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정부 - 철학과 과학으로 풀어 쓴 미래정부 이야기
김광웅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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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표정이 밝으면 국민은 마음을 놓는다. 반대로 표정이 어두우면 이내 마음이 불안해진다. 정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많지만 겉만 보고는 알 수 없다. 정부의 페르소나를 벗겨봐야 잘 알게 될까. 정부는 미지의 세계다. 제대로 된 실체를 알기가 어렵고 사랑하기는 더욱 어렵다. 정부를 믿고 의지하려 해도 애증이 교차한다. 정부는 국민을, 국민은 정부를 잘 모른다. 더 좋은 정부가 되려면 정부와 국민의 사랑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 'prelude' 중에서

 

 

좋은 정부는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저자 김광웅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로, 철학(X축)과 과학(Y축)의 직교좌표에서 정부를 조명하며 미래에 더 좋은 정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궁리한다. 관료적 권위주의로 직조된 상상의 실재에 불과한 정부의 본질을 파헤치고, 4차원 지구에서 디지털 독재를 막으려면 적어도 초공간에서 처방전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의 고민은 정부의 페르소나(persona)를 벗겨보려고 아무리 애써도 법과 제도의 틀 속에 갇힌 우리가 과연 자유, 평등, 정의를 구현할 수 있을까에 있다. 인내와 관용의 토양 위에서 싹터야 할 자유, 필요와 능력에 노력이 보태져야 굳어질 평등, 내 것을 버리고 남에게 주는 것이 정의라는 의식은 지금 어디쯤 머물고 있을까?

 
물론 정부에서 일해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멸사봉공滅私奉公하는 1등급 공무원들이 분명 있다. 그런 반면에, 그저 정부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 아니면 집권하고 있는 정권을 위해 충성하는 이들이 있다. 자, 우리들 모두 한번 생각해보자. 어떤 등급이 더 많아야 나라의 앞길이 트이고 더 좋은 정부가 될 수 있을까?

 

 

 

 

관료 문화

 

관료의 정신세계야말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중요한 정책 결정을 내리는 요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1세기의 관료 문화가 철기시대만도 못하다면 이를 누가 믿겠는가? 2500년 전 철기시대는 전쟁 무기와 생산 수단을 철기로 바꾸면서 급성장하는 역사적 전기를 마련했다. 문자가 생기고 지혜를 갖춘 많은 철학자들이 중심 역할을 했다. 정신문명의 기초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관료주의 또는 관료적 권위주의가 굳어지면서 정신문명의 기반이 붕괴되었고, 관료 문화는 온통 경제로 도배되었다. 문자를 뛰어넘어 동영상과 홀로그램이 텍스트를 대신하는 새로운 과학기술 문명이 바로 눈앞에서 펼져지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관료주의는 마치 '신'인 양 변화의 요구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향후에는 뷰로크라시bureaucracy(관료주의)홀라크라시holacracy라는 평등조직으로 변해간다는 의견이 나온 지 오래다. 21세기는 운영 주체가 따로 없이 알고리즘이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누가 높고 누가 낮으며,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이라는 기존 인식의 대변환이 이루어지는 시대다.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정부가 어떻게 바뀌어야 국가와 국민이 편해지는가를 묻는다. 미래정부를 새 패러다임에서 설계하지 않을 수 없다. 

 

 

관료제도

 

관료제의 기원은 그 역사가 엄청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관료제는 기원전 3,000년경 숫자와 상형문자로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세금을 징수하게 되면서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직업은 샤머니즘이고, 그 다음이 관료라는 말이 있다. 기록한다는 것은 또한 새 종교가 될 '데이터이즘'의 기초가 된다. 기록하고 분류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기록이라는 자료가 사물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새로운 정보가 된다.

 

요리 실력이 좋을수록, 레시피가 좋을수록 필요한 정보가 된다. 새로운 정보는 또 다른 기록이 되어 관리된다. 이들이 반복되며 빅데이터가 되고 관료의 손에서 요리된다. 빅데이터가 커질수록 더 탁월한 관리가 필요하다. 결국 데이터는 인간이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새로운 세상의 신흥 종교 같은 지위를 누리게 된다. 이것이 관료의 손에 맡겨짐으로써 정부가 새로운 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진 것이다. 

 

 

새 판을 짜야 한다

 

미국의 천문학자 고故 칼 세이건은 총인구 75억 여명에다 총생산이 63조 달러 이상인 이 지구라는 행성도 광활한 우주에서 바라다 보면 '파리한 하나의 파란 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미미하기 짝이 없는 그런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여러 요소들이 부딪히며 불안을 점점 더 키운다. 걸핏하면 손팻말을 들거나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한다. 그래도 정의를 빙자하며 권력을 잡고 있는 국가기관이 도대체 무엇을 해결해줄 수 있을까? 

 

이에 저자는 해결책을 지구에서 벗어나 5차원으로 바라보면 된다고 강조한다. 벗어나기 위해선 현재의 문제를 현재의 틀로만 보면 해답이 없다. 인간은 어차피 틀 속에 있어 안온하겠지만, 문제투성이의 틀 속에서 마냥 시간만 보낸다면 인생은 허무해지기 마련이다. 틀 밖에서 틀 안을 관조하며 나를 다시 생각하면 된다. 정부도 기존의 관습대로 법, 제도, 정책 등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을 바꾸어 틀을 더 투명하고 유연하게 만들고 이 틀이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좋게 하는지 심각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미래에 바뀔 정부도 현재의 틀로 분석하고 해석하려고 해선 안 된다.

 

새로운 형태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틀을 확 바꿔야 한다. 새 판new paradigm을 짜야 한다. 기존의 같은 틀 안에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한쪽을 막으면 다른 쪽에서 물이 새는 것과 같다. 틀은 오래될수록 물이 새게 되어 있다. 미래정부를 염두에 두어야 할 논거들이다. 틀은 새로 짜기도 힘들지만, 같은 틀속에서도 이랬다저랬다 하며 국민을 괴롭히는 게 큰 문제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늘 부동산 정책이 제멋대로 바뀌는 게 좋은 예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새 판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혼란스럽기만 하다.

 

 

정치, 정의를 망친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지구의 4차원 시공간에서 살고 있다. 스티븐 호킹<위대한 설계>에서 전후, 좌우, 상하, 과거와 현재 등의 4차원 공간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5차원을 생각치 않고 있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카쿠 미치오 교수<초공간>에서 길이, 폭, 두께, 시간 등의 4차원을 넘어 10차원으로 가면 지금 우리는 어떤 존재이고 무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새삼 깨우칠 거라고 역설한다. 나아가 초공간에서는 염력念力, 즉 마음의 힘으로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이 지금까지 그렇게 변했고, 또 전혀 다른 차원으로 변해 간다면 정치의 5차 공간은 어떤 모양이어야 할까?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말대로, 상상의 질서에 불과한 법과 제도로 국민을 제어해야 질서가 잡힌다는 인식은 옛날이야기가 되고 있다. 기껏 국민을 흰쥐 실험하듯 하고 감미료가 잔뜩 들어간 정책으로는 국민의 건강만 해치고 마음을 사지 못한다.

 

보통 정치인들은 힘만 생각한다. 정의를 표방하지만 내 것을 포기하고 남에게 주는 것이 정의라는 것은 전혀 모른다. 힘과 함께 가야 할 기氣의 중요성을 모른다. 힘과 기가 모두 올발라야 한다는 말이다. 물리력에 빗댄다면 믿기, 열기, 나누기, 받들기'4기四氣'다. 진동이자 울림으로 국민에게 문을 열고, 믿게 하고, 있는 것을 나누고, 떠받들어 감동하게 하는 것, 기력을 합친 것이 5차원 정치다. 

 

이처럼 고차원 초공간은 매우 단순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고, 자기 자신을 가볍게 하라. 국민들의 지지률이 떨어진다고 보여주기 식의 엉뚱한 쇼를 벌일 일이 절대로 아니다. 정말로 5차원 공간 정치를 하고 싶으면 방송에 나가 떠들지 말고, 나라 걱정 그만하고 차라리 은거隱居하라. 그것이 나라와 국민을 돕는 길이다.

 

 

공유정부로 가는 길

 

정부는 공직자의 물건이 결코 아니다. 제레미 리프킨이 말하는 소유의 시대가 가고 사용과 접근의 시대가 벌써 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직자들은 아직도 여전히 소유에 집착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선거구가 자신들의 소유물인 양 쪼개고 합치는 꼼수들을 자행하고 있는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관리들도 자신의 자리가 자신의 소유물인 듯 착각해선 안 된다. 집권했으니 이제 마음대로 하겠다는 지금의 작태에 경고장을 보낸다.

 

정부는 입장을 바꾸어 을乙이 되겠다는 심정과 각오로 민간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 보조금 찔끔 주고는 매사를 간섭하고, 농락하고, 억압하는 시대의 관행부터 거두어야 한다. 정부 한계의 보완 내지는 대안으로 제시되는 공유정부는 결코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공유정부와 더불어 함께 가야 할 정부의 기본 정신은 플랫폼 정부다.

 

정부가 뭔가를 움켜쥐려고 하지 말고 새 판만 깔아주면 된다. 공유정부가 미래정부여야 한다는 생각에 대한 현재의 반응은 미미하다. 그러나 정부가 다이어트로 건강해지는 길은 공유정부밖에 없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로봇 공무원의 등장

 

미래정부는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정부도, 관련 학자들도 어떻게 다가올지 말하지 않는다. 그저 막스 베버 시절에 시작된 조직론이나 책임론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흔히 로봇이 공무원의 일을 얼마나 맡을 수 있느냐를 궁금해한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전문가 21인의 의견을 분석한 것을 보면, 정부 행정 관리자가 하는 일의 57%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 정부와 공공행정 전문가는 65%의 일을 로봇에게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의회 의원, 고위 공무원, 공공단체 임원들이 하는 일의 54%가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한다.

 

로봇 공무원의 하루는 어떨지 상상해보자. 그들은 집에서 출퇴근할까? 휴가는 갈까? 휴식은 어떻게 취할까? 어디서 근무할까? 책상은 있을까? 승진 경쟁을 할까? 자기네끼리 회의는 어떻게 할까? 이들은 집에서 출퇴근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집과 직장은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잠은 자지 않겠지만 휴식은 취할 것이다. 조용히 명상하며 창조적 일을 구상할 것이다.

 

이들은 어떤 일을 맡게 될까? 이들이 맡을 일을 준비하는 것은 사람 몫이다. 초기엔 기존 관료들이 이 일을 담당할 것이다. 로보 공무원에게 맡길 일의 종류는 다양하다. 사람보다 더 나은 판단을 하게 된다면 임무의 중심은 이들에게 옮겨갈 것이다. 로보의 숫자를 어느 정도 유지할지, 부처끼리 어떤 관계를 유지하게 될지는 앞으로 설계해야 할 과제다. 정부는 반인간, 반기계와 함께 공존할 마음과 하드웨어를 준비해야 밝은 미래가 열린다는 것을 머리와 가슴에 깊이 새겼으면 한다.

 

 

뉴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연인들 간의 사랑도 뜨겁다가 식는 것처럼 국가나 정부에 대한 애증도 엇갈리게 마련이다. 모든 국민들이 전적으로 동의하는 좋은 정부는 없을 것이다. 비록 좋다고 평가를 하는 정부라 할지라도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은 제각각으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애증을 갖는다는 것은 관심의 표현일 수 있다. 지금 준비해야 하는 것은 낡은 제도와 법을 허물어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함께 공존하며, 서로 존중하는 그런 제도와 법을 준비해야 더 좋은 정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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