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의 역사,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누구나 교양 시리즈 3
게르하르트 슈타군 지음, 장혜경 옮김 / 이화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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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지구라는 우주선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기에 승객들은 서로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 우주의 심연 곳곳에는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주는 사실 생명에 극도로 적대적이다. 그러므로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우주선을 생명에 적대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인간은 왜 전쟁을 할까?

 

이 책의 저자 게르하르트 슈타군은 1952년 독일에서 태어나 독문학과 종교학을 공부했다. 저명한 저널리스트로서 독일의 주요 일간지와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자연 과학과 인문학 등 지식 세계 전 분야에 정통한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으로도 유명하다. 각종 도서상과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그의 저서들은 유럽 15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의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었다. 대표 저서로 <종교,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왜? - 생각을 키우는 세상의 모든 질문>, <생명의 설계도를 찾아서>, <유혹하는 우주>, <알수록 재미있는 날씨 이야기> 등이 있다.

 

책은 총 9장(인간은 폭력을 좋아하는 걸까?, 놀이와 예술로서 전쟁, 왜 교황은 전쟁을 부르짖었는가?, 전쟁에 이성과 과학이 도입되다, 왜 아프리카 사람들은 가난할까?, 인간을 위한 전쟁은 없다, 테러와 내전, 미래의 전쟁은 어떤 것일까?, 정말 평화로운 미래가 올 수 있을까?)으로 구성되었는데, 인간의 호전성이 타고난 본성인지 알아보기 위해 자연 세계에서 일어나는 투쟁을 살펴본다.

 

또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전쟁들이 일어난 원인을 분석하며, 전쟁이 인간의 가치관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밝히고, 이어서 오늘날 테러와 내전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인류는 지난 역사 속에서 되풀이 해 온 숱한 과오를 극복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건설할 수 있을지를 살펴봄으로써 평화의 역사를 써 내려갈 미래 세대를 위한 평화 교과서인 셈이다.

 

 

 

 

인간은 폭력을 좋아하는 걸까?

 

태곳적부터 인간은 사냥을 했고, 죽인 짐승의 고기를 먹고 살았다. 물론 인간을 먹잇감으로 여기는 동물들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 맹수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인간은 무기를 개발했다. 투석기, 투창, 활과 화살, 취통(입으로 불어서 쏘는 화살) 등 먼 거리에서도 상대를 죽일 수 있는 무기가 많았는데, 이는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속도가 아주 느렸기 때문이다. 맹수들과 비교할 때 인간은 긴 이빨이나 날카로운 발톱 같은 신체적인 무기가 전혀 없었지만 큰 뇌로 인한 뛰어난 지능 덕분에 이런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었다.

 

1974년 침팬지 연구가 제인 구달은 가까운 인척 관계인 두 침팬지 집단이 치명적인 전투를 벌였다고 보고했다. 이 집단들은 무기가지 동원할 정도로 격렬한 싸움을 했다는 것이다. 15년이나 진행된 학살 끝에 약한 집단이 완전히 멸족한 끝에 싸움이 종료되었던 것이다. 이후 승리한 집단도 다음 해부터 다른 집단의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또 독일의 생물학자 수잔 페리가 발표한 꼬리감는원숭이도 동일한 양상을 보였다는 내용이었다. 

 

침팬지와 꼬리감는원숭이의 사례를 통해 인간의 폭력성에 생물학적 뿌리가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지구상에서 지능이 가장 높은 생명체, 즉 침팬지와 인간이 체계적으로 동족을 섬멸하기 위한 행위를 한다는 사실은 의아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결국 따지고 보면 전쟁의 진짜 원인은 '지능'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해 한 민족이나 국가가 멸망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신생국이 탄생한 경우도 있다. 모든 건국의 시초에는 폭력이 있었고 모든 국가는 폭력 위에 건립되었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진리다. 또 모든 국가는 전쟁이라는 폭력이 오로지 국가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확연히 보여 준다. 민주 국가라고 해서 결코 예외가 아니다. 어떤 국가를 살펴보든 간에 국가는 전쟁을 모태로 탄생하고 발전했다.

 

 

메달과 훈장의 공통점

 

운동 경기에서 볼 수 있는 놀이겨루기의 밀접한 결합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목표는 이기는 것, 첫째가 되는 것, 첫째가 되어 숭배를 받는 것이다. 운동선수에게 수여하는 메달은 용감한 군인들에게 주어지던 훈장과 유사하다. 전쟁에서도 겨루기에서도 명예와 덕목, 용기와 명성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중세의 젊은 귀족 전사들은 쉬지 않고 스스로를 단련했고 덕을 쌓았다. 그것은 신분이 높은 자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쉼 없는 투쟁이었다. 그랬기에 중세 기사 계급은 놀이도 전투도 전쟁도 최고의 수준에 이르렀다.

 

기사들의 무술 겨루기는 전쟁놀이였다. 관람석 맨 앞 줄에 궁중 여인들을 앉히고 소수의 귀족들 앞에서 벌이는 한 판의 전쟁극이었던 것이다. 평화로운 시기에 행한 전쟁놀이이자, 기사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준 일종의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이었다. 중세시대엔 겨루기에서 피를 흘릴 일은 없었지만 초기엔 한 족이 피를 흘리면서 죽어야 게임이 끝나는 결투였다.

 

 

예술가의 전쟁 묘사

 

과거의 전쟁 문학은 전쟁을 신의 자연력으로, 신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자연재앙처럼 인간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인간에게 밀어닥치는 사건으로 찬양했다. 전쟁은 어쩔 수 없이 닥쳐오는 고난이기에 이를 이겨 낸 인간은 고귀하다. <성경>마저도 상당 부분 전쟁 이야기로 채워져 잇다. 지금도 참담한 전쟁이 소위 '성지聖地'에서 끊이질 않는다. 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역시 전쟁 문학이다. 작품 속의 위대한 영웅들은 모두 파멸한다.

 

 

전쟁터는 건축가의 작업장

 

"건축은 시대를 막론하고 과거의 폐허 위에서 승리의 환호성을 지었다"

 

이집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를 정복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왕에 의해 새로이 태어났다. 전쟁이 건축술과 도시 건설에 미친 영향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늘 적의 침공을 염두에 두어야 했기에 방어력이 뛰어난 집과 도시를, 다시 말해 시민들이 적의 급습을 받더라도 즉각 응수할 수 있도록 건설했다. 장소를 물색하는 단계에서부터 천혜 조건을 따졌다. 그래서 가파른 언덕을 선호했다. 그 언덕이 강을 끼고 있다면 금상첨화였다. 언덕 아래를 굽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적어도 한 면은 강이 막고 있어서 침공당할 걱정이 없었다. 탁 트인 평지는 피했다.

 

 

 

종교와 전쟁의 상관관계

 

종교는 사실상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는 살생살생을 금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종교의 성서들인 <바가바드기타>, <성경>은 전쟁을 주요 화제로 삼고 있다. <바가바드기타>에선 비슈누신의 인간 모습인 크리슈나가 영웅 아르주나에게 마차를 끌게 하며 전장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아르주나는 적군의 대열에 서 있는 친구, 친척, 스승을 보고선 망설인다. 사랑하는 사람을 상대로 어떻게 전쟁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자 크리슈나는 망설이는 아르주나에게 나약한 생각을 버리고 전사戰士의 의무를 다하라고 다그친다. 크리슈나의 최고 계명은 '의무를 다하라! 행동의 성공 여부를 묻지 마라!'다. 이런 구호 하에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이들이 전쟁터로 향했다. 당연히 이들은 모두 신이 자기편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분명 착가임에도 말이다.

 

따라서 인류 역사의 거의 모든 전쟁은 성전聖戰으로 해석될 수 있다. 종교의 사제들은 전사들의 무기에 축복을 내려 주었고, 지금까지도 이러한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신을 따르지 않았던 나치도 똑같은 짓을 했다. '신이 우리와 함께하도다' 나치군의 버클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신이 자기편이라고 믿는 군인들이 자신의 행동-자신의 범죄-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십자군의 원정

 

교황은 서방의 기독교인들에게 이슬람으로부터 억압받고 있는 동방의 기독교인들을 돕자고 호소했다. 기독교인들은 반목을 그치고 이교조와 맞서 싸우는 '의로운' 전쟁을 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성전에서 죽는 자는 즉각 천국에 들 것이며, 참전자 전원에게 서품의 상징인 붉은 십자가를 외투 어깨에 달자고 외쳤다. 이에 수천 명이 고향을 떠나 명예로운 성전 대열에 합류했다.

 

기사 계급은 물질적 이익을 노리고 참전했다. 당시 장자 상속 원칙 탓에 많은 기사들은 땅을 물려받지 못했다. 기독교인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토지까지 얻게 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희망의 원정길에 기꺼이 동참하는 귀족들이 눌어갔다. 하지만 여기엔 교황의 음모가 내포되어 있엇다. 불손한 귀족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반역의 음모를 원천 봉쇄하려는 수작이었다.

 

몰락한 기사들 대부분은 유대인들에게 금전적으로 빚을 지고 있었는데, 본격적인 동방으로의 출정식 전에 서방에 있는 유대인부터 먼저 제거하고 동방으로 가자는 구호가 난무하는 가운데 이 절호의 기회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십자군의 이념은 양심의 가책 없이 유대인을 학살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하고 말았다. 십자군 전쟁이 불행한 점은 순수한 신앙심보다는 인간의 탐욕이 앞섰던 약탈이자 만행이었다는 사실이다.   

 

 

 

 

식민지 전쟁의 잔혹성

 

전쟁의 가장 흔한 형태는 이웃 국가 간의 전쟁이다. 영토 분쟁, 과거의 일에 대한 앙갚음, 대륙의 패권 차지 등이 주로 싸우는 이유였다. 그런데, 이런 싸움은 보통 세력이 비슷할 때 성립한다. 즉 경제적, 군사적 수준이 비슷한 국가끼리 보통 싸운다. 승패가 결정나면 패자는 승자에게 영토를 양도하고, 전쟁 배상금을 지불한 후 여전히 국가로 남는다.

 

그러나 식민지 전쟁은 상황이 매우 다르다. 이전까지 아무런 원한이나 갈등이 없었음에도 싸움을 벌인다. 이때 승전국은 정복한 나라의 땅을 자신의 것으로 취하고 그 나라의 백성들을 노예로 만드는 등 억압 정책을 펼친다. 심지어 멸족을 목표로 삼기에 비인간적인 정복 전쟁인 셈이다. 땅과 자원을 빼앗고 피정복민을 노예로 삼아 식민지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전쟁보다 훨씬 더 참혹하다. 중세 유럽국들은 너도나도 식민지 정책을 펼치며 이런 류의 전쟁을 벌였다. 

 

열강들의 식민지 전쟁은 식민지 쟁탈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상호 시기하고 반목하면서 유럽 열강들은 식민지에서 힘겨루기를 하면서 약탈품을 독차지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후 허울뿐인 식민지의 독립이 진행되었지만 아프리카 땅에 큰 상처만 깊게 남겼던 것이다. 열강의 식민 정책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하수인을 이용하여 여전히 음모를 꾸미고 있다. 온갖 잔꾀를 써서 과거의 식민지에 말 잘 듣는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고 이들을 지원하여 지하자원이 가득한 이들 지역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이다. 은폐된 식민 정책이라 할 수 있다.

 

 

 

"평화로운 세상을 원한다면 우리들 모두는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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