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 광狂, 폭暴 - 제국을 몰락으로 이끈 황제들의 기행
천란 엮음, 정영선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에서 소개하는 스무 명의 황제는 하나같이 어리석은 군주나 폭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의 어리석고 황당무계한 행동은 매우 독창적이었다. 그들의 그러한 행동이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했다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나라를 거의 그 지경까지 몰고 간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20명의 어리석은 황제들 이야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데 실패하여 거의 미치광이와 같은 기이한 행동을 일삼다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나라의 운명까지도 패망으로 이끈 어리석은 황제들이다. 이 책을 엮은 천란은 북경대 중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고대 문학 석사. 고대 문학, 고대 역사 방면에 깊은 조예가 있으며, 관련 분야의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 황궁의 비밀>, <청소년을 격려하는 365가지 역사 이야기> 등이 있다.

 

비록 오래 된 중국사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군주의 행동일지라도 현재의 시각으로 봐도 기이함의 극치를 보인다. 즉 주색에 빠져 끝내 복상사한 황제, 유모와 놀아난 황제,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고모를 후궁으로 삼은 황제, 신선이 되려고 한 황제, 전쟁을 군사놀이로 알고 궁을 빠져나가 몰래 전쟁터로 달려간 황제, 사랑하는 여인에게 재미난 전쟁 장면을 구경시켜 주려다가 적에게 포로로 잡힌 황제 등이 바로 그들이다.

 

너무나도 황당해서 독창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목공이나 기예에 뛰어난 재주를 보인 황제가 그러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취미생활이 아니었다. 나라의 경영을 내팽개치고 다른 일에 탐닉했던 것은 어쩌면 살벌하게 죽고 죽이는 냉혹한 정치의 소용돌이에서 도피하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살아남고자 한 것일 수도 있다.

 

 

 

 

'하늘은 너를 멸망시키기 전에 먼저 너를 미치게 한다'

 

 

진나라 2대 황제 영호해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 진나라의 시황제 뒤를 이은 2대 황제는 본디 황제가 될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환관이자 스승인 조고의 간계로 인해 유서가 조작되면서 형인 부소를 제치고 황제의 위에 올랐다. 이때 진시황에게 중용되었던 이사도 조고의 유혹에 빠져 조작에 동참하고 만다. 그런데, 이게 2대 황제의 치명적인 약점이었기에 이름만 황제인 호해는 나라를 주무르는 실력자 조고의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호해와 관련된 유명한 고사성어가 바로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이 고사를 좀 더 살펴보자. 조고는 함께 유언 조작에 나섰던 승상 이사를 제거하고 자신이 승상 자리를 꿰차면서 대권을 손에 쥐었지만 늘 불안한 것은 과연 환관 출신인 자신을 대신들이 따라줄지의 여부였다. 이때 그는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다. 그게 바로 이 고사의 탄생이다. 즉 아침 조회 모임에서 그는 호해 황제에게 말 한 필을 선물한다면서 사슴 한 마리를 데려왔던 것이다. 이에 황제는 사슴이 맞다고 말하고, 조고는 계속 말이라고 우겼다. 할 수 없이 황제는 대신들에게 말인가, 사슴인가를 물었다. 그러자 신변의 두려움을 느낀 대부분의 대신은 말이라고 답했다. 이때 사슴이라고 답한 신하는 조고가 나중에 구실을 만들어 죽이고 말았다고 한다.    

 

20살에 황제가 된 그는 욕심 많고 무지몽매한 탓에 자신의 안위와 향락을 위해 20여 명의 형제자매와 나라의 대신들을 미친 듯이 살해했다. 이런 과정에 조고는 어린 황제에게 충성하는지를 판가름하는 수단으로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노루를 말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불충한 인물, 즉 역심을 품은 인물로 간주해 처벌하도록 만든 간신이다. 이처럼 나라가 위기의 끝을 향할 때는 어리석은 군주와 간신이 반드시 만나는 법이다. 호해 황제는 나라가 망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미치고 만 것이다. 

 

 

첩들과의 육욕에 빠져 아들까지 죽이다

 

고대 중국의 어리석은 군주를 나열해 보면 한나라 성제 유오가 단연 으뜸이다. 그는 19세에 황위에 올랐지만, 주색에 빠져서 늘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그의 할아버지가 그에게 '오'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은 '천리마'와 같이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천리마에는 한참 못 미치는 개나 돼지보다도 못한 인물이었다.

 

이미 주색에 빠져 지내던 그는 황제가 된 후에도 달라진 게 없었다. '개버릇 남주나'라는 말처럼, 그는 한눈에 반해서 자신의 고모뻘인 황후 허씨와 부부의 연을 맺고, 이도 양에 차지 않아서 하급 궁인의 미모에 반해 이를 취하고 신분까지 상승시켜 반 첩여(비빈들의 서열상 '소의' 바로 아래 서열임)를 곁에 두고 육욕을 즐겼다.

 

반 첩여는 미모뿐만 아니라 재능과 학식까지 골고루 갖춘 여인이었기에 성제의 지나친 방탕을 제지했다. 하지만, 성제는 여인의 재능보다는 오직 미색만을 탐했다. 마침 그의 눈에 조비연이라는 춤 솜씨가 빼어난 무희가 눈에 쏘옥 들어왔던 것이다. 이 여인은 쌍둥이(의주, 합덕 자매)로, 둘 중 언니의 춤은 워낙 출중해서 마치 제비가 나는 듯한 자태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에게 붙여진 이름이 '조비연'이다. 그날로 바로 그녀는 '첩여'의 지위를 얻었다.

 

성제가 조씨 자매를 총애했지만, 자식을 낳지 못한 이 자매들은 나중에 내팽개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른 후궁들이 성제의 아이를 출산할 경우, 모두 죽이는 잔인함을 보였다. 그런데, 조씨 자매가 임신을 하지 못한 것은 성제를 유혹하려고 항상 사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본디 사향은 피임이나 유산에 사용했을 정도로 임신과는 상극이었다. 이러는 사이에 나라는 외척 왕씨의 수중에 놀아나고 있었다. 결국 성제는 조합덕의 품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북제의 마지막 군주 고위

 

북제의 군주 고위(재위 556~577년)는 무능하고 호색을 즐긴 왕이었다. 예부터 북제의 황실은 음란하고 난폭하기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이것도 전통이라고 고위는 북제의 명맥을 마감시킬 정도로 매일 주색에 빠져 지내며 국정은 나몰라라 했다. 그는 풍소련을 알게 된 후 항상 그녀의 곁을 떠나질 못했다. 또한 요란스로울 정도로 궁을 짓고 극도의 사치를 즐겼다. 얼마나 웃기냐 하면 그가 기르는 닭, 말, 개 등 가축에도 관직과 녹봉을 주었으며, 이를 만류하면 대신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북주의 무제가 북제를 공격해올 때 그는 풍소련과 함께 사냥을 즐기고 있었다. 사실 이른 새벽부터 병사들이 북주의 침략을 세 번이나 보고했지만, 그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첨을 일삼는 신하는 황제 옆에서 보고하는 병사를 오히려 나무랐다. "황제께서 지금 사냥 중이신 것이 보이지 않느냐! 변경 지역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다반사이거늘 왜 이리 보채는 것이냐!"라고 말이다.

 

북주의 군대가 평양성(현재의 산시 린펀)을 함락시키자, 결국 대군을 이끌고 직접 출정하여 평양을 향해 곧장 진격했다. 이때도 그는 풍소련을 두고 가기가 아쉬워 동행했다. 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북주의 군대를 어떻게 격퇴해서 잃은 땅을 되찾느냐가 아니라 내친 김에 풍소련에게 주변의 명승고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결국 북제는 전쟁에서 패했다. 패잔병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고 무기도 지천으로 널렸다. 정신없이 도망가던 고위는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사람을 진양으로 보내 황후의 조복과 인수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바로 풍소련을 황후로 봉하기 위한 것이었다. 황후의 예복을 입은 풍소련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그는 흐뭇해했다. 정말 한심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전쟁 중에 몇 차례 전세를 뒤집을 기회가 있었지만 매번 풍소련이 말도 안 되는 간섭을 한 탓에 그는 승산이 있던 전쟁에서 끝내 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에게 패배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풍소련에게 아무 탈이 없으면 됐지, 전쟁에서 진 게 무슨 대수인가?" 마침내 도망치던 그는 아들과 함께 북주의 무제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이는 그에게 그다지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풍소련까지 포로로 잡혔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마음 아파했다. 그래서 무제를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풍소련을 돌려달라고 애원했다. 역사는 이 인물을 '걱정 없는 천자'로 기록하고 있다.

 

 

환관들에 추대되어 황제가 되다

 

중국 역사는 당나라 목종, 문종, 무종, 선종, 의종, 희종, 소종 등 일곱 명의 황제들은 환관들에 의해 황제 자리에 오른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희종은 12살에 황제가 되었지만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고작 닭싸움, 활쏘기, 검술, 음악, 장기, 도박 등이 전부였다. 그는 나라의 모든 정치 권한을 자신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환관 전령자에게 모두 일임하고 있었다. 그래서 전령자는 권력을 손에 쥐고 마음대로 주물렀다. 이에 마침내 '황소의 반란'이 발생했다.

 

황제를 쉽게 다루려면 어렸을 적에 길을 잘 들여야 한다. 당나라 의종은 아들이 일곱 명이었는데, 환관들은 궁리 끝에 황제가 위독한 틈을 타서 큰 아들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겨우 열두 살밖에 안 된 희종을 즉위시켜 '문생천자門生天子'(환관에 의해 판정된 천자)로 삼았다. 희종은 자신을 황제로 추대한 환관 유행심과 한문약을 공작에 봉했다. 가장 큰 총애를 받은 환관은 전령자였다.

 

당나라 때의 대환관 구사량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문생천자 길들이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황제를 한가로이 내버랴두지 말고 수시로 미인들과 음주가무에 빠지도록 유혹하라. 게다가 수법을 자주 바꾸어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주지 마라. 그와 동시에 가능하면 책을 멀리 하도록 하고, 특히 학자들과 가까이 할 기회를 절대로 주지 마라'라고 말이다. 지난 왕조들의 멸망 사례를 보기라도 하면 자신들을 멀리하고 배척할 게 뻔하니까. 

 

 

제국을 몰락으로 이끌다

 

이밖에도 책은 황후와 함께 미친듯이 재물을 긁어 모았던 당나라 장종, 자신의 수명을 최대한 연장하려고 신선이 되려 했던 명나라의 세종,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똑똑한 동생을 제치고 바보임에도 황제가 된 진나라 혜제 사마충, 친누이와 고모를 후궁으로 들인 송나라의 전폐제 유자업, 황궁에 시장을 차려놓고 상인 역할에만 몰두한 동한의 영제 등의 이야기가 제국의 멸망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준다. 무릇 리더하면 이런 실패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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