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콜 - 행운의 문을 여는 열쇠
이계준 지음 / 더미디어그룹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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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대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장내를 둘러보니 부산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다음 패널을 준비하기 위해 음향 설비를 황급히 정비하는 주최 측 직원들, 무대 계단을 내려오는 이전 패널 토론자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수많은 청중들. 하지만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나는 숨을 크게 내쉬고, 혼잣말을 반복하며 나 자신을 세뇌하려고 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연봉을 150배로 키운 사나이

 

책의 저자 이계준은 서울 출생으로,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한 후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뉴욕 소재 사모 펀드의 파트너이자 아시아 대표로 재직 중이다. 미국에서는 콜드 콜(cold call: 물건 등을 팔기 위해 임의로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것)이 여전히 먹지만 한국에서는 성공 확률이 낮다. 그럼에도 그는 콜드콜을 오히려 "행운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 정의한다.

 

그에게 콜드콜은 인생 여정의 순간순간을 잇는 중심축이었고, 매번 뜻한 바를 이루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즉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콘트리트 호스를 잡던 건축기사가 수십억 연봉의 미국 투자사의 고위임원이 된 비결은 단 한가지 바로 콜드 콜이었다. 이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사전 약속없이 직접 전화해 자신과 상품에 대해 소개하는 것을 말하는데, 미국에선 일반화된 세일즈 기법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콜센터 말곤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다.

 

 

 

 

건축학도의 선택

 

자기 자신에게 감춰진 보물을 발견하는 일이야말로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저자는 스스로의 열정이 바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고교 3학년 때인 1996년 여름부터 친구의 권유로 권투를 시작, 6년 넘게 해왔다.

 

그는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또한 건축물에 내포된 건축가의 인생철학까지도 좋아했었다. 세계 건축계의 거장으로 꼽히는 일본인 건축가는 삼류 권투 선수 출신이다. 이런 영향을 받은 저자는 일찌기 권투에 빠진 듯하다. 당연히 그는 권투 산수가 아니라 건축가가 되는 게 꿈이었던 것이다. 

 

잠 못 이루는 수많은 밤에도 불구하고 그의 건축 설계 수업의 학점은 늘 B였다. 아마도 예술가적 기질과 창의력이 부족했을 터이다. 하지만 그의 성향은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결실을 맺는다는 소신파였다. 마침내 그는 졸업 설계 수업에서 A학점을, 그리고 졸업 작품전 우수상을 거머 쥐었다. 이듬해 '대한민국 건축 대전'에 입선함으로써 건축가의 꿈은 더욱 확고해졌다. 

 

 

문전 박대

 

1999년, 그는 대학을 졸업했다. 당시 한국의 경제는 IMF 외환 위기 이후라 대부분의 기업체들은 대졸 신인 사원 채용 규모를 확 줄이고 있었다. 졸업 동기들은 굴지의 대기업 건설사와 대형 건설사에 취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홀로 남겨진 저자는 학교에 나가 취업 게시판을 이 잡듯이 뒤졌다. 하지만 그에게 기회가 찾아오지 않자, 군 입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엇다.

 

그래서 병무청에 들러 병역 특례 취업에 대해 문의를 했다. 돌아온 대답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격이니 일찌감치 포기하라는 조언이었다. 일단 병역 특례 업체로 지정된 건설사 리스트를 구해서 대형사들로부터 하나씩 취업 여부의 가능성을 노크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문전박대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하던 전화는 끝까지 해 보자'

 

마침내 이력서를 보내 보라는 회사가 두 곳 있었다. 대기업 계열사와 최하위급 중소건설사였다. 이는 그가 전화를 걸었던 총 130여 개 기업체 중 약 1.5%에 해당하는 케이스였다. 누군가 '성공이란 99%의 실패에서 나온 1%의 성취'라고 말했다. 기회의 문을 연 것 자체를 성공으로 본다면, 그는 '98.5%의 실패에서 나온 1.5%의 성취'라는 역사적 쾌거를 이뤘다.

 

 

결정적 전환점

 

2005년 초여름, 그는 부동산 컨설팅사에 입사한 지 1개월 정도 되던 날, '화이자 프로젝트'에 참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당시 화이자는 서울 광장동 주택가에 본사와 공장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시설이 낡고 협소해서 추가로 직원을 채용할 수 없을 정도의 공간이었다. 사업 확장을 위해서 최우선적인 과제가 바로 신사옥 매입이었던 셈이다.

 

한국 화이자와 미팅을 가졌다. 중년의 터키 출신 사장은 필수조건을 제시했다. 을지로, 테헤란로, 여의도 등지와 같은 고층 건물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추가로 필요한 사무 공간 면적을 산출해 주었다. 이에 저자는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소위 브로커들을 접촉해 오피스 매물 정보를 취합했다. 한편, 화이자는 매주 경과상황을 문의해왔다.

 

추후에 인지한 내용이지만, 화이자는 2년 동안 이 건물 저 건물을 잇다라 '간만 보고' 결정을 못 내렸다는 것이었다. 화이자가 분명 중요한 고객사인 건 맞지만,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화이자 프로젝트는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낙담하지 않았다. 다들 외면한 프로젝트였다니 그의 실패는 오히려 희망의 상징이었다.

 

 

위험한 자신감

 

저자는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지난 1년여 동안 뛰어다닌 끝에 화이자 사옥 문제를 결국 해결해 냈기 때문이다. 이 공로로 회사에서 그의 위상은 과장에서 부장으로 초고속 승진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제 본업이던 리서치 일은 신입 직원에게 넘기고, 투자 자문 팀을 신설했다. 상업용 부동산을 맴하는 일에 전력투구하게 되었다. 주로 매도편에서 일을 했다.

 

실력있는 사람에게는 때때로 불건전한 인물들이 대시하기 마련이다. 저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상업용 건물 매각 입찰 때 유리한 조건을 얻고자 그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암흑의 세력들로 그에게 거액의 약속어음을 미리 대가로 제안하면서 자신들의 낮은 입찰액을 수용해 주도록 압박을 가해 왔던 것이다.

 

과연 어디서부터 발을 잘못 들였던 것일까. 처음부터 짜여진 각본이 있었던 걸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둠의 세계로 끌려들어 간 것 같은 이상한 기운을 떨쳐 낼 수 없었다. 그들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줘야 할까 고민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변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암시가 있었다. 그렇다고 자존심과 양심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이후 그는 녹음기로 그들의 협박을 일일이 녹음 파일에 저장하면서 강경한 태도로 대응했다.

 

 

 

 

2007년 가을, 그는 애경에 입사했다. 부동산 사업을 그룹의 신 성장 동력으로 추진하는 애경이었으니 그에게는 딱 맞는 궁합이었다. 이후 그는 생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기회를 얻엇다. 선진 유통 시설의 벤치마킹을 위해서였다. 동료들과 함께 회사 사장님을 모시고 출강을 떠났다. 로스앤젤레스, 라스베이거스, 시애틀 등지로. 애경 수원 쇼핑몰은 한국 최고수준의 '쇼핑 허브'로 탈바꿈했다. 실천은 진통과 역경을 수반한다. 그러나 끝내는 성공으로 귀결한다.

 

그의 야망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유학길에 올랐다. 콜롬비아 비즈니스 스쿨에서 MBA를 취득하고자. 경영에 대한 정규 교육과 함께 금융과 부동산 관련 이슈 등에 대해 견문을 더욱 넓혀야 겠다는 자신의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이후 그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도전했다. 어차피 위험이란 말 속에는 기회도 공존하기 때문에. 미국 부동산의 매수에 한국 자본을 연결하는 일을 위해 그는 '콜드 콜'을 이어나갔다.

 

 

13년만에 연봉을 150배로 키우다

 

2015년 4월,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사무실에서 파티가 벌어졌다. 4억달러(약 4500억원) 규모의 자금 유치를 성사시킨 기념으로 마련된 '클로징(거래종결) 파티'였다. 이 자리에 13년 전 건축기사가 주인공으로 서 있었다. 회사 중역들은 가장 큰 공을 세운 그를 '영웅Hero'이라 치켜세우며 슈퍼히어로 '캡틴아메리카'의 방패를 선물했다.그의 연봉은 약 150배 급등했다. 그의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책을 펼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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