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의 시대 - 일, 사람, 언어의 기록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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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라는 개념은 본문에서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요약하자면 '규정된 언어'다. 어린 시절부터 외우고 노래해 온 익숙한 훈들, 그러니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든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든가, 하는 수사들은 개인을 시대에 영속시키는 동시에 끊임없이 지워내 왔다. 특히 사유의 범위를 그 함의의 테두리에 가두고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그 이후의 시대로 넘어가더라도 그 잔재는 여전히 동시하면서 위력을 가진다. 그래서 한 시대의 종언을 고한다는 것은 한 시대를 지배해 온 언어가 종말 했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 '프롤로그' 중에서

 

 

우리 시대의 훈訓들은 기괴하다

 

책의 저자 김민섭은 309동1201호라는 가명으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썼고, 그 이후 대학에서 나와서 '김민섭'이라는 본명으로 이 사회를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으로 규정한 <대리사회>를 썼다. 그런데, 대학에서 교수도 아니고 학생도 아닌, 어느 중간에 위치한 경계인인 그는 그러한 중심부와 주변부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에게 보이는 어느 균열이 있다고 믿는다. 그 시선을 유지하면서 작가이자 경계인으로서 개인과 사회와 시대에 대한 물음표를 우리들에게 건네려고 한다. 가볍지만 무거운, 그러나 무겁지만 가벼운 김민섭이라는 하나의 장르가 되고 싶어 한다. 저서로는 <아무튼, 망원동>, <고백, 손짓, 연결> 등이 있다.

 

많은 이들이 고백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이는 맞는 명제이면서도 동시에 모든 이에게는 성립되지 않는다. 모두가 함께 같은 목소리를 내야만 겨우 뭔가가 바꿔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마치 몇몇 동의하는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고요 속의 외침'으로 끝나고 만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무수히 보아 왔다. 그마저도 멈춰 버리면 변화를 요구하던 그 힘은 거짓말처럼 소멸된다.

 

이에 저자는 우리들 주변의 훈들을 수집해서 펼쳐 놓고선 이런 언어들이 이 시대와 함께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물론 충분히 가능한 언어들도 있다. 그러나, 구시대에서나 통했을 법한 그런 낡은, 모욕적인 언어들은 이 시대와, 나아가 미래의 시대와는 함께 보조를 맞출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제안'한다. 일상의 평범한 훈들이 과연 우리들에게 잘 맞는지를.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을 읽어 가노라면 분명히 변화라는 욕망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리들에게 훈의 의미는?

 

훈訓은 어려운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사실상 우리들 곁에 늘 함께 했던 친숙한 단어이다. 예를 들어보자. 집에서는 가훈家訓, 학교에서는 교훈校訓, 회사에서는 사훈社訓, 예비군 훈련장에 가면 훈련訓練, 무슨 기념일에 강당에 모이면 귀찮아도 듣게 되는 훈시訓示 내지는 훈화訓話, 교칙을 어겨 교무실에 불러가서 듣던 훈계訓戒 등이 떠오른다. 

 

이처럼 훈은 가정, 학교, 회사, 군대, 국가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의 일상과 함께 있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훈은 우리들을 가르치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훈은 '~해야 한다'는 지침을 전달 혹은 강요하던 계몽이자 자기계발의 언어인 셈이다. 특히 집단에 속한 한 개인에게 위계적이며 명시적으로 다가간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학교에서는 교사가 학생에게, 회사에서는 사장이 임직원들에게, 국가에서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단어로, 문장으로, 계속해서 훈을 내보낸다.

 

집단에 소속된 개인을 가르치려는 교육의 언어

지배계급이 생산, 유통하는 권력의 언어

한 시대의 욕망이 집약된 욕망의 언어

 

가정(부모 → 자녀) : "거짓말을 하면 안 돼. 정직하게 살아야 해"(훈계)
학교(학교 → 학생) : "정직", "인사" 등(교훈)
학교(교장 → 학생) : "정직한 어린이가 되어야 합니다"(훈화)
학급(교사 → 학생) :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훈시)
회사(회사 → 직원) : "정직한 제품 생산"(사훈)

 

 

학교의 훈

여고의 훈으로는 대표적인 게 '순결'인데, 이는 '몸을 깨끗하게 지키라'는 것이다. 순결함이 훼손되고 나면 더 이상 학교에서든 이 사회에서든 가치 있는 여성으로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루어지기도 힘들다. 여기에 '여자로서 행실이 곧고 마음씨가 맑고 곱다'는 정숙함이라는 가치가 더해지면 순결은 다만 이성과의 관계뿐 아니라 모든 행실에 가서 닿는다. 따라서, 몸가짐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셈이다. 

 

반면에 남고에는 여고의 경우와는 달리 '몸을 깨끗하게 지켜야 한다'는 훈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에 남학생들은 '용감'하게 자신의 '미래'를 '열정'적으로 '개척'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러다보니 남학생들의 몸이 다소 더럽혀지는 것은 오히려 영광의 상처가 된다고 자연스럽게 인식하게끔 만들어 버린다.


하나의 훈은 그 훈을 받아들일 주체들을 규정하게 된다. '성실', '정숙' 등 단어만으로 나타내는 방식이 더 많지만, '성실한 사람이 되자'라든가 '정숙한 여성'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사람이나 여성으로서 그 대상을 호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고와 남고의 교훈이 각각의 구성원을 호칭하고 있는 방식 역시 현저히 다르다.


여고: 사람(14회), 여성(10회), 어머니(3회), 겨레의 밭(3회), 딸(2회)
남고: 사람(8회), 인간(2회)

(주) '겨레의 밭'~ 대구여자고등학교, 상주여자고등학교, 경남여자고등학교

 

겨레의 밭

억세고 슬리고운 겨레는

오직 어엿한 모성에서 이루어지나니

이 커다란 자각과 자랑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닦는다

- 경남여고 교훈

 

 

원주여고 교훈의 개정을 반대하다

논란을 빚던 원주여고 교훈(본보 4월 24일자 18면 보도)이 그대로 유지돼 68년의 역사와 전통성을 이어갈 전망이다. (……) 동문들은 이날 자리에서 "교훈은 학교의 가치관, 교육 방향 등 핵심 덕목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라며 "시대가 변해도 교훈은 변하지 않는 학교의 긍지이며 전통"이라고 했다. 또 "전통은 지켜왔기 때문에 전통이며 지켜가기 때문에 전통이다"라고 강조했다. 교훈 개정을 추진하던 학교 측 역시 무엇보다 총동문회의 의견을 중요시하겠다는 방침인 만큼, 원주여고의 교훈은 변경 없이 1945년 학교를 설립하면서 정해진 '참된 일꾼, 착한 딸, 어진 어머니'로 이어질 예정이다. - '강원일보(2013년 5월 21일) 18면 '원주여고 교훈 그대로 유지 만장일치' 중에서

 

원주여고는 결국 총동문회의 결정을 받아들였고 '68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게 되었다. 학창 시절을 보낸 공간이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이전을 앞둔 교정을 찾았을 때 어떠한 심정이 될지도 잘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그들은 공간의 이전을 두고서는 울며 손을 흔들었지만, 언어의 이전에는 분노했다.

 

그들에게 공간보다 떠나보낼 수 없는 것은 언어였고, "시대가 변해도 교훈은 변하지 않는 학교의 긍지이며 전통"이라는 말로, 자신들의 훈을 지켜냈다. 이처럼 동문회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오랜 전통의 학교들이 있다. 반면에, 책은 개정에 성공한 사례도 소개한다. 즉 강화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은 학교의 교가 중에 후렴구에 등장하는 매우 어색한 '여자다워라'라는 가사를 '지혜로워라''은수銀水은수되어라'로 각각 바꾸었다는 것이다.

 

 

 

회사의 훈

개인들의 무관심과는 달리, 회사의 경영책임자들은 한 공간을 장악한 언어가 가진 위력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회사의 이익과 연결한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삼성신경영실천위원회'에서 발간한 <삼성인의 용어: 한 방향으로 가자>(1993)에서는 한 조직의 용어가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두었다.


한 조직의 용어를 통일하는 것은 그 구성원의 사고와 행동을 하나로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 조직이 추구하는 방향이나 가치관을 언어를 통해 서로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업의 용어 통일은 기업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기능을 합니다. 회장께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용어 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하십니다. 구체적으로 첫째, 그룹의 용어를 명확히 통일하고, 둘째, 삼성 특유의 용어를 만들고, 셋째, 용어의 질을 한 차원 높이자는 특유의 용어論을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이 책자는 삼성이 21세기 세계 초일류기업을 실현하기 위해 전 삼성인의 사고와 행동을 한 방향으로 통일하는 데 필수적인 삼성용어의 해설집입니다. (……) 삼성인이면 누구나 이 용어 하나하나의 뜻을 알고 있어야 하고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신경영의 참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사소통이 빨라지고 단결력을 높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개인의 훈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줍니다"(1001, 2002, 2004)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속에 성을 짓고 삽니다"(2003)

"여기는 캐슬특별시입니다"(2004)

"당신은 캐슬에 사십니다"(2005)

"당신을 말해 줍니다"(2007, 2008)

"언제나 변치 않는 가치"(2009)

"특별해진다면 그곳은 캐슬입니다"(2010)

"행복은 캐슬로부터"(2011, 2012)

 

롯데캐슬의 광고 문구는 끊임없이 개인과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을 연결시킨다. 누구나 보다 나은 공간에서 일상을 영위하고 싶어 한다. 여기엔 '편안함'이라는 절대적 자기만족에 '특별함'이라는 상대적 자기만족이 더해지는 셈이다. 공간에서 '특별함'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과 함께 마침내 아파트의 브랜드가 개인의 품격을 담보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같은 단위의 지역에서도 이제는 어느 아파트의 단지에 사는지가 중요해졌다. 아파트의 브랜드가 개인의 품격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입주한 구성원들은 스스로 자신의 단지 주변에 성곽을 쌓아나갔다. 그것은 같은 단지의 아이들끼리만 어울리게 한다거나, 입주민이 아니면 출입을 금지한다거나, 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브랜드 아파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완전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들은 어디에 사느냐는 질문에 "○○동 래미안", "○○동 자이", "○○동 힐스테이트" 등으로 대답하게 되었고, 그것은 그들의 특별함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곧 문제가 생긴다. 브랜드 아파트가 경쟁하듯 들어서면서 그 희소성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건설사들은 조용히 욕망의 언어를 더 만들어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서브 브랜드'라는 것이 탄생한다. 예컨대, '프리미어 팰리스'라든가 '메가트리아', '로이뷰', '더테라스', '트리지움' 등과 같은 이름이 기본 브랜드 뒤에 덧붙기 시작한 것이다. 이 2차적인 욕망을 담은 훈이 가장 먼저 가서 닿은 지역은 어디였을까? 그렇다. 역시나 '강남'이었다. 

 

 

 

시대에 뒤쳐진 낡은 언어들을 청산하자

 

우리 주위엔 아직도 과거의 많은 훈들이 남아서 이 시대와 함께하고 있다. 전근대적인 야만의 언어들,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낡은 언어들이 여전히 우리들 곁에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매우 모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들은 이를 폐기처분하고 새로운 시대의 논리에 맞는 훈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우리들에게 전하려는 주된 메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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