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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7년 2월
평점 :
이 책은 매혹에 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특정한 경제학적 시각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 은밀하게 우리의 의식 속에 기어들어오게 된 과정을 다룬다. 그 시각이 가치관을 어떻게 장악했는지, 그리하여 세계경제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에까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말한다. 여성과 남성을 논하며, 우리가 장난감을 현실로 끌어들인 후 결국 어떻게 그 장난감의 지베를 받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 '리먼 브라더스가 리먼 시스터스였다면?' 중에서
주류 경제학은 여성을 포함하지 않았다
책의 저자 카트리네 마르살은 웁살라대학교를 졸업하고 스웨덴의 유력 일간지 <아프톤블라데트>의 편집주간을 지내며 국제 금융, 정치와 페미니즘에 대한 기사를 주로 썼다. 경제학과 가부장제의 관계를 논한 저서 <유일한 성>으로 2012년 스웨덴 내 유력 문학상인 아우구스트프리세트의 논픽션 부문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다른 저서로 <강간과 로맨스>, <회색의 구조> 등이 있다.
이 책은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된 주류 경제학에 날카로운 일침을 날린다. 저자는 현재 주류 경제학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페미니즘은 필수적이며, 이는 성불평등부터 인구 증가, 복지 체계에 대한 문제부터 노령화 사회에 닥칠 인력 부족에까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의 초기 사상부터 현대 여성들이 직면하는 불평등한 사회 및 경제 구조뿐 아니라 현대 금융 위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짚어 보며, 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는 날카롭게 여성과 경제학, 그리고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다"
이는 주류 경제학의 시작점이 된 <국부론>에 등장하는 유명한 구절이다. 당시 애덤 스미스는 빵집 주인이 빵을 굽고, 양조장 주인이 술을 빚는 것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윤을 취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즉 모두가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라도 있는 것처럼 세상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빠진 게 있다. 바로 여성이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개인의 이익 추구 본능에 대해 언급했을 때, 이기심이 아니라 사랑으로 자신을 돌봐준 어머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머니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과연 불후의 명저 <국부론>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또한,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이 이기심을 발휘해 돈을 벌 수 있던 것도 자신들의 아이를 키우고 식사를 준비하고 텃밭에서 채소를 키운 아내 혹은 누이 덕분이었다.
주류 경제학에선 2차 대전 이후 여성들이 일하기 시작했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이들은 늘 일하고 있었다. 단지 이들의 노동이 낮게 평가되거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을 뿐이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매일 아침 동생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15킬로미터를 걸어서 땔감을 모아오는 소녀는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함에도 이런 여성들의 노동은 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즉, 투명인간 취급을 당한다. 왜 세계 인구의 절반이나 되는 여성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까?
애덤 스미스의 어머니
에덤 스미스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가 집안일을 돌보았고, 사촌이 돈 관리를 했다고 한다. 그가 관세 위원으로 에든버러에서 일하게 되자 어머니도 함께 이사했다. 그럼에도 그가 국부론에서 푸줏간 주인, 빵집 주인, 양조장 주인 등의 남성들을 거론했지만 여성들의 활동은 전혀 고려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니면 아무 의미도 없다"
물론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맡아 온 일들은 의미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시각이 바로 경제학적 세계관을 정의하므로 여성들의 일은 '그 외의 일'이 되고 만다. 따라서,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절반의 답을 찾은 데 불과하다. 그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상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의 어머니가 매일 저녁 식사가 식탁에 오를 수 있도록 보살폈기 때문이다.
차별를 합리화하다
심리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실제로 여성이 청소를 더 잘하도록 타고났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세계적인 학자는 어처구니 없게도 그 이유를 여성의 질이 본래 더럽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이 문지르고 닦고 터는 것은 자신의 신체에서 느끼는 더러운 느낌을 보상하기 위한 것이라니 프로이트가 여성의 질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이런 결론을 내렸을까? 여성의 성기는 자체 조정 기능을 갖춘 기관으로, 사람의 입보다도 깨끗한 데 말이다. 프로이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시카고대 경제학과는 2차 대전 후 꽃을 피워, 정부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는 학파로 유명세를 얻었다. 규제 완화와 감세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후에 마거릿 대처 등의 우파 정치인들에게 거의 종교적인 영향을 미친 밀턴 프리드먼은 1946년 시카고에 왓고, 그의 친구 조지 스티글러가 1958년에 뒤를 따랐다. 시카고 학파는 여성을 경제의 이루로 진지하게 고려한 최초의 경제학파였다.
시카고 학파 경제학자들은 여성은 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보수가 낮은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여성이 출산을 위해 직장을 떠나야 하는 등 남성과 동일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분석이 합당하지 않다. 그럼에도 고등교육을 받고 열심히 일해도 여성들은 여전히 더 낮은 보수를 받고 있다.
더구나 생물학적으로 여성들이 무보수 가사노동에 더 적합하다는 증거는 없다. 그리고 공공 부문의 일자리에서 터무니없는 저임금을 받으면서 혹사당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경제력과 남성의 성기를 묶는 전 세계적 추세를 제대로 합리화하려면 다른 데서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시카고 학파 경제학자들은 그 단계에 이르지도 못했다.
남자는 경제적 인간인가?
1950년대부터 심리학자들돠 경제학자들은 주류 경제학 이론의 인간에 대한 가정들을 체계적으로 실험해 왔다. 경제적 인간에 대한 최초의 공격은 대니얼 카너먼과 에이머스 트버스키에 의해 인간의 결정이 결코 객관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시작됐다. 그들은 우리 인간은 이익의 극대화보다는 위험을 피하는 데 더욱 신경을 쓴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경제적 행동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지배되는 면이 많다. 다른 사람둘이 불공평하게 행동하면 우리는 이에 참여하기를 거부한다. 심리학자들은 유치원생들과 초등학교 2학년, 6학년 어린이들이 경제적 인간처럼 행동하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7세 이상의 어린이들은 성인들과 동일하게 불의에 반응했다. 반면 그보다 어린 아이들은 경제적 인간과 동일하게 행동했다.
돈을 나눠 가질 때, 5세 어린이들은 돈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에는 전혀 관심 없고 가능한 한 많이 가지고 싶어 했다. 가질 수 있는 액수가 적은 경우에도 아예 못 받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일단 쥐고 봤다. 경제적 인간처럼 말이다. 그러나 세계경제를 운영하는 것은 5세 아이들이 아니다.
아니면 실은 5세 아이들인가? 연구를 진행한 연구원들은7세 정도부터 정의와 공정성 같은 요소를 고려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경제적 인간은 성장하면서 지나가는 하나의 단계에 불과하다. 욕심, 두려움, 자기 이익, 합리성만 가지고 돌아가는 인간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사회는 작동할 수 없다. 경제적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는 방정식은 약간 복잡한 수준의 수학 수준이다.
경제적 동기부여 체계
약 100년 전 하노이에 흑사병이 돌았다. 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당국은 쥐잡이들을 고용해 쥐를 죽이는 임무를 부여했다. 이내 이들은 분주하게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이들이 쥐를 잡는 속도보다 쥐들이 번식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하루에 수천 마리를 죽이는데도 쥐의 숫자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프랑스 식민 당국은 주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쥐꼬리 하나당 보상금을 내건 것이다. 처음에는 아주 성공적인 듯했다. 매일 수천 개의 쥐꼬리가 들어왔으니까. 그러나 당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거리에 꼬리가 잘린 채 기어 다니는 쥐가 넘쳐 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꼬리를 잘라 보상을 챙길 목적으로 쥐를 기르기까지 했다.
많은 경우 보상을 받기 위해 필요한 일만을 하고,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딱 투입하는 만큼만 받게 되기 때문이다. 마침내 하노이의 쥐잡기 프로그램은 종료되고 말았다. 주류 경제학 이론은 사람들이 이기적이며, 동기 부여에 반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경제적 동기 부여 체계는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환상에서 벗어나기
어떤 사람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실내 스키장이 두바이에 있다는 사실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페르시아 만. 북위 25도.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여름에 바깥 기온은 섭씨 40도 정도다. 겨울에는 23도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하루에 적어도 12시간씩 일주일 내내 개장하는 스키 시설은 전체 면적이 2만 2500제곱미터에 달한다. 가장 긴 슬로프의 길이는 400미터, 높이는 60미터다.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실내 익스트림 스키 슬로프다.
바깥과 내부의 온도 차는 평균 32도다. 스키장 내부 온도를 낮추는 데 얼마나 많은 연료가 들어가는지 말하기도 겁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을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사막 한가운데 스키장을 짓는 게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라고? 그렇다. 사람들이 돈을 내고 입장할 용의가 있다면 왜 안 되는가? 이것이 우리가 던질 줄 아는 유일한 질문이다.
이 경제 체제가 공평한가? 경제학이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는가? 이 경제 체제가 사람들의 잠재력을 낭비하는가? 사람들의 안전을 충분히 보장하는가? 세계의 자원을 낭비하는가? 의미 있는 고용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는가? 현재의 주류 경제학적 논리 안에서는 이 질문 중 어느 것도 제기할 수 없다.
공짜 돌보기는 없다
마거릿 더글러스, 이 여인은 애덤 스미스의 어머니다. 애덤 스미스는 죽을 때까지 어머니에게 의존했다. 경제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구는 "공짜 점심은 없다"이다. 사실은 여기에 한 가지 더 붙여야 할 말이 있다. 바로 "공짜 돌보기는 없다"라는 말이다. 북유럽 복지 국가들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제 체제는 여성들이 아주 낮은 비용으로 특정 임무를 수행해 내는 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아니다. 전세계 모든 여성에게도 경제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