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이랑 오늘도 걱정말개 - 노잼 일상을 부수러 온 크고 소중한 파괴왕
오혜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밀란이는 내가 소망했던 천사견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개 무식자’ 시절 생각했던 것처럼 악마견도 아니었다. 사람이 저마다 타고난 성격과 신체가 다르듯, 밀란이도 아주아주 발랄한 성격과 튼튼한 몸을 타고난 개성적인 개일 뿐이었다. 밀란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뒤로는, 무슨 일이 벌어지든 전처럼 화가 나거나 괴롭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실을 웃음으로 받아들이게 됐고, 사고를 치는 모습도 귀엽게 느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사고뭉치 개 밀란이와 살아가는 이야기

 

책의 저자 오혜진은 4년 전 '래브라도 리트리버=천사견'이라는 착각으로 밀란이를 덜컥 입양한 뒤 지금까지도 파괴왕 밀란이에게 잡혀살고 있다. 강아지는커녕 어릴 때 키워본 동물이라고는 소라게가 다인 개 무식자라, 처음에는 틈만 나면 밀란이와 싸우는 게 일상이었다. 잠시만 눈을 떼도 온 사방을 헤집어놓는 밀란이를 미워하는 마음이 든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밀란이를 파양하거나 체벌하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사람이 저마다 타고난 성격과 신체가 다르듯, 밀란이도 아주아주 발랄한 성격과 튼튼한 몸을 타고난 개성적인 개일 뿐' 라는 생각으로 이제는 꽤 쓸 만한 매니저가 되어, 하루하루 밀란이와 전쟁 같지만 사랑스러운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사고뭉치 강아지 밀란이와 가족들이 싸우고 사랑하고, 화내고 화해하고, 울고 웃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다. 동물이라고는 어렸을 때 소라게를 키워본 게 전부였던 '개 무식자'인 그녀와 뼛속까지 '파괴왕' DNA로 가득찬 2개월짜리 강아지와의 동거는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막연하게 맹인 안내견이자 인명 구조견으로 알려진 래브라도 리트리버였기에 당연히 '천사견'일 거라는 환상을 갖고 입양했지만, 현실은 '악마견'을 데리고 온 것이 아닐까 후회될 정도로 사고뭉치에 말썽꾸러기였다.

 

문짝이며 가구며 세간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물어뜯고 찢어발기는 것이 일상이었고,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온 사방을 헤집어 놓아 손해배상에 적지 않은 돈을 쓰기도 했다. 밀란이를 미워하는 마음이 든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사람의 아기가 마냥 사랑스럽기만 하지는 않은 것처럼 밀란이도 어떤 성격을 가졌든 내가 책임져야 할 우리 가족이라는 생각만은 변함이 없었다.

 

 

 

 

밀란이의 탄생

 

이름 이밀란, 여자, 2014년 4월 2일 출생. 이게 애완견 밀란이의 견犬적사항이다. 사실 견주인 엄마는 지금 속이 타들어가고 썩어문드러지고 있을 것이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다. 인간이야 책에서 가르쳐주는 것으로 세상을 살아가겠지만, 나같은 견공들은 '똥인지 된장인지' 입에 넣어봐야 알고,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아야 뭐가 뭔지를 안다. 그러다보니 뭐든 입으로 물어뜯고, 씹고 하면서 조금씩 알아간다.   

 

 

정말 서러워서

 

밀란이도 여자니까 화장품에 관심이 좀 많다. 그래서 화장품을 뜯어 발라보다가 냄새가 하도 좋기에 맛이 궁금해 몇 통 좀 먹었다. 근데 엄만 그거 갖고 왜 남의 화장품에 손대냐며 화를 냈다. 아니 우리가 남이가? 식구라며! 또 한 번은, 엄마가 "아무것도 안하고 소파에 누워 책만 읽고 싶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걸 기억해뒀다 방안의 물건을 다 끄집어내서 거실에 갖다놨다. 손만 뻗으면 엄마에게 필요한 물건이 다 닿으니 안 움직여도 되고 얼마나 편하겠는가? 중간에 힘 조절을 쪼까 못해서 망가진 물건이 몇 개 있긴 했지만, 아예 못 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보곤 내 마음도 모르고 화를 냈다.

 

 

 

엄마가 날 포옹해줬다

 

엄마를 처음 만난 날, 밀란이는 형제들과 케이지 안에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밀린이를 귀엽다고 데려가면서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약속까지 했었다. 그래서 밀란이는 엄마를 즐겁게 해주려고 온갖 재롱을 부렸지만, 엄마는 오히려 피하면서 장난 치지 말라며 화를 내고 심지어 울기까지 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런 엄마가 오늘 사과한다면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듣고 보니 엄마는 밀란이를 싫어하는 게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밀란아, 사실은 말이야…. 처음엔 네가 참 귀여웠는데, 어느 순간 덩치도 커지고 힘도 세져서 점점 감당이 안 되더라. 물건도 다 박살내고 집안을 난리 쳐놓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다른 집에 보내도 예쁨받지 못할 것 같고, 버린다는 건 생각도 못 하겠고. 그러면서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라 아빠한테만 모두 맡기고, 널 외면했어…. 아까 네가 수술 끝나고 눈도 팅팅 부었는데, 이런 나도 엄마라고 반갑다며 꼬리를 흔들더라. 마음이 너무 아팠어. 너 기운 없는 걸 보느니, 사고 치는 게 더 낫겠어"

 

개새, 이는 나한테 욕 아닌가?

 

이젠 내 체력의 비밀도 알게 됐겠다, 나도 더 이상 꺼릴 게 없어 엄마와 공놀이를 하면 성이 찰 때까지 놀아달라고 조른다. 아무리 던져줘도 내가 지치지 않고 날듯이 빠르게 뛰어오자, 엄마가 "우리 밀란이, 개 같지 않고 새 같네?" 하고 씨근덕거리며 말했다. 그러고는 공을 던질 때 악쓰듯 기합을 외치기 시작했다.

 

"공 갖고 날아와라, 이 개새야!!”

 

여기서 '새' 할 때 시옷 발음이 조금 세게 나온 것 같고… 평소 내가 물건 망가뜨릴 때 하던 욕 발음과 비슷하게 느껴졌지만, 분명 날아다니는 새와 비교를 하긴 한 것 같으니 뭐라 따질 수 없었다. 그 이후로 엄마가 공을 던져줄 때마다 "개새!", "이 개새야!"라고 외친다. 던져주니까 입에 물고 재빨리 가져오긴 하는데, 기분이 영 찝집하다. 칭찬 같은면서도 욕을 하는 것만 같다. 

 

 

 

네가 저지른 인테리어를 강추위는 알고 있다

 

밀란이가 저지른 인테리어 작업(?) 중에서 유일하게 후회하는 게 하나 있는데, 개춘기 시절 베란다 중문 실리콘을 뜯어버린 일이다. 속이 하도 답답해서 바람이나 솔솔 통하게 하려고 한 짓인데 요즘 들어 후회하고 있다.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요즘은 바람 들어오는 게 '솔솔' 수준이 아니라 얼마나 추운지, 식구들은 집 안에서도 패딩을 입고 지낸다. 소파에도 작은 전기장판을 깔아놨는데, 하도 추워서 염치없게 밀란이가 독차지하고 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미안하긴 하지만, 견공도 살아야 한다. 욕해도 어쩔 수 없다. 아, 그러고 보니 하나뿐인 미니 난로도 밀란이의 전용 물품이다.

 

 

개도 감정이 있다는 걸, 너희 인간들은 알까?

 

어릴 적엔 세상 무서운 게 없었다. 그런데, 밀란이도 나이들면서 무서운 게 생겼고,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정도로 눈치가 9단이다. 무서운 건 아빠의 불호령이다. 평소에는 밀란이와 잘 놀다가도 혹 밀란이가 실수하거나 잘못 행동을 하면 가치없이 혼을 내기 때문이다. 몰라서 저지른 잘못도 있고, 열받으라고 친 사고도 있었다. 

 

개도 이렇게 상호모순되는 양가兩價감정을 느낀다는 걸, 인간들은 알까? 입으로는 하고 싶은 대로 다 뜯으면서, 한편으로는 죄책감을 느낀다. 식구들이 집에 들어와 난리 난 집을 본 순간, 조금이라도 덜 혼나려고 귀를 뒤로 접고 항복의 배 까기를 하는 비굴한 모습. 아무것도 몰랐던 어렸을 때는 아무 눈치 안 보고 떳떳했는데. 왜 "안 돼!"라는 말을 알아듣게 된 걸까?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가 가장 행복했다.

 

 

우리 함께, 영원히

 

자서전을 쓰면서 식구들을 많이 한심하게 표현하고 별로 안 좋아하는 척했지만. 사실 밀란이에게 가장 특별한 건 바로 우리 식구다. 그리고 밀란이도 이들에게 가장 특별한 존재라는 걸 알고 있다.

 

서로 오해도 하고 미워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우린 평생 함께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이다. 그리고 밀란이가 아니면 누가 이 모자란 오합지졸을 거둬주겠나.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끌어안고 살아야지. 인간에 비하면 그리 길지 않은 개의 수명이지만, 죽는 날까지 이렇게 함께 웃고 울고 싸우고 화해하고 사랑하면서 보낼 거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알아보고 데려와줘서 많이 고마워.

 

 

 

끝까지 함께 살아야 행복이다

 

우리집 애완견 보리는 큰딸의 과외교사가 갓 출생한 새끼 마르티즈를 딸에게 준 선물이었다. 엄마젓을 빨던 녀석이 차를 타고 멀리 이사온 탓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지금도 보리는 승용차를 타고 함께 이동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너무 불안해하고 안절부절하기 때문이다. 이제 노견에 접어들어 병치레도 자주 하고 관절이 시원찮아서 수의사가 조심하라고 한다. 그래서 아침에 우리 부부가 산책 준비한다고 부시럭거리면 금방 따라 나선다. 애완견이 말썽을 부린다고, 사료값이 많이 든다고 하면서 키우던 애완견을 버리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고 한다. 책임감을 갖고 끝까지 함께 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