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너는 노땡큐 - 세상에 대들 용기 없는 사람이 뒤돌아 날리는 메롱
이윤용 지음 / 수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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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제 나이 40대. 지금까지 살아온 제 인생을 체에 걸러볼까 합니다. 독이 된 사람과 감정들을 삭제하고 힘이 된 사람과 그 마음들을 보관함에 담아봅니다. 어차피 세상에 대들용기도 없고, 억울해도 잘 따지지 못하는 이놈의 성격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상처 준 사람들을 향한 내 감정을 아무도 모르게 삭제해버리는 것일 테니까요. - '프롤로그' 중에서

 

 

자꾸만 상처 주는 당신, 이제 내 마음에서 삭제!

 

이 책의 저자 이윤용은 라디오 작가로 <심심타파>, <별이 빛나는 밤에>, <친한친구> 등 다수의 심야 프로그램과 <싱글벙글쇼>, <2시의 데이트>, <오후의 발견> 등 다수의 낮 프로그램을 거쳐 현재는 MBC 라디오 <박준형, 정경미의 2시 만세>를 집필 중이다. 저서로는 <생겨요, 어느 날(김영사)>, <저는 괜찮습니다만(예담)> 등이 있다. 서울토박이로, 용기 없어 사고 못 치는 순둥이로, 라디오가 좋아 일에 매달리는 일벌레로 살다가, 세상의 쓴맛과 인간관계의 독한 맛을 경험하고 이제는 날라리로 살고 싶은 싱글 여성이다.

 

연애에서, 직장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 상처는 때로 그녀의 숨통을 조여왔다. 그러다가 상처 되는 말은 그저 뱉은 사람이 자신에게 버리고 간 쓰레기일 뿐이라는 걸 알았고, 지난 사랑은 곱게 체에 걸러 아름다운 기억만 새겨도 모자랄 소중한 내 인생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제 가슴이 터지도록 쌓아온 물건과 말과 사람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 책은 그녀의 세 번째 에세이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었는데, 파트1(감정 끊는 법을 저장하시겠습니까?)에서는 상처받은 감정의 정리를, 파트2(유머를 잃지 않게 해주세요)에서는 삶의 충전 밧데리인 유머를, 파트3(마음을 내어주고 싶은 당신이 있어서)에서는 정리하지 않고 남겨두고 싶은 감정이나 추억을, 파트4(우리는 사람이지, 우렁이가 아니니까요)에서는 당당한 삶을, 이렇게 총 54개의 생각 단편들을 담고 있다.

 

 

 

 

님아 그 세탁소에 가지 마오

 

작가는 옷 수선을 맡기려고 동네 세탁소에 들렀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을 정도로 붐볐다. 그래서 순번을 기다렸다. 이제 그녀의 순서. 그런데, 세탁소 사장이 환하게 웃으면서 뒷에 대기 중인 고객의 일처리를 먼저 해도 되겠는지 양해를 구해 왔다. 평소 같았으면 "그러세요"라고 했겠지만, 그날은 급한 일이 있어서 "얼마나 걸리는데요? 제가 좀 급한데"라고 말끝을 흐렸더니 사장의 얼굴이 바뀌며 매우 위압적이 말투로 윽박질렀다.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편의대로 얼굴색을 바꾸고, 순서의 원칙을 바꾸고, 내 감정을 늪으로 바꾸는 사람.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신나게 하하 호호 웃다가도 뭐 하나 자기 맘대로 안 됐다 싶으면 버럭 화를 내고 돌아서는 사람 등처럼 말이다. 그리고 다음엔 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상냥한 얼굴로 나를 맞이한다.

 

"대신 난 뒤끝이 없잖아"

 

그러면서 그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칭한다. 근데 어쩌지? 난 뒤끝이 있거든. 이미 마음에 상처를 받았기에 말이다. 한없이 상냥한 척 다가왔다가,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상 매서운 얼굴로 화를 내는 당신을, 이제 내 마음에서 삭제하고 싶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친절과 미소를 믿을 수 없게 되었으므로. 당신은 환하게 입꼬리를 올리지만 내 눈엔 당신 뒤에 달린 가식의 꼬리가 훤히 보이므로.

 

 

무례한 걱정

 

작가 자신은 안다. 결혼이 늦은 거를. 하지만 그녀는 너무너무 마음이 편하다. 아침에 늦잠을 자서 학교에 5분 지각할 것 같으면 어떻게든 뛰어서라도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추려고 조급증을 내겠지만, 아예 한 시간쯤 늦어버리면 생각이 달라진다. '이왕 이렇게 된 거, 3교시쯤 들어가지 뭐'라는 느긋한 마음이 생기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늦게 결혼한 사람이라면 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아무튼 그녀의 가족은 물론 주위 사람들 모두 이런 그녀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결혼을 재촉하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18년 만에 만나 5분 이야기 나눈 동창이 지금 그녀를 걱정하고 나선다.

 

걱정이 돼서, 라는 말로 남의 사생활에 쑥 끼어드는 사람들.
걱정이 돼서, 라는 말로 남의 상처에 소금 뿌리는 사람들.
걱정이 돼서, 라는 말로 심란한 속을 더 뒤집어놓는 사람들.

 

그래서 그녀는 이제 "네가 걱정이 돼서"라는 핑계로 그녀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을 거부하려 한다.
정말 걱정이 된다면 그저 조용히 교회에 나가 새벽기도나 해주면 좋겠다. 아니, 절에서의 백일기도도 당연히 환영할 것이다. 정말 그것으로 족하니까 말이다. 걱정으로 포장된 타인의 무례함, 이제 그녀는 삭제하려한다.

 

 

붕어빵의 교훈

 

언니는 붕어빵 어디부터 먹어요?

심리테스트예요.

1. 머리부터 먹는다. 2. 배부터 먹는다. 

3. 등지느러미부터 먹는다. 4. 꼬리부터 먹는다.

 

이는 후배가 작가에게 물어온 말이다. 어디부터 먹더라, 하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그녀의 머리에 '붕어빵 팥 정량의 법칙'이란 말이 떠올랏다. 한마디로 우스개 소리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그녀는 붕어빵의 머리부터 먼저 먹는데, 팥을 맛보려면 적어도 두 입 정도는 베어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에 후배는 배부터 덥석 베어 먹는데, 그 이유는 팥을 빨리 맛보고 싶어서란다. 달콤한 팥 맛 때문에 붕어빵을 먹는데, 왜 굳이 기다렸다가 맛보느냐는 거다.

 

여기서 작가는 이를 단순히 유머로 여기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인생은 마치 붕어빵을 먹는 것처럼 어디서 먼저 먹을지를 모르는 케이스라서 달콤한 팥을 언제 만날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인생에 단맛이 느껴지지 않을 때 자신의 팥이 저쪽 어디쯤엔 있을 것이니까 남들이 팥을 먹을 때 부러워하지 말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팥의 양은 정해져 있으므로. 

 

 

호칭에 대하여

 

언니, 소개팅한 연하남이 톡을 하다가 저에게 '누나'라고 불렀어요.

이 자식 뭐죠?

 

어느 날, 후배가 작가에게 이런 카톡을 보내왔다. 그래서, 드라마 <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영향이었을 거라고 후배를 다독였다. 자연스럽게 자신도 무르게 그런 호칭이 나왔거라고 했다. 그랬더니 후배는 심히 흥분해서 "드라마는 누나 동생 하다가 연인 사이로 변한 것이고, 소개팅으로 만난 자신에게 그날은 '~ 씨'라고 이름을 불렀는데 오늘 톡에서 '누나'라고 불렀다"는 것이었다. 즉 당신은 이성이 아니라 그저 누나라는 선 긋기라는 해석이었다.

 

이후 작가는 연상의 여인과 연애 중인 한 남자에게 이에 대해 문의를 했다. 그랬더니 깔끔한 답변이 왔다. 즉, 남자가 연상녀를 만날 때는 호칭으로 먼저 자신들의 사이를 규정하려고 하므로 '누나-나'로 규정한 이상 계속 만나고 싶다면 가볍게 만나보는 게 좋다는 조언이었다. 아니면 나중에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보내지 못한 문자

 

시작은 거창했으나 용기가 없어 보내지 못한 우리의 문자는 지금도 각자의 예전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다. 그걸 만약 진짜로 전송했다면, 우리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아, 갑자기 등골이 오싹하다.

 

야, 네가 그렇게 잘났냐!

"네네" 해주니까 네가 잘나사 "네네"하는 거 같지?

먹거 살려고, 돈 벌려고 그러는 거거든?

ㅔ가 그 위치가 아닐 때도 "네네"거릴 사람 있는지,

30년 후에 퇴직하면 한번 보자.

예언 하나 하는데, 너 말년에 엄청 외로울 거다.

 

물론 이걸 그냥 확 보내버리고 다 그만둘까, 아주 잠깐 고민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버티는 게 이기는 거라는 다소 씁쓸한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의 월급에는 괴팍한 상사와 이상한 동료를 대응해야 하는 수고비도 포함되어 있는 거라고, 나도 누군가에게는 괴팍한 선배, 야박한 동료일 수 있다고, 그러니 쌤쌤으로 치자며 스스로를 자위하던 밤.

 

그러나 모르겠다. 우리의 나이가 여든쯤 됐을 때도 여전히 한 맺히게 억울하다면 고령이 되어 떨리는 손으로 전송 버튼을 누를지도. 아니 어쩌면, 이 나이까지 살아 보니 그거 정말 별거 아닌데 내가 왜 그렇게 파르르 떨었을까, 하며 작성했던 문자를 스스로 삭제하게 될지도. 얄미운 상대에게 들이받는 문자를 보관하시겠습니까?

 

 

 

 

더 이상 상처 받지 말자

 

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더구나 자신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조련하는 방법을 제안하는 훈련서도 아니다. 소심한 마음 탓에 세상에 지를 용기 없는 사람에게 비록 앞에선 아무 말 못해도 뒤돌아 메롱은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찾아가 따지지는 못해도 집에 와서는 조용히 그 사람의 문자를 삭제할 수 있는 그런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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