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 중국을 만나다 - 중국의 눈으로 바라본 마이클 샌델의 ‘정의’
마이클 샌델.폴 담브로시오 지음, 김선욱.강명신.김시천 옮김 / 와이즈베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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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의 저술들에 대해 비판적 태도로 참여한 중국 철학 전공 학자들과 나눈 대화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우리는 상하이에서 모여 나의 철학적 견해와 유가 및 도가 사상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검토하엿다. 나는 중국 철학 전공자가 아니므로 배우기를 열망하는 학생으로 이 대화에 접근하였다. 나는 서양의 도덕철학과 정치 철학에 나타나는 개인주의의 과도한 점들에 대한 나의 비판이, 가족 및 공동체의 의무를 강조하는 중국의 철학적 전통에 가교를 제공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아버지의 절도를 숨겨야 할까, 고발해야 할까?

 

저자 마이클 샌델은 2010년 이후, 한국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1982)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1980년부터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의 수업은 현재까지 20여 년 동안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손꼽힌다. 존 롤스 이후 정의 분야에 관한 세계적 학자로 인정받는 그는 명실공히 이 시대의 최고 석학이자 철학계의 록스타이다. 대표 저서로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 <완벽에 대한 반론> 등이 있다.

 

공저자인 폴 담브로시오는 중국 상하이 화둥사범대학에서 중국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ECNU'의 영어 석사 및 박사 과정의 코디네이터이자 다문화센터의 책임자다. 유교와 도가, 현학, 현대 비교철학에 대한 논문을 주로 발표했으며, 근대 중국어로 된 몇 권의 책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공저로 <Genuine Pretending: On the Philosophy of the Zhuangzi>가 있다.

 

'정의justice'는 한 사회의 윤리적 기준을 가르는 척도이면서 체제를 구성하는 기준이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들은 정의야말로 공동체의 존재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느끼고 있다. 이 책에는 아홉 명의 중국 철학 연구자들이 등장,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에 대해 새로운 논점들을 제시한다. 즉 동양권 문화, 특히 중국의 것에 크게 영향을 미친 도가道家와 유가儒家 사상 등을 검토하면서 샌델 교수가 미처 고려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는 셈이다. 

 

책은 총5부로 구성되었는데, 제1부에서는 개인, 가족, 공동체 등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정의덕德을 다룬다. 제2부에서는 시민의 덕과 도덕 교육을, 제3부에서는 도가의 전통에서 바라 본 샌델을 각각 살펴본다. 제4부에서는 '자아관自我觀'을 다루면서 샌델과 유가의 전통을 비교하며, 마지막으로 제5부(중국 철학에서 배우기)에선 마이클 샌델의 자문자답을 담고 있다.

 

 

 

 

존 롤스<정의론>은 유럽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즉 정의란 개개인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감에 있어서 구심점 역활을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현재 살고 있는 동양에서도 정의라는 개념이 이와 동일하게 작동했을까? 중국 철학 연구자들은 정의에 대해 새로운 논점들을 제시한다.

 

2007년, 마이클 샌델 교수는 중국에서 강연을 가졌다. 이때 그는 <논어>에 등장하는 유명한 토론 주제를 인용했다. 이는 최근 몇 십 년 동안에도 중국학자들 간에 논쟁이 끊이지 않았던 그런 문장이었다. 행실이 곧은 사람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 섭공葉公공자 간에 나눈 대화로, 섭공은 도둑질을 한 아버지를 고발한 아들이 곧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공자는 가족을 보호하는 게 옳다고 이에 맞선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섭공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는 당시 초나라에 속한 섭지방(현, 하남성 섭현葉縣 남쪽 지역)을 다스리던 태수太守 심제량心諸 으로, 나중에 초나라 대부大夫 자리에까지 오른 정치적 실력자였다. 이제 샌델이 인용한 <논어>에 등장하는 두 인물 간의 대화가 어떠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섭공이 자랑스러워하며 공자에게 말한다. "우리 마을에 '곧은 사람直躬'이 있는데 아버지가 양羊을 훔치면 관가에 고발합니다" 그런데 공자는 이를 칭찬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 마을의 곧은 사람은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잘못을 숨겨 주고, 아들은 아버지의 잘못을 숨겨 줍니다. 곧음은 그 안에 있습니다" - <논어> '자로'편

 

 

조화 없는 공동체에 대한 유가적 관점

 

1993년 이래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직선제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해 왔다. 그때 이후로 싱가포르는 세 명의 대통령을 선출하였는데, 그 가운데 둘은 화교계, 하나는 인도계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싱가포르인들은 대통령이 어느 인종에서든 나올 수 있다고 믿지만, 각 인종집단의 대부분은 자기 종족 출신의 대통령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소수자 출신 대통령이 선출된 가능성이 감소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참고로 싱가포르 국민은 약 74퍼센트의 화교, 13퍼센트의 말레이족, 나머지는 인도인, 유라시아인 및 기타 인종으로 구성된 다인종이다. 

 

이에 최근 헌법위원회는 대통령직에서 모든 인종집단의 대표성이 보장되도록 하는 헌법 수정안을 제시했다. 한 가지 제안된 해결책은, 어떤 한 인종집단이 다섯 번 연속된 임기 동안 대통령직을 차지하지 못했다면, 그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는 그 특정 인종집단 출신의 후보를 선출하자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실현된다면 일정 기간 대통령직에서 가장 큰 인종집단 셋 모두를 대표할 수 있어 싱가포르가 사회적, 종교적, 문화적 조화를 증진할 수 있다는 게 바로 헌법 수정안 옹호자들의 주장이다.

 

대통령 선출의 새로운 메카니즘 채택은 싱가포르의 사회적 조화에 이바지함과 동시에 강력한 국민 정체성을 형성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유가儒家가의 조화 철학은 소수집단우대정책이나 인종차별 없는 대통령제와 같은 민감한 사회 문제를 평가하기에 아주 좋은 관점을 제공한다. 또한 공동체 및 이에 뿌리를 둔 개인 정체성 전반에 대한 강력한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

 

개인 정체성을 구축하고 공동체를 세우는 과정은 사회적 조화와 좋은 삶을 이루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그 어느 하나도 다른 것 없이 달성될 수 없다. 조화의 개념이 없다면 공동체주의 철학은 그 틀 내부에 커다란 구멍을 남기게 되므로 개인과 사회에 대한 탄탄한 설명으로 적합하지 않게 된다. 샌델의 공동체주의 철학은, 그 논의에 조화를 적절하게 포함시켜야 훨씬 더 강해질 것이다. 

 

 

시장 기반 사회의 도덕적 결함

 

마이클 샌델의 정치 이론은 중국에서 인기 있는 주제가 되었다. 1990년대부터 21세기 초까지 현대 정치철학을 연구하는 중국의 학자들은 샌델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하는 부분에 집중했다. 특히 샌델의 구성적 자아관, 옳음에 대한 좋음의 우선성, 중립성에 대한 비판에 주목했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사이의 논쟁도 연구했다.

 

최근에는 <민주주의의 불만>,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특히 <정의란 무엇인가>가 출간되면서 샌델의 정치철학이 중국에서 학계뿐 아니라 공공 영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정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가 추구하는 정의란 무엇인지, 일상생활에서 도덕적 딜레마를 생각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리고 시장市場 방식의 추론이 미치는 해악, 더 일반적으로 말해 시장 기반 사회에 고유한 도덕적 결함이 무엇인지를 사유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샌델의 정치철학은 학자들이나 일반 대중에게 정치 이론의 도움으로 일상의 도덕적 물음을 생각할 수 있게 영감을 주었다. 중국인들이 샌델의 정의론에 관심을 크게 갖게 된 연유는 중국 사회에 공공철학이 공허하고 불만족스럽기 때문이다. 급성장하는 시장 경제 속에서 중국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중국 사람들에게 정치 이론과 도덕적 담론은 시장 기반 추론이 야기하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 샌델의 정치철학은, 이러한 필요가 충족될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대중들이 이러한 문제를 더 깊이 그리고 더 효율적으로 인식하고 토론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음양 매트릭스는 상호보완이다

 

중국적 맥락에서 보면 인간 사회에 내재한 복잡성과 이로 인해 생기는 사회적 쟁점의 문제는 음과 양을 중심으로 그 둘 간의 상호작용 내에서 분류할 수 있다. 서구의 학자들은 젠더가 이원론적이며 젠더의 구성이 남성 우위를 반영하는 반면, 전통 중국에서의 젠더는 상관적이고 음과 양, 땅과 하늘, 안과 밖을 모델로 하는 상호 의존성과 상보성의 개념 위에서 구성된다. 이런 유형의 젠더 구성은 여성들에게 더 다양한 범위의 기회를 주는 사회적 공간을 제공한다.

 

초기 중국 사유思惟에서는 여성의 배제나 남과 여의 분리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남자, 남성, 남성성이 있는 한 여자, 여성, 여성성이 늘 함께했다. 두 가지가 함께 인간 존재의 완전성과 인간적 이해의 완전성을 구성했다. 남과 여가 같은 공간에 살면서 통일된 지평을 형성한다. 젠더의 분리에 대한 초기 저작의 예시가 <시경詩經>에 나오는 남경여직男耕女織이다. 즉 남자는 밭을 갈고 곡식을 심으며 여성은 직물을 짠다는 뜻이다. 이 모든 활동은 인간 실존의 필수 부분이고 높은 가치를 가지며 이런 식의 젠더화된 노동의 분업은 종속이 아니라 상보성相補性의 관계를 보여 준다. 

 

 

샌델의 철학과 도가 사상

 

마이클 샌델인간 공동체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는 철학을 지닌 도덕주의자라면, <노자>와 <장자>의 도가 철학은 사회 제도에 관해 매우 회의적인 반反인간중심적이며 무無도덕적이다. 도가 사상의 세 가지 핵심 개념은 샌델의 논의와 직접 관련되는 것은 물론 그의 논의를 새롭게 조명해 줄 수도 있다.

 

첫째는 전통적으로 사회적 역할, 덕, 이익에 대한 공리주의적 이해와 연관된 절차적 계산에 대한 거부다. 고대 중국에서 경쟁하는 학파들이 제도화되면서 생겨났다고 받아들여지는 (아마도 이것은 오해인 듯하다) 이러한 계산적 사유 방식은 나중에 '기계적 사유' 혹은 글자 그대로는 '기계적인 마음'이라 할 기심機心이란 말로 요약된다. 유명한 도가적 이상, 즉 '자발성' 혹은 '스스로 그러함'이라 할 자연自然과, '억지로 하지 않는 행위' 혹은 '불간섭'이라 할 무위無爲는 이러한 기계적 마음에 대한 원형적 대안들이라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이상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 사물, 자연과 어떻게 상호작용할지는 물론 그런 상호작용이 양산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반성할 것을 요구한다.

 

둘째로 '만족할 줄 아는 것', '족함을 아는 것'이라 할 '지족知足'은 기심에 대한 비판의 근거가 되는 주요 부분이면서 또한 그 자체로 대안이기도 하다. 특히 <노자>에서 보이는 지족은 탐닉에 대한 경고를 뜻한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케 하고, 나아가 지나침은 끊임없이 우리의 기대치를 높이기만 할 뿐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셋째 개념은 <장자>에 나오는 '참사람' 또는 성인이라할 '진인'에 대한 묘사다. 이 개념은 사람이 사회적 규범과 역할을 수행할 때 그로부터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할 줄 아는 능력을 가리킨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것은 사회 영역에서 '자발성', '억지로 하지 않음' 그리고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실존적으로 적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문화를 넘나드는 대화

 

중국 철학을 전공한 학자들과 샌델의 저작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일은 샌델 본인에게는 여러 수준에서 학습의 기회가 되었다. 이는 그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향에서 이루어진 자신의 관점에 대한 도전들을 깊이 생각하게 했고, 중국 철학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경쟁력 있는 관점들 일부를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문화적 전통과 철학적 전통을 넘나들면서 대화가 어떻게 잘 진행될 수 있는지에 대해 놀라움을 주었다.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오래 전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유가 사상은 한국 문화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인들은 유가 사상을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엄격하며, 폐쇄적이고 고리타분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남녀 차별, 직장 상사의 권위적인 언어 폭력과 성희롱, 직업에 대한 귀천貴賤 등의 문제는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특정 계층의 탐욕으로 인해 본질이 훼손, 악용되어 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부조리를 우리들이 당연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동안 당연시되어 왔던 사회 인식을 뒤바꿈으로써 이 사회가 회복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스스로 되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정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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