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역사 - 플라톤에서 만델라까지 만남은 어떻게 역사가 되었는가
헬게 헤세 지음, 마성일 외 옮김 / 북캠퍼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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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든 수도원에서든 혹은 전쟁터에서든 세계사를 움직인 인물들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이들의 만남은 열정으로 가득 찼고 좌절과 희망이 교차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많은 의미와 도덕적 질문을 던진다. 이 모든 만남의 이야기들이 새롭게 조명되며 긴장감 넘치는 사유의 길로 독자를 이끌 것이다. - '저자의 말' 중에서

 

 

역사는 만남의 연속이다

 

이 책의 저자 헬게 헤세는 독일의 기획자이자 작가이며 대학에서 철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했다. 단편영화 감독으로도 활동하면서 유럽 여러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주요 언론에 문화, 역사, 경제에 관한 칼럼과 시리즈 기사를 다수 연재했으며, 다양한 학술 참고문헌을 편집했고, 저서로는 독일의 역사잡지 <다말스DAMALS>'올해의 역사책'으로 선정한 <천마디를 이긴 한마디>를 비롯해 <단 한줄의 역사>, <처칠 스타일로 승부하라> 등이 있다.

 

 

책은 철학, 과학, 정치, 예술, 대중문화 등의 분야에서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역사적인 인물의 만남을 추적한다. 즉 불세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 같은 경쟁 혹은 대립 관계뿐 아니라, 피에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아서 밀러와 마릴린 먼로 같은 사랑까지 말이다. 이를 토대로 저자는 역사의 경계에 섰던 두 사람의 만남과 그 시대에 질문을 던지고 나아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삶의 다양한 문제와 의미를 되새긴다.

 

 

저자가 던진 수수께끼 같은 질문은 던졌다기보다 역사가 묻는 것과 같다. 예를 들면 종교에 대한 믿음이 과학으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한 시대를 살았던 요하네스 케플러와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의 만남에 부쳐 "신앙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또 어디에서 끝나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과 그의 일본인 아내 오노 요코의 삶 가운데 "내가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를 묻는 식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약 2400년 전 고대 그리스 아테네 교외, 올리브 나무 언덕에서 한 노인과 청년이 나란히 길을 걸어가며 열띤 대화를 주고받는다. 노인은 플라톤, 청년은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들 앞에서 갑자기 올리브 열매 하나가 땅에 떨어진다. 올해 처음으로 열린 올리브 열매를 찾으려고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숙인 채 열심히 바닥을 살폈다. 이리저리 몇 걸음오가다 결국 플라톤이 올리브 열매를 발견해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올리브 열매를 집어 올린다.

 

이 올리브 열매를 놓고 두 사람이 다른 시각으로 인식한다. 플라톤은 모든 존재 뒤에 숨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는 올리브 열매의 이데아와 실제 오리브 열매가 어떤 관계인지를 탐구한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궁금해 하는 것은 올리브 열매의 본질과 자연에서의 위상이다. 즉 플라톤은 모든 사물의 배후를 탐색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경험한 개별자의 본질에 주목한다.

 

 

피에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1118년 어느 이른 아침, 사람들이 파리 골목길을 향하고 있었다. 간밤에 비명이 울려 퍼진 집에는 아벨라르가 거세된 채 방에 누워 있었다. 아벨라르는 당대의 유명인사들로부터 논리학과 변증법을 배운 탓에 이후 공개적 논쟁에서 대중의 열렬한 호응을 얻으며 승리했다.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그의 강의에 놀려들어 명성과 함께 부를 안겨 주었다. 하지만 그는 스승을 노골적으로 비판함으로써 결국 대학에서 추방당해 파리로 돌아갔던 것이다.

 

1114년, 아벨라르가 도착한 파리는 인구가 3~4천 명 정도로 센 강의 중앙에 잇는 시테섬의 좁은 골목길에 밀집해서 살고 있었다. 당시 성당에는 학교가 없어서 학생들은 아벨라르의 논리학 강의를 수강해야 했다. 1116년 어느 날, 아벨라르는 성당 주변에서 꽃다운 나이의 엘로이즈를 보게 되었는데, 단번에 반하고 말았다. 이후 그는 즉각 신상을 수소문해서 그녀의 후견인인 삼촌 퓔베르의 집에 숙식을 요청했다. 그러자 퓔베르는 엘로이즈의 가정교사 노릇을 해달라며 쾌히 승락했다.

 

아벨라르는 자신의 손에 들어온 사냥감을 위협하거나 강요할 필요가 없었다. 수학을 공부하거나 교회 성인들과 그리스, 로마 사상가들의 저서를 공부할 때 그는 이 젊은 여인을 맘대로 유혹했다. 그들은 책을 보는 대신 서로의 눈을 보았다. 곧 그들은 말을 주고받기보다는 키스를 더 많이 했다. 아벨라르의 손은 책장보다는 엘로이즈의 가슴에 더 자주 머물렀다. 그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잠자리를 함께했다.

 

어느 날 두 사람의 애정 행각 장면을 목격한 퓔베르는 극도의 분노를 폭발하면서 아벨라르를 집에서 내쫓았다. 이때 엘로이즈는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게 되었다. 1118년, 엘로이즈는 아벨라르의 고향집에서 아들을 낳고 아벨라르의 여동생에게 양육을 맡겼다. 이후 아벨라르는 퓔베르를 설득해 비밀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엘로이즈는 아벨라르와의 결혼을 원치 않았다. 결혼과 가족이 그의 학문에 방해될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중에 그녀는 작은 예배당에서의 결혼식을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비밀 유지를 어기고 풸베르가 결혼 사실을 퍼트리고 다녔다. 아벨라르는 퓔베르의 복수를 두려워했다. 결국 퓔베르는 친척들과 함께 잔인한 복수극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범죄에 동원된 하수인들은 시골에서 동물들을 상대로 거세를 연습까지 했다. 거사 당일 밤에 매수된 아벨라르의 하인이 하수인들을 집안으로 안내했다. 아벨라르는 이들에게 거세당하고 만다.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

 

폴 고갱은 1882년 증시 붕괴 후 직장을 잃었다. 이때 그는 그림에 전념하는 기회로 잡았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넷, 나머지 인생을 온전히 예술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유부남이었던 그는 그림을 팔아 가족을 충분히 부양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림은 거의 팔리지 않았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일감을 얻어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고집불통의 성격에 싸움이 잦아 일감을 구히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그는 결코 괴로워하지도, 스스로를 괴롭히지도 않았다.

 

고갱은 파리 미술계에서 테오를 알게 되어 그로부터 후원을 받았지만 1888년, 고갱은 빚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테오는 고갱에게 매월 한 점의 그림을 넘기고 아를에 살고 있는 자신의 형과 함께 산다면 메월 150프랑을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사실상 이 제안은 테오의 형 고흐의 아이디어였다. 어쩔 수 없이 고갱은 이를 수용했다.   


"이런 제기랄, 온통 노랑이야"

 

고갱이 고함을 쳤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나서다. 고흐는 태양의 강렬한 색과 하늘의 푸른색 등 자연의 색감을 좋아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노랑을 사용했다. 태양이 작렬하듯 노랗게 이글거리는 해바라기 그림은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고갱은 화폭 여기저기에 노란색을 칠하는 고흐가 못마땅했다. 고흐가 좋아하는 화가나 그림은 고갱에게 경멸의 대상이었다.

 

둘은 늘 일상의 모든 것을 두고 다투었다. 싸우지 않으면 침묵하거나 각자의 작업으로 도피했다. 함께 동거한지 약 두 달이 경과한 12월 23일, 고흐는 미술상이었던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쓴다. '내 생각에 고갱은 이 좋은 도시 아를도, 우리가 작업하는 노란 집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도 싫증이 난 것 같아' 라고. 결국 두 사람은 갈라섰다. 말년을 타히티에서 보낸 고갱은 먼저 세상을 떠난 고흐를 어떻게 추억했을까? 자신의 오두막 앞에 노란색 해바라기를 심었다.

 

 

아서 밀러와 마릴린 먼로

 

아서 밀러마릴린 먼로는 자신의 영역에서 완벽을 추구했다.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대표되는 아서 밀러는 미국 극작가이다.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 배우 이브 몽땅, 존 F 케네디 등 유명인들과과 염문설을 뿌렸던 마릴린 먼로는 세계적인 섹시 심볼로 대변된다. 그런데, 이 둘이 5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책은 '완벽'이라는 키워드로 두 사람의 만남을 조명했다. 먼로가 주연을 맡았던 위대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의 마지막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15쌍의 역사적 만남

 

그 시대의 라이벌이자 친구, 연인, 혹은 소울 메이트로 연결되는 인물들은 앞서 소개한 빈세트 반 고흐와 폴 고갱 말고도 여럿 있다. 책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 앨버트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 윈스턴 처칠과 찰리 채플린, 아서 밀러와 매릴린 먼로, 존 레넌과 오노 요코, 넬슨 만델라와 프레데리크 빌렘 데 클레르크 등 그 이름도 쟁쟁한 총 15쌍의 역사적인 만남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이들의 인물사를 통해 우리들은 무엇을 깨닫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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