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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별게 다 고민입니다 - 동물 선생 고민 상담소
고바야시 유리코 지음, 오바타 사키 그림, 이용택 옮김, 이마이즈미 다다아키 감수 / 21세기북스 / 2018년 12월
평점 :
대부분의 물웅덩이가 말라버린 건기의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하나 남은 물웅덩이에 평소에는 먹고 먹히는 관계인 사자와 얼룩말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물을 마시고 있는데요, 물이 부족한 이때만큼 동물들은 내 편, 네 편 가리지 않고, 서열과 먹이사슬을 떠나 '지금을 살아가는' 데 집중합니다. - '머리말' 중에서
동물들의 인생 안내서
이 책의 저자 고바야시 유리코는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방송 제작사에서 야생동물 다큐멘터리를 만들다가 출판사 에디터가 되었다. 현재는 프리랜서 에디터로 자연, 생물, 산악 분야의 책과 잡지를 주로 만들고 있다. 언제나 '지금'을 살아가는 동물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통해 인간의 47가지 고민에 대한 조언을 이 책에 담았다. 책 속의 그림을 그린 오바타 사키는 구와사와디자인연구소 종합디자인과 졸업하고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독립 후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동물이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며, 때로는 불필요한 상상 때문에 벌어지지도 않은 최악의 사태에 불안해하기도 한다. 이렇게 미래에 대해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덧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고민을 그만하고 싶어도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다.
왜 이렇게 고민이 많을까?, 왜 사소한 일에 신경 쓰고 불안해할까? 그 이유는 바로 미래를 상상하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들이 앞날을 두려워하면서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는, 말하자면 인간들만의 전매특허다. 아무리 그럴지라도 고민 때문에 괴로운 상황을 무조건 참을 수는 없다. 어떻게든 마음의 짐을 덜고 홀가분해지고 싶다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오랫동안 동물 다큐멘터리를 다루어 온 저자는 만일 동물이 인간의 고민을 듣는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 상상해보았다. 인간과 달리 오직 '지금'을 살아가는 동물은 분명 남다른 대답을 들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아쉽게도 인간은 동물의 말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동물의 관점에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총 다섯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동물이 인간의 걱정을 듣고 함께 생각해주는, 가상의 고민 상담소인 셈이다.
습관 때문에 살이 빠지 않는다
24의 여성은 일하면서 계속 과자를 집어먹기 때문에 살이 빠지지 않는다고 고민을 토로한다. 이에 대해 대식가 동물이 답한다. 즉 대식가인 큰개미핥기는 하루에 먹는 개미의 수가 약 2만 마리다. 하지만 눈앞에 아무리 많은 개미들이 있어도 한 개미집에만 들러붙어 내내 먹는 게 아니라, 수천 마리를 먹고 나서 다른 개미집으로 옮겨 다닌다. 이처럼 먹고 이동하고, 먹고 이동하기를 반복한다. 느긋하게 산책하는 듯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건 영역을 지키는 중요한 행위다. 식사를 군데군데서 조금씩 하는 이유는 식사와 영역 순찰을 효율적으로 병행하기 위해서다. 또한 개미집을 전멸시키지 않는 것은 생태계를 균형있게 유지하는 것이다.
한자리에 앉아 내내 과자만 집어 먹으면 몸도 나빠질뿐더러 주변 사람들에게 게으름뱅이로 찍힐지도 모른다.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먹고 나서 곧바로 움직이는 습관을 들이는 게 어떨까요? 복사기 토너를 교체하거나, 우편물을 나눠 주는 등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주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면 동료들의 평판도 좋아지고 다이어트도 효과를 볼 것이다.
매일 초조하고 불안하다
35세 여성은 매일 초조해서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다고 고민을 토로한다. 이에 대해 숙면의 달인 오랑우탄이 해답을 내놓는다. 오랑우탄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영장류 사람과에 속하는 동물이다. 오랑우탄과 인간의 DNA 차이가 약 1퍼센트라고 하니 정말로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랑우탄은 인간과 달리 크게 짜증을 내거나 초조해하지 않는다. 아마도 매일 밤 푹 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들은 평생을 나무 위에서 지낸다. 밥도 나무 위에서 먹고, 잠도 나무 위에서 잔다. 매일 밤 잠자기 전에 나무 위에 침대를 만든다.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꺾어 구부리고 쌓아서 새의 둥지 같은 침대를 만드는데 더욱 포근한 잠자리를 위해 베개와 이불까지 준비하기도 한다. 이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우면 추위와 비바람을 피해 아침까지 푹 잘 수 있다.
사실 고릴라나 침팬지 같은 대형 유인원도 이런 침대를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긴팔원숭이 같은 소형 유인원은 침대를 만들지 않는다. 일설에 따르면 침대를 만들어 숙면을 취하는 게 유인원의 진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인류의 진화에서도 수면은 큰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앞으로 더욱 진화하기 위해서라도 오늘 당장 편안한 잠자리를 마련해보는 게 어떨까?
바빠서 누군가를 만날 수 없어요
36세 여성은 일이 많아 남자를 만날 시간이 없어서 평생 독신으로 살까봐 걱정이 많다. 이 고민에 대해 상담해줄 동물은 곤충이다. 도롱이나방은 나방의 일종인데, 주머니나방이라고 해야 알아듣는 사람이 많다. 도롱이나방의 애벌레는 어미가 사는 도롱이 안에서 태어난 후 외부로 나가 스스로 도롱이를 만든다. 그 안에서 번데기가 되어 겨울을 나고 날개가 돋아나 성충이 된다. 성충이 되면 수컷은 암컷을 찾아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암컷도 도롱이 안에서 성충이 되지만, 날개와 다리가 퇴화해서 일반적인 나방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살아간다.
암컷 도롱이나방은 외부로 나갈 수 없고 평생 도롱이 안에서만 지내지만 신통하게도 수컷을 잘도 만나 자손을 남긴다. 바로 강력한 페로몬 덕분이다. 암컷 도롱이나방은 도롱이 아래쪽으로 머리를 내밀어 페로몬을 방출하는데, 꽤 먼 곳까지 전해지기 때문에 사방에서 수컷들이 몰려든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짝짓기 상대를 찾아내면 교미를 하고 출산을 하게 된다.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서 수컷을 끌어들이는 페로몬의 위력, 대단하지 않은가?
당신도 옷차림, 헤어스타일, 사소한 몸짓과 표정을 살짝 바꿔보면 주변에서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이게 바로 강력한 페로몬이 될테니까 말이다. 굳이 소개팅에 나갈 필요 없이 주변에서 좋은 사람이 알아서 당신에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주변의 시선을 자꾸 의식한다
이는 38세 남성의 고민이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넓적부리황새가 이 고민을 상담한다. 우리들의 동료는 남의 실패를 비웃기나 하는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뿐인가? 그렇지 않다. 넓적부리황새는 동물원에서 '움직이지 않는 새'로 유명하다. 하루 종일 거의 움직이지 않고 수면만 바라보며 서 있기 때문에 "허수아비인가?"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수면 위로 떠오르는 폐어류를 잡아먹기 위해서다. 폐어는 말 그대로 폐로 숨 쉬기 때문에 이따금씩 수면 위로 떠올라야 하는데,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항상 수면에 의식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신기한지, 주위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늘 북적거린다. 처음에는 그렇게 주목받는 게 창피했지만 결코 저를 비웃기 위해 지켜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움직이는 순간을 진지하게 기다린다. 폐어를 잽싸게 낚아챘을 때는 환호하며 박수를 치는 등 뜨거운 반응까지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남들에게 무심코 눈길을 던지기 마련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악의는 없다. 우리들의 동료도 열심히 하는 우리 자신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파이팅!'을 외치고 있을지 모른다. 당신에게 집중한다는 건 당신에게 기대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하거나 서툴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꼰대가 아닌 선배가 되고 싶다
이는 42세 직장 여성의 고민이다. 그녀는 무리 안에서는 최연장자('왕언니')이지만 젊은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다. 아마도 그녀가 그들과 경쟁하려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 사자가 고민 상담에 나섰다. 사자들도 암컷과 새끼들로만 이뤄진 여성 중심의 사회다. 번식을 위해 수컷이 한두 마리 끼어들기도 하지만 거의 암컷들끼리만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주로 하는 일은 사냥인데, 요즘에는 체력이 좋은 젊은 암사자들이 사냥에 나선다. 그 대신에 나이든 암컷은 무리에 남아 새끼들을 돌보거나 수컷 사자 혹은 하이에나가 오지 않는지 감시한다.
나이가 들면 젊은 친구들을 체력으로 당해낼 수 없지만 육아 경험이 있고 젊은 친구들보다 위기관리 능력도 높은 편이다. 연장자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살려 후배들을 이끌어주면 얼마든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후배들과 경쟁한답시고 관계를 악화시키면 무리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 그런 꼴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젊은 후배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당신도 너무 자기 고집만 내세우지 말고 든든한 인생 선배로서 젊은 사람들을 이끌어준다면 자연스럽게 존경받게 되고 꼰대라고 불리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남들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다
이는 17세 남성의 고민이다. 그는 나답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 많다. 대부분의 사람은 누구나 남들에게 쉽게 휘둘리고,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려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또 남들과 다르게 살려면 굳은 신념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모양을 보인다.
해달은 바다 위를 떠다니며 삽니다. 잠잘 때도 바다 위에 떠 있기 때문에 자칫 깊이 잠들어버리면 조류를 타고 먼 바다까지 흘러가 무리에서 떨어져버리기도 한다. 이를 막기 위해 해달들은 해저에서 자라는 다시마를 온몸에 휘감고 잠자는 기술을 개발해냈다. 자신의 힘으로 거스를 수 없는 물살 속에서도 다시마만 있으면 괜찮다!
아직 20대도 아니라면 세상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힘이 부족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마처럼 의지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예를 들어 만화나 영화에서 '나도 이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한 이상적인 장래의 모습을 찾아낸다면 일시적인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운동이나 음악 등 흥미를 느끼는 분야를 본격적으로 배워보거나, 용기 내어 유학을 떠나보는 것도 좋다.
세상은 의지할 곳 없는 넓은 바다와도 같다. 자신을 붙들어줄 다시마 같은 존재를 억지로라도 찾아본다면, 전혀 모르는 곳으로 자꾸자꾸 흘러갈 염려도 줄어들지 않을까?
고민은 가볍게, 정답은 단순하게
물론 동물이 인간의 고민을 말끔히 해결하기란 어렵다. 또한 더 참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어떤 동물의 조언은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과 다를 수도 있다. 다만 동물의 시선에서 인간의 문제를 바라볼 때 얻을 수 있는 위로와 감동, 재미와 즐거움은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신선한 경험이 되기에 충분하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동물의 모습을 통해 세상을 복잡하게 바라보기보다 조금 단순하게 마주할 용기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