다는 첫 번째 증거다. 이제 신뢰와 영향력은 엘리트 집단과 전문가, 정부 당국보다는 가족과 친구, 동료, 심지어 낯선 사람 같은 '사람들'에게로 향한다. 개인이 기관보다 중요하고, 개별 고객이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브랜드를 정의하는 시대다. - '서론' 중에서
신뢰의 형태가 변화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레이첼 보츠먼은 세계적인 신뢰 전문가이자 옥스퍼드 대학교 사이드 경영대 학원 초빙교수로서, 세계 최초로 '공유경제'에 관한 MBA 과정과 '디지털 시대의 신뢰'에 관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유능한 스토리텔러로서 크고 복잡한 아이디어들을 단순화시켜 다양한 청중에게 전달하고 있는데, 신뢰를 주제로 진행한 세 편의 TED 강연은 400만 회 이상, 29개 언어로 번역·재생되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액센츄어 등의 글로벌 기업들과 다양한 정부기관, 세계경제포럼 등에서 초청받는 연사 중에서도 호응도가 높은 전문가로 전문가로 손꼽힌다.
세계적인 커뮤니케이션 기업 에델만은 17년간 매년 '신뢰도 지표 조사'를 실시해 28개국 3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각종 기관에 대한 신뢰 수준을 조사했다. 2017년 여론조사 결과의 제목은 의미심장하게도 '위기에 처한 신뢰'였다. 정부, 미디어, 기업, NGO 등 네 가지 주요기관에 대한 신뢰가 모두 최저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도 신뢰의 형태가 변화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신뢰란 '믿음'이다. 그렇기에 그릇된 믿음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서커스를 구경하러 간 적이 있는가?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들의 퍼포컨스를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서로가 내미는 손에 정확한 타이밍이 가미되지 않을 경우 곡예사는 공중에서 바닥으로 급추락할 수밖에 없어서다. 그렇다. 신뢰는 위험과 사촌지간이며, 우리들에게 확실성과 불확실성의 틈을 메워준다.
신뢰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연결해주는 다리橋다. 특히 신뢰라는 요소는 사회, 정치, 그리고 비즈니스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힘을 가진다. 왜냐하면, 신뢰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기에. 그렇다고 모두에게 통용되는 절대성을 가진 것은 아니고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왜냐하면 자신이 신뢰하는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모두에게 다 신뢰받는 인물은 아니라는 얘기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지금껏 소위 '오피니언 리더'에게 달렸지만 이젠 이름도 모르는 불특정 다수에게로 넘어갔다. 또 방송이나 언론사의 기사보다 인터넷을 타고 유통되는 얼굴없는 실체인 SNS를 더 믿는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거나 지금도 진행 중인 암호화폐는 공인화폐를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그 힘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처럼 신뢰의 형태가 변하면서 비즈니스의 지도 또한 크게 변하고 있다.
지금껏 낯선 곳으로 여행가거나 이동했을 때 숙박은 주로 호텔, 호스텔, 여관, 여인숙 등 이를 주된 영업으로 하는 곳을 이용했지만 지금은 에어비앤비라는 공유경제 플랫폼을 이용한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집에 묵도록 허용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에어비앤비의 현 기업가치가 310억 달러에 상당하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음이 이를 입증한다.
나는 오늘도 카풀을 이용해서 출근길에 나섰다. 이용자들이 처음엔 서먹서먹했지만 지금은 가벼운 목례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갈수록 인정이 메마르고 인간의 범죄가 기승을 부림에 따라 비록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을지라도 과거엔 모르는 사람의 승용차에 승차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는 바로 신뢰, 즉 믿음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카풀이 흔한 출퇴근용 교통수단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이렇게 신뢰는 이동 중이다.
중국엔 '관시'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그런데, 중국의 기업가 마윈은 관시 중심의 사회에 새로운 유형의 신뢰를 구축함으로써 알리바바를 대성공으로 이끌었다. 즉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전자상거래를 할 때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 상대방을 잘 모른다. 혹시 사기꾼을 만나지 않을까, 물건의 배송은 약속을 제대로 지킬까 등으로 인해 불안감에 휩싸일 수 있다. 그렇지만 알리바바는 기술의 발전을 통해 신뢰 도약을 만들어냈다.
책은 신뢰에 대한 역사를 세 가지로 구분, 설명하고 있다. 즉 지역적 신뢰, 제도적 신뢰, 그리고 분산적 신뢰 등 세 가지가 바로 그것이다. 지역적 신뢰란 소규모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들 간에서 구체적인 누군가, 우리에게 친숙한 사람을 향하는 신뢰를, 제도적 신뢰란 지도자와 전문가, 브랜드로 견고해지고 법원과 규제기관과 기업, 그리고 중개인을 통하는 신뢰를, 분산적 신뢰란 개인들 간에 수직이 아닌 수평적으로 오가고 네트워크와 플랫폼과 시스템을 통하여 가능한 신뢰를 의미한다.
누구를 믿을 수 있는가?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우리들이 AI를 신뢰하는 움직임은 향후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 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발전된 기술로 중국의 전통적 문화 '관시'를 뛰어넘은 알리바바의 사례처럼 신뢰의 이동이 현재는 초기단계에 머물지라도 분산적 신뢰가 두루두루 확산되는 그런 시대가 찾아온다는 확신을 갖고 비즈니스를 준비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우리들에게 "누구를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제 우리들이 이에 답해야 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